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270
1269
마우레키온 제국에 들이닥친 재앙들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강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핏빛으로 물들었고, 강에 사는 모든 어패류가 폐사하며 썩은 내를 풍겼다.
농경지에는 메뚜기 떼들이 창궐해 농작물들을 갉아먹었고, 우박이 폭풍우를 이루어 휘몰아치며 모든 것을 파괴했으며, 가축들이 원인 모를 떼죽음을 당했다.
파리 떼가 날뛰고, 탐관오리들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으며, 산 자들의 몸이 썩어들어가 언데드 몬스터로 변이하고, 개구리들이 죽음의 노래를 불렀으며, 마을이나 도시에 사는 전체 인구가 의문사를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국토 5분의 1가량에 해가 사라지고 끝없는 어둠이 계속되기도 했다.
덕분에 제국 전체에는 비상이 걸렸다.
전국 각지에서 들려오는 대재앙들로 인해서, 제국의 업무는 순식간에 마비되고 말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 소식은 슈트카르트 황제에게 곧바로 전해졌다.
“결국… 호랑이 새끼를 키웠군. 내 손으로 키운 호랑이라니.”
슈트카르트 황제는 보고를 받고 얼굴을 굳혔다.
그런 슈트카르트 황제의 얼굴에는 온통 상처가 가득했다.
하루에도 몇 차례나 거칠게 세수를 반복하다 보니 그 곱기만 하던 얼굴에 생채기가 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수를 멈추지 않으니, 상처는 더 심해지고 염증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
제아무리 좋은 포션으로 치료한다고 해도, 얼굴의 손상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반복되니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지크의 오징어 테러(?)로 인한 트라우마가 그만큼 심각했던 것이다.
“모험가들을… 사태 수습에 투입하라.”
결국, 슈트카르트 황제는 기껏 미끼를 사용해 노예로 만들어 낸 게이머들을 10대 재앙을 수습하는 데 써야만 했다.
게이머들을 노예로 만들어 지배하는 건 마우레키온 제국이 오랜 시간을 공들여온 회심의 카드였다.
모험가 말살 정책.
이 세계에서 게이머들을 박멸하겠단 취지로 시작된 프로젝트였고, 실제로 성공했다.
게임의 최상위권을 차지하던 게이머들 대부분을 노예로 만들어 냈으니, 아주 큰 성공을 이룬 셈이었다.
나머지 게이머들은 그 강력한 무력을 이용해 억압하고, 잡아들이고, 가두면 그만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지크가 10대 재앙을 풀어놓음으로써, 마우레키온 제국의 전력은 크게 약화된 상황이었다.
게다가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대재앙들 덕분에 민심은 더욱 흔들릴 테고, 국가의 기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차츰차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결국, 지난 500년 동안 세계 최강대국으로 군림해왔던 대제국 마우레키온에 멸망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이다.
그토록 강성하고, 또한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던 철옹성에 난 균열이었다.
하지만 슈트카르트 황제는 멈추지 않았다.
“계속 진군하라고 하라.”
“예, 폐하.”
슈트카르트 황제는 전 국토가 쑥대밭으로 변하고 있음에도, 전쟁을 멈추려 하지 않았다.
대소신료들의 반대?
그런 건 있을 수가 없었다.
마우레키온 제국의 실질적 국정운영은 슈트카르트 황제를 중심으로, 사천왕이 도맡아서 하는 중이었다.
어차피 대소신료들이야 언제든 갈아치우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
“병력을 안 빼?”
“예, 폐하.”
지크는 한센의 보고를 받고 솔직히 좀 놀랐다.
지크가 10대 재앙을 풀어놓은 게 3일 전 일이었다.
그리고 10대 재앙으로 인해 마우레키온 제국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도 첩자들의 보고를 받아서 뻔히 아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군을 멈추지 않는다?
이건 둘 중 하나였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 나중에 뒷수습할 자신이 있거나, 혹은 이판사판 같이 죽자는 것이거나.
‘뭔가 숨겨놓은 다른 카드가 더 있다.’
지크는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같이 죽자?
마우레키온 제국이 그런 바보 같은 판단을 내릴 리 없었다.
전쟁을 일으키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마우레키온 제국의 패권을 유지하는 데 가장 큰 위협이 되는 프로아 제국을 제거하고, 나아가 게이머들까지 말살하기 위함이었다.
즉, 전쟁의 목적 자체가 마우레키온 제국의 번영과 영광을 위한 것이었기에 같이 죽자는 의도는 절대 아닐 것이다.
물론 슈트카르트 황제의 사적인 감정이 들어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지금으로서는 몰라. 일단 싸우다가 들이닥치면, 그때 대응해야 해.’
지크는 일단은 불안감은 억누르고, 전쟁 준비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폐하!”
한센이 매우 밝은 표정으로 지크에게 보고했다.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폐하!”
“예?”
지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즘 같은 세상에 좋은 일이 있을 게 있나?’
당장 프로아 제국과 마우레키온 제국 간의 대규모 전면전이 코앞에 들이닥친 이 마당에, 좋은 일이 있으면 얼마나 있을까?
“무슨 일인데?”
“모험가들이 앞다투어 우리 군에 입대하고 있답니다!”
“……!”
“숫자가 엄청납니다! 그야말로 대군입니다! 50만 명은 훌쩍 넘습니다!”
“오오!”
지크는 환호했다.
안 그래도 마우레키온 제국에 비해 병력의 숫자가 열세인 상황인데, 게이머들이 합류해주니 호재였다.
“마우레키온 제국이 벌인 행동 때문에, 모험가들의 반감이 엄청나게 커진 것 같습니다. 이대로 마우레키온 제국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모험가들의 입장에선 정말 큰일이겠지요. 마우레키온 제국의 박해와 억압 속에서 살아가야 하니 말입니다.”
“그렇겠네. 모험가들 입장에서도 마우레키온 제국이 승리하는 그림은 원하지 않을 것 같아.”
“예, 폐하.”
“덕분에 잘됐어.”
지크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아.”
“하하하.”
한센은 지크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폐하.”
“으응?”
“전략을 하나 짜왔사옵니다.”
“오오!”
지크는 타고난 전략가인 한센이 전략을 짜왔단 말에 크게 기뻐했다.
한센은 전술·전략에 특화된 영웅 유닛으로써, 잠재력이 폭발하면 예지력까지 사용 가능한 인물이었다.
아직 성장이 무르익지 않아 예지력을 사용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뛰어난 전략가였던 것이다.
“본국의 주된 전략은 대규모 전면전을 최대한 피하면서, 전쟁을 소규모 국지전으로 이끌어가는 형태입니다.”
“이유는.”
“폐하의 무력이라면, 전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큰 활약을 하시는 게 가능합니다.”
“그, 그래….”
지크는 한센의 말에 벌써부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피로를 느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에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움직이면서 전공을 올려야 연합군이 단 한 명이라도 덜 죽을 게 아니던가?
“그리고 본국에는 마스터가 많습니다. 그 마스터들이 소규모 병력을 이끌고 마우레키온 제국의 측면과 후방을 뒤흔든다면, 적들이 섣불리 정면으로 쳐들어오지 못할 것입니다. 정면으로 파고드는 순간 전략적 요충지들을 내어주는 셈이 되고, 불리한 지형에서 포위당한 채로 싸워야 하겠지요.”
“크으!”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가야지.”
지크가 한센의 말뜻을 알아듣고 대답했다.
“마우레키온 제국보다 한발 빨리 나눈 병력을 내보내서, 전투가 벌어지는 장소의 숫자를 늘려야지.”
“현명하십니다, 폐하.”
한센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주군인 지크가 자신의 전략을 알아봐 주고, 또 인정해주니 이보다 기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오늘 밤. 5개 사단 내보내서 마우레키온 제국의 측면과 후방을 치게 하자.”
“예, 폐하.”
한센이 대답했다.
“폐하께서 이번에 접수하신 반란군 세력을 먼저 움직여서 적들에게 혼란을 주고, 가장 방어가 취약한 곳의 국경선을 넘으면 될 일입니다.”
“오케이.”
“바로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지.”
“실시하겠습니다. 충성.”
“충성.”
그렇게 프로아 제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의 출동이 계획되었다.
오늘 밤.
드디어 연합군과 마우레키온 제국 간에 세계의 패권을 둔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
출정을 앞둔 시점.
“폐하.”
크반트가 지크를 찾아왔다.
“크반트 님!”
지크는 오래간만에 본 크반트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크반트의 몰골은 처참했다.
이게 대장장이인지, 아니면 전쟁터에서 구르다 온 패잔병인지 분간이 안 될 지경이었다.
심지어, 볼이 움푹 패여 있고 눈은 퀭하기까지 했다.
‘이거 두 번 만들다가는 사람 잡겠는데?’
지크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크반트에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껄껄!”
크반트가 웃었다.
“폐하, 저는 괜찮습니다.”
“그, 그래요…?”
“몸은 고되나, 창작욕은 샘솟습니다. 세계 등급의 아티펙트를 만드는 일인데, 일이 고되지 않으면 말이 안 되지요.”
“크….”
“일단 기틀은 잡았습니다.”
“정말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감을 잡으니까 작업 속도가 올라갔습니다.”
“잘됐네요!”
“길게는 두 달. 짧게는 한 달 반이면 완성됩니다.”
“……!”
“곧 세계 등급의 아티펙트를 손에 넣으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너무 무리하진 마세요.”
지크는 세계 등급의 아이템의 주인이 되는 것보다, 크반트를 더 걱정했다.
“크반트 님 몸이 상하실까 너무 걱정이 돼요.”
“괜찮습니다! 껄껄!”
“그런데 바쁘시고, 몸도 안 좋으신데 왜 굳이 저를 찾아오셨어요. 진행 상황 같은 건 그냥 아랫사람들한테 시켜서 전해주셔도 되는데요.”
“압니다.”
크반트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꼭 필요한 게 있어서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필요한 거요?”
“폐하의 혈액이 필요합니다.”
“으응…? 왜죠?”
“세계 등급의 아티펙트는 다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나, 무기라면 더더욱 어렵습니다. 제 판단으로는….”
크반트가 조심스레 말했다.
“아무리 폐하라도 무기를 100퍼센트 제어하시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 그 정도인가요?”
“제작 과정에서 무기에 자아가 생기는 듯한데, 일단은 지켜봐야 합니다. 확실한 건, 폐하가 아니면 다루기가 거의 불가능한 녀석이 탄생할 것이란 점입니다.”
“헐….”
“그래서 폐하의 혈액이 필요합니다. 폐하의 혈액을 매개체로 이용하면, 무기와의 친밀도를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혈액을 좀 받고자 이렇게 왔습니다.”
“아, 그거라면 어렵지 않죠.”
지크가 자신의 소매를 걷고는, 팔뚝을 슥 내밀었다.
“뽑아가세요.”
“예, 폐하.”
뒤이어 크반트가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채혈기구들을 꺼내놓았다.
채혈기구들은 번쩍번쩍 은빛 광택이 나는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바늘의 두께와 피를 저장하는 탱크의 용량이 범상치가 않았다.
“어….”
지크가 당황해서 크반트에게 물었다.
“피가 좀 많이… 필요한가 보네요?”
“아, 예.”
크반트가 지크의 시선을 피했다.
“조금 많이 필요합니다. 허허.”
“저, 저기요…?”
“그럼, 뽑겠습니다.”
크반트가 지크의 팔뚝에 그 큰 주삿바늘을 꽂더니, 채혈기구를 작동시켰다.
쭉! 쭈욱!
그러자 지크의 혈액이 은빛 금속관을 따라서 탱크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허억!”
지크는 그 끔찍한 느낌에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빠, 빨린다….’
지크가 놀라거나 말거나, 채혈기구는 마치 며칠은 굶은 아귀처럼 피를 탐욕스럽게 빨아들였다.
그 결과.
[알림: 상태 이상!] [알림: 에 걸렸습니다!] [알림: 어지럽습니다!] [알림: 피로감이 극대화됩니다!] [알림: 빠르게 영양분을 보충하세요!]결국, 지크는 중상을 입어 과다출혈에 걸린 사람만큼이나 피를 뽑히고 나서야 크반트로부터 풀려날 수 있었다.
육체적 능력이 엄청난 지크조차도 현기증을 이길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피를 뽑힌 것이다.
“폐하, 이거 드시고 기운 차리십시오.”
“…….”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껄껄!”
크반트는 어지러워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지크에게 초코파이 한 상자를 건네고는, 도망치듯 자리를 떠나버렸다.
지크의 피를 쪽 빨고는 도망친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