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272
1271
“짐의 노예들이여.”
슈트카르트 황제가 자신의 앞에 무릎 꿇은 세 명의 그랜드 마스터들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짐의 명령에 따라, 짐의 적들에게 징벌을 가하라.”
그러자 세 명의 그랜드 마스터들이 슈트카르트 황제를 향해 고개를 조아리면서, 노예의 예를 취했다.
무려 셋이었다.
혼자서도 어지간한 왕국 하나를 휘청이게 만든다는, 상황과 조건이 맞으면 성체 드래곤을 사냥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초인이 셋이나 있었던 것이다.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
슈트카르트 황제는 지크를 떠올렸다.
‘네놈이 이래도 짐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랜드 마스터 셋을 모조리 노예로 거느리게 된 슈트카르트 황제의 뇌리에 패배란 단어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을 가진 세 사람을 노예로 부리는 입장에서, 패배를 떠올리기란 결코 쉽지 않았던 것이다.
“삼존, 투입하라.”
“예, 폐하.”
슈트카르트 황제는 연구원들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비밀기지를 떠나 황궁으로 복귀했다.
“폐하, 프로아 제국의 수군이 아군 수군 기지를 공격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폐하, 프로아 제국군 5개 사단이 국경을 넘어 본국의 영토로 침투해 들어왔다고 하옵니다.”
연구실을 나서자마자 별로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지만, 슈트카르트 황제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차분히 대응하라. 위대한 대(大)마우레키온은 지지 않는다. 며칠 내로 대제국 마우레키온 제국의 힘을 보여줄 것이다.”
“명령 받들어 모시겠사옵니다.”
그렇게 슈트카르트 황제는 삼존의 본격적인 투입까지 아주 잠시 동안 숨을 고르기로 했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호랑이가 자세를 낮춰 몸을 웅크리고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
첫 번째 전투는 프로아 제국군의 완승으로 끝이 났다.
수전은 당연히 대승이었고, 뒤이어 육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도 프로아 제국군은 대승을 거두었다.
지크가 수군 기지를 휘저어준 덕분에, 상륙전이 누워서 떡 먹듯 손쉽게 흘러갔던 것이다.
“프로아 제국! 만세!”
“만세!”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 폐하! 만세!”
“만세!”
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폐하, 사령부의 한센 사령관으로부터 통신이 걸려왔사옵니다.”
“그래요? 받아볼게요.”
“예, 폐하.”
통신이 연결되고.
– 폐하,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한센이 지크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축하는 무슨. 이제 시작인데.”
그렇게 말하는 지크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고,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알림: 상태 이상!] [알림: 에 걸렸습니다!] [알림: 빠르게 영양분을 보충하세요!]프로아 제국을 나서기 직전 크반트에게 피를 쭉쭉 빨린 덕분에, 아직까지도 그 후유증이 가시질 않은 것이다.
그만큼 많은 양의 피를 뽑혔단 증거였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지크가 물었다.
– 예, 폐하. 지금 수송선들을 출발시켰습니다.
“으응?”
– 수송선들에는 연합군 3개 군단의 병력이 탑승해 있는 상태고, 곧 폐하께서 점령하신 마우레키온 제국의 수군 기지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 점령한 수군 기지를 거점으로 연합군 병력을 배치시키고, 또 하나의 전선을 구축할 생각입니다. 아군이 피아로 강을 장악하면 장악할수록, 인접한 지역은 아군의 영역이 될 예정입니다.
“……!”
– 수군 기지를 거점으로, 아군의 육군 병력을 상륙시켜서 전면을 최대한 넓히는 게 가능합니다. 그래서 미리 연합군 3개 군단을 준비시켰습니다.
“미, 미쳤다….”
지크는 한센의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피아로 강을 장악했을 때를 대비해 2차 작전까지 구상해놓았을 줄이야….
지크가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을 아주 완벽하게 처리한 한센이었다.
– 하지만 폐하의 말씀대로 이제 시작입니다. 아직까지 마우레키온 제국이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고 있으니, 최대한 빠르게 피아로 강을 장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게 한센이 지크를 피아로 강 전투에 투입시킨 결정적인 이유였다.
한센이 그리는 큰 그림에는 피아로 강을 장악하는 게 필수적이었고, 그에 따라 연합군이 동원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인 지크의 활약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 계속 가셔야 합니다.
한센이 지크에게 강조했다.
– 마우레키온 제국이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전에 피아로 강을 최대한 장악하셔야 합니다.
“알겠어.”
지크는 한센의 말을 듣고 피로가 2배로 몰려드는 걸 느꼈지만, 꾹 참았다.
어쩌랴?
강자의 숫자는 적고, 커버해야할 전장의 숫자는 많은데.
“계속 밀어붙여 볼게.”
– 예, 폐하. 고생하십시오.
“그래.”
지크는 한센과 통신을 끝내자마자 전장 정리를 명령하고, 마우레키온 제국의 다음 수군 기지 공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동쪽으로, 또 동쪽으로.
뉘르부르크 대륙의 젖줄인 피아로 강의 물길을 따라 마우레키온 제국이 지배하는 영역을 빼앗으려는 것이다.
***
그로부터 2주일이 지났다.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진짜 프로아 제국과 연합군이 마우레키온 제국을 집어삼키는 게 아닐까?”
“세상이 바뀌었구먼, 바뀌었어.”
“500년 대제국의 역사도 이제 끝이로군.”
마우레키온 제국이 프로아 제국이 이끄는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고, 또 망할 것이라는 말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현재 마우레키온 제국에는 전국 각지에 10대 재앙이 들이닥침으로써, 대재앙이 펼쳐지는 중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전염병 사태로 인한 피해는 더욱 컸다.
최근에는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되어 사태가 진정세에 들었다지만, 이미 죽은 인구가 무려 5천만 명에 달했다.
그리고 전투.
지난 2주일 동안 마우레키온 제국은 프로아 제국과 연합군에게 연전연패를 기록하며,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시기를 보내는 중이었다.
마우레키온 제국은 불과 1주일 만에 국토의 5분의 1을 점령당했다.
프로아 제국군이 국경을 넘어 영토 안으로 치고 들어왔고, 피아로 강 일대를 점령했다.
마우레키온 제국은 그렇게 물길을 잃었다.
물류의 중심인 피아로 강에 자리한 7개의 수군 기지 중 6개를 빼앗겼고, 수군의 약 80퍼센트가 궤멸당하고 말았다.
아직 프로아 제국과의 국경 근처에 백만이 넘는 대군이 배치되어 있었지만, 섣불리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 대군을 움직이는 순간 마우레키온 제국은 멸망할 게 분명했다.
이미 마우레키온 제국의 영토를 점령한 프로아 제국군과 연합군이 유리한 위치에서, 사방팔방으로 달려드는 포위 공격을 펼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우레키온 제국군은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태로 발이 묶이게 되었다.
대군을 움직일 수가 없으니, 계속 얻어맞으며 프로아 제국군과 연합군에게 질질 끌려다녀야만 하는 것이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마우레키온 제국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중에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이라면, 추가 병력을 빠르게 모아서 영토 안으로 쳐들어온 프로아 제국군과 연합군을 정리하는 거였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이런 빌어먹을!”
“모조리 잡아들여라!”
“징집을 거부하는 놈들은 모두 죽여라! 놈들은 이 나라의 해충이다! 매국노이자 반역자로 간주하라!”
마우레키온 제국의 젊은이들이 징집을 거부하면서, 추가 병력을 모으는 게 쉽지 않았다.
안 그래도 나라 꼴이 개판이라 하루하루 죽지 못해서 살아가고 있는데, 이제는 패색이 짙은 전쟁터에까지 끌고 가려 하니 애국심이고 나발이고 다 버리고 도망쳤던 것이다.
도망친 젊은이들은 산으로 들로 숨어들었고, 자연스럽게 모였으며, 그러다 보니 도적 떼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지난 500년 동안 쌓아 올렸던 국력에 차츰차츰 금이 가더니, 이제 곧 모래성처럼 무너질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반대로, 프로아 제국과 연합군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이대로라면 이 전쟁은 2주 안에 우리 군의 승리로 끝난다.’
한센은 지도를 들여다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질 수가 없었다.
여기서 마우레키온 제국군이 큰 이변을 내지 않는 한, 프로아 제국과 연합군의 승리는 이미 기정사실이었다.
그러나….
‘너무 쉽다. 상대는 대제국 마우레키온이다. 이대로 무너질 리 없어.’
딱히 불길한 징조가 보이는 건 아니었다.
프로아 제국군 사령부는 의 인공위성으로부터 마우레키온 제국군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보고 받고 있었다.
한센은 마우레키온 제국군의 움직임으로 미루어 봤을 때, 큰 이변이 일어나기는 힘들단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왜일까?
엄습하는 불안감이 한센을 밤늦도록 잠들지 못하게끔 하고 있었다.
그렇게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던 한센은, 동이 터올 무렵에야 겨우겨우 잠에 빠져들었다.
그로부터 약 2시간 후.
벌떡!
한센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깨었다.
“이, 이게 무슨….”
한센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재빨리 사령부 회의실로 향했다.
‘악몽이라니.’
꿈을 꾸었는데, 그 내용이 기묘했다.
하늘 위에 떠 있던 커다란 눈알을 황금색 키메라가 파먹는 꿈이었다.
황금색 키메라는 마우레키온 제국의 상징적인 동물이었으니, 어째 영 찜찜했다.
그래서 한센은 자신이 잠든 그 짧은 시간 동안 혹시나 무슨 일이 벌어진 게 아닌지 불안하기만 했다.
“혹시… 특이사항 있습니까?”
“한센 경.”
오스칼이 회의실로 들어선 한센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다.”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후우.”
한센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늘 그렇듯 의 본부와 통신했다.
인공위성을 통해 마우레키온 제국군의 동향을 알아보려는 것이다.
그런데.
– 한센 경.
늘 인공위성으로 수집한 정보를 건네주던 대원의 표정이 그리 좋지가 못했다.
“무슨 일 있습니까?”
– 그게….
“……?”
“1시간 전에 인공위성이 요격당했습니다.”
“예?!”
한센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 정황상 그런 것 같습니다. 인공위성과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맙소사.”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공위성을 잃었다는 건 엄청나게 큰 타격이었다.
쉽게 말해서, 맵핵을 사용하다가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기존에 활용하던 정보의 양이 90퍼센트 이상 줄어들어 버린 것이다.
‘설마 그 꿈이…?’
한센의 뇌리에 그 생각이 스치던 무렵.
“아군 1개 사단, 공격 받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보급로에 자리한 요새들과 통신이 되지 않았습니다!”
“적진에 침투해서 작전을 수행하던 우리 군이 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통신이 더 이상 불가능할 정도로 힘든 싸움이고, 패전 후 퇴각할 확률이 90퍼센트 이상이라고 합니다!”
갑자기 안 좋은 일들이 마치 도미노처럼 연달아 터지면서, 보고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반격.
2주일이 넘도록 얻어맞기만 하던 마우레키온 제국이 본격적으로 반격에 나선 게 분명했다.
***
“폐하! 사령부에서 급한 보고가 올라왔사옵니다!”
아침 일찍 로그인해 대기하고 있던 지크는, 급한 보고를 받고 마법의 수정구 앞에 섰다.
– 폐하.
한센이 어두운 얼굴로 지크에게 보고했다.
– 연합군 소속으로 1개 군단을 지휘하던 타이칸 공작이 조금 전 벌어진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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