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273
1272
타이칸.
과거 사부가 현역으로 활동했던 당시 그랜드 마스터 중 하나였던 뇌신 바즈라의 후예 중 하나.
프로아 제국의 혈맹 중 하나인 의 스터너 가(家) 장남으로서, 최근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강자였다.
지크와는 던전 앞에서 타임 어택 경쟁을 했던 인연으로, 지금껏 굵직굵직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같은 전장에서 싸워온 전우이기도 했다.
“뭐…?”
지크가 제 귀를 의심하며 대답했다.
“누가… 죽어?”
– 타이칸 반 스터너 총사령관이… 조금 전 벌어진 전투에서 전사하셨다고 합니다….
“에이, 설마.”
지크는 한센의 보고를 믿지 않았다.
“걔가 왜 죽어. 걔 엄청 강해. 그냥 좀 많이 다친 거겠지.”
지크는 타이칸의 실력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지크의 성장 속도가 엄청나서 그렇지, 타이칸은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까지도 노려볼 만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젊은 무인들 중에서는 최상급.
NPC라는 한계점을 생각하면, 최상급의 영웅 유닛이었다.
그런 그가 죽었다?
지크로서는 믿기 힘든 보고였다.
– 시신을… 수습해왔다고 합니다.
“…….”
– 도제, 아니 이제는 단천존이 된 베텔규스 어르신이 마우레키온 제국군 진영에서 나타나 타이칸 총사령관을… 베었다고 합니다.
“…….”
– 시신이 두 동강 나서… 장의사들이 꿰매는 작업까지 마쳤다고 합니다. 타이칸 총사령관의 전사는… 확인된 사항입니다.
지크는 그 보고까지 받고, 눈을 질끈 감았다.
‘말도… 안 돼.’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상세하게 보고가 올라왔다면, 타이칸은 죽었을 게 분명했다.
게다가 실종되었던 베텔규스가 마우레키온 제국군 진영에서 나타났고, 타이칸과 싸웠다면… 결과는 뻔했다.
마스터와 그랜드 마스터 간의 격차는 생각보다 크다.
웨펀 마이스터 샤키로쯤 되는, 그러니까 최상급의 마스터라면 그랜드 마스터와 어느 정도 싸움이 된다.
하지만 샤키로보다 실력이 부족한 마스터라면, 베텔규스를 만나는 순간 죽을 수도 있었다.
지크가 생각하기에, 베텔규스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나누크사와 같은 마스터가 못해도 7명은 필요했다.
격차가 심할 경우, 못해도 마스터가 10명은 넘어야 대등한 싸움이 가능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물론 절대적인 수치는 아니었고, 마스터와 그랜드 마스터의 수준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했지만 말이다.
– 전세가 뒤집어졌습니다. 마우레키온 제국에서 베텔규스 어르신이 나타났다면, 치천존 어르신의 등장도 예상해야 합니다. 폐하, 마우레키온 제국이 서서히 그 힘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일단은… 알겠어.”
지크는 잠시 숨을 고르기를 원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타이칸… 그 자식이….’
친한 NPC의 죽음은 언제나 뼈아프다.
게이머들이야 죽으면 무한으로 되살아나니, 전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NPC들의 죽음은 달랐다.
한 번 죽은 NPC를 되살리는 방법은 없다.
현실에서 지인이 죽는 것과 같다.
영원한 이별이다.
“빌어먹을….”
지크는 한센과의 통신을 끊고, 상실감과 분노를 애써 삭였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알았지만….”
지난 2주 동안 너무 쉬웠다.
마우레키온 제국이 본격적인 반격에 나서면 힘든 싸움이 될 줄 알았으면서도, 막상 타이칸이 전사하고 나니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복수는… 해줄게.”
지크는 타이칸의 그 밝은 미소를 떠올리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뀨… 주인 놈아….”
햄찌가 그런 지크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했다.
마우레키온 제국과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겪는 아픔, 그리고 고통이었다.
***
마우레키온 제국의 반격은 대대적이었다.
의 인공위성을 무력화시킨 것을 시작으로, 마우레키온 제국은 웅크리고 있던 그 힘을 본격적으로 떨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졌고, 마우레키온 제국은 연전연승을 거듭했다.
그 중심에 삼존이 있었다.
치천존.
단천존.
그리고 파천존.
마우레키온 제국은 이 3명의 그랜드 마스터를 앞세워 프로아 제국군과 연합군을 격파하면서, 반격의 기틀을 마련했다.
“아아….”
한센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보고를 받으며, 길게 탄식했다.
전략이 무너지고 있었다.
세 명의 그랜드 마스터가 발휘하는 무력 앞에서, 한센의 전략은 아무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전장의 유리함도, 전술적인 유리함도 소용이 없었다.
세 명의 그랜드 마스터가 각지에서 힘으로 밀어붙이니, 프로아 제국군과 연합군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후퇴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장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 것은, 마우레키온 제국이 프로아 제국군과 연합군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움직이기 시작했단 거였다.
주객이 전도된 현상이었다.
‘빼앗긴… 건가.’
한센은 의 인공위성인 을 마우레키온 제국에게 빼앗겼다고 판단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지금의 사태를 설명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폐하께서 삼존을 제거한다면, 다시 전략을 이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지크를 활용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마우레키온 제국은 프로아 제국군과 연합군의 이동 경로를 훤히 꿰뚫고 있었고, 지크가 나타날 만한 장소에는 삼존을 투입하지 않았다.
대신 철저히 지크를 피해 다니면서 프로아 제국군과 연합군만을 노렸다.
덕분에 지크는 벌써 1주일째 허탕을 치는 중이었다.
지크는 대기하고 있다가 삼존이 나타났단 보고가 올라오면 즉시 해당 지역으로 이동했는데, 그때마다 상황은 이미 정리된 후였다.
마치 숨바꼭질하듯이, 프로아 제국군과 연합군의 가장 강력한 조커 카드인 지크를 따돌렸던 것이다.
덕분에 지크는 크게 분노했다.
“이 쥐새끼 같은 자식들….”
지크는 또 허탕을 치고 부들부들 떨었다.
지크는 자신이 있었다.
치천존?
마주치면 개꿀이었다.
그 누구보다 쉽게 제압해서, 프로아 제국으로 끌고 오면 그만이었다.
을 장착한 지크에게 마법사인 치천존은 먹잇감에 불과했다.
제아무리 그랜드 마스터라 해도 말이다.
베텔규스 어르신도 100퍼센트 승리를 장담하긴 힘들지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파천존이야 마주친 적이 없으니 예외로 치고.
문제는 만나야 담판을 지을 텐데, 그게 안 되었단 점이었다.
“그냥 확 쳐들어가서….”
결국, 지크는 참다못해 적진 한복판으로 먼저 난입할 생각까지 했다.
“안 됩니다.”
한센이 그런 지크를 뜯어말렸다.
“그게 적들이 바라는 바입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전사하시는 건 괜찮습니다.”
“뭐 인마?”
지크가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폐하께서 세뇌되시는 사태가 벌어져선 안 됩니다. 그러면 다 죽습니다. 꿈도, 희망도, 미래도 없습니다.”
“그, 그건… 그렇지.”
마우레키온 제국이 무서운 것은, 적을 단순히 죽이는 걸 넘어 가두거나 지배해버리는 게 가능하단 거였다.
최근 마우레키온 제국은 붙잡은 포로들을 매우 적극적으로 세뇌시켜서 전쟁에 투입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혹시나 지크가 붙잡힌다?
파멸이었다.
“폐하, 답답하시더라도 참으셔야 합니다. 그들에게 뒤를 잡혀선 안 됩니다. 우리가 적들의 뒤를 잡아야 하옵니다.”
“그건 그렇지만….”
“제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또한, 나인테일 정보국장이 몸소 적진 한복판에 침투해 있는 상황입니다.”
“……!”
“나인테일 정보국장이 정보를 수집해올 때까지, 조금만 참으소서. 이대로 들이받았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릅니다.”
“알겠어.”
지크는 한센의 조언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당장 적진으로 쳐들어가려던 걸 참았다.
그러는 사이.
“세스크 후작이 전사했다고 합니다.”
또다시 비보(悲報)가 전해져 왔다.
프로아 제국의 명장 중 하나인 패왕 브라움의 후예인 세스크마저도 전사했다는 소식이 그것이었다.
“아.”
지크는 그 소식을 듣고 안면을 감쌌다.
타이칸에 이어 세스크까지 전사할 줄이야….
답답한 전쟁.
일방적으로 얻어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
전쟁에도 흐름이란 게 있고, 공격의 주도권을 한 번 빼앗기면 되찾기가 쉽지 않은 법이었다.
게다가 그 상대가 마우레키온 제국이라면, 더더욱 어려웠다.
왜?
마우레키온 제국군은 노련했으니까.
마우레키온 제국에는 지난 500년 동안 축적해온 전쟁 경험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정립한 전술 교리를 지니고 있었다.
그건 신흥강국인 프로아 제국이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는, 오랜 세월 전쟁을 치러온 국가만이 지닐 수 있는 귀중한 자산이었다.
어떻게 하면 유리한 전쟁을 굳힐 수 있는지를 너무나도 잘 아는 것이다.
“폐하, 제가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믿고 기다려 주십시오.”
“…알겠어.”
지크는 한센의 간청에 치솟아 오르는 분노를 꾹 억눌렀다.
“뀨… 주인 놈아….”
“세스크의 장례식은… 전쟁이 끝나면 성대하게 치르는 것으로 할게.”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지휘부를 나섰다.
착잡한 심정을 조금이라도 억누르기 위해서, 바람이라도 좀 쐬려는 것이다.
***
한편, 나인테일은 용케도 마우레키온 제국군의 사령부에 침투해 있었다.
사실 그건 꽤나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녀는 과거 슈트카르트 황제의 애장품을 털 정도로 침투, 잠입, 변신, 공작 능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비결 중 하나로는 평소에 위장 신분을 부지런히 만들어두는 것에 있었다.
언제 어느 곳에든 침투할 수 있도록, 길게는 몇 년 전부터 위장 신분을 만들어두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나인테일은 수년 전에 마우레키온 제국군 정보사령부 소속 정보장교 신분을 만들어두었고, 그걸 이용해 사령부에 침투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우레키온 제국군의 동향을 한눈에 들여다보게 되었다.
‘역시. 베히모스의 눈을 빼앗긴 거야.’
나인테일은 마우레키온 제국군 사령부에서 을 이용해 프로아 제국군의 동향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DA1331 전장에 단천존을 투입합니다.”
“FF9113ED 전장에 파천존을 투입합니다.”
“E3112 전장에 치천존을 투입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삼존의 전장 투입과 후퇴 명령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인테일은 조심스럽게 그 정보에 접근하는 한편, 프로아 제국에 통신을 걸었다.
‘치천존의 위치부터 보고해야 돼.’
나인테일이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치천존이야말로 지크가 가장 상대하기 쉬우면서도 프로아 제국군에게는 가장 위협적인 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위대한 아크 메이지가 전장에서 발휘하는 파괴력이란, 미리 준비해둔 주문 하나만으로도 아군 수만 명을 학살할 정도였다.
아무래도 마법사란 클래스 자체가 광역 마법을 이용한 대량살상에 특화되어 있다 보니, 프로아 제국군으로서는 가장 무서운 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알려야 해.’
나인테일은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치천존이 투입될 전장의 위치와 시간을 프로아 제국군 사령부에 전달했다.
“폐하!”
한센은 이 첩보를 입수하자마자 즉시 지크에게 알렸다.
“나인테일 정보국장이 치천존 어르신이 투입될 전장의 위치와 시간을 알려왔습니다!”
“……!”
“2시간 후 피아로 강 근처에 주둔해 있는 연합군 병력을 공격하는 데 투입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바로 갈게.”
지크는 그 보고를 듣자마자 즉시 해당 지역으로 워프했다.
‘어르신. 제가 꼭 구해드려서, 편해지게 해드리겠습니다. 노후 편안하게 보내셔야지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