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274
1273
치천존이 나타난 전장은, 그야말로 생지옥이 따로 없을 지경이었다.
“으악!”
“으아아아아아악!”
“사, 살려줘어어어어어!”
연합군 장병들은 폭격처럼 쏟아지는 광역 마법 앞에 불 만난 메뚜기 떼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무시무시한 얼음 폭풍과 이글이글 타오르는 지옥의 화염이 쏟아지는 이 전장에서, 살기 위해서는 무조건 뛰는 수밖에 없었다.
진영?
그런 걸 갖추면, 사망률만 더욱 높아질 뿐이었다.
“모조리 도륙 내라!”
“쓸어버려라!”
“우린 다치지 않는다! 놈들을 모조리 죽여라!”
마우레키온 제국군은, 그 와중에도 전장을 물 만난 고기처럼 뛰어다니며 연합군 장병들을 도륙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치천존의 마법 폭격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전장을 휘저을 수 있다?
자칫 폭격에 휘말릴 수도 있는 만큼,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마우레키온 제국군은 가능했다.
왜?
치천존의 마법 폭격은 아주 교묘하게 연합군 장병들만을 노렸으니까.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란, 결코 딱지치기를 해서 따낸 게 아니었다.
위대한 아크 메이지의 마법이란, 적과 아군을 자동으로 구분함과 동시에 주문을 밀리미터 단위로 미세하게 컨트롤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황급히 전장에 도착한 지크는, 그 광경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치천존이 대단히 높은 경지를 이룩한 마법사인 줄을 알았지만, 실제로 활약하는 걸 보는 건 처음이었다.
공교롭게도, 그간 치천존이 활약할 당시에는 지크가 현장에 없거나 다른 데 정신이 팔려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라운 건 놀라운 것일 뿐, 지크는 치천존의 저 경이로운 마법 폭격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렇다 이거지.’
지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치천존한테는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지크에게는 이 무시무시한 마법 폭격이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다.
오히려 좋았다.
지크의 클래스인 는 모든 마법사 클래스들의 천적이었고, 그건 일대일 전투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스으으!
지크를 중심으로 초록색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뒤이어 지크의 마나홀에 자리한 근원력이 변화한 방사능 에너지, 그리고 미생물들이 전장을 초록색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지크가 이번에 펼친 스킬은, 방사능 에너지와 미생물의 농도가 평소보다 훨씬 더 진했다.
가히 역대급이라 해도 좋을 만큼의 진한 스킬은, 치천존의 마법 폭격을 모조리 막아내었다.
지크가 전개하는 스킬의 가장 무서운 점은, 아군을 원거리 공격으로부터 면역시켜준다는 거였다.
그게 마법이든, 포탄이든, 혹은 화살이든.
스킬을 절대로 뚫지 못했던 것이다.
덕분에 치천존의 그 무시무시한 마법 폭격은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한 채 스킬에 가로막혀 흡수당하고 말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컥! 커헉!”
“크허어어억….”
적군인 마우레키온 제국군 장병들은 스킬의 무시무시한 방사능 에너지와 미생물들에 중독되어서, 30초도 채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즉사해버렸다.
반대로 연합군은?
“오오!”
“지크프리프 폰 프로아 폐하께서 오셨다!”
“우린 공격받지 않는다! 놈들은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모조리 죽여라!”
지크의 등장과 의 축복(?) 안에 있는 연합군은, 그 사기가 엄청나게 치솟아 올라 파죽지세의 기세로 마우레키온 제국군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즉, 지크는 대규모 전면전에서도 치천존의 모든 공격 수단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스킬로 무장함으로써 진정한 마법사들의 천적이었던 것이다.
‘가자.’
지크는 지체하지 않고, 저 멀리서 느껴지는 아주 강렬한 존재감을 향해 날았다.
치천존이 도망치기 전에 잡아야 했기에, 단 1초라도 허투루 써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마우레키온 제국에게 세뇌되어 있던 치천존은, 자신의 마법이 하나도 통하지 않자 경악했다.
저 초록색 안개가 치천존의 모든 마법 폭격을 막아내고, 또 흡수하고 있었다.
이번 폭격에 얼마나 많은 주문과 마나가 소모되었는지를 떠올려 보면, 경악하다 못해 허탈함까지 느껴질 지경이었다.
“치천존 어르신! 본부로 귀환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때, 통신병이 다가와 치천존에게 보고했다.
사령부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이번 작전은 실패한 것 같으니 치천존을 황급히 귀환시키고 싶은 게 당연했다.
마우레키온 제국의 정보부가 바보도 아니고, 지크가 마법사들의 천적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알겠다.”
치천존은 보고를 받고, 즉시 워프 게이트를 작동시켜서 본부로 귀환하려고 했다.
그런데.
파직, 파지직!
원래 같았으면 우웅! 하고 마법진이 발동되어야 할 텐데, 무슨 영문인지 스파크만 튈 뿐 워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무슨….”
그때.
스으으으!
치천존이 머물러 있는 이곳에도 초록색 안개가 덮쳐왔다.
“컥!”
“으아아악!”
치천존과 함께 있던 마우레키온 제국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방사능 에너지를 견디지 못하고 즉사하고 말았다.
단, 치천존만은 예외였다.
아크 메이지 역시 기존의 그레이트 위저드에서 을 깨고 경지에 올랐을 때 육체의 재구성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의 육체를 얻기에, 방사능 에너지에는 면역이었던 것이다.
저벅저벅!
그렇게 홀로 남겨진 치천존을 향해 지크가 다가왔다.
“어르신.”
지크가 치천존을 향해 넌지시 말을 건넸다.
“태성이로구나.”
치천존은 지크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세뇌가 되었다고 해서 기억을 잃은 게 아니었다.
모든 사고방식이 마우레키온 제국에 충성하는 것으로 바뀌고, 그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할 뿐….
“어르신, 그만 가시죠.”
“아쉽지만, 그럴 수가 없구나. 네 녀석은 존엄하신 슈트카르트 황제 폐하의 적이 아니더냐.”
치천존이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스태프를 꺼내 들었다.
“그러니, 네 부탁은 못 들어주겠구나. 대신 네 녀석을 끌고 갈 수는 있겠지.”
“안 된다는 거 아시면서 그러십니까.”
“그, 그거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다음 순간.
우웅!
지크가 과 을 켜고, 치천존을 향해 덤벼들었다.
사실 치천존과 같은 위대한 마법사들은, 육체적인 능력도 어마어마하게 강력했다.
예컨대, 치천존의 경우 각종 자력 버프 스킬들로 스스로를 강화해 마스터급 무력(武力)을 뽐내는 게 가능했다.
그래 봤자 지크에게 일대일 근접 전투로는 상대도 안 될 테지만, 어쨌거나 방어에 치중하면서 강력한 마법을 사용해 전투를 이끌어나가는 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자력 버프 스킬들을 무효화시키고, 이 마법의 사용을 억제하니 치천존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지크 앞에서 마법사 클래스라는 태생적 한계점을 지닌 이상, 이길 가능성은 0퍼센트였던 것이다.
“어르신! 죄송합니다!”
지크는 그렇게 소리치고는, 치천존에게로 파고들었다.
그런 뒤 을 이용해 치천존의 움직임을 제한하고는,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그다음은?
일방적인 구타.
퍽! 빠악! 퍽! 퍽! 퍽! 퍼억! 퍽!
지크의 두 주먹과 무릎, 다리, 팔꿈치 등이 치천존을 향해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커헉! 크아아아악!”
“죄송합니다!”
지크는 치천존을 제압할 때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고, 풀파워를 동원하지도 않았다.
그저 완벽한 제압을 위해 때렸을 뿐….
“커헉….”
결국, 치천존은 5분도 채 버티지 못하고 기절해버렸다.
제아무리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해당하는 아크 메이지일지라도, 지크가 가한 무시무시한 폭력 앞에서는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털썩!
그렇게 치천존이 쓰러지고.
“모시겠습니다, 어르신.”
지크는 즉시 치천존을 어깨에 짊어지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띠링!
그런데 웬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새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뜬금없이 획득하게 된 칭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패륜지존 : 노인공격]노인을 많이 구타한 모험가에게 주어지는 칭호.
•타입 : 칭호
•등급 : 레어
•효과 : 없음
•참고 : 이 칭호는 매우 불명예스럽습니다!
“…….”
지크는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평소 얻는 칭호들의 뉘앙스가 부정적이긴 했지만, 그 능력치만은 사기적이라 참았었다.
하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불명예스럽다 못해 치욕적인 뉘앙스의 칭호였는데, 효과도 없었다.
‘벌집 이 새끼들 가만 안 둔다. 내가 임원 돼봐라. 칭호 만든 놈들 가만 안 둘 거야.’
지크는 의 임원이 되면, 칭호에 관여한 직원들에게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다짐했다.
***
한편, 지크가 나인테일이 보내온 정보를 이용해 치천존을 제압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전장에서는 두 초인들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웨펀 마이스터 샤키로.
마스터들 중 가장 강하고, 그랜드 마스터와 근접한 전투력을 지닌 무기의 달인.
그리고 도제, 아니 단천존.
지크의 사부인 999레벨의 히든 NPC데우스로부터 훈련을 받아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를 이룩한 베텔규스.
두 강자가 서로 전력을 다해서 맞부딪혔다.
마우레키온 제국 측에서 프로아 제국군 소속으로 전쟁에 참전한 샤키로를 제거하기 위해서, 베텔규스를 투입했던 것이다.
그 결과 두 사람 간의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고, 이 소식은 매우 빠르게 프로아 제국군 사령부에 전해졌다.
다른 때 같았으면 보고가 채 올라가기도 전에 베텔규스가 전장에서 사라져버렸겠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상대가 샤키로였기에, 제아무리 베텔규스라도 빠르게 치고 빠지는 게 불가능했다.
마스터들 중 최상급의 실력을 가진, 그랜드 마스터라도 방심하면 골로 보내버릴 수 있는 실력자인 샤키로에게 그만 발목이 단단히 잡혔던 것이다.
“폐하!”
치천존을 데리고 복귀한 지크에게 한센이 소리쳤다.
“현재 샤키로 님과 베텔규스 어르신이 맞붙었다고 합니다!”
“……!”
“누구도 가까이 다가가지 못할 정도의 대접전이고, 승부를 장담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아니.”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이길 확률 거의 없어. 잘 쳐줘도 10퍼센트? 그 미만이야.”
제아무리 샤키로가 최상급의 마스터라 할지라도, 그랜드 마스터인 베텔규스를 이기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기본 스펙에서부터 차이가 엄청나게 심하기에, 천운이 따라주어 치명타를 입히는 게 아니면 사실상 못 이긴다고 봐도 좋았던 것이다.
“바로 가야 해.”
지크는 즉시 움직였다.
‘오늘 안에 두 어르신 다 되찾는다.’
일이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는 이상, 지크는 치천존에 이어 베텔규스까지 되찾을 생각이었다.
마우레키온 제국이 가진 가장 강력한 카드 세 장 중에서 두 장을 오늘 무력화시킨다면, 빼앗긴 공격의 주도권을 다시 찾아오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워프 게이트 준비해.”
지크가 한센에게 명령했다.
“바로 가야 해. 자칫 잘못하면 샤키로 사부님이 전사하실 수도 있어.”
“예, 폐하.”
지크의 마음은 급했다.
타이칸에 이어서 세스크까지 잃어버린 상황.
여기에 더해 샤키로마저 전사한다면, 심적 고통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닥쳐올 게 분명했다.
‘누구도 안 잃어.’
지크는 오직 그 생각으로, 샤키로와 베텔규스가 격돌 중인 전장으로 향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