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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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할까? 이게 맞는 걸까?’
나인테일은 고민했다.
그러던 중 누군가의 말이 뇌리를 스쳤다.
– 해볼 때까지는 해봐야지. 포기하는 건 적성에 안 맞아서. 하다 안 되면 마는 거고.
지크가 흔히 하는 말이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근성의 소유자답게, 그 어떠한 일이 있어도 포기를 모르는 남자.
‘생각하자.’
나인테일은 죽음의 공포를 잠시 뒤로 미루고,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빠져나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아직 약간의 시간이 있어. 생각하자, 생각.’
그렇게 차분한 마음으로 생각을 해보자 방법이 떠올랐다.
그건 특별한 방법이 아니었다.
나인테일이 흔해 사용하던 수법이었다.
가장 간단하지만, 어쩌면 제일 효율적일 수도 있는 방법.
나인테일은 그걸 한번 해보기로 했다.
‘사전작업이 필요해.’
나인테일은 의심의 눈초리들을 피해서, 약 1시간 정도 일을 꾸몄다.
그런 뒤에 제 발로 정보부 사령관을 찾아갔다.
“음? 자네가 무슨 일인가? 갑자기 나를 다 보자고 하고?”
“예, 사령관님.”
나인테일의 입에서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이 흘러나왔다.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보고?”
“네.”
“어떤 보고인가?”
“전략자산운용부 달튼 대령이 비밀 주파수를 이용해서 누군가와 통신하는 것 같습니다.”
“뭐라?”
사령관은 나인테일의 보고를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달튼 대령은 정보부의 핵심 인사 중 하나로서, 삼존의 전장 투입을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인물이었다.
“그게 정말인가?”
“예, 사령관님.”
나인테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달튼 대령이 자신의 집무실에 비인가 통신장치를 가지고 있고, 그걸 이용하는 걸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허어!”
“아무래도….”
나인테일이 조심스레 말했다.
“달튼 대령이 프로아 제국과 내통해 본국의 전략병기들이 언제 어느 전장에 투입되는지 정보를 흘린 것 같습니다.”
나인테일이 이번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다름 아닌 ‘모함’이었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움으로써, 의심을 피하는 방법 말이다.
아주 고전적이었지만, 매우 훌륭하고 효과적인 수법이었다.
“하지만 달튼 대령은….”
“비인가 통신장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부터가 문제입니다.”
나인테일이 힘주어 말했다.
“불시에 달튼 대령의 집무실을 습격해서, 비인가 통신장치의 주파수를 확인하면 될 일입니다.”
“흠….”
“만약 그 비인가 통신장치의 주파수가 프로아 제국으로 맞춰져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거야 빼도 박도 못할 증거가 될 걸세.”
“저도 우연히 발견한 것이지만, 한번 확인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지.”
사령관은 나인테일에 대한 의심을 일단 거두고, 헌병들을 동원해서 달튼 대령의 집무실을 긴급히 압수 수색했다.
“사령관님! 비인가 통신장치가 나왔습니다!”
헌병들은 달튼 대령의 집무실에서 소형 통신장치 하나를 발견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 소형 통신장치는 나인테일이 사용하던 것으로 미리 달튼 대령의 집무실에 숨겨둔 거였다.
“당장 달튼 대령을 체포하라!”
“예! 사령관님!”
그렇게 달튼 대령은 이유도 모른 채 체포를 당했고, 곧장 취조실로 끌려가게 되었다.
“억울합니다! 저는 대제국 마우레키온의 정보장교로서 이적행위를 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자네의 집무실에서 비인가 통신장치가 나온 것은 어찌 설명할 텐가?”
“이건 모함입니다! 명백한 모함입니다!”
“글쎄.”
사령관이 냉랭한 미소를 지었다.
“한번 확인해 보면 알게 될 걸세.”
“예…?”
“여봐라.”
사령관이 헌병들을 돌아보았다.
“통신장치를 작동시켜보도록.”
“예! 사령관님!”
이윽고 통신장치가 작동하고, 마법의 수정구에 프로아 제국 정보부의 풍경이 떠올랐다.
그리고….
– 아, 달튼 대령님.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은 사전에 약속된 시간이 아닙니다만.
프로아 제국의 정보장교가 달튼 대령을 잘 알고 있다는 듯 말을 걸어왔다.
“이, 이 무슨…!”
달튼 대령은 살아생전 듣도 보도 못한 프로아 제국의 정보장교가 자신을 잘 아는 척하며 인사를 건네자 너무나도 어이가 없었다.
“네놈이 날 어떻게 안다고!”
– 예…? 아니, 달튼 대령님. 저희 정보부와 긴밀하게 연락하셔 놓고,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오늘 아침에도 저희에게 마우레키온 제국 전략병기들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설마 정체가 발각되신 겁니까?
“이 X새끼야!”
달튼 대령이 버럭 소리쳤다.
“그게 무슨 개소리냐! 내가 언제 너희 프로아 제국 놈들과 내통을 했어! 네놈이 뭔데 나를 모함….”
하지만 거기까지.
“통신을 종료하라.”
사령관이 싸늘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달튼 대령.”
“사, 사령관님!”
“내 자네를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희대의 매국노였군.”
“아, 아닙니다! 저는 절대 아닙니다! 이건 모함입니다! 누군가가 저를 제거하기 위해서….”
“닥쳐라!”
사령관이 버럭 소리쳤다.
“여봐라! 당장 저놈을 감방에 가두고! 대가를 치르게 해라! 알겠는가!”
“예! 사령관님!”
그렇게 달튼 대령은 무어라 해명조차 해보지 못하고, 그 무시무시한 고문실로 끌려가게 되었다.
나인테일의 누명 씌우기 수법이 아주 훌륭하게 먹혀들어 갔던 것이다.
물론 달튼 대령의 입장에서는 아주 억울한 일일 테지만 말이다.
***
달튼 대령이 고문실로 끌려간 후.
“이보게.”
사령관이 나인테일에게 사과했다.
“내 자네에게 사과함세.”
“네…?”
“사실 난 자네를 의심하고 있었다네. 자네는 정보학교에서 고급반 교육을 받고 복귀한 인원이 아닌가? 가장 늦게 정보부에 합류한 만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네.”
“이해해요.”
“그런데….”
사령관이 물었다.
“자네는 달튼 대령의 집무실에 어떻게 들어가게 된 겐가?”
“아.”
나인테일은 사령관이 아직도 자신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나인테일은 이때를 대비한 거짓말도 미리 준비해둔 상황이었다.
애초에 누명을 씌울 사람으로 달튼 대령을 선정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사실….”
“……?”
“달튼 대령이 저를 성희롱하고, 성추행했습니다.”
“으음?”
“저를 집무실로 불러서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건 다반사였고, 복도를 지나다 마주칠 때면 엉덩이를 슬쩍 만지고 지나가기도 했죠. 심지어… 성적인 서비스를 요구하면서, 빠른 진급을 약속하더군요.”
나인테일이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꾸만 저를 집무실로 부르는 통에 자주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전시상황이라 차마 상부에 보고할 수도 없었고요.”
“허어! 그런 일이 있었구먼!”
사령관은 나인테일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왜?
달튼 대령이 여색을 밝혀서 문제를 일으킨 게 이번 한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워낙 명문가 집안 출신인데다가 능력이 출중해서 그간 유야무야 넘어갔던 것이지, 잦은 성희롱과 성추행으로 인해 내부고발을 당한 전적이 꽤 있었던 것이다.
나인테일은 그걸 이용해서 거짓말을 꾸며낸 것이었고.
“흠흠. 그렇군. 그간 자네가 느꼈을 수치심과 공포, 그리고 분노는 잘 알겠네.”
“예, 사령관님.”
“앞으로는 두 번 다시 그런 일 없도록, 내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겠네.”
“알겠습니다.”
“빌어먹을… 이제 정말 큰일이로구먼.”
사령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문책이 내려올 터인데… 내 이 자리를 보전할 수 있을지….”
사령관의 입장에서도, 아끼던 부하가 프로아 제국과 내통한 셈이었으니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운이 좋아도 군복을 벗는 것이고, 심할 경우 사령관의 목도 달아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건 니 사정이고.’
나인테일은 속으로 사령관에게 냉소를 지으면서, 조심스레 자리를 떠났다.
‘기회를 봐서 바로 탈출해야 돼. 더 이상의 기회는 없어.’
나인테일은 마지막 공작으로 을 컨트롤하는 주파수를 임의로 바꾸어 놓았다.
이 제공하는 위성 사진이 뒤죽박죽되도록 장난을 쳐놓았던 것이다.
그런 뒤 나인테일은 즉시 자리를 빠져나왔고, 마우레키온 제국의 정보사령부를 떠나 프로아 제국으로 귀환했다.
이번 전쟁에 참전한 모든 사람들을 통틀어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이다.
***
치천존과 베텔규스를 되찾은 덕분에, 프로아 제국과 연합군의 숨통은 어느 정도 트였다.
그간 세 명의 그랜드 마스터가 각자 다른 전장에 불쑥 나타나 깽판을 쳐놓고 사라지는 바람에 전투에서 연전연패를 기록했었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남은 건 하나.
파천존.
삼존 중 가장 강력하며, 뉘르부르크 대륙에서 활동하는 무인들 가운데 최강의 자리에 가장 근접했다고 평가받는 자.
그 한 명만 제거한다면, 프로아 제국과 연합군이 전쟁의 주도권을 되찾아오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파천존을 상대할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지크였다.
“파천존이 출몰할 수도 있는 전장이 어디야?”
지크도 그 사실을 잘 알았으므로, 한센에게 물었다.
“셋은 몰라도, 하나라면 예측하기가 쉽습니다.”
“그렇겠지.”
“공격의 주도권이 우리에게 돌아온 만큼, 마우레키온 제국은 당분간 방어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고로, 파천존의 예상 출몰 지역은 이곳입니다.”
한센이 지도의 특정 지역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군의 움직임을 사전에 차단하려면, 반드시 이 지역 일대에 나타나야 합니다.”
“알아서 올 거다?”
“예, 폐하.”
한센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마우레키온 제국 입장에선 달리 선택권이 없습니다.”
“나랑 마주치겠네?”
“늦어도 3일 안에 마주칠 겁니다.”
“오케이.”
지크는 한센이 찍어준, 파천존의 예상 출몰 지역으로 즉시 이동했다.
치천존과 베텔규스 두 어르신을 제압하고 되찾았으니, 이제 파천존만 제거한다면 프로아 제국과 연합군이 공격의 주도권을 100퍼센트 움켜쥐는 게 가능했다.
그렇게 이틀의 시간이 흐르고.
“폐하! 파천존이 나타났다고 하옵니다!”
지크는 보고를 받고 전투 현장으로 즉시 내달렸다.
“으악!”
“으아아아악!”
전장에는 파천존으로 보이는 자가 연합군 장병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고 있었다.
‘저자가 파천존.’
지크는 저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강렬한 존재감을 감지하며, 그곳으로 나아갔다.
띠링!
그러자 눈앞에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알림: 퀘스트가 발동되었습니다!]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사부의 한]450년 전 대륙을 주름잡던 8인의 강자들 중, 스승 데우스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후예들을 격파하라.
•분류 : 퀘스트
•진행 상황 : 71.42% (5/7)
– 뇌신 바즈라의 후예
– 검성 무르시엘라고의 후예 UP!!!
– 대현자 지그하르트의 후예
– 혈마 베르세르크의 후예
– 법왕 마우그리스의 후예
– 신궁 윈드포스의 후예
– 패왕 브라움의 후예
알고 보니 검 한 자루로 하늘을 무너뜨린다는 파천존은, 500년 전의 그랜드 마스터인 검성 무르시엘라고의 후예였던 모양이었다.
대현자 지그하르트의 후예를 끝으로 한동안은 클리어하지 못했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만남이었다.
‘무조건 이겨야지.’
파천존을 이겨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기자 투지가 끓어올랐다.
그 옛날 사부가 이루지 못했던 꿈.
사부로 하여금 무적의 힘을 손에 넣게끔 했던 미련.
이제는 그 시절이 지나버려서, 어떻게 풀 수도 없는 한(恨).
수백 년의 세월이 지나 지크에게 이어진 사명이었다.
‘사부님. 제가 꺾어보겠습니다.’
지크는 마음속으로 스승 데우스의 얼굴을 떠올리며, 파천존이 날뛰는 전장 한복판으로 난입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