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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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지크는 한센이 악몽을 꾸었다는 이유로 자신을 찾아오자 황당해했다.
살다 살다 부하가 꿈 때문에 고민 상담 같은 걸 하러 올 줄이야….
“갑자기 꿈 얘기를 왜 해?”
“예, 폐하.”
한센은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는 듯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지크에게 말했다.
“제가 꿈을 꾸었는데, 그 내용이 별로 좋지가 못합니다.”
“무슨 꿈인데 그래?”
“꿈에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숫자의 거미들이 지휘부 막사로 몰려드는 꿈이었습니다.”
“불길한 꿈이야?”
“느낌이 안 좋습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흐음.”
“전에도 이런 적이 있는데, 이거 혹시….”
“예지몽?”
지크가 한센의 말을 받았다.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그 비슷한 것 같기는 합니다. 상황이 낙관론을 펼쳐도 좋을 정도로 좋은데, 이런 꿈을 꾸니 뒤숭숭하기도 하고요. 제가 너무 예민하다 싶기도 한데, 무시하자니 자꾸만 마음에 걸립니다.”
“정확히 어떤 느낌이 드는데?”
지크가 한센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 거 같다, 이런 느낌은 없어?”
“그게….”
한센은 말하기를 주저했다.
“고작 꿈일 뿐인데, 섣불리 제 느낌을 말씀드리는 것도….”
“괜찮으니까 해 봐.”
“그게 그러니까….”
“망상이라도 상관없어. 일단 들어나 보게.”
“더 진격했다가는 전멸할 것 같습니다.”
“전멸이라….”
“함정이란 느낌이 듭니다.”
“그래?”
“예, 폐하.”
그렇게 말하는 한센의 동공은,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악몽으로 인한 불안감이 극에 달한 모양이었다.
“일단은….”
지크는 그랭구아르를 불러들였다.
최근 그랭구아르는 프로아 제국군에 입대해서 이번 전쟁에 참전했고, 음파 능력을 이용해 엄청난 전공을 올리는 중이었다.
내친김에 란 이름의 군악대 겸 음파 공격 전문 부대를 결성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랭구아르가 입은 군복에는 별이 3개나 달려 있었다.
계급이 무려 중장(★★★)씩이나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랭구아르와 군악 대원들의 음파 공격이 워낙에 큰 전공을 세웠기에,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랭구아르 중장님?”
“예, 폐하.”
“한센 경이 불안하대요. 진정 좀 시켜주시죠.”
“알겠습니다.”
그랭구아르는 지크의 명령에 따라서 를 불러 한센의 놀란 마음을 진정시켜주었다.
인 그랭구아르는 음파 공격으로 적들을 공격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아군을 치유하는 것도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게 약 5분쯤 흘렀을 때.
“한센.”
지크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된 한센에게 물었다.
“감이 안 좋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은데?”
“마음 같아선 병력을 방어하기 좋은 지역으로 퇴각시키고, 주변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
“……!”
“군사의 느낌이 안 좋다는데, 그렇게 해야지.”
“하, 하지만 폐하…!”
황제인 지크가 고작 부하의 악몽 때문에 전쟁의 템포를 조절하겠다고 말하자 크게 놀랐다.
“이건 제가 꾼 악몽일 뿐이고, 불안감일 뿐입니다. 여기서 진격을 멈추는 건….”
“아니.”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때론 아무런 증거나 징조가 없을 때도 자신의 감을 믿을 필요가 있어.”
“폐하….”
“감이 은근히 무서운 거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촉을 마냥 무시해선 안 돼.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랬다고, 한번 신중하게 움직여 보자.”
지크가 그런 판단을 내린 이유는, 그만큼 한센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었다.
한센은 보통 NPC가 아니었다.
잠재력이 각성하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예지 능력을 가진 영웅 유닛이었다.
그런 한센이 불길한 악몽을 꾸었다는데, 그걸 무시하는 건 그리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다.
어차피 급하게 전면전을 치를 것도 아니었으니, 숨도 고르고 보급로도 확보할 겸 잠시 주변을 둘러보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던 것이다.
***
지크가 한센의 불길한 예감을 받아들임으로써, 프로아 제국군과 연합군은 마우레키온 제국의 수도로 진격하던 걸 멈추었다.
대신 조금 후퇴해서 방어에 최적화된 곳에 주둔지를 새로 편성하고, 방어선을 구축했다.
그런 뒤에 전 방위로, 아주 광범위한 정찰 활동을 벌였다.
지크의 말마따나,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자는 심정으로 혹시나 모를 위협에 대비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북쪽에서 대규모 병력이 남하하고 있습니다!”
“정찰 결과 남쪽에서 대규모 병력이 북상 중인 것으로 확인됩니다!”
“상황이 안 좋습니다! 확인되지 않았던 마우레키온 제국군이 접근해오고 있습니다!”
정찰 결과 여태껏 파악되지 않았던, 그 존재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대규모 병력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그 숫자가, 자그마치 100만이 넘었다.
정확하게 셀 수는 없어도, 다 합치면 충분히 그 정도 숫자는 나올 것 같다는 보고가 올라왔던 것이다.
프로아 제국군과 연합군 지휘부는 그 보고들을 받고 발칵 뒤집어졌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현재 마우레키온 제국의 수도 근처에 주둔 중인 병력만 해도 100만여 명 정도는 된다고 했다.
후퇴 과정에서 병력의 반을 잃었음에도, 마우레키온 제국엔 아직 그 정도의 저력은 남아 있었던 것이다.
궁지에 몰린 마우레키온 제국이 징집병에 예비군까지 총동원해서 채운 머릿수였지만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100만 명이 추가된다?
이건 말이 안 되는 규모였다.
뉘르부르크 대륙 역사상 200만 명이나 되는 대군을 운용했던 국가는 없었을 정도였다.
“말도 안 돼….”
지크는 보고서들을 읽으며, 이 사태를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대규모 병력이 튀어나올 수 있었는지, 지크가 가진 상식으로는 예측조차 불가능했다.
그 와중에 기묘한 보고가 있었다.
“이게… 뭐야.”
지크는 보고서를 읽던 중 뭔가 황당한 문구와 몽타주를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적들의 얼굴이… 다 똑같다고???”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사방팔방에서 모여들고 있는 대규모 병력들은 그 모습이 쌍둥이처럼 다 똑같다고 했다.
무려 100만 명이나 되는 마우레키온 제국군의 얼굴이 똑같은 게 과연 말이 될까?
‘가면이라도 씌운 건가?’
지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보고서 맨 뒷장의 몽타주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어…?”
지크는 몽타주를 보고, 왠지 낯이 익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몽타주 속 남성의 얼굴이 어째 익숙하다 못해 익히 아는 얼굴 같았기 때문이다.
“란돌… 공작?”
몽타주 속 남성의 얼굴은 슈트카르트 황제가 총애하는 기사이자 뉘르부르크 대륙 오성천의 일원이며, 마우레키온 제국의 검(劍)인 란돌 공작과 100퍼센트 똑같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란돌 공작의 얼굴을 한 마우레키온 제국군들은, 그 체형까지 100퍼센트 똑같다고 했다.
심지어 이동 중인 마우레키온 제국군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았던 정찰병의 보고에 따르면, 그들의 목소리부터 제스처까지도 똑같다고 했다.
“이게 무슨….”
지크는 보고서의 내용을 읽고, 또 읽어보았지만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설마.”
그때, 오스칼이 입을 열었다.
“폐하, 아무래도 마우레키온 제국에서 인조인간을 생산해낸 것 같습니다.”
“이, 인조인간을요?!”
“그게 아니면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폐하께서는 과거 마우레키온 제국에게 속아 에메랄드 태블릿의 지식을 나눠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 그건… 그렇죠?”
“에메랄드 태블릿에 담긴 지식은 죽은 사람을 부활시킬 수 있을 정도입니다.”
오스칼의 지적은 사실이었다.
과거 불멸의 연금술사 아케론도 고도의 연금술적 지식을 이용해 웨펀 마이스터 샤키로를 되살려내지 않았던가?
정확히 말하면, 웨펀 마이스터 샤키로와 똑같은 인조인간을 만들어 낸 것이었지만 말이다.
“어쩌면….”
오스칼이 조심스레 자신의 추론을 이야기했다.
“마우레키온 제국의 기술력이라면, 전능석을 활용해 인조인간을 대량으로 생산해내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전능석은 그 어떤 물질로도 바꿀 수 있는 신비한 자원이니만큼, 인체를 연성하는 데에도 활용이 가능했다.
또한, 마우레키온 제국군은 코랄 행성 식민지에서 엄청난 양의 전능석들을 채굴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맙소사….”
“이게 진짜 마우레키온 제국의 저력인 것 같습니다.”
지크는 오스칼의 추론을 매우 설득력 있게 받아들였다.
어쩐지 너무 쉽다고 했다.
세계 최강대국인 마우레키온 제국이 이렇듯 큰 전투 없이 무너질 리 없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설마 마스터가 100만 명은 아니겠지?’
지크는 차마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놓지 못했다.
100만 명이나 되는 란돌 공작의 복제품들이 무력까지 마스터의 경지라면, 이 전쟁에서 이기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아니겠지. 무력까지 복제하진 못했겠지.’
지크는 애써 그런 생각을 하면서, 상황을 되도록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애썼다.
***
그렇게 한센의 악몽, 아니 예지몽이 현실이 되자 프로아 제국군과 연합군은 황급히 후퇴에 나섰다.
이대로라면 정확히, 총 250만 명이나 되는 마우레키온 제국군에 포위당할 상황이라서, 최대한 빠른 속도로 도망쳐야 했던 것이다.
만약 한센이 예지몽을 꾸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지크가 예지몽을 예사롭지 않게 여기고, 신중함을 발휘하지 않았더라면?
프로아 제국군과 연합군은 마우레키온 제국의 수도를 향해 더 가까이 진격했을 테고, 결국엔 포위당해서 전멸했을 게 분명했다.
함정.
어쩌면 마우레키온 제국이 당해주는 척을 하면서, 프로아 제국군과 연합군을 유인한 것일지도 몰랐다.
‘큰일이야.’
후퇴를 직접 지휘하는 지크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250만 명이나 되는 마우레키온 제국군이 포위망을 좁혀온다고 생각하니 숨이 턱 막혔다.
그러나 나쁜 소식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폐하! 마우레키온 제국군의 행군 속도가 엄청나다고 합니다!”
한센이 황급히 보고했다.
“특히나, 란돌 공작의 복제인간들로 이루어진 부대들의 행군 속도가 엄청납니다. 하루에 150킬로미터 이상을 이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뭐?!”
지크는 그 보고를 받고 기절초풍할 뻔했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예컨대,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가 500킬로미터였다.
그 거리를 3일 만에 주파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진짜 란돌 공작의 능력까지 그대로 복제한 거라고? 마스터의 급의 강자가 100만 명이라고?’
그 정도 행군 속도라면, 란돌 공작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의심해도 부족함이 없을 지경이었다.
‘아냐, 아닐 거야.’
지크는 애써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내려 했지만,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직접 싸워봐야 알겠지만, 란돌 공작의 복제인간들은 어지간한 고위급 기사들 이상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폐하.”
한센이 지크를 향해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더 이상은… 후퇴가 불가능합니다.”
“…….”
“적들의 행군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우리 군은 24시간 안에 포위될 예정입니다.”
“방법이… 없는 건가?”
“어설프게 도망치는 것보다는… 지금 이 자리에서 방어선을 구축하는 편이 낫습니다. 지금 이곳이 방어에 있어 그나마 유리한 지형입니다.”
한센의 말은 사실이었다.
현재 프로아 제국군과 연합군이 통과하고 있는 이 지역은 험준한 산악지형이라서, 포위를 당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 버티는 게 가능한 곳이었다.
이곳을 벗어나면 광활한 평지가 펼쳐질 테고, 그럼 프로아 제국군과 연합군은 마우레키온 제국의 250만 대군에게 완벽히 포위를 당해서 섬멸당할 게 분명했다.
즉, 프로아 제국군과 연합군에게는 지금 이 자리에서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만이 그나마 목숨을 조금이라도 연장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