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285
1284
‘오라고? 내가?’
지크는 황당했다.
한낱 무기 주제에 주인인 지크에게 오라 가라 할 줄이야….
물론 저 원뿔 형태의 마상창은 ‘한낱 무기’ 따위로 취급할 물건이 아니긴 했다.
세계 등급의 아이템.
단 하나만 있어도 세계의 멸망을 초래할 수도 있는 물건이 바로 세계 등급의 아이템이었다.
지크가 가진 만 해도 그랬다.
고작 허리춤에 차는, 열쇠고리와 같은 펜던트 주제에 시간을 강제로 되돌리는 게 가능했다.
– 아무리 폐하라도 무기를 100퍼센트 제어하시기 힘들 것 같습니다.
– 제작 과정에서 무기에 자아가 생기는 듯한데, 일단은 지켜봐야 합니다. 확실한 건, 폐하가 아니면 다루기가 거의 불가능한 녀석이 탄생할 것이란 점입니다.
크반트와 나누었던 대화 내용이 뇌리를 스쳤다.
에고(Ego).
즉, 자아가 있는 아이템.
그게 세계 등급이라면, 오만하고 싸가지 없으리라는 건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어쩌면 주인인 지크를 잡아먹으려 할지도 몰랐다.
충분히 이해는 갔다.
저 세계 등급의 무기를 제작하는 데 들어간 재료를 떠올려 보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뼈대가 되는 신의 지팡이와 크로매틱 드래곤의 뿔이야 그렇다 치고.
주재료가 되는 마왕의 심장, 뱀파이어 로드의 영혼, 그리고 태풍의 눈은 그 자체로 마물이었다.
재료만 덩그러니 있어도 평범한 인간은 근처에 다가가지도 못할 테고, 손이라도 댔다가는 미쳐버리거나 즉사할 게 분명했다.
그런 재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물건이었으니, 자아가 강한 건 필연적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게 미쳤나.’
지크의 눈에 분노가 깃들었다.
여기는 전장.
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많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고 있었고, 저 빌어먹을 사천왕은 아군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는 중이었다.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란돌 공작의 복제인간들도 여전히 끈질기게 덤벼드는 중이었다.
그런데 저 빌어먹을 세계 등급의 아이템은, 한가하게 제 주인에게 명령이나 내리고 있었다.
‘무기 주제에.’
그때.
“세, 세계 등급의 아이템?!”
마우레키온 제국군 소속으로 전투에 참전했던 게이머 중 하나가 마상창을 알아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게이머는 을 마셔서 세뇌된 것도 아니었고, 단지 보상을 받기 위해 마우레키온 제국군에 입대한 케이스였다.
다다다다!
게이머는 그 마상창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했다.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저 게이머의 입장에서는 세계 등급의 아이템이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진 상황이었다.
일단 먹고 봐야 했던 것이다.
누구나가 그런 판단을 내릴 테고.
하지만 과욕의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이걸 이렇게 먹는다고…?”
게이머의 손아귀가 마상창의 손잡이를 쥐었다.
다음 순간.
촤라락!
마상창으로부터 뿜어져 나온 회오리가 게이머의 육체를 갈기갈기 찢어버렸고, 그 게이머는 시체조차 남기지 못한 채 핏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자격이 없는 자, 찢겨 죽는다.
세계 등급의 무기는 개나 소나 만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 오라고 말했다.
세계 등급의 무기가 지크에게 다시 한번 명령했다.
– 이런 쓰레기가 날 만지게 놔둘 셈인가? 아니면 네놈도 이렇게 찢겨 죽을까 봐 겁이 나는 건가?
“어딜.”
지크의 입가에 냉랭한 미소가 떠올랐다.
“주인이 가는 게 아니라, 네놈이 오는 거다.”
그 순간.
우웅!
스킬을 발휘한 지크의 오른손이 세계 등급의 무기를 향했다.
그러자 세계 등급의 무기가 두둥실 떠오르더니 지크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타핫!
뒤이어 지크의 손아귀가 세계 등급 무기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알림: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눈앞에 알림창이 떠오르던 순간.
“크으으으으윽…!!!”
지크는 손아귀를 타고 흘러들어오는 엄청난 압력에 신음했다.
파직! 파지직!
손잡이를 중심으로 스파크가 튀어 오르는가 싶더니, 무시무시한 칼바람이 지크를 휘감았다.
다음 순간.
“…어?”
지크는 자신이 전혀 다른 세계에 와 있다는 걸 깨달았다.
***
같은 시각.
지크가 세계 등급의 아이템인 를 손에 쥐었을 때, 사부는 저 멀리 동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번쩍!
그와 동시에 하얀색 기둥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지난번 로부터 솟아오른 기둥에 이어 두 번째 기둥이 나타난 것이다.
“이, 이보게.”
최초의 레드 드래곤이자 대장장이들의 신이며, 데미갓인 불카누스가 안절부절못하며 사부에게 말했다.
“이 일을 어떡하면 좋은가? 이 일을!”
“…….”
“이렇게 다 끝나는 겐가? 정녕?”
“뭘 그리 호들갑을 떠십니까?”
사부가 퉁명스레 불카누스를 쏘아보았다.
“아직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닌데?”
“하, 하지만….”
“두고 보면 알 일입니다.”
사부는 그렇게 말하고는 새롭게 솟아오른 빛의 기둥으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아직 시간이 있는데, 뭘 그렇게까지 걱정하십니까.”
“으으음….”
“누군가는 막겠지요.”
“자네 제자 녀석 말인가?”
“다른 놈이 있겠습니까? 제 힘을 이어받은 놈은 오직 그 녀석만이 유일합니다.”
“하지만 아직 멀었던데? 그 정도 능력으로는 이 사태를 막을 수 없다는 걸 자네도 잘 알지 않은가?”
“그래서요?”
“자네가 그 녀석을 그리 믿는다면, 지금이라도 조금 더 가르쳐서….”
“다 가르쳤습니다.”
“으음?”
“제가 형님처럼 허접한 줄 아십니까?”
사부가 불카누스를 쏘아보았다.
“다 어련히 알아서 가르쳐 놓았으니까, 괜한 걱정 마십시오.”
“그, 그렇구먼.”
“저는.”
사부가 딱 잘라 말했다.
“제 제자 녀석을 믿습니다.”
“그런가?”
“녀석이 아무리 허접해도, 근성 하나만큼은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죠. 녀석에게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근성이 있고, 제가 가르친 무적의 힘이 있습니다. 믿음이 안 가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닙니까?”
“그, 그거야 그렇지.”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제자 녀석을 믿고 마음 편히 가지렵니다.”
사부는 그렇게 말하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
“여긴….”
지크는 자신의 무(無)의 세계에 와 있다는 걸 깨닫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실망스럽군.”
그때, 지크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어둠 속에서 슥 걸어 나오며 말했다.
“내 주인이 될….”
“닥쳐.”
지크가 에 담긴 자아의 말을 끊었다.
“바빠 죽겠으니까, 실랑이는 나중에 해.”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자아가 냉소를 지었다.
“네놈의 상황 따위, 알 게 뭔가.”
“……?”
“나는 네놈 따위가 내 주인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 주인이 되고 싶다면….”
하지만 지크는 그 말을 더 이상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한시가 급했다.
싸움이 무르익었는데, 이런 전혀 다른 공간에서 세계 등급의 무기에 깃든 자아와 노닥거리고 싶지 않았다.
‘일단 팬다.’
그게 지크의 선택이었고, 행동은 빨랐다.
슈우우우우우!
지크가 로 무기에 깃든 자아를 초대했다.
“……!”
무기에 깃든 자아는 자신이 지배하는 무(無)의 세계가 아닌, 전혀 다른 세계에 와 있다는 걸 깨닫고 흠칫 놀랐다.
본래 그의 계획은 무의 세계에서 지크를 억압하고, 찍어 누르는 것.
그런 뒤 지크의 육체를 차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크는 오히려 그를 역으로 로 초대해버림으로써,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게 했다.
“뒈질 때까지 처맞자.”
지크가 자신과 꼭 닮은, 무기에 깃든 자아를 향해 덤벼들었다.
“약해빠진 놈 따위가… 커헉!”
“여긴.”
“으아아악!”
“내가 지배하는 세계야.”
“악! 으아아아악!”
“그러니까 나는 때리고.”
“으아악!”
“너는 맞으면 돼.”
“크아아아아아아아악!”
지크는 안에서 세계 등급의 무기에 깃든 자아를 패고, 패고 또 팼다.
‘확실하게 찍어 누르는 게 아니면 내가 잡아먹혀.’
지크는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는 마검, 아니 마창(魔槍)이었다.
틈을 보였다간 지크조차도 육체를 빼앗길 수 있는, 희대의 악마였던 것이다.
그래서 지크는 아예 이 자아를 죽여 버릴 기세로, 무자비한 폭력을 퍼부어대었다.
죽이면 좋고.
죽일 수 없다면, 확실하게 혼쭐을 내주어야 했다.
“기억해라.”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내가 주인이고.”
“커헉!”
“니가 노예라는 거.”
“크아아아악!”
하지만 거기까지.
우웅!
지크의 주먹에 스킬이 맺혔다.
“자, 잠까아아아아아아안!!!”
에 깃든 자아가 황급히 소리쳤다.
“그, 그만! 그마아아안!”
“응…?”
“하, 항복하겠다! 내가 졌다! 내가!”
“아닌 거 같은데?”
“아니다! 정말로 내가 졌다!”
“그래…?”
“나, 나중에 얘기하자! 지금은 다른 상황이 더 급하지 않은가!”
“아깐 알 게 뭐냐면서?”
“그, 그건…!”
“그냥 뒈져. 내가 쓸 무기에 너 같은 잡귀는 필요 없으니까.”
“자, 잡귀라니….”
에 깃든 자아의 얼굴이 한껏 일그러졌다.
“불만 있어?”
“어, 없다.”
“아니다. 불만 있어도 돼. 뒈지면 되니까.”
“나, 나를 죽이면 나를 담은 그릇도 파괴된다! 무기도 파괴된단 말이다!”
지크의 손이 멈췄다.
‘그건 곤란한데.’
애써 만든 세계 등급의 무기인 가 파괴된다면 곤란한 일이 아닌가?
“이, 일단 싸워라! 얘기는 나중에 하자!”
“그럴까…?”
“나는 무적의 무기다! 나를 가지고 싸워라! 내가 너의 적들을 모조리 죽여주겠다!”
“그래, 그럼.”
지크는 일단은 이 빌어먹을 잡귀를 살려두기로 했다.
아군을 단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 하는 판국에, 드잡이질을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
다시 눈을 떴을 때.
우웅!
지크는 자신의 손에 들린 가 꽤 잠잠해져 있는 걸 확인했다.
당장에라도 지크를 찢어발길 듯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창이었건만….
물론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는 단지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지크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었다.
이 무시무시한 마물은 마치 굶주린 악귀처럼 지크의 생명력, 근원력, 스태미나를 탐욕스럽게 빨아들였다.
과연 세계 등급의 무기.
게이머 중 최강자인 지크를 이렇듯 부담스럽게 할 정도라면, 얼마나 강력한지 짐작조차 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한번 써보자.’
지크는 으로 를 비추어볼 생각조차도 못했다.
그만큼 상황이 급박했기에, 일단 이 세계 등급의 무기를 들고 적들을 쳐부수는 게 먼저였기 때문이다.
‘보여 봐. 니가 얼마나 센지.’
지크가 자신을 공격해오는 란돌 공작의 복제인간들을 향해 를 쭉 내질렀다.
딱히 이렇다 할 스킬을 사용한 게 아니었다.
평타.
그저 이 거대한 마상창을 앞으로 쭉 내지르는, 기본 공격을 펼쳤을 뿐이었다.
촤라라라락!
시퍼런 칼날이 돋아나고.
위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뒤이어 원뿔 형태의 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회전하며, 무시무시한 칼날 폭풍을 일으켰다.
그리고….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와 일직선상에 자리했던 란돌 공작의 복제인간들이… 형체를 찾아볼 수조차 없게 갈기갈기 찢어지고 핏물이 되어 흩뿌려졌다.
어디 그뿐인가?
칼날 폭풍은 그 후로도 사라지지 않고 쭉 뻗어나가서, 무려 100미터가 넘는 곳까지 초토화시켜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고작 평타 한 방에 일직선상에 자리한 란돌 공작의 복제인간 수천여 명을 찢어버린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