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30
129
불사왕이 쓰러진 직후.
“북방 전사들이여, 영원히 강인하라!”
“영원히 강인하라!”
전장에 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동생!!”
워프 마법을 통해 순식간에 전장으로 복귀한 라이언베르트가 지크의 두 손을 덥석 잡아주었다.
“고생했네, 정말 고생했어! 자네가 우리 노르드족의 오랜 원수를 쓰러뜨렸구먼!”
“에이. 이게 어떻게 제가 쓰러뜨린 겁니까.”
지크가 머쓱하다는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다 같이 일군 거죠, 형님.”
“무슨 소릴! 자네가 아니었으면 불사왕을 이리 쉽게 해치우지 못했을 것이야! 암, 그렇고말고!”
“하하….”
“자, 어서 가세나.”
“예? 어딜 갑니까?”
“승전을 했으니 회식을 해야지 않겠나? 어서 가세!”
그 순간.
띠링!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 퀘스트 메이커 으로부터 부여 받은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기나긴 대장정.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지긋지긋한 연계 퀘스트가 드디어 종착점에 도착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퀘스트를 깬 지크는….
‘두고 보자, 이 사기꾼 새뀌.’
천우진을 향해 이를 갈았다.
이 어려운 퀘스트를 고작 랜덤 박스 열다섯 개로 후려친 사기꾼을 향해서 말이다.
***
그날 밤 열린 노르드족의 승전 파티는 퇴폐, 광란, 폭주 등등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단어를 모조리 가져다 붙여도 좋을 만큼 거나하게 열렸다.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마셔! 술이 들어간다! 쫙, 쫙쫙쫙! 쭉, 쭉쭉쭉!”
노르드족에 한국인 게이머가 다녀갔던 것일까?
‘도대체 저건 어떻게 아는 거야?’
지크는 한국식 음주 문화를 몸소 구현해내고 있는 노르드족을 바라보며 내심 황당해했다.
하지만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알림 : 성인 콘텐츠가 해제되었습니다! 마음껏 즐기세요!]지크의 바로 옆자리.
라이언베르트의 딸 잉그리드가 지크의 옆구리를 자꾸만 쿡쿡 찌르고 있었다.
“가요.”
“어, 어딜요?”
“하러.”
“뭐, 뭘 하러 가자는 거죠?”
“그걸 몰라서 물어요? 당신이 그날 밤 나를 어떻게 망가뜨려 줬는지 몰라서 그러는 건가요?”
“…….”
“빨리 가요. 저 지금 미치겠으니까. 날 망가뜨려 줘요. 그날 밤처럼.”
“그게 아니라….”
지크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잉그리드를 떼어내려 애썼다.
“지금은 회식 중이기도 하니까… 곤란….”
“그럼 가서 한 번 하고 돌아오면 되잖아요.”
“…….”
“나 지금 많이….”
잉그리드의 입에서 무언가 더 과감하고 충격적인 발언이 튀어나오기 직전.
– 재미 잘 보고 있냐?
지크의 뇌리에 천우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너 어딨냐.’
– 천장 위에.
지크가 연회장 위 천장을 올려다보니, 크리스털로 이루어진 지붕 위에 천우진이 서 있었다.
‘야 이 사기꾼 새뀌. 너 두고 보자. 거기서 딱 기다려.’
지크가 자리를 박찼다.
“어디 가요!”
“화장실 갑니다.”
“화장실에서 하자는 건가요? 뭐, 좋아요. 그것도 나름 스릴 있을 테니까.”
개방적인 노르드족 여성인 잉그리드는 거침이란 게 없었다.
“진짜 화장실 갑니다.”
“같이 가자니까요?”
“금방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알겠죠?”
“난 화장실도 괜찮은데….”
“제가 안 괜찮아서 그러니까 기다려요. 망가뜨려 줄 테니까.”
“하악!”
지크는 될 대로 되란 식으로 잉그리드를 적당히 떼어내고는 천우진을 만나기 위해 연회장을 나섰다.
***
연회장 천장 위.
“고생했다. 여기 니 보상.”
뻔뻔하게도, 천우진이 씩 웃으며 지크에게 아우토니카 공방의 랜덤 박스 꾸러미들을 내밀었다.
“어디서 개수작이야?”
지크가 으르렁거렸다.
“고작 랜덤 박스 열다섯 개로 날 얼마나 부려 먹으려고 했던 거냐? 이 양심도 없는 사기꾼 자식아.”
“말이 심한데? 양심이 없다니.”
“이 퀘스트가 길어질 거라는 거 알았잖아.”
“몰랐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퀘스트 메이커라고 해서 퀘스트의 결말까지는 모른다고. 결말까지 알았다면 처음부터 공략법까지 같이 줬겠지.”
“구라 치네.”
지크는 천우진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야. 구라라니. 진짜라니까. 솔직히 조금 후려친 거는 맞는데, 이렇게 어려운 퀘스트일 줄은 나도 몰랐다고.”
“네, 다음 구라쟁이.”
“진짜라니까 이 자식이… 그리고 보상 아니라도 많이 챙겼을 텐데? 1년에 금 10톤에 D등급 마정석 광산까지 챙겼으면 좀 만족할 줄 알아라.”
“어? 어떻게 알았냐?”
“3국 연합에 정보원이 있지. 아주 제대로 벗겨 먹었던데? 그 정도면 땅은 노르드족한테 주고, 너는 돈을 챙겼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천우진의 지적은 정확했다.
3국 연합의 영토 50퍼센트는 노르드족이.
그리고 10년 동안 금 10톤과 D등급 마정석 광산은 프로아 왕국이 챙기기로 했던 것이다.
“이번만 좀 봐주라. 나도 진짜 힘들어. 이번 건 말고도 세계 곳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건 사고가 터지고 있는 줄 아냐? 그거 다 막느라 미치겠다, 미치겠어. 이건 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도 아니고 별의별 미친놈들이 날뛰는데….”
그 후로도 천우진의 하소연은 한참이나 이어졌고, 지크는 듣다 지쳐 이번 한 번만큼은 그를 봐주기로 했다.
“내가 뭐 대단한 랭커 나으리는 아니지만, 싸게 부려 먹을 생각하지 마라. 열정 페이는 사절이야. 정당한 보수를 지급하라고.”
“알겠다, 알겠어. 그래서 이제 뭐 할 건데?”
“무신(武神)의 신전으로 가야지.”
지크가 냉큼 대답했다.
“갈 때 됐네. 150렙부터 입장 가능이니까. 슬슬 라이센스 따기 시작한다 이거지?”
“155레벨이면 준비해야지. 템도 좀 맞추고.”
“그래, 그럼 수고해라. 그리고 조심해. 오즈릭 교단에서 단단히 벼르고 있을 테니까.”
이쯤 되면 오즈릭 교단이 지크를 철천지원수라고 생각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기에 한 조언이었다.
“나도 그 정도는 알아. 그러니까 더 세져야지.”
“좋다. 조만간 또 보자.”
“그래.”
“오늘 저녁에 드라이브나 갈래?”
“방금은 조만간 또 보자며?”
“그 조만간이 이 조만간이다.”
“미친놈인가.”
“미친놈이랄 것까진 없고. 언제까지 집에 콱 박혀서 게임이나 하고 살래? 가끔 드라이브도 좀 가주고 그러는 거지.”
“그럴까?”
때마침 일주일 내내 게임만 붙잡고 살던 참이었으므로, 지크는 천우진의 제안에 수락했다.
“그럼 이따 밤에 한 일곱 시쯤 보자. 연락할게.”
“그래.”
천우진과 헤어진 지크는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갔다.
“동새에에에엥! 마셔으어어어어어어어어!!”
“이제 하러 가요.”
“주인 놈아! 잔 받아라! 뀨우!”
고주망태가 된 라이언베르트, 욕정에 눈이 먼 잉그리드, 역시 술에 만취한 햄찌가 지크를 향해 들러붙었다.
‘…주변에 왜 정상이 없냐.’
지크는 안면을 감쌌다.
***
다음 날 아침.
“동생! 정말로 잘해주었네! 비록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나는 동생을 진정 내 친동생으로 생각해!”
“저도 형님을 친형님처럼 생각합니다.”
“자네가 다스리는 프로아 왕국과 우리 노르드족은 이제 둘도 없는 혈맹일세.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부탁하게. 내 만사 제쳐 놓고 달려가 동생을 돕겠네.”
“말씀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형님.”
“그런데 벌써 가는 건가? 한 며칠 더 머무르지 않고? 잉그리드도 자넬 엄청나게 그리워하는데. 어젯밤 자네가 안 놀아 주었다고 단단히 토라진 모양이야.”
“제, 제가 좀 바빠서 말입니다….”
지크가 땀을 삐질 흘리며 바쁜 척을 했다.
“그렇담 할 수 없지. 자주 좀 놀러오게나.”
“예.”
“그럼, 바쁠 터인데 어서 가 보게.”
라이언베르트의 권유에 지크 일행은 프로아로 향하는 워프 게이트에 올랐다.
“아. 더 놀다 가시지 그러십니까.”
“안 가시면 안 됩니까!”
“위대한 영웅이여! 며칠 더 머물러 주시오!”
노르드족 전사들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지크와의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정작 제일 아쉬워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지크야!! 가지 마!!’
지크는 이제 쿤룬산으로 돌아가야 하는 도제 베텔규스의 슬픈 눈망울을 읽어낼 수가 있었다.
‘차마 어르신한테 돌아가기가 싫구나….’
‘그래도 가셔야죠. 사부님께 배우면 그토록 바라시던 그랜드 마스터가 되실 수 있을 텐데요.’
‘그, 그건 그렇지만… 너무 고통스럽구나. 이 나이 먹고 맨날 개돼지처럼 처맞아 가면서 배운다는 게….’
‘그래도 가셔야죠. 만약 안 가시면… 사부님이 잡으러 가실 겁니다. 그리고 잡히면….’
‘…….’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재밌게 잘 노셨으면 복귀하시죠. 휴가 복귀라는 게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베텔규스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뭔 130이나 드신 노친네가 100일 휴가 복귀하는 이등병 같냐.’
지크는 그런 베텔규스가 이등병 같다고 생각했다.
‘지크야. 나중에 보자.’
‘예, 어르신.’
그렇게 지크는 베텔규스와의 무언의 인사를 남기고, 노르드족의 영토 파들란 섬을 떠났다.
300년 만에 부활한 불사왕을 물리친 영웅이 되어….
***
그날 오후.
“여기 오는 것도 오래간만이네.”
지크는 무신(武神) 아레스를 모시는 에서 운영하는 종교 시설인 신전으로 향했다.
멀리 갈 필요는 없었다.
비록 코딱지만 한 영토였지만, 프로아 왕국의 영토 내에 무신의 신전이 하나 있었으니까.
“어떻게 오셨습니까?”
입구를 지키는 금발의 여사제가 지크를 맞았다.
“무신 아레스 님께 기도를 드리시겠습니까? 아니면….”
“자격의 증명을 하러 왔습니다.”
현실에서도 딱히 믿는 종교가 없는 지크가 게임 속이라고 신에게 기도를 드릴 리 없었다.
지크가 이곳에 온 이유는 단 하나.
무신 아레스의 신전에서 운영하는 아공간 투기장인 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는 공정한 결투를 지원함과 동시에 다양한 결투 콘텐츠를 보유한 장소로써, 이곳에서 등급을 올리게 되면 대륙 곳곳에 자리한 고위급 던전에 입장할 자격이 주어지게 되어 있었다.
즉, 일종의 던전 입장에 대한 라이센스를 취득하기 위해 온 것이다.
또, 결투는 기본적으로 서로의 경험치를 걸고 하게 되어 있었기에 200레벨까지는 좋은 레벨 업 수단이기도 했다.
“여기 성함과 직함을 써주세요.”
여사제의 말에 지크가 자신의 이름과 직함을 적어 넣었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직함 : 프로아 왕국 국왕
•결투 등급 : 왕초보 (새내기)
•링네임 :
안에서는 반드시 본명을 밝혀야 한다는 규정이 없기에, 링네임을 사용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대놓고 투기장에 들락거리면 제네시스에서 귀찮게 할지도 모르니까….’
지크는 고민했다.
그리고 이내 곧 자신의 링네임을 적어 넣었다.
•링네임 : 누가나좀이겨줘요.
네이밍 센스가 제로인 지크가 지을 수 있는 링네임은 그런 게 전부였다.
“어? 국왕 전하셨군요! 몰라 뵈었습니다. 부디 저의 무례를 용서해 주시기를….”
“이마에 대놓고 국왕이라고 쓰여 있지도 않은 걸요.”
지크가 피식 웃었다.
“그런데… 전하?”
“예?”
“링네임이 너무….”
“뭐, 뭐가 어때서요?”
“사람들의 관심을 너무 끄는 것 아닌가 하여….”
링네임이 지나치게 자극적이라서, 사람들의 어그로가 잘 끌릴 것 같단 말이었다.
“뭐 어때요. 많이 싸우면 좋죠.”
“…….”
“그럼, 입장해도 될까요?”
“따라오시지요.”
여사제가 지크를 로 향하는 게이트로 안내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