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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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태성이 말했다.
“내일 접속해서 알아보자.”
태성이 그렇게 말한 이유는, 지금 도저히 게임에 접속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태성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라, 휴식이 필요했다.
지금 접속해봤자 피로감 때문에 제대로 된 플레이가 불가능할 게 뻔해서,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태성은 식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다가, 집으로 가 잠을 청했다.
그로부터 약 6시간 뒤.
‘으. 졸려.’
태성은 애써 피로를 떨쳐내고, 캡슐에 몸을 뉘었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해서 매우 피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게임 속 세상은 태성의 개인적인 사정을 봐주지 않았으므로, 이를 악물고 접속하는 수밖에….
“뀨! 주인 놈아! 왔냐!”
햄찌가 지크를 맞이해주었다.
“뀨우! 주인 놈아! 큰일 났다! 빛의 기둥이 솟아올랐다! 뀨우!”
“알아.”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보고 받으러.”
“뀨! 알겠다!”
지크는 즉시 발걸음을 옮겨 미켈레와 만났다.
“오셨습니까, 폐하.”
“어때? 상황이?”
“예, 폐하.”
미켈레가 저 멀리 서쪽 하늘을 가리키며 지크에게 보고했다.
“폐하께서 잠시 자리를 비우셨을 때 빛의 기둥 2개가 추가로 솟아났습니다.”
“들었어.”
“기둥이 4개가 된 덕분에 나머지 2개 기둥의 위치를 예측할 수 있었고, 급한 대로 미카엘 씨와 오스칼 경이 조사단을 꾸렸습니다.”
“일단 알겠어.”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군에 전투준비태세 갖추라고 말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모험가들도 모집해 놔. 무슨 사태가 벌어질지 몰라. 특히 이번엔….”
지크가 덧붙였다.
“창조주의 강림이 예상되는 만큼 그 위험성은 여느 때보다 클 거야.”
“창조주의 강림….”
“그렇게 되면, 세상이 진짜로 지워질 거야. 완전히 무(無)로 되돌아갈 거라고.”
“폐하를 믿습니다.”
미켈레가 진심을 담아 지크에게 말했다.
“지금 세계를 구원할 존재는 오직 폐하뿐입니다.”
“야 이.”
지크가 눈을 부라렸다.
“이제 그만 좀 구하면 안 되냐? 으으!”
“폐하….”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는데, 나도 좀 쉬자! 좀!”
지크는 정말로 피곤했다.
“아니! 이놈의 세계는 뭐만 하면 멸망을 한대요! 멸망을!”
“…….”
“어떻게 된 게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미친놈들만 득실거리는 거야? 이젠 하다 하다 창조주까지 나서서 자기가 만든 세상을 때려 부수겠다고 하질 않나.”
“하하… 하하하….”
“내가 진짜 열이 뻗쳐서. 후우.”
지크가 투덜거린 이유는, 너무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사건·사고가 터지고,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놈들과 싸우다 보니 이게 게임을 하는 건지 노동을 하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하오나 폐하. 이 위기를 극복할 사람은 오직….”
“그걸 누가 모르냐? 그래서 더 속이 터지는 거야. 나 말고도 두어 놈쯤 더 있으면 얼마나 좋아? 역할 분담도 하고.”
“…….”
“아, 모르겠다. 망할 놈의 세상. 진짜 망해버리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지크는 어느새 워프 게이트가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
지크는 동료들을 이끌고 오스칼이 있는 지역으로 향했다.
지크는 미카엘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무력이 약한 오스칼 쪽을 먼저 도와주기로 한 거였다.
빛의 기둥이 솟아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그 지역은, 옛 마우레키온 제국의 북부지방으로서 광활한 원시림이 끝없이 펼쳐진 산맥이었다.
이른바 이라 불리는 이곳은, 한때는 드래곤들의 집단 거주지로 알려져 있었다.
산악지형의 면적이 워낙에 넓다 보니, 이곳에 둥지를 튼 드래곤들의 숫자도 많았던 것이다.
물론 드래곤들이 멸종되어버린 지금,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텅 빈 레어밖에 없을 테지만 말이다.
“근데….”
지크가 미니맵을 들여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오스칼 경 일행을 어떻게 찾지?”
은 워낙 넓었고, 원시림이 울창해서 아군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번엔 써야겠다.’
지크가 을 켰다.
[알림: 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그런데 에서는 을 아예 사용할 수조차 없었다.
아무래도 어떠한 결계, 혹은 방해전파 때문에 사용이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시공간이 뒤엉킨 곳에서도 사용이 가능했는데….’
지크는 을 이용해 과거 사부를 만났던 기억을 떠올렸다.
‘창조주의 영향력이라는 건가?’
어쨌거나 의 사용이 불가능해진 이상, 지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오스칼 일행의 흔적을 따라가는 것뿐이었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다들 바짝 긴장해.”
지크가 뒤를 슥 돌아보며 말했다.
“예, 형님.”
“네, 오빠.”
“걱정 마십시오.”
“알겠다.”
동료들이 지크의 당부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하늘에서 정찰하면서 갈 테니까, 천천히 따라와.”
“뀨! 다들 조심해라!”
지크는 날개를 펼쳐서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러면서 들을 소환해 동료들의 주변을 정찰하게끔 시켰다.
“여기에도 일루미나티의 유적이 있는 건가…?”
“뀨! 그럴 수도 있다!”
“하긴. 이런 원시림 안에 고대 유적이 있어도 아무도 모를 거야.”
의 면적은 어지간한 국가 하나만큼이나 넓어서, 고대 일루미나티의 유적지가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오스칼 경 일행이 무사했으면 좋겠….’
그때.
– 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어디선가 귀청을 찢어발길 것 같은 커다란 포효가 들려왔다.
“뭐야!”
“뀨!”
지크와 햄찌가 본능적으로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리고….
“에라이! 빌어먹을!”
지크가 분통을 터뜨렸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 창조주의 의지에 반하는 자들은 용서치 않으리라.
드래곤.
몸길이가 200여 미터가 넘는 성체 드래곤 한 마리가 지크와 햄찌를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물론 멀쩡한 드래곤은 아니었다.
드래곤은 이미 들에 의해 멸종된 종족인지라, 멀쩡히 살아 있는 개체는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지크와 햄찌를 습격해온 드래곤은, 말라붙은 가죽과 뼈로 이루어진 언데드였다.
본 드래곤(Bone Dragon).
드래곤이 언데드화한, 언데드 계열 몬스터들 가운데 최강의 존재가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아무래도 이곳 에서 죽은 드래곤 중 하나가 어떠한 이유에 의해 언데드화했고, 창조주의 의지에 따라 지크 일행을 공격하는 모양이었다.
본 드래곤이 아가리를 쩍 벌렸다.
“……!”
지크는 드래곤이 아가리를 벌리는 게 무슨 의미인지 깨닫고, 비행 속도를 높였다.
–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뒤이어 본 드래곤으로부터 시퍼런 불길이 부채꼴 형태로 뿜어져 나와 지크를 덮쳐왔다.
브레스.
드래곤이 가진 최강의 공격 스킬이 발동된 것이다.
***
지크는 ‘진짜’ 드래곤과는 싸워본 적이 없었다.
쪼렙 시절 새끼에 가까운 그린 드래곤을 사냥한 게 한 번.
크로매틱 드래곤은 사부가 대신 처리해주었고, 최초의 블랙 드래곤 잉카서스는 직접적인 전투가 아닌 를 사용해 로 무찔렀다.
즉, 사실 지크는 제대로 된 드래곤과 정면승부를 벌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맞닥뜨린 성체 드래곤의 전투력은, 그야말로 발군이었다.
“뀨우우우우우! 주인 놈아! 더 빨리 날아라! 더! 뀨우우우우! 우리 타죽겠다!”
“나, 나도 알아아아아!”
지크는 본 드래곤의 브레스를 피하기 위해서, 텔레포트를 연속으로 사용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본 드래곤의 비행 속도는 지크와 맞먹을 정도로 빠른데다가, 텔레포트를 밥 먹듯이 사용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본래 마법이란 창조주가 드래곤들에게 부여한 권능이었다.
즉, 드래곤들이야말로 마법의 원조인 것이다.
그러니 본 드래곤이 텔레포트를 연거푸 사용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
‘빌어먹을. 틈이 없네.’
지크는 본 드래곤의 브레스가 멈출 때까지, 도망치고 또 도망쳐야만 했다.
브레스가 멈춰야 반격을 시작할 텐데, 도무지 끝날 줄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 창조주의 의지를 거스르는 자에겐 죽음뿐이다.
– 숙명을 거스르려 하지 마라.
빌어먹게도, 본 드래곤 두 마리가 더 나타나 지크를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미친!’
이쯤 되니, 제아무리 지크라도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성체 드래곤은 강하다.
그런 성체 드래곤이 언데드가 되었으니, 더 강하다.
그런 적이 무려 셋.
‘까딱 잘못하면 죽어.’
지크는 바짝 긴장한 채 드래곤들의 브레스 공격을 피해 달아나고, 또 달아났다.
그러던 중.
‘지금!’
지크의 눈이 빛났다.
쒜에에엑!
뒤이어 가 푸르스름한 빛깔이 나는 본 드래곤을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갔다.
위이이이이이이잉!!!
스킬에 의해 날아가는 의 원뿔이 마치 드릴처럼 회전하며, 블루 본 드래곤의 왼쪽 날개를 파고들었다.
촤아아아아아악!
블루 본 드래곤의 왼쪽 날개가 갈기갈기 찢어져 흩날렸다.
의 회전력에 휘말려, 날개 한쪽이 통째로 찢어진 것이다.
– 크아아아아악!
한쪽 날개를 잃은 블루 본 드래곤이 비명을 지르며 추락했다.
제아무리 본 드래곤일지라도 한쪽 날개를 완전히 잃어버렸으니, 초고속으로 비행하는 건 불가능한 일.
‘빠르게 죽인다.’
지크는 추락하는 블루 본 드래곤이 텔레포트를 사용하기 직전 디버프로 캐스팅을 끊어버렸다.
‘텔레포트.’
다음 순간.
팟!
지크가 추락하는 블루 본 드래곤의 가슴팍에 나타났다.
‘끝낸다.’
의 원뿔이 블루 본 드래곤의 두 번째 목뼈를 향해 날아들었다.
푹! 푹! 푹! 푹… 푹!
다섯 번의 타격.
스킬이 작렬했다.
그리고….
– 크아아아아아악!
블루 본 드래곤이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더니, 그대로 콰앙! 하고 땅에 처박혔다.
제아무리 언데드 몬스터라지만 의 즉사 효과를 피해 가지는 못한 것이다.
그 결과.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성체 블루 드래곤이 언데드화한 존재를 죽였기 때문인지, 엄청난 수치의 경험치가 주어졌다.
(중략).
[알림: 650레벨 달성!]기존 638레벨에서 무려 12레벨이 오른 것이다.
으로 간단히 해치운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이득이었다.
그로써 지크는 세 번째 을 마주하게 되었다.
시스템 상 650레벨부터는 경험치 획득이 불가능해서 을 넘어 더 높은 경지에 올라야만 성장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개, 개꿀?!’
지크는 폭발적인 레벨 업에 스스로도 놀라며 곧바로 에 스킬 포인트를 투자했다.
[알림: 스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림: 스킬의 명칭이 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알림: 스킬 레벨의 상승으로 재사용 대기시간이 초기화되었습니다!]의 사용이 가능하다?
‘하나 더.’
지크가 남은 두 마리의 본 드래곤 중 검은색을 띠는 놈을 향해 빛의 속도로 날아갔다.
–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검은색 본 드래곤이 지크를 향해 브레스를 내뿜었다.
살아생전에 블랙 드래곤이었던 본 드래곤이 내뿜는 브레스는, 당연하게도 방사능 에너지를 잔뜩 머금은 독가스의 형태였다.
‘정면으로 뚫는다.’
지크는 브레스를 피하지 않았다.
대신 자력 버프 스킬인 를 켜고 를 우산 형태로 바꾸었다.
그리고는 블랙 본 드래곤의 브레스를 고스란히 맞으며, 정면으로 뚫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