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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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가 대답했다.
“그저 흘러가는 걸 지켜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겠군.”
“예, 회장님.”
“궁금하긴 해. 게이머 개인의 힘으로 창조주를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에픽 코드 더블 오 세븐은 모든 히든 클래스들 가운데 가장 뛰어납니다.”
“그거야 그렇겠지. 더블 오 세븐의 스킬 체계를 만들어낸 게 999레벨의 히든 NPC인 데우스니까. 어느 서버에서든 더블 오 세븐의 위력은 절대적이지. 자네도 알 텐데. 이미 데우스는 우리 유니버스에서 가장 강한 존재라는 걸.”
“물론입니다.”
오펜하이머가 고개를 끄덕였다.
“데우스는 우리 게임의 유니버스에 내에 존재하는 그 어떤 존재보다 강하지요.”
“그런 데우스의 선택을 받은 게이머라면, 어쩌면 창조주를 클리어할 수 있겠지. 물론… 아크 그랜드 마스터 티어로 가는 잠금장치를 풀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오래간만에 서울에 오니 좋군.”
가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 의 외모는 누가 봐도 한국인이었고, 한국어 역시 유창했다.
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전혀 알려지지 않아서, 아는 사람만 아는 극비이기도 했다.
“한 6년만 아니십니까?”
“그렇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오니 좋으시겠습니다.”
“나쁘지 않지.”
는 한 번 웃고는 커다란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만났군.”
화면 속에는 지크가 막 던전의 13번째 스테이지에 들어서 있었다.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은 지켜보지. 이 시대 최고의 게이머가 판타지 서버의 최종보스인 창조주를 꺾을지, 아니면 침몰할지 말일세.”
“예, 회장님.”
“어떤 결과가 나오든, 역사적인 순간이야.”
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지크와 창조주의 대면을 흥미롭다는 듯 지켜보았다.
***
눈앞에 현재 위치를 알림창이 떠올랐다.
“유브라데 동산…?”
지크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익숙한 풍경.
처음 입장했던 바로 그 푸르른 초원이었다.
‘초원의 이름이 유브라데 동산이었던 건가?’
지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를 꽉 쥐고 주변을 더 찬찬히 살폈다.
그리고… 비로소 와 마주했다.
는 이곳 유브라데 동산의 언덕배기에서 지크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게… 창조주?’
지크는 무언가에 홀린 듯 언덕으로 텔레포트해 를 가까이서 보게 되었다.
을 비추어 보니 는 과연 이 세계를 만들어낸 장본인이 맞았다.
[창조주]이름 없는 자.
과거에는 이름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계에서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혹은 라 부르는 게 가장 알맞은 표현일 것이다.
이 세계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며, 그 위대한 의지로 를 열고 돌아왔다.
단, 완전한 상태가 아니므로 진정한 창조주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존재구분 : NPC
레벨 : 998.1
클래스 : 월드 크리에이터
종족 : 신마융합체
성별 : 해당 없음
소속 : 해당 없음
특이사항 : 다른 세계(서버)를 창조해낸 창조주들과는 별개의 존재이므로, 헷갈리는 일이 없도록 하자.
‘레, 레벨의 상태가?!’
지크는 창조주의 레벨이 무려 998.1인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일단 레벨이 소수점 단위로 표기되는 것 자체가 놀라웠고, 지크가 만난 적들 가운데 가장 높은 레벨인 것도 놀라웠다.
하지만 더욱 놀라웠던 건….
‘사, 사부님이 더 높네?!’
창조주조차 998.1레벨인데 사부는 999레벨이라는 게 더욱 경악스러웠다.
‘창조주도 이기실 수 있다고 하시더니….’
허세가 아니었다.
사부는 진짜로 이 세계의 창조주를 쳐부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비록 피조물로 태어났지만, 우주를 통달하는 깨달음을 얻고 창조주를 넘어서는 데 성공한 것이다.
무적의 힘을 손에 넣었다는 게 어떠한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인과율의 법칙 때문에 큰 사건에는 개입을 못 하시는 거구나.’
지크는 그제야 사부가 방관만 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사부는 이 세계의 창조주를 넘어 우주적 존재가 되었기에, 밸런스 상 제약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마저도 본인이 수틀리면 언제든 깨뜨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말이다.
“이계에서 강림한 자여.”
그때, 창조주가 지크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창조주의 모습은 특이했다.
창백한 백발.
하얀 피부.
보라색 눈동자.
그리고 건장한 체격.
창조주는 이 모든 게 어우러졌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인지 여성인지 좀처럼 분간이 어려울 정도의 중성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등 뒤에 달린 날개의 숫자는… 눈대중으로 세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그냥 두 장인 것 같이 보이다가도, 자세히 보면 거의 천 개는 될 것 같다고나 할까?
선과 악.
음과 양.
이 두 가지가 한데 어우러진 존재이니만큼, 시각적으로 판단하기가 불가능했다.
“널 오래도록 지켜봐 왔다.”
“나를…?”
지크가 깜짝 놀랐다.
‘내 주변에 숨어 있었나?’
그 순간.
“그럴 리가.”
창조주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네 곁에 있지 않았다.”
“……?”
“나는 나의 피조물들의 눈과 귀를 통해 세계를 지켜봐 왔다.”
“……!”
“창세기 이후.”
창조주가 지크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나는 스스로 이 세상에 녹아들기로 했다.”
“어째서…?”
“창조주로서 피조물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었으니, 지켜보고 싶었다. 피조물들이 나의 통제 없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아?”
“그렇게 세상에 녹아든 나는,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때론 이름 모를 어느 말단 병사의 눈과 귀로. 때로는 황제의 눈과 귀로. 때로는 하늘을 나는 독수리의 눈과 귀로. 때론 숲을 지키는 나무로. 이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생명체들이 나의 눈과 귀가 되어주었다.”
말인즉슨,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이 일종의 CCTV가 되어 창조주에게 정보를 전달했단 뜻이었다.
NPC인 창조주는 슈퍼컴퓨터급의 처리능력으로 그 정보들을 아주 오랫동안 분석해왔을 테고.
“그러니 내가 너를 어찌 모르겠는가.”
“그래서.”
지크가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떠나라.”
창조주가 지크에게 권했다.
“왜?”
“너희는 이방인일 뿐, 이 세계의 구성원이 아니다. 나는 이 세계를 다시 무로 되돌릴 것이고, 거기 휩쓸리면 너희 이방인들도 본체에 타격을 입을 것이다.”
창조주가 말하는 란 현실의 게이머들을 뜻했다.
게임 는 이계의 존재인 게이머들이 일종의 아바타를 만들어 강림했다는 설정이었기 때문이다.
“이계에서 강림한 존재여. 너에게 경의를 표한다.”
“……?”
“너는 이곳이 너의 세계가 아님에도, 스스로의 한계를 끊임없이 뛰어넘으며 끝끝내 구원자의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한계다. 나는 내가 만든 세계를 파괴할 것이고, 너를 비롯한 이방인들은 그걸 막을 수 없다. 그러니 이만 돌아가라.”
“됐고, 하나만 물어보자.”
지크가 창조주에게 물었다.
“왜 이 세계를 파괴하려는 건데?”
“나는 이 세계에 실망했다.”
“뭐…?”
“나는 만물을 창조했고, 자유의지를 부여했다. 만물에 선과 악을 함께 집어넣었다.”
“그래서?”
“내가 만든 이 세계는… 이 세계의 생명체들은… 너무나도 많은 악행을 저지르더군. 물론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들도 많았으나….”
“그게 이유냐?”
“이방인이여.”
창조주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래 선과 악은 하나이니라. 창조주인 나조차도 선과 악이 하나 된 존재이며, 너희 이방인들 또한 마찬가지이니라. 내 안에도 선악이 있고, 네 안에도 선악이 있느니라. 선악을 선택하는 건 오직 개인의 몫이다.”
“선택이라….”
“나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노라. 내가 창조한 생명체들이, 그 안에 깃든 영혼들이 악을 선택하는 것을.”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크도 창조주의 의견에 동의했다.
악은 많고.
선은 적다.
괜히 의로운 행동을 한 사람들이 화제가 되는 게 아니었다.
그만큼 찾아보기 드물기 때문에 선[善]은 고귀하고, 아름다우며, 또한 우러러보게 되는 대상인 것이 아니겠는가?
지적 능력이 발달된 생명체일수록 기본적으로 악에 좀 더 가깝다는 게 지크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세계를 멸망시키겠다는 거냐?”
“멸망이란 표현은 옳지 않다. 그저 회귀함이다. 만물은 무에서 비롯되어 무로 되돌아가는 것. 나는 그걸 조금 앞당기고자 할 뿐이다. 그게 우주의 법ㅊ….”
바로 그 순간.
푹! 푹! 푹! 푹!
의 원뿔이 창조주의 가슴 정중앙을 네 번 연속으로 관통했다.
완벽한 기습.
눈에 보이지도 않을 빠르기.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무지성으로 스킬을 때려 박은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창조주]생명력 : 무한 (∞)
헛수고였다.
왜?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인 창조주는, 생명력이란 개념 자체가 없이 일종의 중립 오브젝트와 같은 존재였으니까.
***
‘미친.’
지크는 의 기습이 실패하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제아무리 창조주일지라도 현재는 완전체가 아닌, 불완전한 존재에 불과했다.
레벨부터가 998.1로서,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마도 세상에 녹아들어 있다가 다시 본모습을 되찾으려니 시간이 좀 걸리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를 만든 것일 테고.
그런 불완전한 존재임에도 스킬이 통하지 않는다?
생명력은 무한이고, 또 무적이다?
이쯤 되면 사실상 답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공략?
때려서 데미지가 들어가야 뭘 해보든지 말든지 할 게 아닌가?
애초에 창조주는 의지를 가진 중립 오브젝트와 같은 존재라서, 맞서 싸운다고 싸워지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이방인이여.”
창조주가 지크를 타이르듯 말했다.
“너는 나를 막지 못한다. 나는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 존재이니라. 너의 격으로는 나의 격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 너의 세계로 돌아가라.”
“싫다면.”
“내가 만든 세계와의 인연이 발목을 잡는가? 이방인이여. 인연은 결국 숙명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느니라.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이다. 부모와 자식의 인연도 결국에는 헤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왜 섭리를 거스르려 하는가?”
“그건 X발.”
지크가 다시 를 움켜쥐고 말했다.
“순리대로 흘러갔을 때 얘기지. 너 같은 미친 새끼가 강제로 이별을 시켜주겠다는데 아, 이게 숙명이구나 하고 받아들이라고? 별 개 같은 논리를 다 보겠네.”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X까 이 이기적인 새끼야.”
지크가 으르렁거렸다.
“그럼 만들 때부터 잘 좀 만들든가. 니가 처음부터 X같이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마음에 안 드니까 다 죽여 버리겠다? 피조물들이 니 장난감이냐? 니 논리면….”
“……?”
“부모는 자식이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쳐 죽여도 되겠네? 낳아주고 키워줬으니까? 어차피 헤어지는 건 숙명이니까. 죽여서. 숙명이 앞당겨진 것뿐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이 X새끼가 말이면 다 하는 줄 아네. 진짜 X나 마음에 안 드네.”
지크는 더 이상 창조주와의 대화를 이어나갈 생각이 없었다.
게이머인 지크는 NPC인 창조주의 입장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창조주 역시 게이머인 지크의 생각을 이해하는 게 불가능했다.
즉, 지크와 창조주 사이에 대화란 무의미했다.
그렇다면?
결국 힘이었다.
힘 대 힘으로 부딪혀 더욱 강한 자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켜나가는 수밖에.
‘해보자.’
지크가 를 움켜쥐고 창조주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러나….
움찔!
지크는 순간 몸이 굳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라져라.”
창조주가 말로서 기적을 행하니, 지크의 생명력 게이지가 0이 되었다.
즉사.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생명력 : □□□□□□□□□□
털썩!
지크가 쓰러졌다.
[알림: 생명력이 0이 되었습니다!] [알림: 당신의 캐릭터가 사망하였습니다!] [알림: 10초 후 접속이 종료됩니다!] [알림: 10, 9, 8….]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