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32
131
쌈닭은 너무나도 화가 나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핵 사용자로 의심되는 놈에게 탈탈 털린 것도 서러운데, 오히려 어뷰져란 소릴 들으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지경이었다.
문제는 지크의 말이 결코 쌈닭을 조롱하려던 게 아니라는 것.
“어뷰져겠지… 저 전적에 저 등급에 이런 실력일 리 없잖아….”
“……!”
“에휴… 하필 만나도 어뷰져를 만나냐….”
지크의 혼잣말이 송곳이 되어 쌈닭의 자존심을 쿡쿡 찔렀다.
“야!!!”
쌈닭이 빼액! 하고 지크를 향해 소리쳤다.
“너 이 새끼! 방금 뭐라고 했어! 뭐? 내가 어뷰져?”
“1400전에 승률 60퍼센트짜리 초고수가 나 같은 뉴비한테 털리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야, 너 그렇게 살지 마라. 결투 등급 높아서 어디다 쓰냐? 나중에 다 뽀록날 텐데.”
“이… 이 미친 새끼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게 나무란다더니. 어뷰징은 지가 해놓고.”
“으으…!!”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그 순간.
‘죽이고 싶다. 진심으로 죽이고 싶어.’
실력에 대한 자부심과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 모두 짓밟힌 쌈닭은 할 수만 있다면 지크의 목이라도 조르고만 싶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럼, 수고링.”
지크가 듣는 입장에서 그 빡친다는 ‘ㅅㄱ’를 날리곤 을 나섰다.
“야! 어디 가! 거기 안 서? 어? 야!!”
쌈닭이 지크를 소리쳐 불러 보았지만, 그는 이미 을 나서 사라져버린 뒤였다.
***
베테랑 투기장 유저인 쌈닭을 탈탈 털어버린 지크는 이번에야말로 고수다운 고수를 만나길 기대하며 오토매칭을 돌렸다.
하지만 오토매칭을 통해 만난 다른 유저들 역시 쌈닭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게 문제였다.
일단 지크를 보고 보이는 반응들부터가 그랬다.
“아이고. 어뷰징 심하게 돌리셨네.”
“86전 86승? 혹시… 핵 쓰세요?”
“전적에 장난질이 심하네. 그러다 손모가지, 아니지 계정 날아가요. 적당히 하세요.”
어뷰징.
혹은 핵.
이 두 가지 의심은 지크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다른 게임하다 오셨어요? 아니면 전 프로게이머 출신?”
물론 개중 한두 명 정도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말이다.
지크는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내가 많이 이겨서 그런 거니까. 나도 내 승률이 안 믿기는데 남들은 오죽하겠어.’
부정적인 반응이든 긍정적인 반응이든 결국엔 무결점의 승률이 만들어낸 오해라는 걸 알았기에, 남들이 뭐라던 말던 딱히 스트레스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왜?
지크가 필요로 하는 건 남들의 생각 따위가 아니라 고위급 던전 입장에 필요한 결투 등급과 스스로에 대한 검증이었으니까.
문제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는 점이었다.
지크가 87연승을 거둔 직후.
‘강자가 이렇게 없었나? 투기장 어뷰징이 심하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지크는 여전히 자신의 피지컬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 채, 투기장에 사기꾼들이 득실거린다고만 여겼다.
과거의 태성과 현재의 지크 사이의 실력 차가 너무나도 컸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심지어….
“또 없네.”
을 연 지크가 눈살을 찌푸렸다.
50번은 족히 문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한 것 같은데, 매칭이 되는 상대가 없었다.
“아. 뭐야. 왜 큐가 안 잡혀. 오늘은 날이 아닌가… 에라, 모르겠다. 그냥 천우진이랑 드라이브나 다녀와야지.”
지크는 오늘은 날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균형의 광장으로 향했다.
투기장에서는 로그아웃이 안 되기에 프로아 왕국의 신전으로 이동하려는 것이다.
‘상위 투기장으로 가야 하나? 아닌데. 상위 투기장으로 간다고 실력이 엄청나게 차이 나지는 않는 거 아닌가?’
지크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고수들이라고 해서 에 오지 않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균형의 전장은 로 인해 캐릭터의 스펙이 제한되므로, ‘격투’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꽤 매력적인 투기장이었기에 고수들도 종종 이곳을 찾곤 했다.
“저기다!”
그때,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쟤다, 쟤! 내가 말했던 그 새끼!”
“누구?”
“아! 그 왜 있잖아! 내가 아까 만났다던!”
고개를 돌려 보니 쌈닭이 지크를 가리키며 소리치고 있었다.
덕분에 광장에 있던 사람들이 시선이 지크에게로 확 쏠렸고, 지크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 아까 그 형이네. 엄청 잘하시던.”
“형 지금 몇 연승 중이세요? 저랑 하실 때 30연승 정도 중이시지 않으셨나?”
“저 사람 핵 의심되던데… 나랑 할 때 79연승 중이든가 그랬던 걸로….”
여기저기서 저마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에라이. 괜히 또 피곤해지는 거 아냐?’
지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저기요.”
그때, 쌈닭과 함께 있던 모험가가 지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까 제 친한 동생이랑 붙으셨던 분 맞죠?”
“아닌데요.”
지크가 딱 잡아뗐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니가 아까 나더러 어뷰져라며!”
쌈닭이 끼어들어 빼액! 하고 소리쳤다.
“맞는 것 같은데요?”
“아닌데. 사람 잘못 봤는데.”
“에이. 그러지 마시고.”
쌈닭과 친한 형이라는 사람이 꽤 수더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실례지만, 시간 있으시면….”
그때.
‘어? 이 사람 어디서 봤더라…?’
지크는 쌈닭의 친한 형이라는 사람의 얼굴을 어디서 본 것만 같아 고개를 갸웃거려야만 했다.
“혹시요.”
지크가 쌈닭의 친한 형에게 물었다.
“지튜브에서 방송하시던 분 아니세요? 야옹이형이란 닉네임으로?”
지크가 쌈닭의 친한 형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기억해냈다.
ID 야옹이형.
나이는 30대 중반.
그는 게임 전문 스트리밍&동영상 공유 웹사이트인 지튜브에서 BNW 투기장을 주력 콘텐츠로 삼아 방송을 진행하던 나름 네임드 스트리머였기 때문이다.
***
“맞죠? 야옹이형이시죠?”
“하하….”
지크의 물음에 야옹이형이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이며 답했다.
“예, 뭐. 제가 야옹이형 맞습니다.”
“와!”
지크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저 예전에 형 방송 많이 봤었는데!”
“진짜요?”
“없는 돈 쪼개가면서 형 방송 후원하고 그랬었거든요. 그때 제 닉이….”
지크가 야옹이형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주 작게.
오직 야옹이형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만.
“…지요.”
“네? 뭐라고요?”
“…퇘지요.”
“뭐라고 하시는지 잘 안 들리는데….”
“수퇘지요, 수퇘지.”
“아! 수퇘지 님이셨… 웁!”
지크가 야옹이형의 입을 다급히 틀어막았다.
“비밀이라고요, 비밀.”
“읍읍!”
“특급 기밀입니다.”
“아, 알겠어요.”
지크로부터 간신히 풀려난 야옹이형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수….”
“쉿.”
“그… 분이셨구나? 기억나요. 제 방송 오셔서 1,000원씩 2,000원씩 후원해주시던 거.”
“진짜요?”
“후원해주시면서 이것저것 질문하시던 것도 기억나는데? 제 영상마다 꼬박꼬박 댓글까지 달아주시고.”
“와! 그걸 다 기억하시네!”
“그럼요.”
“영광입니다.”
지크가 팬심을 담아 야옹이형에게 악수를 청했다.
야옹이형은 지크를 BNW로 이끌었던 사람이었다.
3년 전.
BNW가 런칭 1주년을 맞으며 전 세계에 돌풍을 일으키려던 때.
‘어? 이 게임 재밌어 보이는데?’
우연히 야옹이형의 방송을 보게 된 지크는 그 길로 BNW에 빠져들었다.
그 후 지크는 야옹이형의 팬이 되어 매일 방송을 시청하고, 그가 진행하는 교육 방송에서 각종 팁과 정보들을 얻으며 무럭무럭 성장해 나갔다.
즉, 야옹이형이야말로 편돌이 한태성을 겜돌이 한태성으로 바꾸어놓은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근데 방송은 왜 접으신 거예요? 한 2년 전부터 방송 안 켜시던데….”
“아 그게….”
야옹이형의 얼굴이 다소 어두워졌다.
“맨날 방구석에서 배달 음식이나 먹고 방송만 하니까 건강이 안 좋아진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는데… 너무 늦었던 거죠. 운동하다가 뇌경색으로 쓰러졌었어요. 그래서 한 2년 쉰 거죠.”
“아이고.”
“그래도 재활치료가 잘돼서 지금은 괜찮아요. 동조율이 예전만큼 안 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평균 이상은 되니까.”
“정말 다행이네요.”
지크는 진심으로 야옹이형의 쾌유를 기뻐했다.
“감사합니다. 곧 방송도 다시 시작하려고요.”
“오. 진짜요?”
“그럼요. 솔직히, 게임보다 방송하는 게 훨씬 재밌더라고요.”
“응원할게요. 오랜만에 형 방송 보고 싶네요.”
“고마워요.”
뜻밖에 지크와 야옹이형이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하자 쌈닭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아! 형! 저 새끼 핵이라니까?”
“내 시청자가 핵 같은 걸 쓸 리가 없는데…?”
“아오!”
쌈닭이 분통을 터뜨렸다.
“형! 그걸 믿어? 형이 저 새끼 전적을 봐야 돼! 나랑 했을 때 77전 전승이었다고! 내가 손도 못 써보고 개털렸다니까! 핵이야, 핵!”
쌈닭이 고래고래 소리치며 지크를 핵 사용자로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준혁아. 핵 의심 같은 거 함부로 하는 거 아니다.”
“누가 그걸 몰라? 저 새끼 전적이 말이 안 되니까 그렇지! 그리고 말도 안 되게 잘한다니까?”
“그냥 잘하는 걸 수도 있지.”
“저 새끼가 천재라도 된단 소리야?”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어쨌든 사람 함부로 의심하고 그러면 안 돼. 그리고 핵이면 결국 다 들통나게 돼 있는데, 굳이 니가 지금 이렇게까지 화낼 이유가 뭐 있냐?”
“으! 또, 또 나온다! 그놈의 선비 기질!”
그때, 지크가 야옹이형을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저… 혹시 한 수 가르쳐주실 수 있으세요?”
“한 수요?”
“제가 다른 사람은 안 믿어도 야옹이형 님은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야옹이형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지크가 자신의 고민을 말해주었다.
“대전 상대들이 너무 쉬워서 다 어뷰져같이 느껴진다고요? 심지어 오토매칭 큐도 안 잡히고?”
“네.”
“하하… 하하하하….”
야옹이형은 지크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저랑 한판 붙어서 실력을 점검해보고 싶으시다는 말씀이시죠? 객관적으로?”
“네.”
야옹이형은 비록 랭커는 아니었지만, 검증된 고수였다.
실력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상대인 것이다.
“좋아요. 한판 합시다. 애청자님의 부탁인데 들어드려야지.”
“감사합니다!”
지크가 야옹이형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럼, 제가 방 잡을게요. 오세요.”
“네.”
지크와 야옹이형이 을 향해 걸었다.
“형! 나 관전!”
쌈닭이 그런 지크와 야옹이형의 뒤를 쫄래쫄래 따랐다.
***
두근두근!
야옹이형과 마주한 지크의 심장은 좀처럼 진정될 줄을 몰랐다.
‘야옹이형 님이랑 붙을 날이 올 줄이야.’
과거 야옹이형을 동경하던 지크가 이제는 투기장에서 직접 일대일 대결을 펼친다고 생각하니 설레는 게 당연했다.
[야옹이형](링네임 미사용)•레벨 : 221
•등급 : 초절정고수Ⅰ (베테랑)
•전적 : 5823전 3891승 21무 1911패 (67%)
야옹이형은 BNW의 투기장인 를 주력 콘텐츠로 하던 스트리머답게 쌈닭보다 많은 결투 경험과 높은 승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결투 등급도 높았다.
BNW 등급은 다음과 같았다.
– 왕초보 / 초보
– 하수 / 중수 / 고수
– 초고수 / 절정고수
– 초절정고수Ⅲ, Ⅱ, Ⅰ
– 영웅 Ⅲ, Ⅱ, Ⅰ
– 패왕 Ⅲ, Ⅱ, Ⅰ
– 투신 Ⅲ, Ⅱ, Ⅰ
– 무신
야옹이형은 긴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초절정고수Ⅰ이라는 높은 등급을 유지하고 있었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 야옹이형이니만큼, 그 실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터였다.
“잘 부탁드려요, 형.”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지크와 야옹이형이 서로 인사를 주고받고.
[결투 준비 완료!] [3, 2, 1….] [Fight!]결투가 시작되었다.
‘넌 이제 X된 거야.’
쌈닭은 야옹이형과 맞붙은 지크를 바라보며 내심 행복회로를 돌렸다.
야옹이형이 지크를 탈탈 털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