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325
1324
“우진이… 아버님께서… 벌집… 회장님이셨어요???”
태성은 정말로 깜짝 놀랐다.
천우진이 부잣집 아들인 건 알았다.
설마하니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게임회사인 의 회장 아들일 줄이야….
“지, 진짜냐?”
“응.”
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내가 너한테 거짓말해서 뭐 해?”
“그렇긴 하다만….”
“알잖아.”
천우진이 미안하단 표정을 지었다.
“회사 회장이 누구인지는 철저히 비밀인 거.”
천우진의 말은 사실이었다.
의 회장이 누구인지는 아직까지도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간 철저히 베일에 싸인 존재였다.
그래서 부회장인 오펜하이머가 회사의 CEO와 얼굴마담 역할을 해왔던 것이고.
“진즉 알려주고 싶었는데, 이게 또 대외비라서. 일찍 말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태성은 천우진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아들 입장에서 아버지이자 회장인 천종호에 대한 정보를 떠벌리고 다닐 순 없을 테니까.
‘그래서 돈이 많았구나?’
태성은 그제야 천우진의 그 막대한 부[富]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깨닫고,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의 회장 아들이라면, 가난한 게 더욱 이상한 일 아니겠는가?
“만나서 반가워요. 우리 앉아서 얘기할까요?”
천종호가 태성에게 자리를 권했다.
“아, 예.”
그렇게 태성은 천우진 부자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태성은 그 과정에서 천종호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히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천종호는, 강남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서울대 공대에 진학했다.
그런 뒤 MIT에서 유학 도중 가상화폐로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벌게 되었다.
천종호는 MIT 학사를 중퇴하고, 가상화폐로 번 돈으로 게임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을 기반으로 한 가상현실게임 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했다.
‘이야. 엘리트이신데. 운도 좋으셨네. 노력도 엄청나게 하셨고. 하여간 다르다니까.’
태성은 천종호의 인생 이야기를 나름 재미있게 들었다.
성공 신화를 전해 듣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우리 우진이랑 잘 지내줘서 고마워요. 우진이 녀석이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지내는 바람에 한국에 친구가 별로 없어요.”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요?”
“그럼요. 저를 알아봐 준 사람이었습니다.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습니다.”
“하하하! 태성 선수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참 기분이 좋네요! 하하하!”
천종호와의 시간은 즐거웠다.
태성의 인생을 180도로 바꾸어준 게임이자 이 시대 최고의 히트작 를 만들어낸 사람과의 대화는 정말이지 유익했고, 또 흥미로웠다.
그래서 태성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천종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그럼 이제….”
천종호가 태성에게 물었다.
“태성 선수는 앞으로 어떡하실 생각이에요?”
“예, 저는….”
태성이 대답했다.
“당분간은… 쉴 생각입니다.”
“으음.”
“지난 5년 동안 정신없이 달려왔던 것 같습니다. 그전에도 거의 2년 동안 이 게임에만 매달렸고요. 7년 동안 게임만 죽어라 했으니까… 이제는 조금은 쉴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태성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제는 정말로 쉬어가야 할 때였다.
사실 태성은 정신적으로, 그리고 체력적으로 살짝 과부하가 걸린 상태였다.
메인 시나리오인 을 클리어한 이상 이제는 조금 게임 라이프의 템포를 늦출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전 만렙이니까요. 더 올라갈 곳이 없기도 하고요.”
태성은 판타지 서버에서 이룰 건 모두 이뤘고, 현실에서도 게이머로서 누릴 수 있는 영광이란 영광은 다 누려보았다.
이제는 현실에 더 집중해도 되리라….
“이해해요. 정말 고생 많았어요, 태성 선수.”
“감사합니다.”
“태성 선수는 우리 게임의 아이콘이고, 판타지 서버의 진주인공이에요. 회사의 회장으로서,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해요.”
“별말씀을….”
“앞으로는 우리 우진이랑 같이 자주 얼굴 봐요.”
“영광입니다.”
그렇게 태성은 의 총수이자 천우진의 아버지인 천종호 회장과 인연을 맺었다.
***
지크가 창조주를 물리쳤다고 해서 게임 의 판타지 서버의 이야기가 끝난 건 아니었다.
그게 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지크는 의 판타지 서버의 진주인공이었지만, 네 번째 메인 시나리오인 까지였다.
지크의 활약으로 창조주가 소멸함으로써 세계는 자유를 찾았다.
더 이상 창조주의 영향력 아래에 있지 않게 되었고, 지적생명체들의 자유의지에 따라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는 말은, 지크의 역할은 이제 끝난 셈이었다.
앞으로도 여러 사건·사고들이 발생하며 컨텐츠가 추가될 테고, 그때 발생하는 메인 시나리오의 주인공은 지크가 아닐 게 분명했다.
당장 무너져 내린 로 인해 뉘르부르크 대륙의 3분의 1이 초토화된 상황이었다.
가 자리했던 곳의 시공간이 뒤틀리면서, 수십만 개의 던전이 생겨났던 것이다.
게이머들은 가 자리했던 지역에서 살아가던 NPC들을 구하기 위해 수십만 개의 던전으로 뛰어들었고, 그것 역시 새로운 컨텐츠 중 하나가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세계는 아직도 혼란스러웠다.
옛 마우레키온 제국의 영토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벌어지면서, 전란의 불씨가 치솟아 올랐다.
군주인 NPC들과 게이머들이 서로 뒤섞여 협력하고, 배신하고, 싸우는 등 군웅할거의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또 다른 메인 시나리오가 발생할 테고, 거기에 따른 새로운 주인공이 탄생할 터였다.
그리고 그게 바로 게임 의 장점이었다.
컨텐츠는 무한하게 추가되고, 누구에게나 메인 시나리오가 발생할 수 있으며, 또한 끊임없이 생성된다.
그러니 창조주가 소멸했다고 해서 판타지 서버가 끝이 난 게 아니었던 것이다.
지크도 그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결정을 내렸다.
“그간 이 세상을 위해서 충분히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지크는 창조주를 물리친 이후 처음으로 열린 어전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본국은 그동안 이 세계를 위해 힘썼습니다. 우리의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면서, 아무런 대가로 바라지 않고 싸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형제자매들을 잃었고, 슬픔과 도탄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이제 충분합니다. 더 이상은… 우리는 우리를 희생하지 않을 겁니다. 황제인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내 가족들, 그리고 백성들을 먼저 돌볼 생각입니다. 그런 이유로….”
지크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자신의 결정을 이야기했다.
“현 시간부로 프로아 제국의 영토를 최대한 축소하고, 국경을 폐쇄합니다. 앞으로는 우리 동맹국들을 제외하면, 그 어떤 국제적 사건·사고에도 끼어들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내정에 집중하겠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프로아 제국의 대소신료들은, 그런 지크의 결정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프로아 제국도 더 이상 세계를 위해 힘쓸 여력이 없었다.
단기간에 늘어난 영토와 인구로 인해 각종 사회문제가 불거지고 있었고, 사회 기반은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으며, 오랜 전쟁으로 인해 군사력도 상당히 약화된 상태였다.
이제부터 내정에 온 힘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국이었으니, 지크가 쇄국[鎖國]을 선택한다고 해도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프로아 제국은 내정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지크는 황제로서의 업무에 집중했다.
‘내가 게임을 하는 건지, 아니면 공무원이 된 건지 구분이 안 가네. 으으으.’
지크는 괴로워했지만, 매일 같이 로그인해서 황제로서 처리해야 할 서류들을 검토하고 옥새를 찍으며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
또한, 가장으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했다.
“우리 내일은 남쪽 바다에 놀러 갈까요?”
“좋아요!”
지크는 브륜힐트와 데이트를 즐기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또한, 매일 베르단디와 놀아주고 로그아웃하기 전엔 동화책을 읽어주는 등 자상한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했다.
“야, 햄찌야. 심심한데 낚시나 가자.”
“뀨! 좋다!”
영혼의 듀오인 햄찌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부님! 술 한 잔 올립니다!”
“오냐! 껄껄껄!”
이따금씩 사부를 찾아가 술상을 봐 드리고, 제자로서 스승을 극진히 모시기도 했다.
그렇게 지크는, 대부분의 시간을 황궁과 프로아 제국의 영토 내에 머물며 소일거리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월, 화, 수, 목, 금.
주5회.
하루 8시간에서 10시간씩만 접속해 있으면서, 마치 공무원 같은 게임 라이프를 즐겼다.
그래도 심심하지 않았고, 지겹지도 않았다.
오히려 즐거웠다.
왜?
이것 또한 게임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 중 하나였으니까.
무조건 레벨업을 하고, 적과 싸우고, 아이템을 맞추는 것만이 다가 아니었다.
누군가는 게임 속에서 자신만의 텃밭을 가꾸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NPC와 깊은 관계를 맺고, 함께 일상을 이어나가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게임 속 세상에서 상인으로 살아가며, 상거래에서 재미를 찾았다.
다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면서 이 가상현실 세계를 즐기는 것이다.
지크도 이제 그러한 소소한 재미를 찾아 만끽하는 중이었다.
이세계에서의 평화로운, 행복한 삶을….
그러는 동안 세계 등급의 아이템인 와 그에 준하는 아이템인 는 지크의 옥좌 옆에 놓인 채 사용되는 일이 없었고, 하루하루 먼지만 쌓여 갔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크에게는 더 이상 아이템이 필요하지 않았다.
지크는 와 뿐 아니라, 그 어떤 아이템도 착용하지 않았다.
혹시 부득이하게 무력을 써야 할 일이 생기면, 그냥 맨몸에 맨주먹으로 해결했다.
남쪽 바다에서 휴가를 즐기던 중 초거대 크라켄의 습격을 받았을 때도, 수영복 차림으로 주먹질 한 방에 해결했다.
고인물 중의 고인물이라는, 노템지존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중.
“형님! 큰일 났습니다! 대륙 동쪽에서….”
승구가 찾아와 큰 사건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됐어. 알고 싶지 않아. 말하지 마.”
“혀, 형님!”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넣어 둬.”
“하지만….”
“내 몫이 아냐.”
지크가 미소를 지었다.
“내가 끼어들면 뭐든 해결될 테지만, 그럼 무슨 재미겠어?”
“예…?”
“난 이제 뒷방 늙은이야. 내 시대는 지났어. 이제는… 새로운 네임드들이 나타날 차례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번번이 나서면, 다른 사람들은 어떡해?”
“그거야….”
“시련과 역경이 영웅을 만드는 거야. 새로운 주인공들이 나타나려면, 나는 그냥 여기 있는 게 나아.”
그게 지크가 나서지 않는 이유였다.
가 있던 자리에 생겨난 수십만 개의 던전을 클리어하지 않은 이유도, 프로아 제국을 걸어 잠근 이유도.
다 게이머들이 즐길 컨텐츠를 남겨놓기 위한 양보였던 것이다.
어차피 직접 나서봐야 이제는 딱히 재미도 없을 테고.
“너도 얼른 가. 너도 새 시대를 이끌어나갈 주역 중 하나가 될 거야.”
“형님….”
“나 그럼 간다? 베르단디랑 그림 공부 같이하기로 했어.”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승구를 남겨두고 떠났다.
***
그날 밤.
지크는 로그아웃 전 햄찌와 함께 황궁 지붕 위에 걸터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뀨! 주인놈아!”
햄찌가 물었다.
“응?”
“그럼 우리 앞으로 모험 안 하는 거냐? 뀨우?”
“글쎄.”
지크가 어깨를 으쓱했다.
“적어도 당분간은?”
“뀨우?”
“나도 좀 쉬어야지. 내 가정, 내 나라는 돌봐야 할 거 아냐. 언제까지 바깥일 바쁘다고 나돌아다닐 수도 없고. 그거, 진짜 빵점짜리 가장이거든.”
“뀨! 그건 그렇다!”
“창조주가 사라졌다고 해서 모든 위협이 사라진 건 아니겠지. 하지만 새로운 영웅들이 나타날 테고, 나는 그들을 믿어. 나는 할 만큼 했고, 영광도 누릴 만큼 누렸잖아.”
“뀨! 하긴 그렇다! 주인놈 그간 많이 굴렀다! 좀 쉴 때도 됐다! 뀨우!”
“언젠가 다시… 우리가 같이 모험할 날이 또 올 거야. 그때까지는 이 조용한 삶을 즐기자고. 한 번 여정에 나서면, 그땐 또 죽도록 굴러야 할 테니까.”
“뀨! 알겠다!”
“짜식.”
지크는 햄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무수히 많은 별들이 쏟아질 듯 반짝이고, 달은 휘영청 밝았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
그로부터 6개월 후.
태성은 강원도의 모 펜션에서 용설화와 결혼식을 올렸다.
양가 부모님과 몇몇 가까운 친척들.
그리고 소수의 지인들만이 참석한, 아주 작은 결혼식이었다.
태성·설화 부부가 이러한 스몰웨딩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어차피 그들은 엄청난 부자라서, 화려한 결혼식을 원했다면 그렇게 할 능력이 있었다.
5성급 호텔 결혼식장을 빌려 10억 원쯤을 결혼식 비용으로 사용한다고 해도,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러나 태성·설화 부부의 생각은 달랐다.
태성·설화 부부는, 그렇듯 사치를 부리는 대신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을 돕기로 했다.
어차피 돈이야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을 정도로 자산을 불려놓았으니, 물질적인 만족감보다는 가까운 지인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다지기로 했던 것이다.
사치와 과시에 대한 집착은 버린 지 오래였다.
결혼식이 시작되기 1시간 전.
“야! 한태성!”
천우진이 태성을 불렀다.
“식 시작되기 전에 한 번 돌아보자.”
“갑자기?”
“잘 꾸며졌는지 확인은 해야 할 거 아냐.”
“그런 건 보통 여자들이 하지 않나?”
“야, 여자들은 드레스 입고 화장하느라 바쁘거든?”
“아? 그런가?”
“가자.”
“그, 그래….”
태성은 천우진을 따라서 식이 이루어질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은 꽃으로 예쁘게 장식되어 있을 뿐, 사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평범하고 흔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야외 스몰웨딩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런 태성의 생각은, 이어진 천우진의 말로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고 말았다.
“야, 태성아.”
“응?”
“손님들이 왔어.”
“손님들? 누군데?”
“직접 보면 알아.”
“으응?”
“저기 봐.”
천우진이 손가락으로 신랑 측 부모님이 앉아야 할 곳을 가리켰다.
‘누가 온 거지?’
다음 순간.
“……!”
태성은 선 채로 얼어붙고 말았다.
왜냐하면….
“사, 사부님?!”
사부를 똑같이 생긴 노인이 최고급 수트를 입고, 신랑 아버지 자리에 떡하니 앉아있었던 것이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었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사, 사부님께서… 여, 여기는 어떻게….”
그뿐만이 아니었다.
“뀨! 주인놈아! 결혼 축하한다! 뀨우!”
사부 옆에 햄찌가 고개를 불쑥 내밀고는, 태성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뭐, 뭐야아아아!!!”
태성은 너무나도 놀라 비명을 내지르다가, 엉덩방아를 쿵! 찧고 말았다.
사부.
그리고 햄찌.
현실에는 존재하지 말아야 할, 오직 가상현실게임 의 판타지 서버에서만이 존재해야 하는 사부와 햄찌가 왜 현실에 있단 말인가!
“이, 이게 무슨….”
소스라치게 놀란 태성.
“뭘 그리 물끄러미 보느냐! 장가를 가면서, 감히 본좌에게 청첩장도 안 보내? 네 녀석이 그러고도 제자냐!”
“사, 사부님!”
“에잉! 자식새끼 키워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다더니! 본좌가 그간 헛짓을 했구나! 헛짓을 했어!”
태성은 사부의 탄식에도 패닉 상태에 빠져 무어라 말조차 잇질 못했다.
‘이, 이게 무슨 일이지? 사부님이 왜 현실에…? 이게 가능한 일이야?’
게다가 햄찌까지 고개를 쏙 내밀고 뀨! 뀨! 이러는 통에, 태성은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뭐지? 게임 속 세상이 설마 진짜였던 건가? 그래서 사부님과 햄찌가 차원이동을….’
그때였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천우진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와우! 성공입니다! 성공!”
“캬! 한태성 얼굴 보소! 귀신이라도 봤냐? 큭큭큭큭!”
“오빠~ 순진하시네요~”
갑자기 숨어있던 지인들이 나타나 지크를 놀려대기 시작했다.
“뭐, 뭔데? 왜들 그러는 건데?”
태성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기까지 했다.
“거 봐.”
천우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그랬지? 속는다니까? 한태성 이 자식은 아주 중증 환자라고. 사이버망령 그 자체야. 게임에 얼마나 몰입을 했으면 이런 몰카에 속냐? 큭큭큭!”
“동감입니다! 푸하하하!”
승구가 천우진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모, 몰카…?”
태성은 그제야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휘둥그레진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야, 한태성.”
천우진이 다가와 킥킥거리며, 태성을 놀려댔다.
“너 진짜 간 떨어질 뻔했지? 그렇지?”
“어, 어떻게… 된 건데?”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되냐? 큭큭큭!”
천우진이 사부와 햄찌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 배우들이지.”
“배, 배우…?”
“고생하셨습니다.”
천우진이 사부와 햄찌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 예.”
“고생은요. 헤헤.”
그러자 사부로 변장해 있던 배우가 수염을 슥 떼고, 햄찌로 변장해 있던 배우가 쓰고 있던 탈을 벗으며 본래 얼굴을 드러내었다.
“요즘 기술 좋더라. 한 몇억 쓰니까 완전 똑같이 구현해주네?”
“뭐…?”
“내가 이 몰카 준비하느라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 배우 분들 섭외하고, 할리우드에서 최고의 특수분장 팀 데려오느라 돈 많이 썼어. 하하하.”
“아….”
태성은 그제야 이 상황을 이해했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특수분장 전문가들이라면, 배우를 사부로 분장시키는 건 일도 아닐 터.
햄찌가 조금 까다롭긴 하겠지만, 가상현실게임의 영상을 기반으로 제작한다면 못 할 것도 없었다.
솔직히 돈지랄이긴 했지만, 태성을 속여 넘기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랬다… 이거지….”
태성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몰카로… 아주 재밌는 걸… 준비했네…?”
“어어? 야, 한태성! 너 왜 그래? 야! 자, 잠깐만!”
천우진은 천천히 다가오는 태성을 바라보며 일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몰카?
의도는 좋았다.
계획은 완벽했고, 결과 또한 훌륭했다.
태성을 감쪽같이 속여 넘겼으니, 성공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 후폭풍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아주… 재밌는 몰카를 준비했어… 흐흐흐….”
태성이 손가락 관절을 우득! 우드득! 꺾으며 천우진, 승구, 그리고 채형석 일당을 향해 다가섰다.
태성은 정말로 놀랐다.
혼이 달아날 만큼 놀랐고, 하마터면 심장마비가 올 뻔했다.
아무리 장난이라지만, 영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들이 요즘 내가 풀어주니까 아주 정신줄 놨지? 오늘 내 장가가는 날이 아니라, 니들 제삿날이다! 이 새끼들아!”
태성은 그 압도적인 피지컬과 완력으로, 도망치는 천우진과 승구와 채형석을 붙잡았다.
퍽! 퍼억!
그리고는 X나 패기 시작했다.
하필 가장 먼저 붙잡힌 채형석은, 태성에게 아주 제대로 얻어터지며 화풀이를 제대로 당했다.
“꾸웩! 꾸웨에에에에에엑!”
“아주 빠져가지고!”
“나, 나 말고 천우ㅈ… 으악! 으아아아아악!”
“다 뒈질 줄 알아! 아주!”
그렇게 채형석을 시작으로, 천우진과 승구는 몰카의 대가를 아주 톡톡히 치러야만 했다.
너무 리얼한 몰카를 기획한 대가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