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47
146
비머리언과 아우토니카는 예로부터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다.
왜냐하면, 두 공방은 메르세데스의 뒤를 이어 누가 2인자인지를 경쟁하는 영원한 라이벌이었기 때문이다.
[찌질이들이나 좋아할 만한 디자인에 조악하고 조잡한 잡기술로 쓰레기들이나 만들어내는 3류 공방.]…라는 게 아우토니카에 대한 비머리언의 평가였고.
[기술력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빡대가리들. 디자인 철학은 개나 줘버린 모양이지? 장인은 개뿔. 투박한 골동품이나 만들 줄 아는 머저리들.]비머리언에 대한 아우토니카의 평가도 만만치 않게 험악했다.
[X밥들끼리 뭘 그리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들이신가? 껄껄껄!]그런 아랫것들(?)을 바라보는 메르세데스의 경우엔 언제나 여유가 넘쳐흘렀지만 말이다.
‘내가 비머리언의 VVIP니까 고객 유치 차원에서라도 나한테 잘해 주지 않을까?’
지크는 자신이 아는 BNW의 배경지식을 떠올리고는 슬쩍 배짱을 부려보았던 것이다.
“으음!”
덕분에 시누가쟌 과장은 잠시 당황해야만 했다.
‘이 고객님께서 어째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지? 허언을 하실 분은 아닌 듯한데….’
3대 공방은 보유한 기술력과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어지간한 왕국 따위는 감히 명함도 내밀지 못할 파워를 과시하고 있었다.
그런 3대 공방의 일원인 아우토니카를 상대로 일개 약소국의 왕 ‘따위’가 스스로 VIP 대접을 받을 만한 사람이란다.
사람에 따라서는 코웃음을 치고도 남을 발언이었다.
“전하.”
하지만 프로 세일즈맨답게, 시누가쟌 과장은 당황하지 않고 지크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어째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제가 알 수 있겠습니까?”
“제가 비머리언 공방의 VVIP입니다. 그런 제가 이곳 아우토니카에서도 VIP 대접을 받는 건 당연한 일 아닐까요?”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시누가쟌 과장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전하의 말씀이 사실이시라면 제가 본사에 건의해 도움을 드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이다마다요. 이걸 보시면….”
지크는 내심 시누가쟌 과장의 친절함에 감탄하며, 를 슬쩍 보여주었다.
“이, 이것은! 죽음의 고향에서 주문 제작한 아티팩트 아닙니까?!”
시누가쟌 과장이 원반에 새겨진 비머리언 공방의 로고와 더불어 초고성능 아티팩트 제조 전담 부서인 로고를 한눈에 알아보고 놀라워했다.
“맞습니다.”
“오오! 역시 전하께선 범상치 않은 분이셨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제가 상부에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고요.”
지크가 희게 웃었다.
***
아우토니카 공방은 곧바로 반응했다.
“안녕하십니까,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 저는 아우토니카 공방의 수석 대장장이이자 이곳 진보의 대장간의 총책임자인 부스로이드라고 합니다.”
“지크프리트입니다.”
부스로이드는 기껏해야 20대 중반 정도밖에는 되지 않아 보이는 젊은 청년으로, 눈을 덮을 정도로 길게 기른 밤색 곱슬머리에 흰색 가운을 입고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대장장이가 아니라 무슨 연구원 같은데?’
지크는 그런 부스로이드의 모습에 살짝 당황했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템만 잘 만들면 되지.’
자고로 사람이란 겉모습보다는 능력이 중요한 법 아니겠는가?
“우선 저희 아우토니카 공방을 찾아주신 것에 대해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저희 아우토니카 공방에서는 앞으로 지크프리트 전하께 본 공방의 VVIP로서 모실 예정입니다. 부디 자주 찾아주시기를….”
“예? VVIP요? 그냥 VIP가 아니라?”
“그렇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저를 환대해 주시는 겁니까? 저야 좋긴 하지만,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지크는 예상한 것 이상의 환대에 당황했다.
비머리언과 아우토니카가 서로 라이벌이니만큼, 주문 제작을 받아주게 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하니 수석 대장장이란 거물이 등판할 줄까지는 몰랐던 것이다.
“당연한 대접입니다. 비머리언 공방 놈들이 비록 미개하고, 무식하고, 미적 감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머저리들이긴 하지만, 꼴에 아티팩트의 주인이 될 사람을 알아보는 눈 정도는 가지고 있습니다.”
“하하….”
“그런 비머리언 놈들이 인정한 VVIP 고객님께서 저희 공방을 찾아주셨으니, 이만한 대접도 무리는 아닐 테지요.”
“하지만 무려 수석 대장장이이신 분께서 나오실 줄은….”
“3대 공방의 VVIP 고객님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특별한 존재요?”
“재력과 사회적 지위만으로는 VVIP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 VVIP의 기준이라는 게….”
“아티팩트의 실제 사용자를 뜻합니다.”
“실제 사용자요?”
“저희 공방의 VIP 고객님들 중에서는 높은 사회적 지위와 재력을 지니신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아티팩트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는 분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팔려나간 아티팩트들은 대개 비싼 액세서리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못한 채 먼지만 쌓여가는 게 현실입니다. 보통은 장식장 안에 진열되거나 허리춤에 매달려 고객의 재력을 과시하는 도구로 이용될 뿐입니다.”
지크는 그런 부스로이드의 말에 동의할 수 있었다.
‘하긴. 나도 페라리를 타긴 하지만 운전 실력은 허접이니까.’
현실에서 슈퍼카를 모는 오너들 중에 그 성능을 50퍼센트라도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단언컨대, 100명 중 한 명이나 되면 다행일 것이었다.
“사실 연구비, 개발비, 재료비 문제만 아니라면 자격이 없는 이들에게 아티팩트를 판매하고 싶지 않은 게 대장장이로서의 솔직한 심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하와 같은 분들은 다릅니다. 전하께서는 아티팩트를 실제로 사용하시는 분… 사실상 본 공방의 명성을 드높여주실 잠재적 홍보 대사이십니다.”
“아하!”
“VIP 고객은 비록 매출을 올려줄 수 있을지언정 공방의 브랜드 가치를 올려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한 명의 VVIP 고객은 공방의 브랜드 가치를 올려줍니다. 거기에 따른 매출의 상승효과란… VIP 고객 1,000명 아니 어쩌면 10,000명보다 크겠지요.”
고도로 기업화된 공방의 수석 대장장이다운 발언이었다.
“그래서 각 공방은 VVIP 고객님들을 유치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았습니다.”
“한데… 어쩐 일로 저희 공방을 찾아주신 것인지요? 역시 비머리언 놈들의 조악한 제품이 마음에 안 드셨던 겁니까?”
그렇게 말하는 부스로이드의 얼굴에는 은근한 기대감이 떠올라 있었지만, 지크는 차마 그런 거짓말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건 아닙니다.”
“이런. 아쉽군요.”
부스로이드의 표정에 약간의 실망감이 서렸다.
“제게 꼭 필요한 아티팩트가 아우토니카 공방의 제품이라 들렀는데, 아쉽게도 단종이 되었다더군요.”
“그렇습니까?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바이터보 세트가 필요합니다.”
“아….”
부스로이드의 표정에 당혹감이 서렸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현재 그 아티팩트는 주문 제작도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왜요?”
“그게… 현재는 재료를 구할 길이 없어서….”
그 순간.
띠링!
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 퀘스트가 발동했습니다!] [알림 : 부스로이드로부터 이야기를 들으시겠습니까?]알림창을 본 지크가 부스로이드에게 물었다.
“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그것이….”
부스로이드가 자초지종을 지크에게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
바이터보 세트의 핵심 재료인 은 본래부터 값비싼 물건이었다.
그러나 원산지인 와 간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그 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엔트로피 스톤은 오직 에서만 채굴되는 특산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 전쟁의 양상이 이 해상 봉쇄에 성공하면서, 의 모든 해상 무역이 일시에 중단되는 사태까지 겹치자 의 거래가 뚝 끊기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저희 공방도 당분간은 바이터보 세트의 단종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하지만 아우토니카 공방이 가진 힘이라면….”
“물론 저희 공방이 나선다면 그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할 수는 있지만, 3대 공방은 수백 년 전부터 대륙 각국의 정치적인 분쟁이나 전쟁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맹세를 했습니다.”
“아하.”
“그래서 본사가 직접적인 공격을 당하지 않는 한, 저희로서도 손쓸 방법이….”
“만약 제가 재료를 구해온다면요?”
“어렵지만… 구해오시기만 하신다면 제가 더 강력한 것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더 강력한 것으로요?”
그러자 지크의 눈앞에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엔트로피 스톤을 찾아서]대륙 서남부의 도시 국가 스톤 아일랜드에서 을 구해 부스로이드에게 가져다줄 것.
•진행률 : 0%(0/1)
•보상 : 쿼드터보 세트(쿼드터보 세트는 바이터보 세트의 업그레이드 버전입니다.)
뜻밖에, 보상이 굉장히 후했다.
[쿼드터보 세트]아우토니카 공방의 초고성능 전담 부서인 에서 업그레이드시킨 바이터보 세트.
기존의 바이터보 세트에 터보차저를 2개 더해 총 4개의 터보차저가 장착되어 굉장히 뛰어난 성능을 발휘한다.
– 스킬 위력 30% 증가
– 스킬 범위 80% 증가
– 모든 스킬 레벨 +2
바이터보 세트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면, 디버프 마스터인 지크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는 세트였다.
“제가 구해 보겠습니다.”
지크는 고민하지 않았다.
[알림 :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이 좋은 퀘스트를 그냥 지나친다면, 그건 NPC에 대한 예의가 아닐 테니까.
***
아우토니카 공방의 초고성능 아티팩트 제조를 전담하는 부서인 을 떠난 지크는 곧장 프로아로 복귀해 개인 정비를 마친 후 스톤 아일랜드로 향하는 워프 게이트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뭡니까?”
목적지에 도착한 지크는 문득 햄찌 말고도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곁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은근슬쩍 지크와 함께 워프 게이트에 오른 사람은 다름 아닌 프로아 왕국의 사관 그랭구아르였다.
“저 지금 일하러 왔습니다만?”
“알고 있습니다, 전하.”
“왜 따라오셨습니까? 그랭구아르 사관님은 남아서 외화벌이하셔야죠.”
지크는 미켈레로부터 그랭구아르가 벌어들이는 수입이 짭짤하다는 걸 떠올리며 말했다.
“저도 사관입니다.”
“그런데요?”
“제게는 프로아 왕조의 시조이시자 현 국왕이신 전하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기록이 아니라 흑역사 박제겠지.”
“예?”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심결에 속마음을 말해버린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복귀하셔서 외화벌이에나 집중해 주시죠.”
“싫습니다.”
“명령입니다만?”
“저는 프로아의 단 하나뿐인 사관이자 전하의 종신 사관으로서 동행에 관한 사안에는 합법적으로 명령 불복종을 할 수 있습니다.”
“…….”
“죽을래요?”
지크가 슬쩍 협박을 해보았지만, 그랭구아르는 이번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뜻대로 하시옵소서. 소신은 사관이 된 순간부터 이미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예로부터 왕에게 죽임을 당한 사관이 어디 한둘이었겠습니까?”
“…….”
“다만 사관을 죽인 왕들에게는 하나같이 폭군의 칭호가 붙었었다는 걸 잊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이쯤 되면 지크로서도 딱히 그랭구아르를 어쩔 방법이란 게 없었다.
‘어휴… 데리고 다녀봤자 별 쓸모도 없이 짐만 될 텐데….’
지크가 그랭구아르가 의외로 쓸모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