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50
149
자세를 한껏 낮춘 그림자가 주먹을 아래서부터 위로 내질렀다.
문제는 타격 부위.
퍼억!
그림자의 주먹은 자신을 상대하는 병사 ‘그 자체’였다.
“……!”
자신의 ‘본체’를 주먹으로 맞은 병사의 두 눈이 당장에라도 튀어나올 듯 커졌다.
로우 블로(Low Blow)!
남성의 중요한 부위를 가격하는, 모든 격투기에서 금지된 궁극의 비열한 기술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로우 블로에 당한 병사가 자지러지는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해안가를 나뒹굴었다.
“내, 내가 고자라니… 고자라니이이이이이…!!!”
병사의 처절한 외침이 해안가를 떨쳐 울렸다.
“주, 주인 놈아! 햄찌 못 보겠다!”
햄찌가 앞발로 자신의 두 눈을 가리며 고통스러워했다.
자기가 당한 것도 아니면서 로우 블로에 당한 병사의 고통에 100퍼센트 동감하고, 몰입해버린 것이다.
‘누가 보면, 지가 고자가 된 줄 알겠네.’
지크는 그런 햄찌의 반응에 황당해했지만, 그림자들이 사용하는 기술들은 그만큼 비겁했다.
로우 블로는 기본.
눈 찌르기, 정강이 걷어차기, 할퀴기 등등 그림자들은 반칙 기술들을 전문적으로 수련한 악역 레슬러라도 된다는 듯 적들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저것들은 어디서 저런 걸 배워온 거지? 내가 시킨 것도 아닌데.’
지크는 도대체 무슨 수로 그림자들이 비열한 기술들을 구사하는지 궁금해했지만, 그래 봤자 답은 없을 터였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제압부터 하고 보자.’
그렇게 생각한 지크와 햄찌 전투에 합류, 적들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기 시작했다.
“자자. 진정들 합시다.”
“뀨! 받아라! 뀨 명치 때리기!”
그 결과.
“우웨에에엑!!!”
“우웩, 우웨에엑!!!”
“우우우우웩!!!”
스톤 아일랜드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차례차례 복부를 움켜쥐고 쓰러져 오늘 점심때 먹었던 것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해안가는 스톤 아일랜드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토해낸 토사물 냄새로 숨을 쉴 수 없는 지옥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그랭구아르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도대체 누가 누구한테 비열하다고 하는 거야?’
그림자들이 비열한 기술을 쓴다고 혀를 내두를 땐 언제고, 무슨 악마처럼 집요하게 명치만을 노리는 지크와 햄찌의 모습에 그만 질려버린 그랭구아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림자들은 전하께서 지니신 어두운 면이 구현된 것 같은데 말씀이야. 흐음.’
그러면서, 그랭구아르는 어쩜 그림자들이 저리도 비열한지를 유추해냈다.
그림자들은 스킬이 암속성 에너지에 의해 강화되면서 생겨난 것이었으므로, 지크의 내면에 있는 사악함이 구현된 존재일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휴. 안 죽이고 제압하기는 너무 어려워.”
“그렇다, 주인 놈아!”
물론 지크와 햄찌는 어째서 그림자들이 이토록 비열한지에 대해서 더는 궁금해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
전투가 끝난 후.
“끄, 끄으응….”
“으으… 우웨에에엑….”
“내가 고자라니… 고자가 되다니….”
자신들이 토한 토사물을 흠뻑 뒤집어쓴 스톤 아일랜드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고통에 신음했다.
“그, 그러니까… 단지 용무가 있어서 들어왔던 거요…?”
“그렇다고 벌써 세 번을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럼 진즉에 말씀을 했으면….”
“다짜고짜 공격해놓고 이제 와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더러 뒈지라는 겁니까?”
“크, 크흠…!!!”
지크의 반박에 해안 수비대의 지휘관이 그 이유를 말해주었다.
“그, 그것이… 최근 아둔야뎃 놈들이 대규모 상륙 작전에 번번이 실패하니까 소수의 특수부대를 상륙시켜서 요인 암살이나 주요 건물 폭파를 시도하는 바람에….”
“아하.”
“사전에 허가되지 않은 인원의 상륙은 일단 죽이고 보라는 상부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그랬군요. 그럼 이해합니다.”
듣고 보니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한 스톤 아일랜드의 해안 수비대를 마냥 탓할 수는 없었다.
“저 역시 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사상자는 단 한 명도 내지 않았습니다.”
“그 점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지휘관이 ‘나는 이제 씨 없는 수박인 것인가….’라며 허망한 얼굴로 중얼대는 병사를 힐끔 쳐다보고는 말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는 부하들이 몇몇 보이긴 합니다마는….”
“…….”
“어쨌거나 용무가 있어 방문하셨다니 상부에 보고부터 올리고 안내를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지크는 해안 수비대 지휘관을 따라 약간의 조사 과정과 대기 시간을 거친 뒤 스톤 아일랜드의 중심부로 입성하게 되었다.
***
‘여기가 게임 속 도시야, 아니면 마법이랑 과학이 동시에 발전한 미래 도시야?’
스톤 아일랜드의 중심부에 입성한 지크는 도시의 화려함과 고도로 발달된 기술력에 놀랐다.
스톤 아일랜드의 중심부는 부유한 도시 국가답게 엄청나게 화려했고, 또 혁신적이었다.
마정석을 이용한 에너지 공급 시스템이 도시 전체에 깔려 있어 가로등이 없는 곳이 없었고, 대륙 각지의 건축 양식을 따른 건물들이 서로 조화롭게 건설되어 있었으며, 거리의 깔끔함과 세련됨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굳이 단점을 찾으라면 오가는 시민들의 표정이 극히 어둡다는 것과, 거리 곳곳에 설치된 초소에서 근무를 서는 군인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했다는 것 정도랄까?
‘나도 이렇게 꾸미고 싶다. 가능할까? 기술력이 너무 딸려서 불가능하려나.’
지크는 스톤 아일랜드의 중심부를 보며 프로아 왕국도 이렇듯 세련되고 발전된 형태의 도시 국가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프로아 왕국의 국왕이신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이십니까?”
그때, 한 기사가 지크 일행을 향해 정중히 물었다.
“예. 제가 지크프리트입니다만….”
“스톤 아일랜드의 통령이신 앙겔레르 각하께서 지크프리트 전하를 뵙고 싶다고 하십니다.”
“예? 저를요?”
“예, 전하.”
“으음.”
지크는 잠시 고민했지만, 그 비싸다는 을 구하기 위해서는 고위층을 만나는 게 좋을 것 같단 생각으로 그 제안을 수락했다.
“어서 오십시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 저는 이곳 스톤 아일랜드의 통령인 앙겔레르라고 해요.”
앙겔레르는 매우 중후하면서도 성숙한 이미지를 지닌 중년 여성이었다.
“지크프리트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어요. 어째서 위험을 무릎 쓰고 스톤 아일랜드에 오신 이유가 뭐죠? 아둔야뎃 왕국의 해상 봉쇄를 뚫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엔트로피 스톤을 구하러 왔습니다.”
“엔트로피 스톤이라….”
앙겔레르 통령이 잠시 지크의 말을 곱씹어보더니 말했다.
“혹시 거래를 하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거래요?”
“엔트로피 스톤을 드리겠습니다. 대신에 아둔야뎃 왕국의 해상 봉쇄를 뚫었던 그 쾌속정과 설계도를 저희에게 넘겨주세요.”
“거절합니다.”
지크가 딱 잘라 말했다.
‘사람이 의리가 있지.’
아쿠아 러너는 전 대륙에서 오직 노르드족만이 제작하고, 또 운용하는 쾌속정이었다.
제아무리 지크가 몇 대를 가지고 있다고는 해도, 함부로 타국에 넘길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그랬다간 힘겹게 쌓아 올린 노르드족과의 우호 관계가 한순간에 박살이 날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노르드족과의 돈독한 우호 관계를 고작 엔트로피 스톤 한 개에 팔아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쾌속정을 넘겨드릴 순 없습니다. 설계도는 애초에 가지고 있지도 않고요.”
“지크프리트 전하께서는 단호하신 분이시군요.”
“그 쾌속정은 본국과 형제의 나라이자 혈맹 관계인 노르드족의 것입니다. 제가 함부로 다룰 수 있는 물건이 아님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런 지크의 양해에도 불구하고, 정작 앙겔레르 통령이 주목한 건 다름 아닌 프로아와 노르드족이 혈맹 관계라는 발언이었다.
“프로아 왕국이 노르드족과 혈맹을 맺은 사이라는 게 정말인가요?”
“예.”
“그럼 혹시….”
“제 지극히 개인적인 일에 형제들의 피를 흘리게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지크가 앙겔레르의 의도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 다시 한번 거절의 뜻을 내비쳤다.
‘노르드족을 전쟁에 끌어들여서 해상 봉쇄를 뚫어보겠단 생각 같은데, 미안하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거든.’
그때.
‘왕께서는 때때로 매우 영민하시어, 평소와는 다르게 번뜩이는 지혜와 날카로운 통찰력을 드러내 보이시고는 하셨다. 또, 대단히 공명정대하시어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시었다.’
그랭구아르는 평소와는 180도 다른 지크의 모습에 감탄하며, 앙겔레르 통령과의 대화를 기록으로 남겼다.
‘역시 전하를 따라오니 기록할 게 많군. 앞으로도 쭉 따라와야겠다.’
내심 지크의 꽁무니를 평생 쫓아다니리라 다짐하면서….
“전하의 뜻, 잘 알겠어요. 휴우.”
앙겔레르가 한숨을 푹 내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협박을 한다고 먹힐 것 같은 분도 아니니 제안은 이쯤에서 거두겠어요.”
“양해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엔트로피 스톤은… 해상 봉쇄를 뚫고 저희 스톤 아일랜드에 방문해주신 것만으로도 선물로 드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하지만 현재 본국에도 엔트로피 스톤의 재고가 없답니다. 아둔야뎃의 해상 포격으로 인해 광산이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당분간은 채굴이 불가능해요.”
그뿐만이 아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너져 내린 광산 밑에 있던 정체 모를 던전의 봉인까지 해제되면서 몬스터들이 튀어나오기까지 했죠. 덕분에 구조 작업마저도 여의치가 않아요. 전시 상황이라 아예 손도 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에요.”
이쯤 되면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엔트로피 스톤을 손에 넣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지크는 포기하지 않았다.
‘쿼드터보 세트를 어떻게 포기해?’
자신이 가진 클래스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아이템을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제가 직접 구해오면 어떻겠습니까?”
“전하께서 직접요?”
“예.”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너져 내린 광산을 복구하고, 몬스터도 정리해 드리고, 구조 작업도 도와드리겠습니다. 대신에 엔트로피 스톤 하나만 가져가는 조건으로요.”
“정 필요하시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그 순간.
[알림 :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지크의 눈앞에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엔트로피 스톤을 찾아서2]스톤 아일랜드의 북동쪽 광산으로 가 던전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을 처치하고, 무너져 내린 광산을 복구한 뒤 엔트로피 스톤을 채굴할 것.
•진행률 : 0%
– 돌덩이 치우기 (0/100,000)
– 몬스터 처치 (0/489)
– 광부 구조 (0/49)
•보상 : 엔트로피 스톤
그리 간단한 퀘스트는 아니었다.
몬스터 처치야 그렇다 쳐도, 무너져 내린 광산을 복구하고 구조 작업까지 펼치는 건 정말이지 보통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었으므로, 지크는 그 퀘스트를 기꺼이 수락할 수가 있었다.
“통신 시설을 좀 이용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사용하세요.”
앙겔레르의 허락이 떨어지자, 지크가 그랭구아르를 돌아보았다.
“그랭구아르 사관님.”
“예, 전하.”
“본국에 통신을 걸어 ‘그들’을 좀 불러주시겠습니까?”
“서, 설마… ‘그들’을 부르시려는 것입니까?”
“예.”
“아, 알겠습니다…!”
그랭구아르가 ‘그들’을 부르기 위해 통신실로 향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