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58
157
한 척….
두 척….
세 척….
그리고 열두 척….
해안 동굴에 있는 비밀 해군 기지를 차례차례 빠져나온 백상아리 함대는, 이내 곧 흩어져 U자 형태의 진영을 구성하고는 아둔야뎃 왕국의 함대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나왔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크는 대기하고 있던 다른 아쿠아 러너 여섯 대를 불러 모았다.
지크가 부른 여섯 대의 아쿠아 러너에는 그랭구아르를 비롯해 스톤 아일랜드의 해군 수병들이 정원을 꽉꽉 채워 탑승해 있었다.
“그랭구아르 사관님!”
“예, 전흐아….”
지크의 부름에 대답하는 그랭구아르의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어서, 삑사리가 날 지경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힘 좀 내주시죠. 그랭구아르 사관님이 활약을 해주셔야 저 함대를 나포할 수 있거든요.”
지크가 손가락으로 텅텅 빈 아둔야뎃 왕국의 군함 25척을 가리키며 말했다.
모든 승무원들이 바다에 풍덩 하고 뛰어든 덕분에 무주공산, 공짜나 다름없어진 군함들을 말이다.
그랭구아르가 노래를 불러 마성의 음파를 상쇄시켜 주지 않는다면, 세이렌들이 노래를 멈출 때까지 배를 차지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었다.
“며, 명령 받들켓습니드아하…!”
그랭구아르는 목 상태가 최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크의 명령을 거부하지 않았다.
어느 안전이라고 거부할까?
지크가 그를 지독히도 혹사시키고는 있었지만, 이건 다 지크 개인의 사리사욕이 아닌 프로아 왕국의 국익을 위한 일이었다.
또한, 그랭구아르는 누가 뭐래도 애국자였다.
애초에 애국심이 없었다면, 어렸을 적 꿈인 사관이 되고 싶지만 않았다면, 그랭구아르는 자신의 조국이자 세계 최고의 약소국인 프로아 왕국에 남지 않았을 터였다.
왜?
그랭구아르가 가진 예술적 능력이라면 아카데미를 졸업하자마자 제국으로 귀화하는 것도 가능했을 테고, 제국의 인기 연예인으로서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수도 있었을 테니까.
그래서 그랭구아르는 최악의 목 상태에도 불구하고 왕인 지크의 명령에 따라 노래했다.
왕을 위해.
조국인 프로아를 위해.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하는 것이다.
“우우 우우우- 우우 우우우- 우우우우우우-.”
그랭구아르의 노래가 바다에 널리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와. 진짜 난놈은 난놈이네.’
지크는 그런 그랭구아르의 능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밤새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러 목이 쉴 대로 쉰 상태에서도 저렇듯 깨끗한 음색과 정확한 음정, 박자를 구사할 줄이야….
심지어 성량도 어찌나 크고 울림이 깊었던지, 그랭구아르 하나의 목소리가 무려 50마리나 되는 세이렌들의 목소리를 덮어버리다시피 하고 있었다.
‘잠깐.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지크는 그랭구아르의 놀라운 노래 실력에 감탄하는 건 나중에 마저 하기로 하고, 자신의 역할을 먼저 다하기로 했다.
부르르…!!!
그랭구아르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고 있었다.
한계.
지금 그랭구아르는 자신의 능력을 극한으로 뽑아 쓰고 있었다.
한계치에 달한 그랭구아르가 노래를 멈추기 전에 세이렌들을 처치해야 했다.
“전원! 적 군함으로 도선합니다!”
지크가 명령을 내리자 그랭구아르가 탄 아쿠아 러너를 뺀 나머지 열 척이 빠르게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도선하세요!”
“도선!”
지크의 명령에 따라 스톤 아일랜드의 해군 수병들이 일제히 아둔야뎃 왕국의 군함 위로 밧줄을 매단 뒤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세이렌, 처치!”
“처치!”
지크가 재차 명령을 내리자 갑판 위에 오른 스톤 아일랜드의 수병들이 노래하는 세이렌들을 공격했다.
그랭구아르가 마성의 음파를 상쇄시켜 주는 노래를 불러준 덕분에, 스톤 아일랜드의 수병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세이렌들을 처치할 수가 있었다.
그러자 바다 위를 가득 메우던 세이렌들의 노랫소리가 차츰차츰 줄어들더니, 이내 곧 잠잠해져 더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그랭구아르의 노래도 멈췄다.
털썩!
그랭구아르가 쓰러졌다.
그만 탈진하고 만 것이다.
“항해사들, 위치로!”
“위치로!”
“수병들은 세이렌의 시체로부터 구슬을 회수하고 각자 맡은 바 위치로!”
“구슬, 회수! 맡은 바 위치로!”
스톤 아일랜드의 수병들이 지크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맡은 바 포지션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세이렌의 시체에서 획득한 구슬들은 모조리 그랭구아르 사관에게 몰아주세요! 몸보신 좀 시켜야 하니까!”
지크가 소리쳤다.
“히, 히익?!”
그런 지크의 외침에 기절 직전이었던 그랭구아르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서, 설마 저 역겨운 구슬을 또 먹어야 한다고?! 그것도 무려 50개나?!’
세이렌의 구슬을 섭취하는 건 그야말로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엄청나게 비린 데다가 식감도 물컹물컹 소름 끼치고, 심지어 위장에서 흡수되는 과정에서 다량의 가스를 발생시키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베테랑 선원들 가운데서는 세이렌의 목소리 아이템의 맛이 마치 ‘그것’과도 같다는 소문마저 있을 지경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랭구아르 사관님! 저거 다 드시고 기운 차리세요! 제가 특별히 다 양보하겠습니다! 보양식입니다, 보양식!”
지크가 해맑게 웃으며 그랭구아르를 향해 소리쳤다.
그런 지크의 미소는 뒤끝 같은 게 아니라 ‘진심’이었다.
‘고생했으니까 몸보신이라도 확실하게 시켜줘야지. 세이렌의 구슬 50개면… 와… 티끌 모아 태산이라더니 마나가 5,000이잖아? 어휴! 제대로 몸보신이네.’
세이렌의 목소리 아이템의 효과는 각각 마나 100에 노래 실력 10에 아름다움 5가 증가하게 되어 있었으므로, 오직 마나만 생각한다면 무려 5,000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치를 획득할 수가 있었다.
이는 평소에 마나 부족에 시달리던 지크로서도 강한 유혹을 느낄 만큼의 양이었지만, 지크는 그 많은 마나를 모조리 그랭구아르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그랭구아르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테니까. 이건 내가 통 크게 양보하자.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부하 주는 거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
순수한 선의였다.
“저, 전하… 차라리… 죽여… 주십시오….”
정작 당사자인 그랭구아르로서는 왕인 지크의 호의가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지만 말이다.
***
지크와 그랭구아르의 맹활약으로 아둔야뎃 왕국의 군함 25척을 공짜로 획득하게 된 스톤 아일랜드 해군은 잠시 재정비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일단 군함을 나포했으니 그 안에 태울 수병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꼬륵, 꼬르륵!
재정비를 위해 잠시 스톤 아일랜드로 향하는 함대의 뒤로 아둔야뎃 왕국의 수병들이 하나둘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누구도 그들을 구해주지 않았다.
누가 뭐라도 아둔야뎃 왕국은 탐욕스러운 침략자였기에, 스톤 아일랜드인들의 정서상 그들을 살려준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재정비를 마친 후.
스톤 아일랜드 해군은 백상아리 함대 12척과 나포한 25척을 더해 총 37척의 군함을 보유하게 되었고, 위풍도 당당하게 아둔야뎃의 함대를 찾아 나섰다.
스톤 아일랜드 해군과 아둔야뎃 해군이 맞닥뜨린 건 그로부터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였다.
“포격, 개시!”
“Fire!!!”
최신식 군함인 백상아리 열두 척과 아둔야뎃 왕국의 것이었던 군함 25척의 함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펑, 퍼엉!
해상 봉쇄를 하던 아둔야뎃 왕국의 군함들이 이렇다 할 반격을 해보지도 못한 채 침몰되기 시작했다.
아둔야뎃 왕국의 해상 봉쇄가 완벽하게 뚫리는 순간이었다.
그때.
“어? 안 되는데.”
아쿠아 러너를 타고 스톤 아일랜드 함대의 뒤를 따르던 지크는 문득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야? 이대로 침몰해 버리면 범인은 어떻게 잡으라고?”
지크는 스텔라루멘 광산에 포격을 가했던 범인을 아직 잊지 않고 있었다.
“내가 다른 놈들은 몰라도 그 자식 뚝배기는 깨고 만다.”
그렇게 혼잣말한 지크가 곧바로 아쿠아 러너를 몰고 적진 한복판으로 파고들었다.
그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다.
펑, 퍼엉!
사방에서 포탄이 빗발치고 있었다.
자칫 잘못했다간 아군인 스톤 아일랜드에서 쏜 포탄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크는 적진 한복판으로 파고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깬다. 꼭 깨고 만다.’
어떻게든 노동전위대 대원들을 쏜 범인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눈에 뵈는 게 없었다.
‘포탄은 피하면 되고. 배가 침몰하면 옮겨 타면 되겠지, 뭐.’
자신의 피지컬에 대한 자신감-이라고 쓰고 무모함이라고 읽는다-도 있었고.
덕분에 아둔야뎃 왕국의 군함들은 스톤 아일랜드의 함대와의 전투 도중 무시무시한 손님을 맞이해야만 했다.
“앗! 적이다!”
“적이 도선했다!”
“죽여라!”
지크가 갑판 위에 오르자 아둔야뎃 왕국의 수병들이 각자 무기를 빼들고 달려들었다.
물론 그런 수병들 중 지크와 싸워 5초 이상 버텨낸 사람은 한 손가락에 꼽을 만큼 극소수에 불과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군함에서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들이었지, 기사나 게이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빡, 빠악!
때문에, 망치를 대충 휘둘러 달려드는 수병들을 처치한 지크는 곧바로 해당 군함의 함장을 찾아 나섰고, 이내 곧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너냐?”
함장실의 문을 쾅! 하고 부숴버린 지크가 아둔야뎃 왕국의 해군 대령(***)을 향해 물었다.
“무, 무엇이 말이오?”
“너냐고.”
“그러니까 도대체 뭘 묻고 싶은 것이오?”
“어제 스텔라루멘 광산에 포격을 명령한 게 너야?”
“스텔라루멘 광산? 거기는 이미 개전 초기에 포격을 가해 무력화시켰던 곳인지라….”
“그럼 아니란 거네?”
“도대체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소만… 그, 그렇소.”
“그래? 쩝.”
아쉽게도 범인을 찾지 못한 지크가 입맛을 다셨다.
“그럼 혹시 어제 스텔라루멘 광산에 포격을 가했던 군함이 뭔지 알아?”
“흠. 어제 스텔라루멘 광산에 포격을 가한 군함이라….”
함장이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대답했다.
“옳거니! 저기 저 군함이오!”
함장이 대각선 방향에 위치한 군함을 가리켰다.
“생각해 보니 저기 저 군함의 함장인 어제 오전에 실수로 한 발을 잘못 쐈다고 했던 기억이 나오!”
“진짜?”
“그렇소! 실수로 포격 지점이 아닌 엉뚱한 곳에 한 발을 날렸다고….”
“오케이.”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정보 감사.”
“그, 그냥 가는 것이오?”
“그럼 그냥 가지. 왜. 아쉬워? 그냥 죽여줄까? 좀 귀찮긴 한데, 한 방이면 되니까….”
지크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망치를 쓱 하고 들어 보였다.
“아, 아니오! 사양하겠소! 아직은 죽고 싶지 않소!”
함장이 맹렬히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럼, 간다.”
그렇게 말한 지크가 정말로 함장실을 빠져나갔다.
“후우…!!!”
덕분에 10년, 아니 한 50년쯤 감수하게 된 함장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도대체 저자는 누구이기에 스텔라루멘 광산에 포격을 가한 사람을 찾는단 말인가… 진심으로 진작 무너진 광산에 포탄 한 발 더 쐈다고 저러는 건 아니겠지…?”
함장의 상식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지크의 행동 패턴을 이해하는 게 불가능했다.
“혹시 스텔라루멘 광산에 투자라도 한 투자자는 아ㄴ….”
바로 그때였다.
콰앙!
스톤 아일랜드 함대에서 쏜 포탄 한 발이 해당 군함의 함장실을 정통으로 때렸고.
퍼엉!
함장은 지크의 정체를 궁금해하다가 그만 폭사하고 말았다.
복수에 눈이 먼 지크는 피했지만, 눈먼 포탄은 미처 피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