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63
162
아우토니카 공방의 에서는 오늘도 강력한 아티팩트를 만들어내기 위한 연구와 실험이 한창이었다.
아티팩트란 마법, 연금술, 금속 제련 기술, 세공술, 디자인 등등 다양한 분야의 기술이 집약되는 일종의 종합 예술이었다.
연구, 실험, 개발을 게을리할 수가 없는 분야인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에는 퍼엉! 하는 소리와 함께 연구실의 절반이 날아가 버리는 게 일상이었지만 말이다.
오늘도 마찬가지.
퍼엉!
와르르!
굉음과 함께 431번 실험실의 벽면이 무너져 내리고, 자욱한 연기가 복도를 가득 메웠다.
“콜록, 콜록! 캑캑!”
거의 숯덩이가 된 부스로이드가 고통스러워하며 431번 실험실을 나섰다.
아우토니카 공방 역사상 최연소 수석 대장장이이자 천재 연금술사라고 평가받는 그조차 하루 24시간 중 20시간 이상을 실험실에서 살았다.
왜?
그러지 않으면 수백 년에 걸쳐 벌어진 3대 공방 사이의 무한 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을 테니까.
“콜록, 콜록… 으으… 드래곤의 혈액을 좀 더 넣을 걸 그랬나…?”
부스로이드는 폭발로 인해 목숨을 잃을 뻔한 주제에 조금 전 실패했던 실험을 곧장 머릿속에서 되새겨보는 기염을 토했다.
사실은 그가 입은 흰색 가운이 손수 제작한 초고성능 아티팩트였기에 죽을 염려는 절대로 없었지만.
“아무래도 이번 실험은 장기전이 될 것 같은….”
그때였다.
“부스로이드 님!”
연구원 중 하나가 부스로이드에게 보고했다.
“프로아 왕국의 국왕이신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지크프리트 전하께서요?”
“엔트로피 스톤을 구해오셨답니다.”
“예에?!”
부스로이드가 화들짝 놀랐다.
‘그걸 진짜로 구해왔다고? 그 해상 봉쇄를 뚫고?’
그가 아는 한 아둔야뎃 왕국 함대의 해상 봉쇄는 일개 약소국의 왕 따위가 뚫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엔트로피 스톤을 구해왔다?
‘역시 범상치 않은 인물이야. 비머리언 그 자식들이 VVIP로 인정할 만해.’
부스로이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연구원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간다고 말씀드리세요.”
그 어려움 임무를 해낸 VVIP가 찾아왔는데 늦장을 피울 순 없는 노릇이 아니던가.
***
“오셨습니까.”
부스로이드가 지크에게 인사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엔트로피 스톤을 구해오셨다고요.”
“예.”
그 순간 지크의 눈앞에 퀘스트 클리어를 알리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어떻게 구해오셨습니까? 진짜 스톤 아일랜드에 다녀오신 겁니까? 아니면….”
“다녀왔습니다.”
“어떻게 다녀오실 수 있었는지… 아둔야뎃 왕국이 약소국이기는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의 해군 전력은….”
“그게….”
지크가 부스로이드에게 어떻게 스톤 아일랜드에 다녀올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주었다.
“아하. 그래서 구해오실 수 있었던 거로군요. 전하께서 노르드족과 인연이 있으셨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광산이 무너져서 좀 고생을 하긴 했는데, 뭐 여차여차 구해올 수 있었습니다.”
“광산이 무너져요?”
“아둔야뎃 왕국의 군함 하나가 오발을 하는 바람에….”
지크가 뒷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예에?!”
부스로이드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지크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좀처럼 믿을 수가 없어서, 부스로이드는 제 귀를 의심해야만 했다.
“그, 그러니까… 홧김에 아둔야뎃 왕국을 멸망시키셨다는…?”
“에이. 제가 그럴 능력이 어딨겠습니까? 그냥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은 거죠.”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잠깐 열이 받아서… 닥치는 대로 죽이다가, 앙겔레르 통령님이 좋은 제안을 해주셔서 어찌어찌 스톤 아일랜드와 동맹을 맺은 거죠.”
“그, 그렇다는 말씀은… 아둔야뎃 왕국이 멸망하고 스톤 아일랜드가 이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하하… 하하하….”
부스로이드는 도무지 지크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서, 그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차 시중을 들던 직원에게 슬쩍 눈짓을 던졌다.
‘확인해보세요.’
‘알겠습니다.’
부스로이드의 눈짓을 받은 직원이 쟁반들 들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지크의 무용담은 둘째치고, 정말로 아둔야뎃 왕국이 패배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으음. 일단은 전하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엔트로피 스톤을 구해오셨으니 바이터보 세트의 완성을 도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깨보호대와 장갑도 강화를 해야 하니 제게 넘겨주시겠습니까?”
“그러죠.”
지크가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바이터보 숄더와 글러브 아이템을 꺼내 부스로이드에게 넘겨주었다.
“제작 기간은 약 3일 정도 걸릴 예정입니다.”
“얼마든지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지크가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덧붙였다.
“저… 혹시….”
“예…?”
“아티팩트… 매입하시나요?”
지크가 은근슬쩍 물었다.
***
아우토니카 공방을 나선 지크는 곧바로 워프 게이트를 타고 비머리언 공방의 본사로 향했다.
“오, 오셨습니까!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
지크가 나타나자 본사 정문 앞을 지키던 문지기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게 지크가 비머리언 공방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였다.
비머리언 공방의 전설적인 대장장이 헤르베르트.
지크는 그 헤르베르트가 남긴 미완성의 세계급 아티팩트를 제작해줄 유일무이한 희망이었다.
때문에, 비머리언 공방의 본사에서는 지크를 극진히 대접하기 위해 그의 몽타주를 제작해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지점에 배포했던 것이다.
그러니 일개 문지기마저도 지크를 한눈에 알아볼 수밖에.
“뭐, 뭐야?”
“저 사람 유명한가 봐….”
“VIP쯤 되나? 생긴 건 안 그렇게 생겼는데?”
덕분에 지크는 비머리언 공방 앞을 지나던 게이머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게 되었고.
‘쪽팔리니까 얼른 들어가자.’
마치 쥐구멍에라도 숨어들 듯 빠르게 비머리언 공방의 정문 앞을 통과해 고성능 아티팩트 전담 부서인 으로 향했다.
“뭐?! 지크프리트 전하께서 오셨다고?!”
“예, 수석 대장장이님.”
“그럼 당장 가야지! 내 곧 간다고 전해드리게!”
“하, 하지만… 레오폴트 왕국의 왕세자님과의 약속이….”
“지금 그딴 게 중요해?! 지크프리트 전하께서 오셨는데! 그 약속은 취소해버려!”
지크가 왔단 소식에 비머리언 공방의 수석 대장장이인 크반트는 나름 강대국인 레오폴트 왕국의 왕세자와의 약속마저도 일방적으로 깨버렸다.
왜?
지크는 세계급 아티팩트 제작이라는 비머리언 공방의 숙원을 풀어줄지도 모르는 유일한 존재였으니까.
“오셨소이까!”
헐레벌떡 뛰쳐나온 크반트가 지크를 반겼다.
“오랜만이오! 얼굴이 좋아 보이는구려!”
“오랜만입니다, 크반트 님.”
“그래, 어찌 찾아오시었소? 설마….”
크반트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헤르베르트 님의 유작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재료라도 모은….”
“모으긴 했죠? 하나뿐이지만.”
“그, 그게 정말이오?!”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물어보았던 크반트는 재료를 하나 모았단 지크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설마하니 이 짧은 시간 동안 재료를 하나 더 모았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이게 그 재료 중 하나라는데….”
지크가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내 크반트에게 보여주었다.
“뭐에 쓸 재료인지는 잘 몰라도….”
“마, 만능기계장치!”
놀랍게도, 크반트는 지크가 꺼낸 재료템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 물건은 과거 번영했던 국가인 기계 제국의 보물이 아니오?”
“어? 아시네요?”
“어찌 그것을 구하셨소? 이미 수백 년 전에 없어진 물건인 것을! 이제는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가 없는 물건이오!”
“메카로드인가? 기계 제국의 황제였다던데… 어쩌다 보니 그 자식이랑 싸우게 돼서….”
“마, 맙소사….”
지크가 해준 이야기에 크반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과연 범상치 않은 인물이로다! 운이 따라준 것도 따라준 것이지만, 아직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지도 못했는데 어찌 저리도 종횡무진 대륙을 누빈다는 말인가!’
크반트는 전투 계열 클래스로 치자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대장장이로서, 그간 수없이 많은 게이머들을 만나본 경험이 있었다.
그들 모두가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내로라하는 강자들이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하지만 지크는 크반트가 보아왔던 강자들보다 월등히 약했음에도, 그들에게는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는….
‘으음.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 확실히 크게 될 인물이로다. 무력도 처음 봤을 때보다 더 강해진 것 같으니 성장도 빠르다는 것이겠지. 곧 대륙에 또 하나의 마스터가 탄생할지도 모르겠구먼.’
크반트는 내심 지크의 성장을 기대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비록 한 개뿐이지만 그 하나가 어디요? 비머리언 공방을 대표해 그대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리겠소.”
“별말씀을.”
“그런데 어찌하여 본 공방을 찾아온 게요? 보아하니 그 재료를 구했다는 걸 말해주러 온 것 같지는 않은데. 새 무기나 장비가 필요한 게요?”
“아. 그게.”
지크가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크반트에게 말했다.
“혹시 아티팩트 매입도 합니까?”
부스로이드에게 말했던 것과 똑같은 제안이었다.
***
그로부터 이틀 후.
부스로이드를 포함한 아우토니카 공방의 고위급 인사들은 웬 모험가가 판매하는 아티팩트들을 매입하기 위해 어느 극장으로 향했다.
고작 중고 아티팩트 매입에 공방의 고위급 인사들이 나선 이유는, 중고 아티팩트들을 판매하려는 고객이 장차 미래가 기대되는 ‘슈퍼 루키’였기 때문이다.
프로아 왕국이라는 코딱지만 한 나라의 국왕인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는 그들의 라이벌 중의 라이벌인 비머리언 공방의 VVIP였다.
물론 고작 그런 이유에서였다면, 공방의 고위급 인사들까지 나설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이 약소국의 왕이 아둔야뎃 왕국을 멸망시킨 장본인이란 점이었다.
‘부스로이드 수석 대장장이님.’
‘알아보셨습니까?’
‘예.’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그, 그런!’
‘스톤 아일랜드가 이겼습니다. 그리고 그 주역이 지크프리트 전하시랍니다.’
‘주역이요? 좀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그게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알아보았더니….’
‘맙소사!’
직원의 보고에 부스로이드는 너무나도 놀랐다.
지크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오히려 축소돼도 한참을 축소된 거였다.
까놓고 말해서, 지크 혼자서 아둔야뎃 왕국을 박살 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건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 이 고객님이 장차 더 성장하게 되면 어떤 거물이 될지 모른다! 본 공방의 브랜드 가치를 올려줄 고객님이 분명하다!’
그래서 부스로이드는 공방의 수뇌부들에게 이 슈퍼 루키의 존재를 알렸고, 지크는 자기도 모르게 아우토니카 공방에서 가장 주목하는 차세대 CF 모델-말하자면-이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번 스톤 아일랜드와 아둔야뎃 왕국의 전쟁이 끝남으로써, 아우토니카 공방이 얻은 이득 역시 막대했다.
그간 스톤 아일랜드산 특산품들-엔트로피 스톤을 비롯한 몇 가지 광물-의 공급이 끊겨 여러 아티팩트 제조에 어려움을 겪던 차에, 전쟁이 끝남으로써 다시 공급이 원활해졌다.
덕분에 부득이하게 단종시킬 수밖에 없었던 아티팩트들을 재출시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아우토니카 공방으로서는 지크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고도 할 수가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아우토니카 공방의 수뇌부들은 이 발걸음이 결코 귀찮다고 여기지 않았다.
“흐음. 굳이 이런 장소에서 거래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일꼬. 본사에서 진행해도 될 터인데.”
아우토니카 공방의 장로인 ‘아르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곁에 있던 부스로이드 역시 아르팔의 의견에 동의했다.
“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보고에 의하면 지크프리트 전하께는 지략가적인 면모가 상당하다고 하니, 무언가 의도가… 헉!”
그렇게 말하던 부스로이드가 별안간 헛바람을 들이켰다.
무언가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