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67
166
“이유가 뭡니까? 천잠사가 아무리 진귀한 보물이긴 해도 구매 조건이 뭔가 이상한데요?”
그러자 구찌오가 대답했다.
“그것이… 사정이 있어 그렇게 됐습니다.”
“사정이요?”
“사실 천잠사를 한정 판매하는 이유는 최근 젊은 귀족들 사이에서 천잠사로 짠 망토가 대유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휴우.”
구찌오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이었다.
“제국의 최신 패션 트렌드를 선도하는 모 귀족 자제가 천잠사로 만든 망토를 입고 파티에 참가한 이후 예약자가 무려 500명이 넘게 밀려 있습니다.”
“으음….”
“그러나 본 상단에서는 다른 건 몰라도 천잠사만큼은 단순한 사치품 취급을 받는 걸 그리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어째서죠? 대유행이라면 그만큼 비싸게 받고 팔면 되잖습니까.”
“생산량이 제한되어 있는 만큼 의미 있는 곳에 쓰이기를 원하는 것이지요. 게다가 저희 상단은 여러 사업체를 굴리고 있어서 굳이 천잠사가 아니더라도 수익을 낼 루트가 많기도 합니다.”
“그런데 젊은 귀족들 사이에서 천잠사로 짠 망토가 유행하는 거랑 그 마에스트로인가 뭔가 하는 사람들을 이기는 거랑 연관이 있습니까?”
“천잠사는 전 대륙에서 오직 티에리 가문만이 생산하는 보물인데, 최근 젊은 귀족들이 단순히 패션 아이템 정도로만 취급하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특히… 이제 갓 기사 아카데미에 입학한 애송이가 천잠사로 짠 망토를 휘날리며 거드름을 피우는 꼴이란…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닐 테지요.”
제아무리 피도 눈물도 없는 상인이라지만, 구찌오는 천잠사만큼은 단순히 돈벌이의 수단으로 여기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마냥 거절을 하자니 구매를 원하는 젊은이들의 신분도 높고 가문이 가진 재력도 만만치 않아 딱히 거절하기가 어렵더군요.”
“그래서….”
“예, 딱히 거절할 명분이 없어 자격을 증명한답시고 억지 조건이라도 내건 것입니다. 골 빈 귀족 자제들이 웨펀 아카데미의 마에스트로들을 이길 수 있을 리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껄껄!”
구찌오 마지막 웃음은 다분히 ‘약 오르지? 메롱!’의 뉘앙스가 강했다.
‘결국 금수저들이 돈지랄하는 도구로 쓰니까 그게 맘에 안 들었던 거네.’
지크는 구찌오의 마음을 이해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단순히 돈으로 다 되는 건 아닐 테니까.
게다가 천잠사는 티에리 가문이 상업에 종사하기 전부터 생산해오던 진귀한 보물이기에, 특별히 애착이 갈 만도 했다.
“그럼 제가 천잠사를 구매하려면….”
“물론 전하께서도 예외는 아니십니다. 맘 같아선 전하께는 그냥 판매해 드리고 싶지만….”
“예? 저한테는 그냥 판매하신다는 말씀은 뭡니까?”
“비머리언 공방과 아우토니카 공방의 VVIP 고객님이시라면, 천잠사를 가질 자격이 충분하십니다.”
“저를 아십니까?”
“상인에게는 정보력이 곧 생명이겠지요. 특히나 저와 같이 한 상단을 이끄는 위치에 있다면 정보 수집을 게을리할 수는 없겠지요.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지크는 잘 몰랐지만, 구찌오의 인맥은 넓었다.
티에리 상단은 비머리언 공방에 디자인 자문 역할을 해주고 있었고, 아우토니카와는 다양한 아티팩트-주로 의류-들을 콜라보레이션하고 있었으며, 상단답게 스톤 아일랜드와는 거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지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 수밖에.
일개 직원이야 잘 모를 테지만.
“하지만 전하께 아무런 조건 없이 천잠사를 판매하게 되면 강대국의 고위급 귀족 자제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게 분명하기에….”
“저 역시 특혜를 바라진 않습니다.”
“……!”
“도전해보죠, 그 구매 조건.”
지크가 미소를 지었다.
띠링!
그러자 퀘스트 수락이 되었다는 알림창과 함께, 그 내용이 지크의 눈앞에 떠올랐다.
[도장깨기]웨펀 아카데미로 가서 각 분야의 마에스트로와 대련해 3승 이상을 거둬라.
•진행률 : 0%(0/3)
•보상 : 천잠사 구매 가능
마에스트로라는 자들의 수준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도전이라도 해봐야지 않겠는가?
‘마에스트로들이라니까 뭔가 강하긴 할 테니 싸워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겠지.’
게다가 지크는 강자들과의 싸움을 즐기는 성향이기도 했고.
“그리고 제게 특혜를 주신다면 구찌오 님의 입장도 곤란해질 테니까요.”
“허허….”
그런 지크의 답변에 구찌오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과연 명불허전이로다. 솔직히 특혜를 받고 싶을 터인데 저리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마에스트로들에게 도전을 하겠다니. 훌륭한 인품이요, 마음가짐이로다.’
구찌오는 지크가 얼마나 속이 시커먼 속물인지는 꿈에도 모른 채 그저 감탄했고, 그에 따라 추가적인 보상을 약속했다.
“만약 전하께서 구매 조건을 충족시키신다면 천잠사를 30퍼센트 할인해서 판매해 드리겠습니다.”
“그게 정말이십니까?”
“물론입니다.”
“좋습니다. 도전해보겠습니다.”
지크는 그 길로 상단을 나서 웨펀 아카데미로 향했다.
***
북적북적-
뜻밖에, 웨펀 아카데미의 건물 앞에는 유동 인구가 엄청나게 많았다.
“뭐야. 여기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
“도떼기시장이다, 도떼기시장! 뀨우!”
햄찌의 말대로, 웨펀 아카데미 앞에는 NPC부터 게이머들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인해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할 지경이었다.
그중 제일 많은 인구는 다름 아닌 30레벨 정도의 저레벨 게이머들이었는데, 그들은 안내 데스크에서 약간의 돈을 내고 각자 어디론가 끊임없이 향하고 있었다.
“아. 여기 설마 그건가.”
지크는 불현듯 웨펀 아카데미 앞에 북적대는 이유를 깨달았다.
“노멀 클래스들 전직하는 곳?”
노멀 클래스란 말 그대로 가장 기본이 되는 직업군을 뜻하는 단어로써, BNW를 플레이하는 전체 게이머들 가운데 96퍼센트 정도는 첫 전직을 노멀 클래스로 하게 되어 있었다.
예컨대 그냥 마법사면 마법사, 기사면 기사, 도적이면 도적과 같은 식으로 클래스가 세분화되기 전 기본 중의 기본이 바로 노멀 클래스였다.
때문에, 절대 다수의 게이머들은 처음 노멀 클래스를 얻은 후 각종 퀘스트를 깨거나 캐릭터를 성장시키며 2차 전직, 혹은 각성을 이루며 세분화된 자기만의 클래스를 갖게 되는 것이다.
웨펀 아카데미가 그런 곳이었다.
과거 ‘태성’이 어느 시골의 작은 마법사 아카데미-라고는 하지만 사실 마을 꼬맹이들이 불꽃놀이 마법 따위나 배우러 오는 곳이었다―에서 처음으로 마법사로 전직했던 것처럼 말이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근데 그때 왜 거기서 전직을 했었을까? 하하하.’
지크는 전직을 위해 어디론가 향하는 저레벨 모험가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마치 병아리들을 보는 기분이라 훈훈하기만 했던 지크의 기분은 누군가의 손가락질로 인해 산산조각으로 깨지고 말았다.
“뭐야. 저 사람.”
길 가던 31레벨의 게이머 하나가 지크를 손가락질했다.
을 통해 지크의 정보를 본 모양이었다.
물론 제대로 된 정보가 아닌 가짜 신분을 봤을 테지만, 문제는 칭호.
“절륜왕은 뭐야? 풉!”
누군가 ‘그 칭호’를 언급했고.
‘…아.’
지크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메타모포시스 마스크가 다른 칭호들 대부분을 가려 주었지만 하필이면 칭호는 가려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타모포시스 가면은 위장 신분을 임의로 조작할 수가 없었다.
가면에 담긴 마법이 자동으로 착용자의 위장 신분을 설정하는 것이지, 지크가 제 입맛에 맞게 바꾸는 건 불가능했다.
모르긴 몰라도 가면에 담긴 마법은 칭호를 드러낸다고 해서 지크가 뭔가 위험에 빠질 일은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았다.
물론 쪽팔릴 일이야 있었지만.
“와! 저 사람 봐봐! 절륜왕이래! 큭큭!”
그러자 다른 게이머들의 시선이 지크에게 쏠리고, 여기저기서 이 지크를 비추었다.
“풉! 칭호 보소?”
“대, 대물인가?”
“저 정도면 캡슐 안에서 밤꽃 냄새날 듯? 캡슐 안에서 몽정하고도 남았다, 남았어.”
“성인 콘텐츠에 목숨 거신 분인가… 어휴… 현실에서 얼마나 찐따면 게임 속에서 저러냐… 쯧즛….”
“저기요! 뼈 삭아요! 적당히 즐겨요!”
이란 칭호를 본 게이머들이 지크를 향해 너도나도 한마디씩을 던졌고.
‘으으!’
지크는 자괴감에 몸을 부르르 떨며 황급히 그 자리를 피해 달아나야만 했다.
‘내 이미지 이제 어쩔 건데! 어쩔 거냐고!’
호기심에 스킬북을 한번 펴봤다가 영원히 고통받게 된 지크였다.
“같이 가자! 절륜한 주인 놈아!”
햄찌가 도망치는 지크의 뒤를 쫓았다.
***
“입학하시려고요?”
안내데스크의 직원이 지크에게 물었다.
“아뇨. 입학은 됐고….”
지크가 자신이 찾아온 용건을 말했다.
“마에스트로님들과 대련을 하고 싶어서 왔는데요.”
“아, 대련요.”
안내데스크 직원이 알 만하다는 듯 이상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 번호표 드릴 테니까 저쪽에 가서 대기하세요.”
“예? 번호표요?”
“저쪽으로 가시면 돼요. 자, 다음 분!”
안내데스크 직원은 매우 바쁜 모양인지, 지크를 서둘러 쫓아내고는 입학-전직-을 희망하는 게이머를 응대했다.
‘뭐지? 반응이 영….’
지크는 뭔가 찜찜한 기분을 느끼며 직원이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고, 꽤 넓은 훈련장 같은 장소에 도착했다.
훈련장에는 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부티가 줄줄 흐르는 미남자들이었으며 각양각색의 장신구와 아티팩트로 자신의 개성을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뉘르부르크 대륙판 패션 피플들이랄까?
“천잠사로 짠 망토야말로 이 시대의 진명한 명품이지. 오늘 마에스트로 셋을 반드시 이겨 보이겠어.”
“천잠사로 만든 망토 같은 머스트 해브 아이템은 꼭 가지고 있어야지.”
“121번이네.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려야 되는 거야? 쳇!”
그들은 딱 봐도 고위급 귀족가의 자제들이 분명했는데, 어째 하나같이 능력들이 형편없어 보였다.
‘딱히 무인이라기보다는… 그냥 부잣집 도련님들이네… 저러니 구찌오 씨가 천잠사를 팔기 싫어서 어거지를 부리지… 쯧쯧….’
지크가 알 만하다는 듯 내심 혀를 차던 때.
“87번 도전자님!”
번호표에 적힌 번호를 부르자 금발의 미남자가 어디론가 사라졌고.
“끄, 끄어어억….”
누군가는 들것에 실려 나갔다.
딱 봐도 실력도 없는 주제에 마에스트로들에게 대련을 신청했다 참교육을 당한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끊임없이 반복되었고, 마침내 지크의 차례가 되었다.
“144번 도전자님!”
“아, 예!”
“어떤 마에스트로님께 도전하실 거죠?”
도전자들의 안내를 맡은 직원이 물었다.
“고를 수가 있나요?”
“물론이죠. 취향껏 골라서 처맞으시면….”
“예?”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순간 말실수를 해버린 직원이 황급히 말을 돌렸다.
직원이 평소 마에스트로들에게 도전하는 귀족가의 자제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냥 검, 도, 창, 방패, 둔기, 암기, 채찍 중에서 고르시면 돼요. 그럼 해당 분야의 마에스트로님께서 대련해주실 거예요.”
“음….”
“그럼 그냥 무난하게 ㄱ….”
“창으로 하세요.”
“네? 왜요?”
“그나마 제일 쉬우니까요.”
“쉬운 거 별로인데.”
지크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후회하실 텐데요?”
“그럼 창으로 합시다.”
“그래요. 그게 그나마 1승이라도 올리는 유일한 길일 테니까요.”
지크는 그런 직원의 조언이 그리 달갑지 않았지만, 일단 알겠다고 했다.
‘차근차근 다 싸워보면 되지. 순서가 뭐가 중요해?’
지크는 3승을 거두더라도 웨펀 아카데미의 마에스트로들과 한 번씩은 붙어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지크는 대련장으로 이동해 웨펀 아카데미의 와 대련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본 웨펀 아카데미에서 스피어 마에스트로를 맡고 있는 루나라고 해요.”
스피어 마에스트로 루나는 200레벨에 예쁜 금발을 가진 여성 NPC로, 아직 20살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지크프리트라고 합니다.”
지크가 자신을 소개했다.
“시작할까요?”
“그러죠.”
그와 동시에.
우웅!
대련장 바닥이 붉게 달아올랐다.
[알림 : 대련장에 가 적용됩니다!]무신교에서 운영하는 투기장 중 하나인 과 똑같은 필드가 발동된 것이다.
“먼저 갈게요.”
그때, 스피어 마에스트로 루나가 지크를 향해 ‘매우 정직한’ 찌르기를 시전했다.
‘어?’
지크는 순간적으로 화들짝 놀랐다.
‘이거 뭔가 익숙한데?’
루나가 사용하는 찌르기가 어딘가 모르게 매우 익숙하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