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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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쩐지 요즘 운이 좋더라니.’
지크는 내심 이를 뿌득 갈았다.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지금이 딱 그런 경우였다.
일부러 제네시스 길드원들을 피해 인적이 드문 사냥터로 왔더니, 이렇듯 딱 마주칠 줄이야….
‘일단 가만히 있자. 표적은 내가 아니니까.’
지크는 일단은 슬쩍 비켜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저 새끼 뭐야! 일단 죽여!”
누군가 지크를 향해 소리치고.
“넌 뭐야!”
“꺼져! 이 새끼야!”
제네시스 길드원들이 난데없이 지크 에게 매섭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니! 저기요! 자, 잠깐만요. 말로 합시다, 말로!”
지금 굳이 싸울 이유는 없었으므로, 지크는 대화를 통해 제네시스 길드원들과의 충돌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제네시스 길드원들은 지크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소문이 벌써 다 퍼졌나? 별 시답잖은 놈까지 기어들어 오네.”
“인생 역전이 하고 싶으셨어?”
제네시스 길드원들은 지크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며, 선제공격을 시도했다.
콰앙!
지크의 망치가 땅을 찍었다.
부웅!
그러자 약 50여 명의 제네시스 길드원들이 하늘 높이 떠올랐다.
쿼드터보 세트를 착용하고 쓰는 스킬의 범위는, 눈에 보이는 지역 전부를 초토화시키고도 남을 만큼 넓었다.
화륵, 화르륵!
뒤이어 블레이즈 필드가 전개되고.
휘릭, 촤아아!
라이트닝 플라잉 스퍼에서 뿜어져 나온 전류가 떨어져 내린 제네시스 길드원들 사이로 튕기며 그들을 지졌다.
[알림 :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 선제공격을 당했을 시에는 적을 죽여도 업보가 오르지 않습니다!]경험치가 오르고.
툭, 툭, 투욱, 툭!
랜덤 드랍 아이템들이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언제는 말로 하자면서 다 죽여 버린 거냐! 주인 놈은 역시 사이코다! 뀨우!”
햄찌가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말이 안 통하니까 그렇지.”
지크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죽어줄 순 없잖아.”
“그건 그렇다! 뀨!”
“근데 얘들 왜 이러지… 원래 막 나가는 애들이긴 해도 이 정도로 막장은 아니었는데….”
제네시스가 대륙 10대 모험가 길드에 속하는 초거대 세력이긴 해도 지금처럼 다짜고짜 게이머들을 죽이려 드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아무리 초거대 세력이라 할지라도 이래저래 조심해야 할 게 많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니겠는가?
다짜고짜 시비를 건 상대가 적대 길드 소속의 랭커나 10대 길드 중 1, 2위를 다투는 길드 소속의 게이머라면 뒷감당이 힘들 거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일 테니까.
“뭐지….”
지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저 멀리 도망치는 게이머, 정확히는 그의 등 뒤에 매달린 보따리를 향해 을 비춰보았다.
[고대 신의 성궤]고대의 신의 권능이 담긴 궤짝.
봉인을 풀면 가 나온다.
•등급 : 에픽
•무게 : 50kg(매우 무겁습니다!)
•가격 : 100,000 Gold
•특이 사항 :
– 해당 아이템은 그 어떤 종류의 아공간 인벤토리에도 넣을 수 없습니다.(귀속 불가)
– 해당 아이템은 텔레포트, 워프, 워프 게이트 등 이동 관련 마법이 통하지 않습니다.(이동 불가)
– 봉인을 풀기 위해서는 매우 수준 높은 마법사의 매우 특별한 의식이 필요합니다.
을 통해 궤짝의 정체를 확인한 지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햄찌야?”
“뀨?”
“우리… 쟤 잡아야 할 것 같은데?”
“그게 무슨 말이냐?”
“넌 저기 떨어진 것들부터 주워 줘.”
“알았….”
햄찌가 대답하려던 순간.
다다다!
지크가 무섭게 튀어 나갔다.
***
지크가 도망치던 게이머를 잡으러 달려 나간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저기요!”
지크가 어느새 도망치던 게이머의 앞을 가로막았다.
“잠깐만요! 저랑 얘기 좀 하시죠!”
“꺼져!”
“진짜 잠깐이면 되니까 저랑 얘기 좀 해요. 뺏으려고 그러는 거 아니니까 딱 1분만 대화합시다.”
지크는 성궤를 빼앗을 생각이 없었다.
물론 히든 클래스에 대한 욕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지크의 보물 창고에는 천하제일생존대회 당시 획득한 가 묵혀져 있었는데, 이 아이템은 사용자로 하여금 듀얼 클래스를 가능케 해주었다.
만약 지크가 저 성궤를 획득하게 된다면 두 개의 히든 클래스를 가진 전무후무한 게이머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크는 남의 것을 무작정 빼앗을 생각보다는 다른 걸 염두에 두고 있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저게 제네시스 길드한테 넘어가는 꼴은 못 보지.’
혹시나 제네시스 길드의 길드 마스터인 채형석에게 히든 클래스가 넘어가기라도 한다면?
지크의 복수는 더더욱 어려워질 게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절대 안 돼. 저 사람이 저걸 가지고 여기서 도망칠 수 있게 도와주던지, 아니면 내가 먹던지 둘 중 하나가 돼야 해.’
지크는 일단은 빼앗기 보다는 저 게이머가 무사히 히든 클래스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돕기로 하고, 대화를 통해 이 상황을 해결하려 했다.
“제가 도와드릴….”
“닥쳐! 내가 이걸 빼내려고 얼마나 대가리를 굴렸는지 알아?”
“훔쳤다고?”
순간 지크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간부 새끼들… 좋은 건 지들이 다 처먹으려고 하고. 이런 좋은 게 나왔으면 한 번쯤은 나눠줘도 되는 거 아냐? 아님 제비뽑기라도 하던지? 개새끼들… 부려 먹기나 할 줄 알지.”
“설마 제네시스 길드 소속…?”
지크의 눈길이 성궤를 짊어진 게이머의 가슴팍을 훑었다.
V자 형태의 날개 모양 배지.
게이머는 제네시스 길드 소속이었던 것이다.
자초지종이 정확히 어떻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네시스 길드원이 제네시스 길드의 물건을 훔쳐 달아났다는 말은, 지크에게 있어 가 주인 없는 물건이나 다름없단 이야기밖에는 되지 않았다.
‘잘됐네.’
지크가 고대 신의 성궤를 먹어야겠다고 마음을 먹던 때.
스르륵!
성궤를 짊어진 게이머의 등 뒤에서 누군가 홀연히 나타났고.
푸욱!
성궤를 짊어진 게이머의 머리통에 검을 쑤셔 박았다.
은신 관련 스킬을 보유한 암살자 계열 클래스를 가진 게이머가 분명했다.
툭!
쿠웅!
랜덤 드랍 아이템과 함께 가 육중한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떨어졌다.
“잠깐 실례.”
그렇게 말한 암살자 계열 게이머가 재빨리 성궤를 짊어지고는 냅다 뛰기 시작했다.
그 게이머 역시 가슴에 제네시스 길드의 배지를 달고 있었다.
“…개판이네.”
지크는 너무나도 황당해서,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같은 길드원들끼리 쟁탈전이라니….
하지만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었다.
정체불명의 히든 클래스가 담긴 전직의 서라면 먹고 튈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테니까.
당장 지크만 해도 히든 클래스로 전직한 이후 게임 라이프가 180도 달라져 레벨이 높은 게이머들을 오히려 사냥하고 다니고 있지를 않던가?
‘도망가게 내버려 둘 것 같냐.’
안 그래도 마땅히 를 이용해 듀얼 클래스를 이룰 만한 클래스를 찾지 못하던 참이었으므로, 지크는 를 차지하기로 했다.
휘리릭!
지크의 망치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쏘아져 도망치는 게이머의 뒤를 쫓았다.
타핫!
그러자 도망치던 게이머가 점프 후 몸을 휘리릭 돌려 지크의 망치를 피했다.
“븅신. 누가 이딴 걸 맞는….”
그로부터 정확히 0.1초 뒤.
빙그르르르, 콰앙!
공중을 선회한 망치가 지크를 비웃던 게이머의 머리통을 강타했다.
털썩!
쓰러진 게이머.
“이딴 걸… 내가 맞네….”
그렇게 중얼거린 게이머는 두 번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하필이면 치명타가 터지는 바람에 한 방에 죽어버린 것이다.
툭, 쿠웅!
게이머가 죽자 역시나 랜덤 드랍 아이템과 고대 신의 성궤가 떨어졌다.
‘얼른 가서 줍자.’
지크가 땅에 떨어진 랜덤 드랍 아이템과 고대 신의 성궤를 향해 뛰던 때였다.
“Get!!!”
웬 흑인 게이머 하나가 나타나 고대 신의 성궤를 들고 전력 질주하기 시작했다.
“야, 이…!!!”
그렇게 소리친 지크가 흑인 게이머를 뒤쫓았다.
개판 5분 전.
아니, 그냥 개판.
히든 클래스가 담긴 상자를 두고 벌어지는 피 튀기는 쟁탈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같은 시각.
길드원들과 함께 레이드 던전인 를 돌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하고 로그아웃한 채형석은 뜻밖의 연락을 받고 놀랐다.
“…뭐라고?”
채형석은 제 귀를 의심했다.
“광기의 유적? 거기서 뭐가 나와?”
길드의 운영진(간부)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의 내용은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
– 고대 신의 성궤라고 안에 정확히 뭐가 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템 설명창에 히든 클래스로 전직 가능한 전직의 서가 들어 있다던데?
“스샷 있어?”
– 있지.
“보내봐.”
– 잠깐만.
10초 정도 기다렸을까?
채형석의 모바일 메신저 어플리케이션으로 한 장의 스크린 샷이 도착했다.
[고대 신의 성궤]고대의 신의 권능이 담긴 궤짝.
봉인을 풀면 가 나온다.
의심의 여지가 없이 히든 클래스가 등장하는 아이템이 분명했다.
“그래서.”
채형석이 약간은 다급해진 말투로 물었다.
“이거 확보했냐? 지금 누가 가지고 있어?”
– 그게….
“설마 런(Run)?”
– 어.
“어떤 미친 새끼가?”
채형석의 말투에 가시가 돋쳤다.
길드원 중 누군가 히든 클래스가 담긴 템을 주웠다면, 당연히 길드 마스터에게 가져다 바쳐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으니까.
“어떤 새끼냐. 어떤 새끼가 내 템을 가지고 런을 해?”
– 어….
“……?”
– 한두 놈이 아냐.
“한두 놈이 아니라고?”
– 충성도 높은 길드원들 빼고 새로 들어온 놈들은 죄다 눈이 뒤집혀서.
“그래서 지금 그거 누가 가지고 있냐고.”
– …….
“설마 모르냐?”
– 지금도 계속 주인이 바뀌고 있어서… 한 20번쯤 바뀌었나? 그럴걸.
“어이가 없네.”
채형석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깨닫고는 안면을 감쌌다.
가끔 있는 일이었다.
BNW에는 매우 값비싼 유물이나 아이템에 와 봉인이 걸려 있는 경우가 가끔 있었는데, 이 경우 해당 아이템을 놓고 쟁탈전이 벌어지고는 했다.
“야. 민우야.”
– 어, 형.
“나 지금 체르노바에서 못 나가는 상황인 거 알지? 최소 하루는 걸려.”
체르노바는 매우 광활한 크기의 숲으로, 한 번 입장하면 최소 세 개 이상의 구역을 클리어해야만 빠져나올 수 있는 던전이었다.
즉, 지금의 채형석은 쟁탈전에 참가할 수가 없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 알지.
“어떻게든 그 아이템 좀 확보해주라. 진짜 부탁한다.”
– 그거야 당연하지. 나도 노력하고 있다고. 아무도 믿을 수가 없어서 그렇지.
“하필 이럴 때. 후우.”
채형석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뿜어졌다.
히든 클래스를 얻을 절호의 기회에 엉뚱한 던전에 갇혀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라니….
– 형. 일단 나 믿고 있어. 어떻게든 확보해서 형 히든 클래스 만들어줄 테니까.
“고맙다. 너만 믿는다.”
– 응.
“그리고 입단속, 알지? 이거 알려지면 유저 전체가 달려들지도 모르잖아.”
– 당연하지.
“일단 나 접속해서 깨던 던전 최대한 빨리 깰 테니까, 중간중간 연락하자고.”
– 어.
전화가 끊기고.
“보자….”
채형석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형. 난데. 나랑 친한 동생 중에 민우라고 알지? 어. 걔 맞아. 미안한데 걔 주소 알려줄 테니까 형 밑에 애들 시켜서 한 2~3일만 대기 좀 해줄 수 있나? 무슨 일이냐고?”
민우와의 통화를 끝마친 채형석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아는 어깨 형님(?)을 동원해 그의 집 앞에 똘마니들을 붙이는 일이었다.
왜?
혹시나 민우가 고대 신의 성궤를 먹고 튈 수도 있었으니까.
채형석은 누구도 믿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