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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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하다니?
이게 뭔 개소리란 말인가?
“저기… 여기 마탑 맞죠?”
“맞소.”
“근데도 불가능하다고요?”
“그렇소만?”
펠로스가 안경을 고쳐 쓰며 대답했다.
“어째서죠? 여기 마탑 아닙니까?”
“마탑이라고 해서 전지전능한 것은 아니라오. 단언컨대, 이 봉인은 마스터께서도 풀 수 없을 것이오.”
마법사 길드인 마탑의 마스터라면, 샤키로, 베텔규스와 같은 오성천의 일원이자 그레이트 위저드의 경지에 오른 ‘바이올렛’을 가리켰다.
“그레이트 위저드도 푸는 게 불가능하다고요?”
지크가 놀라 물었다.
“그렇소.”
“왜죠?”
“이 물건은 약 2,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오. 여기 새겨진 문양이나 양식을 봐서는….”
펠로스가 옆에 낀 고대의 서적을 뒤적이더니 대답했다.
“그랑카브리오 황제 시절 말기에 만들어진 물건 같은데….”
“그의 무덤에서 나온 물건이니 그럴 겁니다.”
“문제는 주문이 워낙에 난해하고 고대의 문자로 이루어진 것이라 현재 마법사들이 가진 지식으로는 풀기가 쉽지 않소. 이 정도 고대의 마법을 능숙하게 풀 정도가 되려면… 적어도….”
펠로스가 약간 고심하더니 말했다.
“전대 마스터이시자 위대한 아크 메이지이신 치천존 어르신 정도는 돼야….”
치천존은 ‘하늘을 다스리는 자’라는 의미로, 위대한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궁극의 마법사였다.
“치천존 어르신은 어딜 가면 뵐 수 있습니까?”
지크가 물었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치천존 어르신께서 자취를 감추신 지가 20년이 넘었소.”
“…….”
“설마 돌아가시진 않았을 테지만 그분의 행방은 제자인 현 마스터께서도 알지 못하신다고 하였소.”
“못 찾는단 말씀 아닙니까?”
“전 대륙 방방곡곡을 이 잡듯 뒤지면 찾을 수도 있겠지.”
“아니, 얼굴도 모르는 분을 제가 어떻게 찾습니까?”
“그러니 불가능하단 얘기요.”
그러던 중.
“주인 놈아.”
잠자코 있던 햄찌가 펠로스가 앉아 있는 의자의 뒤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근데 저거 어디서 많이 보던 사람 같지 않냐?”
“으응?”
“잘 봐라. 왠지 누구 닮은 것 같다.”
“누구를 닮았다고….”
그 순간.
‘어?’
초상화를 본 지크가 펠로스에게 물었다.
“근데… 저분은 누구십니까?”
“딱 보면 모르오? 저분이 바로 전대 마법사 길드의 마스터이시자 위대한 아크 메이지이신 치천존 어르신….”
“안녕히 계세요.”
지크가 펠로스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성궤를 챙겼다.
“갑자기 어디 가시오?”
“봉인 못 푼다면서요?”
“그, 그랬지?”
“그래서 풀 수 있는 사람 찾아가려고요.”
“하지만 치천존 어르신 정도가 아니라면….”
“수고하십쇼.”
헐레벌떡 마탑을 나선 지크는 곧장 비행선에 탑승했다.
“전하, 가셨던 일은 잘되셨사옵니까?”
크라운 준장이 지크에게 물었다.
“잘된 건지 안 된 건지 잘 모르겠네요.”
“예?”
“일단 이륙합시다.”
“프로아로 가면 되겠사옵니까?”
“아뇨.”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쌍떡잎 마을로 갑시다.”
마탑에서 허탕을 친 지크가 향한 곳은 쌍떡잎 마을이었다.
***
다시 퍼시발 마법 아카데미 앞.
똑똑!
지크가 낡아빠진 문을 두드렸다.
“누구시오.”
늙은 마법사 퍼시발이 고개를 내밀었다.
“엥? 태성이 아니냐?”
“예, 접니다. 근데 저 이제 태성 아니고 지크프리트입니다, 지크프리트.”
“아! 개명을 했다고 했지? 늙으니 깜빡깜빡하는구나.”
“좀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물론이다.”
퍼시발이 지크와 햄찌를 들여보내 주었다.
“근데 어쩐 일이냐? 떠난 지 하루도 안 지난 것 같은데?”
“이것 좀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지크가 등에 짊어지고 있던 성궤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으음?”
“2,500년 전에 그랑카브리오 황제 시절에 만들어진 성궤인데 마탑에서는 풀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위대한 아크 메이지인 치천존 어르신 정도나 돼야 이 봉인을 풀 수 있다나?”
“그, 그래서?”
“그래서긴 뭘 그래서입니까. 치천존 어르신을 찾아온 거죠. 치, 천, 존, 어, 르, 신.”
지크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펠로스의 방에 걸려 있던 치천존의 초상화와 퍼시발의 얼굴이 100퍼센트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미친.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지크로서도 기절초풍할 노릇이었다.
3년 전 처음 게임을 시작했을 때 만났던 작은 시골 마을의 NPC가 아크 메이지인 치천존이었을 줄이야….
그 말은, 과거의 태성이 아크 메이지조차도 답이 없다고 판단했을 정도로 쓰레기였다는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기도 했다.
그런 태성을 이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도록 개조를 시켜놓은 사부는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가진 건지….
“허허. 치천존이라니.”
퍼시발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지크야. 뭔가 오해를 했나 보구나. 치천존같이 대단한 양반이 이런 시골 마을에서 마법 아카데미나 운영하고 있을 리가 있겠느냐?”
“그거야 저도 모르죠. 본인 생각을 제가 어떻게 압니까? 왜 이런 시골 마을에서 코흘리개들 상대로 마법이나 가르치고 계시는 거죠? 치천존 어르신?”
“허허.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럼 치천존 개새끼 해보시죠.”
“으응?!”
“해보세요. 치천존 개새끼.”
“치, 치천존….”
“개새끼.”
“개ㅅ….”
“개, 새, 끼.”
“개새ㄲ….”
“개, 새, 끼까지 해보세요.”
“개새ㄲ… 끄응….”
“치, 천, 존, 개, 새, 끼.”
“치천존… 개새… 으아아아아아악!!”
퍼시발이 별안간 버럭 고함을 질렀다.
“도저히 못 하겠다! 못 하겠어!”
“맞네.”
“아니야!”
“에이~”
“난 단지 치천존 어르신 같은 위대한 마법사에게 그런 쌍욕을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바로 그때.
후욱!
지크가 손바닥에서 초록색 안개를 퍼시발의 안면을 향해 뿜어냈다.
최근 들어 이레디에이트 스킬의 숙련도가 깊어진 지크는 방사능 에너지를 원하는 방향대로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콜록, 콜록!”
방사능 에너지를 안면에 고스란히 뒤집어쓴 퍼시발은 그저 기침만 했을 뿐, 그 어떤 이상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퍼시발]•존재 구분 : NPC
•레벨 : 50
•소속 : 퍼시발 마법 아카데미
•직위 : 학장
•클래스 : 마법사
•칭호 : 깡촌의 노마법사
놀랍게도, 고작 50레벨의 NPC인 퍼시발은 그린 드래곤의 그 무시무시한 방사능 에너지로부터 단 1의 데미지도 입지 않았던 것이다.
“이,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멋대로 그린 드래곤의 방사능 에너지를 남의 얼굴에….”
“훗.”
“아뿔싸!”
퍼시발이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시골 노마법사 코스프레는 이쯤에서 그만두시죠, 치천존 어르신.”
“그, 그게 아니라! 내가 평소에 독 저항력도 높고! 독 저항력 관련한 아티팩트도….”
퍼시발은 어떻게든 변명을 해보려 했지만, 지크의 눈빛을 보고는 입을 꽉 다물어버렸다.
지크의 눈빛.
냉철하게 착 가라앉아 있는 그 눈빛이 결코 빈말로 던져본 게 아닌, 어떠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걸 증명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알았느냐.”
퍼시발, 아니 치천존이 지크에게 물었다.
시인.
지크의 예상대로, 퍼시발은 아크 메이지인 치천존이 맞았던 것이다.
***
“도대체 어떻게 안 것이냐?”
치천존이 물었다.
“초상화를 볼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은 했지만, 확신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맞는 말씀입니다.”
지크가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는 닮은 사람이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한데?”
“지나치게 평범하셔서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엥?”
“제 사부님께 들은 바로는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면 육체의 재구성이 일어난다고 하더군요.”
“그거야 알려진 사실이긴 한데….”
“그리고 마스터의 경지를 뛰어넘어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면 육체의 재구성이 한 번 더 일어나고, 원할 때 언제든 자신의 기척을 완벽하게 감출 수도 있다고 하셨죠.”
“기척?”
“원한다면 바로 옆에 앉아 있어도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존재감을 삭제시킬 수도 있다고도 하셨습니다. 근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어르신으로부터는 마나가 전혀 느껴지지 않더군요.”
확실히 그랬다.
그간 지크가 느끼기에, 치천존은 마치 마나라고는 단 한 줌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었다.
“아무리 시골 깡촌에서 마법을 가르치며 소일거리를 하는 노년의 마법사라고는 해도 최소한의 마나는 느껴지기 마련이잖습니까.”
“크흠….”
“뭐든 지나치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내가 그 점을 간과하고 말았구나.”
“근데 아크 메이지씩이나 되시는 분이 여기서 왜 이러고 계시는 겁니까?”
“그거야 세상만사 피곤하고 귀찮으니까 그렇지. 이쯤 경지에 오르니 더 올라가고 싶은 마음도 없고, 소소한 소일거리들이 삶의 행복이더구나.”
치천존이 수더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 나이가 벌써 200살에 가깝단다. 인간으로서 어지간한 건 모조리 경험해본 데다가 제자까지 그럴싸하게 키워냈는데 내 무슨 미련이 있겠느냐?”
“아하.”
“조용히 살고 싶으니 부디 마탑에는 내 근황에 대해 얘기하지 말아다오.”
“비밀은 지켜 드리겠습니다.”
“고맙다.”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이 상자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언제는 개새끼라며?”
“…….”
“괘씸하긴 하지만 옛정을 생각해서 봐주도록 하마.”
다행히도, 치천존은 그리 속이 좁지 않고 소탈한 인물인 듯했다.
그러니 이런 시골 마을에서 작은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여생을 보내는 게 가능할 테지만.
“흐음. 한번 보자꾸나.”
치천존이 손바닥만 한 마법진을 만들어내 빙글빙글 돌리며 성궤를 ‘통찰’하기 시작했다.
그런 치천존의 두 눈에서는 초록색 섬광이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통찰이 끝난 후.
“으흠!”
“어때요? 가능하시죠?”
“가능은 하다만….”
“이제 어디 가서 뭐 구해오라고 하실 겁니까?”
지크가 퀘스트를 예상하고는 넘겨짚었다.
“그런 셈이지.”
“구해올 물건이 뭡니까?”
“이 상자를 열기 위해서는 총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그게 뭡니까?”
“첫째, 초고위급 마법사의 마법진. 이건 내가 해결해줄 수 있지.”
“둘째랑 셋째는 뭡니까?”
“둘째는 고대 제국의 황궁악단에서 부르던 노래인데… 태양왕의 아리아라는 곡의 악보가 필요하다. 그리고 셋째는 그 악보를 보고 노래할 절정의 실력을 가진 남자 가수다.”
그 순간.
띠링!
지크의 눈앞에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진혼제]고대 신의 성궤를 열기 위해 다음의 준비물을 획득해 치천존에게 가져다줄 것.
•보상 :
•진행률 : 50%(1/2)
– 태양왕의 아리아 악보
– 절정의 실력을 가진 남자 가수
다행스럽게도, 퀘스트의 반은 이미 달성해 있었다.
‘이렇게 도움이 되네?’
절정의 실력을 가진 남자 가수라면, 지크의 근처에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왜 하필 악보랑 가수가 필요한 겁니까?”
“사실 그 안에 담겨 있는 건 어떤 여인의 영혼이다.”
“예?!”
“억울하게 죽어간… 그랑카브리오 황제와 함께 순장을 당한 여인의 영혼이 그 안에 깃들어 있단다.”
“미친.”
순장이란 말에 지크는 자기도 모르게 욕을 하고 말았다.
순장.
신분이 높은 자가 죽을 때 산 사람들을 함께 묻는 것.
인간이 만들어낸 최악의 광기 중 하나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2,500년 전에 아주 끔찍한 사건이 있었단다.”
“아주 끔찍한 사건이요?”
“보여주마.”
치천존이 손을 휘저었다.
후욱!
그러자 지크의 눈앞에 어떠한 환상 같은 게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2,500년 전 어느 여인의 기억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