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84
183
사실 게임 BNW가 가지는 최대 장점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성인 콘텐츠’였다.
BNW는 모든 가상 현실 매체를 통틀어 가장 사실적인 그래픽과 생생한 감각을 자랑하는 게임답게, 성인 콘텐츠 또한 현실과 분간을 할 수 없을 만큼 ‘리얼’했다.
오죽하면 성인 콘텐츠를 즐긴 게이머들 중 속옷을 흠뻑 적시는 불상사-지크가 기를 쓰고 성인 콘텐츠를 피하는 이유도 이것이다-를 겪는 이들이 나올까.
하지만 게임 BNW의 개발, 유통사인 하이브 게임즈 엔터테인먼트는 ‘쓸데없이 고퀄리티’로 유명한 회사였고, 게이머들이 맘 편히 성인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놔두지 않았다.
임신 이벤트.
게임 BNW에서는 유료 결제를 통해 성인 콘텐츠 이용권을 가진 게이머가 NPC와 ‘엄마아빠놀이’를 즐길 경우, 일정 확률로 임신 이벤트가 발생하게 되어 있었다.
물론 BNW는 미국에서 개발한 게임답게 남녀평등과 자유로운 성적 지향성에 매우 민감한 회사였으므로, 성인 콘텐츠와 임신 이벤트는 게이머와 NPC의 성별을 가리지 않고 가능했다.
[임신 가능]여성 게이머 ♥ 남성 NPC
남성 게이머 ♥ 여성 NPC
여성 게이머 ♥ 남성 게이머
[임신 불가능]여성 게이머 ♥ 여성 게이머
여성 게이머 ♥ 여성 NPC
남성 게이머 ♥ 남성 게이머
남성 게이머 ♥ 남성 NPC
BNW는 동성애 관련 콘텐츠까지 아주 충실하게 구현되어 있었기에, 성별을 가리지 않고 모든 커플링이 가능했다.
물론 아무리 판타지 게임이라 하더라도 생물학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건 불가능했으므로, 동성 간의 임신 이벤트 발생은 불가능했지만 말이다.
또, 게임 속이니만큼 임신 이벤트를 통해 태어나는 아기들은 모두 NPC일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줄리안느의 경우 바로 남성 게이머와 여성 NPC 간의 임신 이벤트가 발생한 케이스였다.
“그이의 이름은 스왈로… 전하와 마찬가지로 ‘저쪽 세상’에서 강림한 존재랍니다.”
“그렇군요.”
“저와 그이는 정말이지 불꽃 같은 사랑에 빠졌죠. 그는 굉장히 로맨틱한 남자였고, 한없이 다정했거든요. 그러다 결국 이렇게 사랑의 결실까지 맺게 된 거죠.”
사랑의 결실을 말하는 줄리안느는 자기도 모르게 만삭의 배를 쓰다듬고 있었다.
비록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속도위반으로 임신을 해버렸지만, 스왈로란 게이머와의 사랑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 것 같았다.
가문의 수치 덩어리로 전락하여 감금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행복했던 추억이었겠네요.”
지크는 비록 NPC이지만 게이머와의 사랑을 말하는 줄리안느를 보며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저 표정, 말투, 눈빛, 목소리 등을 보며 NPC가 단순히 숫자 0과 1로 이루어진 데이터 덩어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싸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와 같이 공감 능력이 극도로 떨어지는 이들이 아니라면, BNW는 이러한 NPC의 존재로 인해 극도의 몰입감을 선사할 수밖에 없는 게임이었다.
“행복했죠. 그이한테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문제요?”
“갑자기 어머니가 많이 아프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당분간은 강림할 수 없다고도 했죠. 치료비가 부족해서 당분간은 저쪽 세상에서 일을 해야만 한다고 했어요.”
“으음.”
“제가 가문의 금고를 털어서 좀 보태주긴 했지만, 많이 부족했던 모양이에요.”
“그, 그건 좀….”
“아빠한테 많이 혼났지만, 상관없었어요. 저는 그이를 정말 사랑했고, 지금도 열렬히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
“아무튼, 그이와의 연락이 끊긴 지가 벌써 7개월이 넘었어요. 그간 편지 한 통도 없었죠. 제가 임신을 했다는 걸 알고 늦게나마 결혼까지 약속했었는데….”
“저런.”
“아무래도 저쪽 세상에서 뭔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해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에게 제게 7개월 동안 편지 한 통 하지 않았을 리 없으니까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전하께서 저쪽 세상에서 그이를 좀 찾아봐 주셨으면 해요. 그럼 악보를 드리겠어요.”
그렇게 지크는 퀘스트를 수락한 뒤 저택을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
“아. 어떻게 3억 명이나 되는 게이머 중에 스왈로인가 뭔가 하는 놈을 찾아.”
지크는 괴로워했다.
게임 BNW의 유저 수는 정확하게 3억 명.
이 중에서 스왈로란 이름-심지어 진짜 캐릭터 명인지 아닌지도 확인이 불가능했다-을 쓰는 게이머를 찾아 줄리안느에게 데리고 가는 게 쉬운 일일 리가 없었다.
게다가 유저 수를 3억 명으로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는 BNW는 미접속 기간이 180일을 넘기는 순간 계정이 삭제되게 되어 있었다.
만약 스왈로란 게이머의 계정이 삭제되었다면,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아. 그냥 훔칠까.”
지크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소리였다.
“이거 깨는 것보다 저택에 쳐들어가서 금고 터는 게 훨씬 쉬워 보이는데.”
퀘스트가 뜻대로 안 풀리자 억누르고 있던 사악한 인성이 고개를 쳐들었다.
“주, 주인 놈아! 진정해라!”
“전하. 고정하시지요.”
햄찌와 그랭구아르가 지크를 뜯어말렸다.
“그냥 말이 그렇단 거지.”
지크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일단 노력은 해봐야지. 아예 단서가 없는 건 아니니까.”
줄리안느로부터 스왈로란 게이머의 간략한 신상 정보와 초상화를 전해 받았기에, 지크는 일단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볼 생각이었다.
‘정 못 깨겠으면 가서 솔직하게 말하고 부탁이라도 하든지, 그것도 안 되면 진짜 훔치든지 하면 되겠지.’
물론 수틀리면 내면에 꼭꼭 숨겨진 사악한 인성이 여지없이 드러날 수도 있겠지만.
***
그날 저녁.
부릉, 부르릉!!!
게임에서 로그아웃한 태성은 붉은색 페라리-주인 잘못 만나 한 달에 50킬로미터도 채 달리지 못하는 불쌍한 차-를 타고 청담동의 고급 커피 전문점인 으로 향했다.
저가형 커피 프랜차이즈인 에서 만든 플레그십 스토어인 이 카페 앞 주차장에는 각양각색의 고급 외제 차량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차 키 안에 놓아두시면 주차는 알아서 해드리겠습니다. 주차비는 기본 두 시간에 3,000원입니다.”
“감사합니다.”
태성은 주차 관리 요원에게 페라리를 맡긴 후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태성의 페라리는 당당히 카페 앞에 주차되었는데, 태성의 뒤를 이어 주차 대행을 맡긴 평범한 수입 차량은 지하 주차장으로 유배(?)를 당해야만 했다.
그게 자본주의였다.
차량의 디자인, 가격, 희소성 등에 따라 카페 앞에 보란 듯 주차되느냐 지하 주차장으로 유배를 당하느냐가 갈리는 것이다.
물론 태성은 그러한 것에는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형님! 여깁니다, 여기!”
카페 2층으로 올라가자 태성을 기다리고 있던 승구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와줘서 고맙다, 승구야.”
“에이. 형님이 부르면 24시간 언제 어느 때고 와야지 말입니다.”
“부탁할 게 있어서.”
“부탁 말씀이십니까?”
“나랑 오늘 검색질 좀 오지게 하자.”
태성이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며 말했다.
“검색질이요?”
“그게 그러니까 말야….”
태성이 줄리안느가 준 퀘스트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허… 히든 클래스 얻기 한번 더럽게 어렵습니다….”
“그러게. 근데 어떡해. 히든 클래스인데. 어떻게든 찾아봐야지.”
“그건 그렇습니다. 히든 클래스를 얻을 수만 있으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근데 승구 너 요즘 급식체인가 뭔가 하는 이상한 말투 안 쓴다?”
“유행 지났습니다.”
“…….”
“언제 적 급식체입니까? 훗.”
태성은 황당했지만, 승구가 조금은 경박함을 버리게 된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좀 도와줘. 어쩌면 니 클래스가 될 수도 있잖아.”
“오오! 그것도 그렇습니다! 얼른 시작하죠!”
그렇게 태성과 승구는 줄리안느에게 전해 받은 정보를 토대로 드넓은 인터넷의 바다를 헤엄치기 시작했다.
게임 속에서 얻은 스왈로라는 게이머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현실에서 사람을 찾게 된 것이다.
그러기를 몇 시간여….
태성과 승구는 국내외 모든 검색 엔진을 활용해 스왈로란 게이머에 대한 정보를 찾았지만, 아쉽게도 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SNS까지도.
‘그이는 저쪽 세계에서 미국이란 나라에 산다고 했어요. 아주 젊었을 적에는 군대에서 장교로 복무한 적도 있다고도 했어요.’
‘사격을 아주 잘했어요. 종종 모험을 떠날 때에도 언제나 커다란 산탄총을 등에 지고 떠나곤 했죠.’
‘저쪽 세상에서의 이름은 빌리 게이티스래요.’
애초에 줄리안느가 스왈로란 게이머에 대해 아는 게 워낙에 적어서, 게임 속에서 수소문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가 알려준 ‘스왈로’란 이름이 실제 게임 캐릭터의 ID와 같은지조차 불분명했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아. 뭐라 그러는지 하나도 모르겠네.”
“번역기도 만능은 아닌가 봅니다.”
태성이나 승구나 가방끈이 워낙에 짧은 일자무식들이었기에, 영어로 된 웹사이트를 제대로 읽어낼 수도 없었다.
찾아낸 것이라고는 실제 Billy Gatiss란 이름을 가진 미국인들의 사진 몇 장과 조류 중 하나인 제비(Swallow)의 사진들이 전부였다.
그러던 중.
“여기서 뭐 하고들 있냐.”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츄리닝 차림의 천우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태성과 승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너 여긴 웬일이냐?”
“웬일은 무슨. 그냥 커피 한잔하러 왔지.”
태성의 물음에 천우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둘이 여기서 뭐 하냐? 나만 쏙 빼놓고?”
“아, 그게….”
태성이 천우진에게도 그간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고, 천우진은 경악했다.
“그, 그래서… 히든 클래스가 담긴 상자를 얻어서 그걸 열어야 한다고?”
“응.”
“한태성 이 새끼 미쳤네?”
“뭐가 미쳐.”
“듀얼 클래스로 히든-히든이 말이 되냐?”
“뭐… 되겠지? 안에 뭐가 들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미친.”
천우진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운도 지지리도 좋네.”
“글쎄.”
태성이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에?”
“운 좋으면 뭐 하냐? 그걸 내 걸로 만들 능력이 없었는데. 3년 전에 날 전직시켜 줬던 NPC가 아크 메이지였을 줄 누가 알았겠냐? 그 착한 양반도 내가 답 없는 쓰레기라더라.”
“악! 큭큭큭!”
“아무튼 도와줄 거 아니면 커피나 마시다 집에 가라. 지금 바쁘니까.”
그렇게 말한 태성이 홀로그램 스크린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뭐야. 이 새끼가 그 NPC가 찾는다던 게이머야?”
그때, 천우진이 태성이 프린트해온 스왈로의 초상화를 보며 물었다.
“어. 그 미국인이 줄리안느가 찾는 게이머래.”
“너 이 새끼 모르냐?”
“이 새끼 모르냐고?”
“얘 유명한 새낀데?”
“지, 진짜?”
놀랍게도, 천우진은 줄리안느가 찾는 게이머를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이 새끼 지튜브에서 방송하는 새끼일걸? 한국인들은 잘 모르는데 외국에선 꽤 유명해.”
“진짜로?”
“어.”
“근데 왜 오늘따라 자꾸 새끼새끼 거리냐? 쌍스럽게.”
태성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자고로 ‘ㅆ’ 발음이 나는 소리를 듣다 보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지기 마련이 아니던가.
“저 새끼는 욕먹어도 싸니까 그렇지.”
“으음?”
“노트북 줘봐. 그 새끼 맞나 한번 확인해보게.”
천우진이 태성의 노트북을 뺏어 들더니 지튜브를 켜 검색창에 을 입력했다.
그러자 PussyWagon이란 지튜브 ID를 사용하는 유저가 업로드한 동영상들이 주르륵 나열되었다.
“어?”
스크린을 바라보던 지크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저기 저 영상… 저거 줄리안느 같은데?”
PussyWagon이란 미국인 지튜버가 업로드한 영상 중에서 줄리안느의 얼굴을 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니가 말한 NPC가 맞을걸? 이 새끼가 그걸로 유명하거든.”
“뭐로 유명한데?”
“게임 속 여자 NPC 꼬셔서 XX하는 거.”
그 순간.
“이 새끼 죽여도 되냐?”
지크의 눈이 사나워졌다.
왜냐하면 19 딱지가 붙은 영상 속에는 아슬아슬하게 중요 부위만 가린 줄리안느가 곤히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