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85
184
‘스왈로’란 이름은 역시나 가명이었다.
현실 이름 역시 마찬가지.
그의 진짜 이름 또한 빌리 게이티스가 아니었다.
줄리안느가 찾던 게이머의 정체는 ‘왜건’이란 ID를 사용하는 미국인 게이머로, 지튜브에서 여성 NPC 꼬시기를 주 콘텐츠로 삼는 너저분한 인간이었다.
왜건의 지튜브 홈페이지에 적혀 있는 그 게임 프로필은 다음과 같았다.
[왜건]•존재 구분 : 모험가
•레벨 : 233
•소속 : 없음
•클래스 : 헤비 슈터
•결투 등급 : 초절정고수 Ⅲ
•칭호 : 픽업 아티스트 / 능숙한 거짓말쟁이 / 절륜한 난봉꾼 / 걸 콜렉터 / 제비 / 속옷 수집가 / 걸 헌터 / 현질의 제왕 : 성인 콘텐츠 …(중략)….
나열된 칭호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왜건은 허구한 날 여성 NPC들에게 접근해 달콤한 거짓말로써 그녀들을 가지고 노는 걸 즐기는 인간이었다.
결투 등급이 초절정고수Ⅲ인 걸 보니 꼴에 실력이 아주 없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왜건은 자신의 개인 웹사이트에서 여성 NPC들의 나체 사진 및 무삭제 영상을 판매하고 있기까지 했다.
지튜브에 올리는 영상들은 교묘한 편집을 통해 검열 수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조회수를 높이고, 진짜 영상은 따로 판매하는 것이다.
즉, 왜건은 지튜브를 자신이 운영하는 포르노 사이트의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쓰레기 새끼….”
태성이 어금니를 으득! 갈았다.
“이거 해도 너무한 새끼네… 이게 사람이 할 짓이냐? 아무리 게임이라도 그렇지.”
“그러니까 내가 자꾸 새끼새끼 거린 거 아냐.”
천우진이 그것 보라는 듯 말했다.
“아니, 근데 이게 돼? 성인 콘텐츠 이용할 때도 영상 촬영이나 스크린샷이 허용된다고?”
“돼. 내가 해봤어.”
“해봤다고?”
“헉!”
천우진이 아차! 싶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이 쓰레기 새끼….”
태성이 쌍욕을 하려고 하자 천우진이 황급히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개인 소장용으로… 흠흠. NPC가 아니라 여성 게이머가 상대였고, 서로 동의하에 찍었고… 영상은 공평하게 나눠 가졌으니까.”
“도대체 그런 짓은 왜 하는 건데?”
“어른들의 놀이랄까… 뭐 그런 거지, 흠흠.”
“근데 하이브나 지튜브에서는 이거 안 막나? 이건 너무 심한 것 같은데… 저작권 문제도 있고, 결국 포르노고.”
“미국이잖아.”
천우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하이브가 언제 서버 운영하는 거랑 유저 수 조절하는 거 빼고 하는 일이 있기는 하냐? 걔넨 저작권 따위는 신경도 안 써.”
“그럼 지튜브는? 저 포르노 사이트는?”
“합법이야. 정확히는 저 새끼가 사는 주(州)에서 가상 현실 관련 포르노가 합법인 거지만. 국내에서 저 사이트에 접속하는 건 불가능할걸? Warning이란 화면이나 뜨겠지.”
왜건이 운영하는 사이트를 클릭하자 천우진의 말대로 Warning이란 로고와 함께 이란 문구가 떠올랐다.
“한국에서 저런 콘텐츠를 만들어 팔았다가는 철컹철컹 바로 콩밥행일 테지만.”
“그렇겠지.”
“아무튼, 찾기는 찾았네. 그 NPC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말야.”
“그, 그러게….”
생각해 보니 그랬다.
줄리안느가 사랑한 게이머가 천하의 개쌍놈이었을 줄이야.
“이걸 어떻게 전해. 으으….”
천우진의 도움으로 스왈로를 찾긴 했지만….
“여기 공지 보니까 내일 오전에 생방송 진행한다네? 어디서 방송하는지 보고 가서 잡으면 될 듯?”
천우진은 영어도 능숙하게 읽을 줄 아는 모양이었다.
“그래야겠네.”
태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
다음 날 오전.
태성은 천우진의 도움(통역)을 받아 왜건이 진행하는 생방송을 시청했다.
그런데.
“여자 NPC 꼬시는 방송이라며? 근데 저기 던전 아니야?”
왜건의 방송을 본 태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성 NPC 꼬시기를 주 콘텐츠로 삼아 개인 방송을 진행한다던 놈이 풀 무장을 한 채로 웬 눈밭에서 멘트를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던전 맞는 거 같은데? 잠깐만. 뭐라고 하는지 좀 들어보게.”
천우진이 영상 속 왜건이 지껄이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뭐래?”
“어… 저 새끼가 지금 뭐라 그러냐면.”
천우진이 영상 속 왜건이 친 멘트를 통역해 주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안녕. 친구들. 오늘은 이 지긋지긋한 던전에 들어온 지 37일 차야. 난 빨리 여기서 벗어나고 싶어. 여긴 정말 춥다고.] [솔직히 말하면, 이 던전은 정말이지 지독히도 역겨운 곳이지. 모든 몬스터들을 죽이고 보스까지 죽이기 전까지는 절대로 여기서 나갈 수 없다고. 아무리 죽어도 계속 이 던전 안이라고!] [친구들! 누가 날 여기서 나갈 수 있게 도와줘! 제발! 내 힘으로는 도저히 여기를 클리어할 수 없을 것 같아! 여긴 맥캘란 왕국 북부에 있는 77번 차원의 균열이야! 제발 도와줘!] [빌어먹을. 아무도 없나보군. 그래, 좋아. 오늘도 이 망할 놈의 던전에 도전해 보겠어.] [아, 그리고 88번의 무삭제 영상의 편집이 끝났어. 오늘 저녁에 내 개인 홈페이지에 업로드할 예정이니까 많은 관심 부탁해!]“…참고로 걔는 다른 계집애들보다 훨씬 더 과감하고 화끈했다는데?”
“그런 것까지 통역해 주지 마. 안 궁금하니까.”
태성이 더럽다는 듯 경멸 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서 이제 어떡할 건데?”
“어떡하긴. 일단 잡으러 가야지.”
“저 던전 안에?”
“그럼 어떡해? 던전 안에 갇혀서 못 나오고 있다는데. 직접 가서 끌고 나와야지.”
“그건 그렇지.”
“간다. 조심해서 들어가고.”
“이용 가치 떨어지니까 바로 팽시키는 거 보소?”
“인생이 원래 그런 거야, 인마.”
“…….”
“수고.”
그렇게 말한 태성은 곧바로 캡슐룸으로 향했다.
***
왜건을 잡으러 가는 길.
‘그냥 죽었다고 할까….’
지크는 고민했다.
어쩌면 그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줄리안느의 사연이 안타깝긴 했지만, 진실을 알게 되는 것보다는 좋았던 추억만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녀를 떠나 사랑했던 사람이 사실 천하의 개쌍놈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기분이 어떨까?
오직 둘만이 기억하고 간직해야 할 사랑의 몸짓이 다른 사람들에게 적나라하게 보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기분은?
진실을 알게 된 줄리안느는 큰 충격을 받을 테고, 어쩌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아기가 잘못될 가능성도 없잖아 있었다.
“주인 놈아. 뭘 그렇게 고민하냐? 표정이 안 좋다.”
“아. 그게….”
지크가 햄찌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냥 뒈졌다고 하는 게 낫지 않겠냐? 그러다가 배 속의 아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냐… 뀨우.”
“그래서 고민인 거지. 그냥 죽었다고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하지만 막상 거짓말을 하려니 그게 또 마음 같지 않았다.
“세상에 완벽한 비밀은 없는 법인데, 만약 거짓말이었다는 게 밝혀지기라도 하면….”
“뀨우~.”
“아. 어떡하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보니 지크는 어느새 맥캘란 왕국 북부의 77번 차원의 균열 앞에 도착했다.
“전하.”
그때, 그랭구아르가 끼어들었다.
“깜짝이야!”
지크는 또다시 화들짝 놀랐다.
그랭구아르는 지크를 졸졸 따라다니기만 할 뿐, 평소에는 입도 뻥끗하지 않기에 옆에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종종 존재감을 까먹게 만드는 요상한 재주가 있었다.
“소신이 아는 줄리안느는….”
“으음?”
“비록 상처를 받긴 할 테지만 금방 툭툭 털고 이겨낼 친구입니다.”
“그래요?”
“거짓말을 하는 게 어쩌면 더 가혹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전하께서 그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신다면, 줄리안느는 평생 그를 그리워하며 살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그것은 더한 고통일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그러네요.”
지크는 그랭구아르의 의견에 공감했다.
“조언 고마워요, 그랭구아르 사관님.”
“별말씀을….”
“그럼 잡으러 가 보죠.”
그렇게 말한 지크가 차원의 균열 앞을 지키는 기사에게 다가가 신분증-무신교 제단에서 받은 반지-을 제시했다.
“헉! 결투 등급이 무려 영웅이시군요!”
“예, 뭐….”
“하지만 현재 차원의 균열 안에는 다른 모험가가 들어가 있어서 입장이 불가능하십니다.”
기사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들어간 지 37일이나 지났지만 말입니다.”
“어떻게 좀 들어가면 안 될까요?”
“말씀드렸다시피, 규정상 이미 모험가가 들어가 있는 차원의 균열 안에는 다른 모험가의 입장이 통제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좀….”
“안 됩니다.”
“안에 들어간 사람이 37일 동안 안 나왔다는 건 차원의 균열을 초기화시킬 능력이 없다고 봐도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도 안 됩니다.”
“근데 기사님 계급이 뭡니까?”
지크가 뜬금없이 기사의 계급을 물었다.
“예?”
“계급이 뭐냐고요.”
“저는… 대위입니다만?”
“이보세요, 대위님.”
지크가 은근슬쩍 자신의 중령 계급장을 꺼내 보였다.
“제가 비록 모험가이기는 하지만 아라크니드 임시 주둔지에서 육군 중령으로 복무했던 사람이거든요?”
“추, 충성! 대위! 사무엘!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혹시 성함을 알려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저는 지크 중령이라고 합니다.”
“헉!”
기사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크 중령님이셨습니까?!”
“음? 저를 아세요?”
“오버로크 대장님께서 혹시 지크 중령님을 뵈면 적극적으로 협조하란 지침을 내리셨었습니다.”
“오버로크 대장님이요? 설마 진급하셨어요?”
“예, 진급하셨습니다.”
“그렇군요.”
“입장하시죠. 지크 중령님은 규정에서 예외입니다.”
“감사합니다.”
뜻밖에도, 지크는 과거 이룩한 업적 덕분에 77번 차원의 균열에 입장할 수가 있게 되었다.
***
77번 차원의 균열 안.
이른바 이란 이름의 이 차원의 균열 안에서는 왜건과 네임드 몬스터인 프로즌 카멜레온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Fuck, fuck!!!”
왜건은 연신 ‘Fuck’을 외쳐대며 프로즌 카멜레온을 향해 총탄을 퍼부었지만, 유효타는 거의 먹일 수가 없었다.
프로즌 카멜레온의 은신 능력과 이동 속도가 워낙에 뛰어나서 총알이 번번이 빗나갔던 것이다.
애초에 클래스 자체가 근, 중거리 딜러로서 후방에서 화력을 전담해야 하는 왜건이 솔플로 이 던전에 들어온 것부터가 잘못이었지만 말이다.
콰직!
결국, 왜건은 프로즌 카멜레온의 발밑에 깔리고 말았다.
“크윽… 오, 오늘도… 클리어 실패인가… 이런 빌어먹을….”
그때.
휘리릭, 쾅!
어디선가 날아든 망치가 왜건을 덮친 프로즌 카멜레온의 머리통을 부숴놓았다.
“누, 누구야?”
“구해달라며? 그래서 왔지.”
플라잉 스퍼 스킬로 프로즌 카멜레온을 처치한 지크가 왜건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덥석.
왜건이 그런 지크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오오! 날 구해주러 온 건가? Bro? 내 SOS 신호에 응답해준 거야?”
“그럼.”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니 팬이거든. 한국에선 니 무삭제 영상을 보기가 힘들어서 IP 우회를 여러 번 해야만 하지만.”
“Really?”
“당연하지.”
팬이란 말에 왜건이 자신이 가진 으로 지크를 비추어 보았다.
“절륜한 왕? 오오!”
칭호를 본 왜건의 얼굴이 환해졌다.
“너는 내 동족이잖아? 맙소사! 진짜 Bro가 날 구해주러 오다니!”
“뭐?”
“나 역시도 절륜한 칭호를 가지고 있다고!”
그렇게 말한 왜건이 단축키를 눌러 자신의 머리 위에 칭호를 띄워 올렸다.
띠리링!
그러자 효과음과 함께 ♥절륜한 난봉꾼♥이란 문구가 핑크색으로 반짝였다.
“나는 난봉꾼인데 넌 왕이라고? Oh! my! god!!! 도대체 여자들을 얼마나 후리고 다녀야 왕 칭호를 얻을 수가 있는 거지? 내가 한 수 배워야겠는걸?”
그 순간.
빠직!
지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일단 죽이고 볼까, 이 새끼?’
설마하니 이따위 쓰레기로부터 ‘동족’ 취급을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