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87
186
익히 예상했던 바대로, 왜건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후다닥!
왜건은 차원의 균열 밖으로 나오자마자 황급히 도주를 시도했다.
휘리릭, 쾅!
그래 봤자 5미터도 채 가지 못하고 지크의 플라잉 스퍼 스킬에 얻어맞아 척추가 함몰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알림 : 상태 이상!] [알림 : 에 걸렸습니다! 이동이 불가능합니다!]쓰러진 왜건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곱게 안 갈 줄 알았다.”
지크가 그런 왜건을 바라보며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한 번에 가면 재미없지.”
“이… 지독한 새끼… 누가 한국인 아니랄까 봐… 크윽!”
“그래. 한국인은 지독하지.”
게임 속의 한국인들이 얼마나 지독한지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검증된 사항이 아니던가?
“근데 난 더 지독해.”
“두고… 보자…!”
“일단 한 번 뒤지시고.”
그렇게 말한 지크가 쓰러져 있는 왜건의 그곳(!)을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퍽!
찰진 소리와 함께.
“……!”
왜건의 얼굴이, 안면이 그대로 ‘정지’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정확히 1초 후에는….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자지러지는 듯한 비명이 드높이 울려 퍼졌다.
“그냥 죽어라, 죽어.”
지크는 망치질을 멈추지 않았다.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망치가 왜건의 그곳을 치고, 치고, 치고, 또 쳤다.
왜건이 죽을 때까지….
***
그로부터 50시간 후.
“이 빌어먹을 한국인 새끼… 두고 보자… 대가리에 총알을 박아 넣어줄 테니까….”
사망 지점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 부활한 왜건은 지크를 향해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 예쁜데? 아랫도리가 벌써부터 불끈불끈해지는군!’
마을을 나서려던 왜건은 문득 어느 노천카페에 앉아 홀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여성 NPC를 발견하곤 군침을 줄줄 흘렸다.
[샤를로트]•존재 구분 : NPC
•레벨 : 180
•소속 : 맥캘란 왕국 국경 수비대
•직위 : 소대장
•계급 : 중위
‘오오! 잭팟이군! 군복을 입은 미녀 기사라니!’
왜건의 눈에 비친 샤를로트란 여성 NPC는 엄청나게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레몬 빛에 가까운 금발.
늘씬하게 큰 키.
심지어 키가 큰 여자치고 몸매가 너무나도 글래머러스했다.
노출이 거의 없다시피 한 군복조차 그녀의 훌륭한 몸매를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저 도도하고 차가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면 어떨까? 후후! 제복 페티시는 언제나 환영이지. 잘 팔리기도 하고.’
왜건은 그렇게 생각하며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는 샤를로트란 여성 NPC를 꼬셔보기로 하고, 곧바로 생방송을 켰다.
“Hi 친구들! 드디어 그 지긋지긋한 던전에서 탈출했어! 그 한국인의 도움 덕분이지! 하지만 아쉽게도 그 한국인은 사실 좋은 친구가 아니었지.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풀도록 할게. 왜냐고? 지금은 사냥감을 포획하는 게 우선이니까!”
왜건이 홀로그램 콘솔을 움직여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샤를로트에게 포커스를 집중시킨 다음 멘트를 날렸다.
“저기 보여? 근처 국경 수비대에서 근무하는 여기사인 것 같은데, 어때? 나이스하지? 저 칼같이 각이 잘 잡힌 군복을 반쯤 벗겨놓고 즐기면 어떨까? 친구들도 나랑 같은 생각이겠지? 그렇지? 좋아. 천천히 사냥감에게 접근해 보도록 하겠어.”
그렇게 말한 왜건이 약 5초간 심호흡을 하며 기존의 경박하고 다소 비열해 보이는 인상을 제 얼굴에서 싹 지워버렸다.
그리고는 약간은 서글픈 듯하면서도 우수에 젖은 눈빛을 꾸며낸 뒤 천천히 샤를로트에게 접근했다.
“로젤르?”
“네?”
“로젤르 아니야?”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제 이름은 샤를로트입니다만?”
“아!”
왜건이 짐짓 화들짝 놀란 척했다.
“죄, 죄송합니다, 레이디….”
“……?”
“제가 그만 착각을 해버린 것 같군요… 레이디께서 제가 아는 사람과 너무 닮은 바람에 그만….”
그러면서, 왜건은 은근슬쩍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는 제게 매우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매우, 매우 소중한….”
“그녀도 저처럼 군인이었나요?”
“아닙니다.”
왜건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레이디와 매우 닮았었지만, 기사는 아니었지요.”
“그런데 왜 저를 그녀로 착각하신 거죠?”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가 너무 그리워서 그랬을지도… 이제는 더는 만날 수 없는 그녀이기에 더욱 그리웠나 봅니다….”
“저런.”
샤를로트란 이름의 NPC가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와 헤어지셨나 보군요.”
“예, 헤어졌지요.”
“그렇게 소중한 사람이라면서 어쩌다가 헤어지신 거죠?”
“그녀는 멀리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떻게요?”
“지병이 깊어져서, 그만….”
“어머.”
“이제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지만….”
그렇게 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시작했다.
왜건은 자신이 가진 수없이 많은 래퍼토리들을 적절히 섞어 가며 교묘한 거짓말로써 샤를로트를 속이고, 속이고, 또 속였다.
“이런 말씀 드리기는 실례일지 모르지만, 당신은 정말이지 애처로운 분이시군요… 가엾어라.”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녀를 사랑한 건 오롯이 저의 선택. 저는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녀는 천국에서도 행복할 거예요.”
“부디 그러기를 바랍니다.”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부대로 복귀할 시간이에요.”
“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레이디께서 부대로 복귀하시는 길을 제가 바래다드려도 되겠습니까? 만약 부담스러우시다면….”
“좋아요.”
샤를로트가 싱긋 웃으며 왜건의 제안을 수락했다.
“부대가 꽤 멀거든요. 혼자 가기 심심했는데 마침 잘됐네요.”
“그게 정말이십니까?”
“그런데… 돌아오시는 길은 괜찮으시겠어요?”
“물론입니다.”
“그럼, 가요.”
“당신과 친구가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저 역시.”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예, 기다리겠습니다.”
샤를로트가 자리를 뜨고.
“봤지? 친구들? 거의 성공했어! 반쯤 넘어왔다고! 때론 이렇게 여자들의 모성애를 자극시켜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자, 계속 가 보자. 난 그녀를 데려다주면서 그녀의 입술을 훔칠 생각이야.”
하지만 그런 왜건의 계획은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았다.
샤를로트와 함께 국경 수비대로 향하는 길.
“저기, 샤를로트?”
“네?”
왜건이 순간적으로 샤를로트의 얼굴을 감싸고, 그녀의 입술을 향해 제 입술을 들이밀었다.
그런데.
빠악!
찰진 소리와 함께 왜건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어라? 생각보다 앙칼진데?’
뜻밖의 저항에 왜건은 순간 당황했지만, 노련한 바람둥이-라기보다는 너저분한 사기꾼-답게 곧바로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샤를로트를 향해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실례를….”
“알면 더 처맞아도 되겠군요.”
“예?”
“저는 당신 같은 버러지들이 정말 싫습니다.”
그렇게 말한 샤를로트가 자신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벗어 고이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샤를로트란 여성 NPC의 이름이 바뀌었다.
사실 샤를로트는 메타모포시스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있었던 것이다.
[오스칼]•존재 구분 : NPC
•레벨 : 180
•클래스 : 나이트
•티어 : 중급 소드 익스퍼트
•소속 : 프로아 왕국
•직위 : 육군 총사령관
•계급 : 소장(★★)
그뿐만이 아니었다.
“수고하셨어요, 오스칼 경.”
“뀨우!”
풀숲에 숨어 있던 지크와 햄찌가 나타나 왜건을 훌륭하게 낚아준 오스칼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 새끼들이!!!”
“내가 말했지.”
지크가 서늘한 미소로 왜건의 분노에 화답했다.
“난 더 지독하다고.”
“니가 이런다고….”
“모르겠고, 좀 맞자.”
지크가 왜건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2분 22초 후.
퍼억!
지크의 망치가 왜건의 그곳을 찍었다.
“으아아아아아악!!!”
왜건의 비명이 숲속을 가득히 메웠다.
***
그 후로도 왜건의 고통은 계속되었다.
“히, 히익?!”
선술집에서 다른 여성 NPC를 꼬시던 왜건은 근처 테이블에서 지크와 햄찌가 그를 향해 맥주잔을 들어 올리며 씩 웃는 걸 발견하곤 경악했다.
선술집에서 강제로 끌려 나온 후 또다시 신나게 그곳을 얻어맞았고 죽게 되었음은 물론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는 것.
3일 후 BNW에 재접속한 왜건은 부활 지점에서 도망치기 위해 가장 가까운 워프 게이트를 찾았지만, 그곳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또 만나야만 했다.
“야! 오래 기다렸잖아! 빨리 와!”
“뀨우! 어서 와라!”
그리고 왜건은 또다시 그곳을 집중적으로 맞고 사망해야만 했다.
“My dick, my dickkkkkkkkk!!!”
오죽했으면 강제 로그아웃을 당한 후 현실에서도 그곳을 붙잡고 절규했을까.
이후 그 과정이 두 번 정도 더 되풀이되자, 왜건은 완전히 지쳐버리고 말았다.
‘이 지독한 새끼… 한국인들이 무섭단 건 알았지만 이렇게 집요하고 끔찍할 줄은 몰랐는데… 으으!’
그래서 왜건은 도망치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지크를 찾아갔다.
“왔냐.”
햄찌와 함께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지크가 왜건을 반겼다.
물론 눈길 한 번을 주지 않았지만.
“…그 여자 NPC를 만나겠어.”
“벌써? 아직 열 번은 더 죽어야 갈 줄 알았는데?”
“이제 그만하자. 나도 이제 지쳤다.”
“가서 사과할 거냐?”
“그래.”
“아쉽다.”
“……?”
“계속 도망 다니지. 그럼 심심할 때마다 찾아가서 죽이려고 그랬는데. 한 100번쯤?”
“히, 히익?!”
왜건은 지크의 집요함에 그만 질려버리고 말았다.
***
그로부터 몇 시간 후.
“…미안해.”
왜건이 만삭의 줄리안느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사실 너를 사랑하지 않았어. 그냥… 그냥 난 쓰레기였을 뿐이야.”
“…….”
“배 속의 아기는 미안하게 됐어.”
그 순간.
짜악!
줄리안느의 손바닥이 왜건의 뺨을 강하게 후려쳤다.
“…….”
왜건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쓰레기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전하.”
왜건의 뺨을 후려친 줄리안느가 지크를 돌아보았다.
“말해요, 줄리안느.”
“부탁드려요. 부디 저 자식을… 죽여주세요.”
“예?”
“저 자식이 죽는 게… 보고 싶어서요.”
그렇게 말하는 줄리안느의 두 뺨에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크는 말없이 망치를 움켜쥐었다.
퍼억!
지크의 망치가 왜건의 그곳을 또다시 강타했다.
그러기를 몇 차례.
“꾸웨에에엑.”
왜건이 숨을 거두고.
“사, 사실 저는 알고 있었어요. 제가 임신 사실을 털어놓았던 날 이 자식의 얼굴에 언뜻 비췄던 표정을 봤거든요… 흑, 흑흑.”
“…그랬군요.”
“그가 떠나고 몇 개월이 지났을 때… 저는 제가 속았다는 걸 깨달았어요. 하지만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도 없었죠. 그냥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보고 싶었어요. 왜인지는 저도 몰라요.”
지크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됐어요.”
줄리안느가 애써 눈물을 훔치고는 활짝 웃었다.
“다 털었어요. 이제부터는 태어날 아기에게 집중하겠어요.”
“……!”
“누가 뭐래도 이 배 속의 아기는 제 아기니까요. 예쁘고 반듯하게 키워내고 말겠어요.”
그때였다.
띠링!
지크의 눈앞에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히든 클래스가 담긴 성궤를 열기 위한 대장정이 드디어 막을 내린 것이다.
‘줄리안느. 내가 잘 챙겨줄게. 멋진 엄마가 돼 봐.’
지크는 줄리안느가 태어날 아기를 잘 키워낼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지원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게이머들에게 상처받은 NPC들을 돌보는 것도 어쩌면 같은 게이머인 지크의 몫일지도 몰랐으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