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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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의 룬으로 비추어 본 히든 클래스009의 정체는 다음과 같았다.
[전직의 서 : 히든 클래스009]2,500년 전 당대 최고의 여가수이자 미친 황제 그랑카브리오의 아내였던 여인의 한(恨)이 서린 초상화. 히든 클래스 009인 로 전직 가능한 아이템이다.
는 마법사 계열 클래스로, 노래에 마나를 실어 적들을 초토화시키는 존재입니다.
단, 의 물리적, 근접전 능력은 매우 형편없으므로 적들의 공격으로부터 어떻게 자신을 보호해야 할지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거기까지는 좀 찝찝하긴 했지만 괜찮았다.
문제는 그다음.
•타입 : 소모품(전직의 서)
•등급 : 히든
•가격 : 100,000 Gold
•전직 조건 :
– 노래 실력 S+++ 이상
– 외모 S+++ 이상
– 절대 음감 보유
빌어먹게도, 지크는 로 전직할 수가 없었다.
지크는 로 전직할 수 있을 정도로 잘생기지도, 노래를 잘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바로 ‘절대 음감’이었다.
외모와 노래 실력이야 뉘르부르크 대륙에 존재하는 세이렌들의 씨를 말려서라도 어떻게든 올릴 수야 있겠지만, 절대 음감처럼 타고난 재능은 어떻게 올릴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으… 으으으으으…!!!”
울화통이 치민 지크가 뒷목을 부여잡고 괴로워했다.
그 고생을 해가면서 획득한 히든 클래스가 그림의 떡이었다니….
못 먹는 감이었다니….
하지만 정작 지크를 더욱 열받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사람 얼굴 가지고 차별하는 게 어딨어….”
살다 살다 전직 조건에 외모가 들어 있을 줄이야.
물론 지크의 얼굴은 꽤 괜찮은 편에 속하긴 했지만 로 전직하기 위해서는 무려 S+++라는 어마어마한 수준의 ‘잘생김’이 필요했다.
수준 미달.
그게 지크의 현실이었다.
“아냐.”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어떻게 해서든 전직하고 만다. 어떻게든.”
반쯤 이성을 잃은 지크가 인벤토리에서 를 꺼내 들어 를 향해 들이밀었다.
어차피 안 될 줄 알면서도 지크가 그러는 이유는, 성궤를 차지하고 열기까지의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나도 고생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정체도 까발려지고… 음식물 쓰레기만도 못한 변태 자식한테 동족 취급이나 당하고, 도둑놈 취급까지 당해가면서. 그렇게 고생했는데… 고작 한다는 말이 못생겨서 안 된다니.”
하지만 그런 지크의 노력과는 별개로, 는 지크를 완강히 거부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싫어!]지크의 귓가에 웬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가 전직의 서 안에 담긴 황후의 영혼 혹은 사념의 것이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시, 싫다고?’
지크가 화들짝 놀라던 순간.
[…저리 가!]‘…….’
[제발 가주세요! 제발!]‘너, 너무하잖아.’
지크는 자신을 완강히 거부하는 황후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상처는 곧 분노로 뒤바뀌었다.
‘아니. 사람 외모 가지고 너무한 거 아냐? 사연이 기구해서 측은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완전 쓰레ㄱ….’
지크는 너무나도 화가 나 자기도 모르게 를 찢어버릴 뻔했다.
[아니에요!]‘응?’
[그저 당신이 나와 맞지 않을 뿐입니다. 나는 불쌍하게 죽어간 한 여인의 사념일 뿐….]‘그래서?’
[당신에게서는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아요. 그녀는 죽어서라도 사랑했던 남자를 조금이나마 느끼고 싶은 거예요.]얼마나 사랑했으면….
그랑카브리오에 의해 사랑을 이룰 수 없었던 황후의 한이 얼마나 깊었는지, 또 사랑했던 남자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가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니 제발 손대지 말아 주세요!]‘그, 그래….’
[그녀는 당신이 아닌 저 남자를 원하고 있어요.]황후의 사념이 가리킨 건, 역시나 그랭구아르였다.
***
어렵사리 얻은 히든 클래스.
비록 얻게 된 계기는 어디까지나 우연이었고, 운이 좋았지만,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건 오직 지크 본인의 노력이었다.
하지만 그 히든 클래스의 주인은 지크가 아니었다.
특별한 물건에는 그에 어울리는 주인이 있단 말도 있듯이, 는 지크와 맞지 않는 클래스였다.
그렇다면….
‘비록 클래스가 내 것이 되지는 못하지만.’
지크는 손에 쥔 의 전직의 서를 어루만지며 생각해 보았다.
‘이 클래스를 가질 사람은 내 사람, 내 신하다. 결국 내 거란 얘기야.’
생각은 거기까지.
“그랭구아르 사관님.”
“예, 전하.”
“아니.”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종신 사관 그랭구아르 데 노블드로워.”
“예?”
“내 앞으로.”
순간 그랭구아르는 평소답지 않은 지크의 말투에 크게 당황했다.
‘전하께서 왜 이러시는 거지? 내가 뭘 잘못하기라도 했던가?’
그도 그럴 것이, 평소 신하들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늘 온화한 말투로 경어를 사용해주던 지크가 갑작스레 돌변하자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왕의 명령을 감히 거역할 순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그랭구아르는 일단 지크의 앞에 섰다.
“무릎, 꿇어.”
“예, 전하.”
그랭구아르가 지크의 명령에 따라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지크가 인벤토리에서 평범하기 짝이 없는, 값비싼 보석 몇 개가 박힌 게 다인 롱소드를 꺼내 손에 쥐었다.
그 검은 프로아의 군주들이 의전용이나 행사용으로 사용하는 일종의 장식품이었다.
“나, 프로아 왕국의 국왕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는 나의 종신 사관인 그랭구아르 데 노블드로워를….”
“……?”
“기사로 임명한다.”
“헉!!!”
그랭구아르가 경악했다.
기사라니?
전투력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그가 기사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아무것도 모르는 그랭구아르로서는 지크의 말을 두 귀로 듣고도 좀처럼 믿을 수가 없었다.
“하오나 전하! 소신은 문관에 불과한 데다가 기사 수업이라고는….”
“그랭구아르 데 노블드로워.”
“예, 전하.”
“기사의 맹세를.”
“하, 하오나….”
“왕으로서 명령한다.”
그랭구아르는 지크의 돌발 행동에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왜?
왕의 명령이었으니까.
“신(臣), 그랭구아르 데 노블드로워는….”
그랭구아르가 지크의 앞에 무릎을 꿇은 채 ‘기사의 맹세’를 읊었다.
“조국 프로아 왕국의 국왕 전하이신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의 기사로서 충성을 다하고, 한 자루 검이 되어 전하를 지켜드릴 것이며, 전하의 적들을 무찌를 것임을 굳게 맹세하는 바입니다.”
그 맹세가 끝나기가 무섭게.
스윽.
지크가 검을 조심스레 휘둘러 그랭구아르의 양어깨와 정수리에 칼날을 살짝 들이댔다.
띠링!
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그랭구아르 데 노블드로워를 기사로 임명하셨습니다!]그렇게 그랭구아르는 지크의 종신 사관이면서 기사가 되었다.
“받아요.”
지크가 이제는 자신의 기사가 된 그랭구아르에게 황후의 초상화를 넘겨주며 말했다.
“제가 드리는 검입니다.”
“검…입니까? 이 초상화가?”
“예, 검입니다.”
지크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랭구아르 사관님을 제가 가진 가장 강력한 카드로 만들어줄 검이죠.”
“무슨 말씀이신지….”
그때였다.
“으음?”
순간 그랭구아르는 뭔가 뜨거운 것이 정수리로부터 흘러나와 자신의 이마를 타고 흘러내려 결국엔 얼굴을 적시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이게 뭐지? 빨간색… 피, 피이?!”
손으로 얼굴을 훔쳐본 그랭구아르가 화들짝 놀랐다.
피.
지크로부터 기사 서임을 받을 때 검이 스쳤던 정수리에서 시뻘건 피가 콸콸 흘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 아니… 전하! 기사 서임을 하시는데 제 정수리에 칼집을 내놓으시면….”
“흠흠. 이제 그 초상화를 찢으시죠.”
“전하?”
“수고하십쇼.”
지크가 재빨리 줄행랑쳤다.
***
같은 시각.
게임 BNW의 개발사이자 유통사인 하이브 게임즈 엔터테인먼트의 한국 지부.
그중에서도 히든 클래스의 소유자 중 하나인 콜네임 더블 오 세븐, 즉 지크를 관리하는 모니터링 팀인 는 뜻밖의 사태에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더, 더블 오 세븐, 더블 오 나인 획득… 실패했습니다.”
오퍼레이터가 경악에 찬 목소리로 보고하자 반쯤 잠들어 있던 팀장이 눈을 번쩍 떴다.
“뭐?! 더블 오 세븐이 실패해?!”
“네… 저도 믿기지는 않지만….”
“왜?!”
“더블 오 나인의 에픽 코드가 더블 오 세븐과 맞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으음? 애초에 안 맞는 코드였나.”
“그런 것 같네요.”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그게, 웬 NPC가 콜네임 더블 오 나인으로….”
“뭐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NPC가 히든 클래스를 얻었다고?! 이런 미친!!!”
“저도 깜짝 놀랐어요, 팀장님.”
“맙소사. NPC가 히든 클래스를 얻는 게 가능할 줄이야.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본사에서 뭔가 조치를 취하려나?”
“그럴 리가요.”
오퍼레이터가 어깨를 으쓱했다.
“언제나처럼….”
“방관한다고?”
“그렇겠죠?”
“그럼 새로 만들어질 섹션9는 NPC를 모니터링하는 팀이 되는 건가?”
바로 그 순간.
띠링!
업무용 홀로그램 스크린에 본사로부터 메시지가 전달되었단 알림창이 떠올랐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콜네임 더블 오 나인에 대한 모니터링은 섹션7에서 함께 맡을 것.]이제는 009가 된 그랭구아르가 007인 지크의 신하 NPC이기에 딱히 틀린 지시 사항은 아니었다.
“으으… 일감이 늘었잖아아아아아아!!!”
물론 프로 월급 도둑을 자처하는 팀장에게는 일이 최소 1.5배는 늘었기에 그리 달가운 소식이 아니었지만.
***
정수리에 칼집이 난 그랭구아르가 지혈을 하고, 초상화를 찢어 전직을 하는 사이.
지크는 햄찌와 함께 치천존이 운영하는 마법 아카데미의 앞마당에 쪼그려 앉은 채 과자를 까먹고 있었다.
“주인 놈아, 아쉽냐?”
“아니.”
햄찌의 물음에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물론 내가 가질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 아주 강한 힘이니까. 근데 나랑 안 맞는 걸 어떡하겠어.”
“뀨우….”
“그랭구아르는 내 신하니까, 그랭구아르가 강해지면 나도 강해지는 거겠지. 그냥 그렇게 생각하려고. 그리고….”
지크가 희게 웃었다.
“지금 내가 가진 이 힘… 이것만 극대화시켜도 충분하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고.”
그때.
“껄껄껄껄!!!”
뒤따라 나온 치천존이 껄껄 웃으며 지크를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호오! 네 녀석이 많이 성장했구나! 예전에는 쥐뿔도 없는 놈이 욕심만 앞세우다 자멸하더니!”
“예?”
“사실 걱정이 되어 가끔 지켜보았다. 없는 능력에 너무 큰 욕심만 부리더구나.”
“저를… 지켜보셨다고요?”
“그렇단다. 너는 내가 가르친 제자 놈들 중에서 제일 쓰레기였으니까 아무래도 좀 걱정이….”
“…….”
“아, 아니다. 상처받지 마렴.”
“이미 받았거든요?”
“크흠!!!”
지크가 발끈하자 치천존이 짐짓 헛기침을 한 번 해보이고는 말했다.
“어쨌거나 네 녀석이 정신적으로 크게 성장한 것 같아 매우 기쁘구나. 강한 힘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인성마저도 훌륭해졌어. 솔직히 감탄했다.”
“뭘 감탄하셨다는 건지….”
“동료의 힘이 곧 너의 힘이라는 걸 깨닫지 않았느냐. 그건 동료로부터 절대적인 신뢰를 받을 자신이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행동이란다.”
치천존은 정말로 지크에게 감탄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지금 네가 가진 힘을 극대화시키려는 생각 역시 매우 어여쁘구나. 본래 어느 분야든 한 우물만 파야 궁극의 경지를 보는 법이거든.”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지크는 치천존의 칭찬에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알았으면 지금 가진 힘을 더욱 열심히 수련하도록 하려무나. 애초에 네 녀석같이 마법에는 쥐뿔도 재능이 없는 쓰레기가 저 힘을….”
“사부님.”
“으응?”
“맞을래요?”
결국, 참다못한 지크가 기어코 하극상을 저지르려던 때.
덜컥!
아카데미의 문이 열리고.
스으으!
그랭구아르가 두 눈에서 새하얀 광채를 내뿜으며 아카데미의 현관을 나섰다.
그러면서 지크에게 보고했다.
“전하.”
“예?”
“신, 그랭구아르. 그랑카브리오와 그의 군대를….”
“……?”
“몰살시키고 돌아오겠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