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90
189
“뭐라고요?”
그랭구아르의 보고를 들은 지크는 제 귀를 의심했다.
[그랭구아르 데 노블드로워]프로아 왕국 왕실의 사관.
제국의 황립 예술 아카데미 수석 입학자이자 수석 졸업자로서, 노래와 연기와 무용과 서사시에 능한 팔방미인형 예술가이지만 어렸을 적 꿈인 사관이 되기 위해 인기 연예인의 길을 포기하고 공무원이 되었다.
프로아 왕국의 국왕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음과 동시에 로 전직했다.
•존재 구분 : NPC
•종족 : 인간
•레벨 : 14
•직위 : 종신 사관 / 기사
•계급 : 자작
•클래스 : 팬텀싱어
•칭호 : 가왕 / 천의 얼굴 / 팬텀 댄서 / 연참왕 / 월급도둑 / 프로 외화벌이꾼 / 활자중독자 / 기록 덕후
•스킬 :
– 현재 과충전 상태로 모든 스킬이 활성화된 상태입니다!
아무리 히든 클래스인 로 전직을 했다고 하더라도 고작 14레벨 주제에 무려 마스터급 몬스터인 그랑카브리오에게 비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저기요?”
지크가 그랭구아르에게 말했다.
“사관님 지금 정신 못 차리시는 것 같은데… 몰살이 아니라 개죽음당하실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 계시고 그랑카브리오는 치천존 어르신께….”
“아닙니다.”
그랭구아르가 고개를 저었다.
“가능합니다.”
“말이 되는 소릴 하셔야지….”
“해야만 합니다. 제 머릿속에 어떤 여인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습니다. 복수하라고… 저들을 죽이라고, 모조리 죽여서 지옥으로 보내 버리라고.”
“아무래도 좀 미치신 것 같은데.”
“가야 합니다.”
“불가능하다니까요.”
그때, 지켜보고 있던 치천존이 끼어들었다.
“가능할 게다.”
“예?!”
지크가 화들짝 놀랐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저 녀석이 얻은 힘은 황후의 사념체가 오랜 세월 묵으며 신의 힘처럼 된 것이다. 한(恨)이 서릴 대로 서린 것이지.”
“그래서요?”
“그 힘이 무려 2,500년을 묵었다. 그렇다면 그간 쌓였던 원한과 증오가 어마어마하겠지? 쉽게 말하자면, 지금 저 녀석은 과충전 상태다.”
“아하!”
“거기다가 힘의 원천인 황후의 사념체가 가장 증오하는 적이 저 앞에 나타나질 않았더냐? 모르긴 몰라도 충분히 가능할 게다. 물론 그 이후에는….”
치천존이 덧붙였다.
“네 말대로 개죽음이나 당할 정도로 약해지겠지만, 지금의 저 녀석은 과충전된 상태이니 능히 마스터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게다.”
“그렇군요.”
“볼만할 테니 구경이나 하러 가자꾸나.”
“그러죠.”
지크는 치천존의 권유를 받아들여 그랭구아르가 그랑카브리오와 그의 군대를 상대하는 걸 구경하기로 했다.
“주인 놈아! 아까 샀던 팝콘이나 꺼내자!”
“그래.”
지크는 햄찌와 함께 팝콘을 준비했다.
***
그랑카브리오와 그의 군대를 ‘몰살’시키기 위해 나선 그랭구아르.
그런 그랭구아르는 걷지 않았다.
지면으로부터 약 10센티미터 상공.
스으으으!
그랭구아르는 마치 귀신이라도 된 듯, 지면 위를 미끄러져 빠르게 이동했다.
[귀신의 춤]팬텀싱어의 이동기&회피기.
근접전 능력이 형편없는 팬텀싱어에게는 생존을 위한 밥줄 스킬이다.
과연 히든 클래스답게, 팬텀싱어의 스킬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그렇게 쌍떡잎 마을의 입구까지 도착한 그랭구아르는, 저 멀리서 다가오는 그랑카브리오와 그의 군대를 마주하게 되었다.
스윽.
그랭구아르가 품속에서 아이템을 꺼냈다.
그리고 노래가 시작되었다.
[파멸의 노래]팬텀싱어의 궁극기.
음파의 진동 패턴을 극대화시켜 적들의 분자 구조를 ‘분해’시켜 버리는 무시무시한 노래이다.
※현재 팬텀싱어의 모든 스킬들은 그랑카브리오와 그의 군대에게 1,000퍼센트의 추가 데미지를 줍니다.
팬텀싱어의 궁극기인 파멸의 노래의 파괴력은 가히 엄청났다.
푸슥, 푸스슥!
그랑카브리오의 군대.
레벨 180의 석상들은 파멸의 노래 앞에 그 어떠한 반항도 하지 못한 채 한 줌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남은 건 그랑카브리오.
하지만 마스터급의 몬스터인 그랑카브리오조차 파멸의 노래를 버티지는 못했다.
“내… 내 암ㅋ….”
경악에 찬 혼잣말도 내뱉지 못할 정도로.
뒤이어 그랭구아르가 노래의 성량을 더 높이자 그랑카브리오는 두 귀를 막은 채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것도 잠시.
푸화아악!!!
그랑카브리오의 귀, 코, 눈, 입에서 시커먼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더니.
푸슥, 푸스슥!
황후를 찾아 부활한 그랑카브리오의 육신이 미립자 형태로 ‘분해’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소멸.
2,500년 만에 부활한 폭군의 죽음치고는 너무나 허무하고, 또 시시한 최후였다.
그것이 황후의 사념이 진정으로 원한 바였다.
미친 황제 그랑카브리가 부활해서 그 어떠한 것도 이루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음을 맞는 것.
추악한 욕망의 화신에게는 그보다 더한 고통이 없을 테니까.
“이제… 웃을 수 있습니까?”
노래를 마친 그랭구아르가 혼잣말했다.
[그녀는 영원히 웃을 수 없어요.]“…….”
[단지 더는 고통 받지 않게 되었을 뿐….]“부디 편히 쉬시기를.”
그 말을 끝으로.
털썩!
그랭구아르가 쓰러졌다.
과충전 상태에서 너무나도 큰 힘을 썼기에 그만 탈진해 버리고 만 것이다.
***
“미친.”
파멸의 노래의 위력을 본 지크는 혀를 내둘렀다.
“광역딜이 어지간한 마법사들은 명함도 못 내밀겠는데…?”
그만큼 그랭구아르가 보여준 광역딜은, 비록 과충전 상태였다 하더라도 엄청나게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제네시스 길드랑 전면으로 붙을 때 부려 먹어야겠다.’
아직은 햇병아리에 불과해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게 분명했지만, 장차 그랭구아르의 레벨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지크의 전력은 더욱 강해질 게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확실히 강하더구나.”
치천존도 그런 지크의 생각에 동의했다.
“보호 마법을 쳐놓지 않았으면, 마을 사람들까지 모조리 죽일 뻔했어.”
당장 지크부터가 파멸의 노래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치천존이 고위급 마법으로 해로운 주파수 대역을 모조리 차단했기 때문이었다.
“보거라. 나무와 풀들조차 모조리 죽었구나.”
“헉?”
“무서운 능력이야. 여인의 한이 맺히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더니. 그 깊은 증오가 무려 2,500년을 묵었으니 그 노래마저도 파멸 그 자체로구나.”
“맞는 말씀 같습니다.”
“근데 어디 가느냐?”
치천존이 발걸음을 옮기는 지크를 향해 물었다.
“주울 게 있으면 주우려고요.”
“엥? 그게 무슨 소리냐?”
“제가 폐지 줍기를 엄청 잘하거든요. 별명이 대머리독수리입니다, 대머리독수리.”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너랑 잘 어울리는구나.”
“…이 양반이 진짜.”
지크는 심심하면 그를 조롱하는 치천존에게 또다시 하극상을 저지르고 싶은 걸 애써 참아야만 했다.
***
다행스럽게도, 는 아이템만큼은 파괴시키지 않은 것 같았다.
[알림: 아이템을 획득했습니다!] [알림: 아이템을 획득했습니다!] [알림: 아이템을 획득했습니다!]지크는 그랑카브리오가 소멸한 자리에서 전설급 아이템을 무려 세 개나 주워 먹었다.
갑옷이 각 부위별로 파츠가 나뉘어 있지 않은 풀 플레이트 메일의 형태인지라 사실상 여덟 개 이상을 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개꿀.”
비록 히든 클래스를 그랭구아르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지만, 전설급 아이템을 두둑이 먹은 것으로 그나마 위안을 삼는 지크였다.
“주인 놈아.”
“응?”
“그만 주워 먹어라. 그러다 진짜 탈 나겠다.”
“뭐 어때. 어차피 난 대머리독수리인데.”
“…….”
“아. 그렇다고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가 된다는 말은 절대 아냐. 그건 인격 모독이라고. 내가 대머리독수리인 이유는 뭘 주워 먹어서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주인 놈아?”
“그냥 그렇다고.”
지크가 어깨를 으쓱하던 때였다.
두두두두두-!!!
저 멀리서 약 100여 명의 말 탄 기사들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왔다.
‘뭐지? 적인가?’
깜짝 놀란 지크가 망치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말을 탄 100명의 기사들은 지크가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의 존재들이 아니었다.
‘기사들 레벨 상태가?’
왜냐하면, 100명의 기사들의 레벨이 모두 270 이상으로, 쟁쟁하기가 이를 데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타고 있는 말들조차 란 이름으로 레벨이 100이 넘었다.
그런 기사들의 가장 선두에 선 사람은….
[란돌 드 발렌시아]•존재 구분 : 네임드 NPC
•레벨 : 350
•클래스 : 임페리얼 나이트
•티어 : 소드 마스터
•소속 : 마우레키온 제국 징벌 기사단
•작위 : 후작
•계급 : 육군 중장(★★★)
•직위 : 징벌 기사단 단장
•칭호 : 검호 / 황제의 검 / 오성천★
또 하나의 마스터.
이른바 이라 불리는 오성천의 일원, 란돌 드 발렌시아 후작이었다.
“모험가인가.”
말을 멈춰 선 란돌이 지크를 향해 물었다.
“그렇습니다만.”
“신분을 밝혀라.”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라고 합니다.”
“아. 프로아의 왕이셨구려.”
란돌은 지크의 신분을 알고도 말에서 내리지 않았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현재 대륙 최강대국인 대제국 마우레키온의 후작쯤 되면 약소국의 왕 따위는 벌레 취급해도 결코 이상하지 않을 테니까.
그나마 경어를 사용해준 것만 해도 지크를 엄청나게 대우해준 셈이었다.
“그대에 관한 이야기는 얼핏 들은 바가 있소. 프로아의 왕이여. 지금 보니 실로 대단한 근골을 가지고 계시는구려.”
“과찬이십니다.”
“하나만 묻겠소. 우리는 광기의 유적에서 튀어나온 고대의 황제와 그 군대를 진압하러 왔소. 그런데 갑작스럽게 사라졌더군. 도대체 진군하던 고대의 군대는 어디로 사라진 것이오?”
“제 신하가 소멸시켰습니다.”
“으음?”
“그게….”
지크가 란돌에게 간략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구려. 알겠소. 내 황제 폐하께 보고를 드려 그대의 공로를 치하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소이다.”
“굳이 그러실 것까지는….”
“아니오. 고대의 군대가 본국의 많은 도시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는데, 그들을 퇴치한 그대에게 어찌 공로가 없다 할 수 있겠소? 내 반드시 황제 폐하께 보고를 드리도록 하겠소. 그럼, 이만.”
검호 란돌은 그렇게 말하고는 징벌기사단과 함께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미쳤네.’
지크는 멀어지는 란돌과 징벌기사단을 바라보며 내심 혀를 내둘렀다.
‘그랑카브리오랑 그 군대를 진압하는 데 고작 100명밖에 안 보내? 휴. 갈 길이 멀다. 멀어.’
지크는 마우레키온 제국의 징벌기사단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느꼈다.
하지만 그건 비단 지크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모든 게이머가 공통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왜?
지금의 BNW는 게이머들이 NPC들을 이기는 게 불가능한 게임이었으니까.
그러니 게이머들이 뉘르부르크 대륙에서 함부로 날뛰지 못하는 것이겠지만.
‘프로아 같았으면 전시 동원령까지 내려서 전면전을 준비해야 했을 텐데. 제국에 비하면 진짜 아무것도 아니구나. 나도 더 강해지고, 프로아도 더 강하게 키우자.’
지크는 스스로와 프로아 왕국의 발전을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
“감사했습니다. 또 뵙겠습니다.”
“그래. 잘 가려무나. 심심하면 찾아오거라.”
치천존과 인사를 나눈 지크는 그랭구아르와 햄찌를 프로아로 보내 놓고 로그아웃했다.
다시 청담동 .
“…그래서 그 NPC가 히든 클래스를 먹고 더블 오 나인이 됐다고?”
“응.”
“살다 살다 별일을 다 보네.”
천우진이 황당해했다.
“NPC가 히든 클래스로 전직이 가능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 말입니다.”
승구 역시 마찬가지.
“뭐 어쩌겠어. 든든한 전력이 합류했다고 생각해야지.”
“그래.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안 그래도 너 엄청 바빠질 텐데 잘됐다.”
“응? 내가 바빠져? 그게 뭔 소리냐. 지금도 바빠 죽겠는데.”
태성이 천우진의 말에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물었다.
“짜잔.”
천우진이 웬 뉴스 기사를 띄워 태성에게 보여주었다.
뉴스의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V스포츠] D-7 세력전 진검승부의 행방은?지크의 원수인 제네시스 길드와 현재 10대 길드 중 제8위를 차지하고 있는 지티 길드와의 세력전 소식이었다.
“어때. 고춧가루 팍팍 뿌리고 싶지 않냐?”
천우진이 지크에게 물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