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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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고춧가루 팍팍 뿌리고 싶지 않냐?”
“어때. 고춧가루 팍팍 뿌리고 싶지 않냐?”
“어때. 고춧가루 팍팍 뿌리고 싶지 않냐?”
천우진의 말은 태성의 귓가에 무섭도록 때려 박혔고, 마치 에코 효과를 받은 것처럼 울려 퍼지기까지 했다.
“고춧가루라….”
태성이 천우진의 말을 곱씹었다.
“뿌리고 싶지… 아주 그냥 태국산 쥐똥고추를 포대로 부어버리고 싶은데…?”
“헉! 사악한 자식! 그게 얼마나 매운데!”
천우진이 지크의 사악함에 경악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내가 해주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으면 휘발유라도 들이붓고 불까지 붙이고 싶을걸?”
천우진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게 뭔 소리냐?”
“내가 널 어떻게 알게 됐게?”
뜻밖에, 천우진이 오랫동안 감춰왔던 이야기를 입에 담았다.
“200레벨 찍으면 말해준다며. 지금 199레벨이니까 쫌만 기다려라.”
“지금 말해줄게.”
“진짜?”
“199나 200이나. 어차피 경험치도 91퍼센트라며. 그럼 200은 찍은 거라고 치고, 말해줄 수 있지.”
“뭔데?”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천우진이 썰을 풀기 시작했다.
***
때는 바야흐로 2년 전.
태성이 운영하는 비머 길드가 제네시스 길드에게 신나게 털리고 있을 무렵.
“우진아. 미안한데. 나 진짜 딱 한 번만 도와줘라.”
“그게 무슨 소리야?”
천우진은 아는 게이머로부터 도움 요청을 받고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는데, 그 사연이 꽤 흥미로웠다.
“…그러니까 제네시스 놈들한테 탈탈 털리다가 꼭 필요한 아이템이 값싸게 매물로 나왔다? 그래서 사채를 끌어다가 그 아이템을 샀고?”
“응.”
“도대체 사채를 왜 쓴 건데? 형 바보야?”
“아니… 1금융권에서는 주택담보대출 빼면 게이머들한테 대출 안 해주니까. 담보도 없는데 돈을 어떻게 빌려? 당장 돈은 필요한데….”
“어휴. 이 철없는 인간아.”
“그래서 그런데… 빚만 어떻게 해결하게 11억만 빌려주면 안 되겠냐? 이자 감당이 안 된다.”
“내가 형이니까 빌려준다. 대신 제네시스랑 다시 싸우지 마. 돈 생겼다고 또 처박을 생각하지 말라고.”
“알겠어.”
평소 그 게이머와 매우 두터운 친분이 있던 천우진은 무려 11억이란 거금은 차용증 하나 없이 빌려주었고.
제네시스 길드를 피해 활동 영역을 완전히 옮긴 그 게이머는, 그로부터 1년이 지난 다음 천우진에게 돈을 갚았다.
“형 이제 뭐 할 거야? 설마 복수?”
“복수는 무슨. 제네시스 길드고 나발이고. 지난 1년 동안 고생한 거 생각하면 아주 치가 떨린다. 그만할래. 그냥 조용히 게임이나 하려고.”
“그럼 그러던지.”
그러던 중 천우진은 매우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우연히 해당 사채업자의 사무실 근처를 지나던 도중 많은 게이머가 거길 드나드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뭐지? 저 사람 샐럽까진 아니라도 꽤 유명한 스트리머 아니었나? 돈도 꽤 벌 텐데 왜 사채업자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서 나오는 거야? 이거 냄새가 좀 나는데.’
천우진은 문득 게임 속에서 제네시스를 한번 추적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과정은 이러했다.
1. 제네시스 길드와 A라는 게이머가 시비가 붙게 된다.
2. A라는 게이머는 곧 궁지에 몰린다.
3. 이때 A에게 꼭 필요한, A가 빚을 내서라도 맞추고 싶은 아이템이 값싸게 매물로 올라온다.
4. A는 사채업자의 사무실을 찾아가 돈을 빌린다.
5. 원하는 아이템을 맞춘 A가 호기롭게 제네시스 길드에 덤빈다.
6. A는 또 탈탈 털리고, 게임 속에서는 아이템을 모조리 잃고 현실에서는 빚쟁이가 된다.
이 과정에서 제네시스 길드의 교활함이 드러났는데, 그들은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지 않은 채 게이머들을 상대로 때론 져주기도 하고 때론 이기기도 하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다.
게이머들이 ‘이 아이템만 맞추면 내가 이겨!’라고 착각하도록….
그런 뒤 해당 게이머가 빚까지 내 고가의 아이템을 맞추면, 그때부터 제네시스는 본래 힘을 드러내 철저하게 짓밟은 뒤 빈털터리로 만들었다.
게임 속에서도 짓밟고.
현실에서는 그 무섭다는 사채업자에게 시달리게 만들고.
제네시스의 표적이 된 게이머들은 현실과 가상 현실 모두에서 고통을 받아야만 했다.
심지어 빚을 감당하지 못한 채 그만 자살해버린 게이머마저 있었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천우진이 개인적으로 알아본 결과, 사채업자의 자금 출처는 다름 아닌 제네시스 길드의 길드 마스터 채형석의 계좌였다.
즉, 채형석은 제네시스 길드를 이용해 게이머들을 사채의 늪에 빠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
회상에서 다시 현실로.
“이름이 뭐였더라, 그 사채업자?”
“마동포.”
“그래, 마동포. 심심해서 그놈 사무실 근처에 차 대놓고 있다가 널 봤거든. 근데 그때 봤던 놈이 덜컥 히든 클래스로 전직해 있네? 그래서 알아본 거지.”
“근데 어떻게 내 얼굴을 기억하냐? 너 기억력 좋다?”
“너 그때 사무실 앞에서 펑펑 울었잖아.”
“……?”
“엄마 미안해 이러면서 질질 ㅉ….”
“닥쳐.”
태성이 천우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뚝배기 깨지기 싫으면.”
“미, 미안….”
“그래서.”
태성이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천우진에게 물었다.
“내가 그럼 처음부터 채형석 그 새끼 설계에 당한 거라고?”
“그것보다 더할걸?”
“더해…?”
“배신자들 알지? 너 배신하고 제네시스에 붙은 놈들.”
“그런 놈들이 있긴 했지.”
“걔네 원래부터 제네시스 길드 소속이었어.”
“뭐라고?”
“너 그냥 길드 처음 만들 때부터 설계당하고 있었다고.”
천우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너 말고도 당한 사람 한둘이 아니다. 적당히 게임 잘하는 놈들 몇 명 찍어서 길드 만들게끔 유도해놓고 시간이 지나서 길드가 적당히 커지잖아? 그럼 잡아먹는 거야. 일종의 가두리 양식이랄까….”
그때였다.
“혀, 형님!”
가만히 앉아 천우진의 얘기를 듣고 있던 승구가 재빨리 튀어 나갔다.
“형님! 자, 잠깐만요! 지금 어디 가십니까!”
“놔.”
“형니이임! 제발요! 참으십쇼! 형님 빡치신 건 아는데 그래도 그러시면 안 됩니다!”
천우진 역시 마찬가지.
“야야! 태성아! 참아! 너 이러라고 내가 얘기해준 거 아니잖아! 너 인생 망칠 일 있냐?”
“맞습니다! 형님! 지금 채형석 찾아가서 칼빵 놓는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천우진과 승구가 태성을 필사적으로 막아섰다.
“뭐야.”
그러자 태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쪽팔리게 왜들 이래? 사람들 쳐다보잖아.”
“태성아. 야. 친구야. 이러지 말자. 너 열받은 건 아는데, 그렇다고 채형석 찾아가서….”
“누가 채형석을 찾아가?”
태성이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듯 퉁명스레 대꾸했다.
“나 집에 가는 건데?”
“지, 집?”
“게임하러.”
“화 안 났냐?”
“X나 빡쳤지?”
“근데 채형석 안 담그러 가?”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멀쩡한 인생 조질 일 있냐? 안 그래도 먹고살 만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으음?”
“개빡치니까 집에 가서 고춧가루 뿌릴 궁리나 할란다.”
그렇게 말한 태성이 휘적휘적 발걸음을 옮겨 페라리에 올라탔다.
‘니가 그 세력전을 이기면, 내가 성을 개 씨로 간다.’
태성은 제네시스 길드가 이번 세력전에서 절대로 승리하지 못하게 만들겠노라 굳게 다짐했다.
***
다시 로그인해 뉘르부르크 대륙에 강림한 지크는 곧장 자신의 집무실에 틀어박혔다.
‘이기게 내버려 두면 안 돼. 무조건 막아야 돼.’
만약 제네시스가 이번 세력전에서 지티 길드를 잡는다면, 그때는 정말 걷잡을 수 없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정면 대결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지난번 지크가 채형석을 팰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운이 따라주었기 때문이었다.
길드원들을 믿지 못한 채형석이 홀로 쟁탈전에 참가하고, 거기에 더해 지크가 전투 비행 함대를 통해 폭격을 가했기에 가능했던 일일 뿐이었으니까.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몰라. 어차피 정체 까발려진 거, 제네시스가 혹시나 더 크기 전에 고춧가루 팍팍 뿌려놔야 돼.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약해지게 만든 다음에… 너덜너덜해졌을 때 때려죽이는 거다.’
지크는 사부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적을 약해지게 만든 다음, 한 방에 때려죽인다.
아직 한 방에 때려죽일 경지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적을 약해지게 만든다.’라는 가르침은 충분히 실행 가능했다.
지금부터 제네시스 길드가 뭔가를 할 때마다 고춧가루를 뿌려서 약해지게 만들다 보면, 지크는 강해지고 제네시스는 약해지면서 어느 순간 정면 대결이 가능해지는 날이 올 테고.
‘어떻게 고춧가루를 뿌리지? 세력전에 끼어들 방법이 없을까?’
하지만 현재의 지크로서는 그 세력전에 끼어들 만한 수단이 딱히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세력전에 참여하려면 해당 길드에서 6개월 이상 길드원으로 가입되어 있어야 했기에, 지티 길드에 용병으로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면 저 자식들을 X되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러던 중.
“…전하?”
지크는 문득 들려오는 미켈레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언제 왔어? 들어오는지도 몰랐는데.”
“무슨 고민이 그리 깊으십니까?”
“아. 그게 말야.”
지크가 미켈레에게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흠. 어려운 문제군요.”
“그렇지.”
“전쟁이라면 몰라도 정식 세력전은 아공간에서 치러지니까, 어떻게 끼어들 방법이 없으니 말입니다.”
BNW에서 길드와 길드 간의 싸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첫째, 전쟁.
말 그대로 전쟁이다.
PVP가 가능한 필드에서라면 언제 어디서든 24시간 내내 싸운다.
상대 길드의 을 함락시킴으로써 패배한 길드에게 버프를 걸 때까지 싸우는 것이다.
만약 버프가 걸리게 되면 승리한 길드 소속 길드원들로부터 데미지를 1년 동안 무려 50퍼센트나 더 받게 되기에, 사실상 길드가 와해될 수밖에 없었다.
둘째, 세력전.
이라는 아공간 필드에서 양쪽 길드끼리 정면 대결을 펼치는 것.
길드의 심장부이자 상징이며 깃발 역할을 하는 을 걸지 않는 대신에, 각종 이권과 아이템을 두고 싸우는 것.
그 두 가지 형태의 싸움 중 이번 제네시스와 지티의 대결은 세력전이었으므로, 지크가 끼어들 방법이 없었다.
“흠. 어려운 문제군요.”
미켈레가 눈살을 찌푸렸다.
제아무리 천재적인 행정가에다 지략가인 미켈레라고 할지라도 세력전이 벌어지는 에 지크가 끼어들 수 있도록 해줄 방법 따위 없었다.
“하지만 영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만….”
“방법이 있어?”
지크의 눈이 크게 떠졌다.
“있으면 말 좀 해봐. 어떻게든 막아야 해.”
“어렵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
“세력전이 벌어지기 전에 주요 인물들을 암살하시면 간단하지 않겠습니까?”
“암살…?”
“모험가들이 죽어서 부활하기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제가 알기로는 이틀….”
“정확히 49시간.”
BNW에서 사망 후 부활까지 48시간이 아닌 49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개발자 중 하나가 사람은 죽으면 49일 동안 구천을 떠돈다-49재-는 불교적 사후 신앙을 재미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덕 중의 덕은 양덕후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듯했다.
“그럼 제네시스 길드에 소속된 주요 인물들이 세력전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죽여 버리시는 겁니다. 승부의 전장에 입장하기 전에 대규모 폭격을 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 저, 전하? 어디 가십니까?”
미켈레가 로그아웃하려는 지크에게 물었다.
“정보 수집하러.”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크의 발밑으로 로그아웃의 이펙트인 마법진이 떠올랐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