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93
192
좁은 선술집 안에 가득 들어찬 초록색 안개는 제네시스 길드원들의 체력을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밀폐된 공간에서 쓰니까 딜이 세 배는 더 들어가네.’
지크는 스킬이 적들의 체력을 훅훅 날려버리는 걸 보며 내심 놀랐다.
물론 이레디에이트 스킬의 데미지가 더 들어간 또 하나의 이유가 있긴 했다.
조금 전 작은 무대에 올랐던 가수.
작은 무대를 전전하는 가수로 변장했던 그랭구아르가 부른 노래는 평범한 노래가 아닌 팬텀싱어의 밥줄 스킬인 라는 곡이었다.
[귀신의 노래]적들의 생명력을 깎고,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며, 아군이 가하는 데미지를 증가시키며, 크리티컬 확률을 올려줍니다.
이레디에이트의 딜이 무려 세 배나 더 들어간 이유는, 좁은 공간도 공간이겠지만 귀신의 노래의 스킬 효과인 데미지 증폭 덕분이었다.
비록 과충전 상태일 때만큼의 위력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여기에 지크의 디버프 능력이 더해진다면?
‘실험해보자.’
지크가 좁은 선술집 안에 블레이즈 필드를 전개해보았다.
화륵, 화르륵!
파멸의 불꽃이 타오르며 정신을 못 차리는 제네시스 길드원들을 불태우기 시작했고.
퍽, 퍼억!
뒤이어 지크의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물론 제네시스 길드원들이라고 얌전히 당하고만 있던 건 아니었다.
“너 뭐야! 이 새끼야!”
“뒤질래?”
“저 새끼 죽여!”
제네시스 길드원들이 지크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쿵쾅! 쿵, 쾅! 우당탕!
그러자 좁은 선술집 안은 이내 곧 지크와 제네시스 길드원 간의 난투극으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그 전부터 방사능 에너지와 파멸의 불꽃으로 인해 난장판이 되어 있긴 했지만 말이다.
뚝, 딱, 뚝, 딱!
지크의 망치가 제네시스 길드원들의 머리통을 때리고.
[알림 : Critical!!!] [알림 : Critical!!!] [알림 : Critical!!!] [알림 : Critical!!!] [알림 : Critical!!!]지크의 눈앞에는 치명타를 상징하는 이란 단어가 끊임없이 떠올랐다.
그로부터 1분 후.
데굴데굴….
선술집 내부에 제네시스 길드원들의 시체와 더불어 그들이 떨군 랜덤 드랍 아이템들이 뒹굴었다.
주섬주섬-
지크는 제네시스 길드원들이 떨군 랜덤 드랍 아이템을 인벤토리에 주워 담고는 선술집을 나섰다.
뚝뚝.
그런 지크의 망치에서는 시뻘건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최근 지크의 망치에는 피가 마를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알림 : 새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새로운 칭호가 주어졌다.
“예, 예. 어디까지 추락하나 한번 두고 봅시다.”
하지만 지크는 전혀 기뻐하지 않은 채 시스템을 향해 빈정거렸다.
[알림 : 칭호 획득!] [알림 : 칭호 획득!]그런 칭호들의 효과는 다음과 같았다.
[망치살인마]망치로 사람(NPC포함)을 많이 죽인 게이머에게 주어지는 칭호.
•타입 : 칭호
•등급 : 레어
•효과 :
– 망치로 적을 기습할 때, 10%의 추가 데미지
[뚝배기 브레이커]적의 머리를 많이 때린 게이머에게 주어지는 칭호.
•타입 : 칭호
•등급 : 유니크
•효과 :
– 적의 머리를 타격할 때, 10%의 추가 데미지
– 적의 머리를 타격할 때, 크리티컬 확률 35% 증가
두 칭호 모두 효과가 괜찮은 편이었지만, 문제는 역시나 그 명칭이었다.
절륜왕과 대머리 독수리에 이어 망치살인마와 뚝배기 브레이커라니.
이쯤 되면 시스템이 작정하고 지크의 이미지를 맨틀까지 처박으려고 작정한 것으로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다 내 업보려니.”
이미 지크는 체념한 지 오래였지만 말이다.
‘자. 그럼 다음 타깃을….’
지크가 그렇게 생각하며 막 선술집을 나섰을 때.
“잠깐!!!”
마을의 치안을 담당하는 기사와 병사들이 우르르 달려와 지크의 앞을 가로막았다.
“당장 무기를 내려놓고 땅바닥에 엎드려!”
“예?”
“네놈을 살인, 방화, 기물 파손, 소음 공해 유발의 죄목으로 즉시 체포한다!”
이것이 바로 게이머들이 마을에서 함부로 PVP를 벌이지 못하는 이유였다.
뭔가 소란을 피하게 되면 치안을 담당하는 NPC들이 출동하는 것이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지크가 기사에게 말했다.
“저는 아무런 죄도 저지르지 않았는데요?”
“뭣이?! 지금 네놈이 벌인 일의 증거가 버젓이 눈앞에 있는데….”
“살인은 모험가들을 죽인 거니까 아니죠?”
“……!”
“방화랑 기물 파손은 이 건물 전체가 제 거라서 부수든 태우는 제 마음 아닙니까?”
“이 건물이 니 거라고?”
“여기요.”
지크가 기사를 향해 등기부권리증, 그러니까 땅문서와 집문서를 기사에게 내밀었다.
아직 잉크조차 채 제대로 마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그 문서들은, 실제로 작성된 지 정확히 한 시간밖에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것들이었다.
[죄송한데. 저 땅이랑 건물 통째로 저한테 파시죠.] [그, 그게 무슨 소리요?] [두 배 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 현찰로요.]사실 지크는 한 시간 전 전 주인에게 두 배의 웃돈을 주고 급하게 그 건물 전체를 매입해 버렸던 것이다.
“이, 이런….”
기사는 당황했다.
“모비딕 경! 그 건물 그 모험가 것 맞소! 아까 내가 팔았어!”
“그, 그랬습니까?”
“두 배나 웃돈을 받고 팔았다네! 껄껄껄!”
결국, 본래 건물주까지 나서서 증언해주자 기사는 지크를 체포할 수가 없게 되었다.
“여기요.”
“이, 이게 뭡니까?”
지크가 불쑥 금화 몇 닢을 내밀자 기사가 당황했다.
“벌금요.”
“벌그음?”
“살인, 방화, 기물 파손은 아니지만 소음 공해는 인정합니다.”
“그, 그렇소… 경범죄긴 하지만 소음 공해도 명백한 범죄이긴 하오.”
“남는 건 병사들 데리고 어디 좋은 데 가서 회식이라도 하시죠. 날도 더운데 시원한 맥주라도 한잔하셔도 좋고요. 아. 근무 중엔 음주 안 되던가요?”
그렇게 말한 지크가 유유히 기사들과 병사들을 지나쳐 자기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건물 재건축해서 가게나 하나 내야겠다. 당장은 손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최소한 본전은 칠 테니까.’
지크는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
다시 로그인한 채형석.
“경진이, 호석이, 태호, 민지, 종원이….”
민우가 보고했고.
꿈틀!
죽은 게이머들의 이름이 한 명 한 명 언급될 때마다 채형석의 관자놀이가 파르르 떨렸다.
분노를 애써, 정말이지 최대한 억누르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래서.”
채형석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없는 동안… 정말 그 잠깐 사이에 33명이 추가로 죽었다고?”
“으, 으응.”
민우가 대답하던 순간.
짜악!
채형석의 손바닥이 민우의 뺨을 후려쳤다.
“혀, 형…!”
“야 민우야.”
“응….”
“너 내가 길드원들 똑바로 관리하라고 했지.”
“응.”
“근데 33명이 추가로 죽어?”
“형, 그게 아니라 그 새끼가 길드원들이 모여 있는….”
“닥쳐 이 무능한 새끼야.”
“……!”
“믿고 맡겼더니 일을 이따위로 처리하네.”
채형석이 민우를 향해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길드원 전원 접속하라 그래. 한 놈도 빠짐없이 다. 그리고 척살령 내려.”
“척살령? 범인 찾았어?”
“한태성. 아니, 이제는 지크프리트인가? 그 새끼가 범인이다.”
채형석은 범인이 지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아 이 새끼… 도대체 뭐 하는 새끼지?”
“들리는 말에 옛날에 우리 길드한테 한번 밟혔던 놈이라던데? 그때 이름이 태성이라던가?”
“한태성? 나도 알지. 거 X나 독한 놈이야. 능력은 쥐뿔도 없는데 독하기는 또 오지게 독해요. 포기를 모른다니까.”
척살령의 발동되자 제네시스 길드원들은 너도나도 삼삼오오 모여 다니며 지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메타모포시스 마스크로 정체를 감춘 지크를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이는 사람마다 NPC고 게이머고 할 것 없이 통찰의 룬을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비추어 봐도 제네시스 길드원들은 지크의 그림자조차 밟을 수가 없었다.
제네시스 길드원들로서는 지크가 스스로 정체를 드러내기 전까지는 누가 지크고 누가 아닌지를 알아낼 방법이 없는 것이다.
“아. 이 새끼를 어디서 찾아. 벌써 숨었을 게 분명….”
그때였다.
“야! 거기 니들! 빨리 이쪽으로!”
피투성이가 된 제네시스 길드원 하나가 소리쳤다.
“뭐야. 무슨 일인데?”
“저기 저 숲속! 저기에서 지금 우리 길드원들이랑 그 지크인가 뭔가 하는 새끼랑 싸우고 있어! 지금 밀리고 있으니까 빨리 도와줘!”
그 말을 들은 약 열다섯 명의 제네시스 길드원들은 해당 길드원을 따라 숲속으로 향했다.
하지만 헐레벌떡 뛰어간 숲속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야? 왜 아무도 없어?”
“어디야? 여기 맞아?”
“안내를 하려면 똑바로 하라고!”
제네시스 길드원들이 당황하던 때.
스륵, 스르륵!
갑자기 검은 그림자들이 땅 밑에서 기어 올라오더니.
퍽, 퍼억!
제네시스 길드원들의 낭심을 향해 로우 블로를 갈긴 뒤 곧바로 다양한 형태의 서브미션 기술들을 걸어 그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그런 제네시스 길드원들의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는 하나같이 똑같았다.
[알림 : 상태 이상!] [알림 : 당신의 캐릭터가 소중한 부위를 가격당해 에 걸렸습니다! 최대한 정신을 집중해 고통을 수습하세요!] [알림 : 상태 이상!] [알림 : 당신의 캐릭터가 서브미션 기술에 당해 에 걸렸습니다!]제압된 제네시스 길드원들.
휘익, 툭!
그들을 안내했던 길드원이 가슴에 달린 배지를 땅바닥에 내던졌다.
“휴. 부정 탈 뻔했네.”
제네시스 길드원으로 위장했던 지크가 자신의 가슴팍, 그러니까 배지가 달려 있던 부위를 어루만지며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적들을 속이기 위해서라지만 제네시스의 배지 자체가 지크에게는 더없이 혐오스럽게만 느껴졌다.
“흠. 이제 마구니들을 정리해볼까.”
지크가 다시금 피 묻은 망치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
그로부터 두 시간 후.
“으… 으으으…!!!”
채형석은 또다시 분노에 몸을 떨었다.
거의 20분 단위로 길드원들이 죽어 나가고 있단 보고가 올라오고 있었다.
누군가는 길 가다 무려 망토에 목이 잘리고.
누군가는 속아서 따라갔다가 머리통이 부서지고.
누군가는, 이건 정말 황당하게도 여성 길드원이 웬 잘생긴 NPC를 따라갔다가 봉변을 당했다고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채형석을 더욱 열받게 하는 것은, 죽어 나간 길드원들의 대부분이 버퍼들이란 점이었다.
“한태성 이 새끼…!!!”
제네시스 길드는 길드 마스터인 채형석을 중심으로, 하위 버퍼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대규모 집단전에서 더욱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런 제네시스 길드에 버퍼들의 숫자가 준다?
이는 곧 전력의 약화를 의미했다.
애초에 제네시스 길드가 10대 길드에 올라설 수 있었던 이유도, 채형석을 중심으로 다수의 버퍼를 기용하여 대규모 집단전에서 연전연승을 일구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질보다는 양.
부족한 질은 버프로 메꾸고, 개개인의 능력보다는 굳건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전투를 치른다.
그게 제네시스 길드의 모토였건만….
그런데 그 장점이 위협받고 있었다.
막대한 이권과 아이템들이 걸린 세력전을 코앞에 두고, 2년 전에 밟아 죽였다고 생각했던 벌레로부터 역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운영진들…. 전부 소집해. 세력전 시작 전까지 이 새끼 무조건 잡아 조진….”
그때였다.
슈우웅!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펑, 퍼엉!
제네시스 길드가 거점으로 삼고 있던 건물에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