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202
201
마지막 몬스터가 쓰러진 직후.
“하아… 하아….”
지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헐떡였다.
‘거 더럽게 힘드네. 축구 한 게임 뛴 것 같아.’
지크가 힘들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전투에 참여했던 사람들에 비해 최소 네다섯 배는 많은 활동량을 선보였기 때문이었다.
딱히 이렇다 할 스킬 없이 몸으로 서포터 역할을 때웠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거 한잔하지.”
누군가 그런 지크를 향해 영롱하게 빛나는 하얀색 포션 한 개를 슥 하고 내밀었다.
“아, 예. 감사합니다.”
“일단 쭉 들이켜.”
“그러려고요.”
지크가 하얀색 포션, 그러니까 최상급 스태미나 포션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자 스태미나가 쭉쭉 차오르며 헐떡이는 호흡이 안정되고, 들썩이던 어깨 역시도 잠잠해졌다.
‘뭐지? 이거 최상급 스태미나 포션 아냐? 이 비싼걸?’
문득 지크는 자신이 생각 없이 받아먹은 포션이 매우 비싸다는 걸 깨닫고는, 자신에게 포션을 넘겨준 사람을 바라보았다.
씨익.
용태풍.
전설의 게이머가 그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어? 용태풍 선배님?”
“선배는 무슨.”
용태풍이 피식 웃었다.
“프로게이머는 아닌 걸로 아는데?”
“아! 죄송합니다!”
“그냥 형님이라고 불러요.”
“에이. 제가 어떻게 용태풍 선배님을… 아니 용태풍 님을 형님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나이 차이가 30살이 넘게 나는데요. 하하하….”
“그럼 삼촌이라고 부르든지.”
“하하….”
“아까 보니 실력이 대단하던데? 마치 소싯적에 날 보는 것 같아?”
“예? 그럴 리가요!”
“진짜야.”
용태풍이 감회에 젖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만큼 대단한 피지컬이야. 요즘 본 친구들 중에서 제일인 것 같은데? 감탄했어.”
“가, 감사합니다!”
지크는 도무지 몸 둘 바를 몰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이 아저씨한테 인정을 받은 건가? 쓰레기인 내가?’
사부인 데우스와 치천존으로부터 쓰레기 취급만을 받다가 모처럼 만에 칭찬을 들으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물론 사부와 치천존이 이미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은 존재이기 때문일지도 몰랐지만….
“그래서 하는 말인데….”
“예?”
“딱히 소속된 길드가 없으면 우리 길드에 들어오는 건 어때…?”
그 순간.
‘윽! 뭐야 저 눈빛?’
지크는 자신을 바라보는 용태풍의 눈빛이 너무나도 부담스러워서, 그만 토할 뻔했다.
‘옛날에 돌쇠 어르신 눈빛이랑 똑같잖아?’
지크는 자신을 바라보는 용태풍의 눈빛에서 도제 베텔규스의 그림자를 보았다.
[지크야! 맛있는 거 사줄까?] [뭐 필요한 아티팩트 없니? 뭐든 말만 하렴! 이 사부가 뭐든 다 사주마!] [그러지 말고 차라도 한잔하면서 차분히 얘기해 보자꾸나.]어떻게든 지크를 제자로 만들고 말겠다던 베텔규스의 집착이 지크의 뇌리를 떠돌았다.
“내가 잘해줄 테니까, 우리 길드에 들어와서….”
“죄송합니다.”
지크가 단칼에 용태풍의 제안을 거절했다.
“선배님의 호의는 감사하지만, 저는 어느 길드에도 들어갈 생각이 없어서요.”
“아니, 왜? 우리 길드 좋은데? 소수 정예고, 통제도 딱히 없고, 서로 템도 잘 나누고. 레이드도 같이 뛰고. 우리 길드에 들어오면 프로게이머 데뷔도 쉬울 테고.”
“그래도 싫습니다.”
“허….”
“누구 밑에 있는 건 딱 질색이라서요. 그리고 책임지고 있는 나라도 하나 있어서 누구 밑에서 자리할 수도 없고요.”
“책임지고 있는 나라도 있어?”
“예?”
“잠깐. 게이머 중에서 왕이 있었나? 내가 알기로는….”
순간 지크는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 이놈의 입이 방정이지. 입이 방정이야.’
자기도 모르게 정체를 까발려버린 격이었다.
왜?
현재 3억 명에 달하는 게이머들 가운데 왕의 지위에 오른 사람은 지크가 유일했으니까.
“설마. 젊은 친구가 그 게이머였어? 며칠 전에 제네시스 애들 암살하는 영상 올렸던?”
“보, 보셨습니까…?”
“보다마다.”
용태풍이 웃었다.
“젊은 친구가 참 대단하다 싶었지. 그 영상만 봐서는 실력은 모르겠고, 용기 있고 머리 좋다고 생각은 했지.”
“하하….”
“그런데 이제 보니 깡도 세고 머리도 좋고 실력도 상당한데?”
“에이. 별말씀을요.”
“아무튼, 정말 아쉽군. 맘 같아서는 산 채로 잡아다가 우리 길드의 길드원으로 만들고 싶은데.”
“말씀드렸다시피 마음만 받겠습니다.”
“정말 아쉬워. 모처럼 만에 만난 마음에 드는 후배인데… 쩝….”
용태풍이 입맛을 다셨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그런다고 내가 포기할 줄 아냐? 자식. 넌 언젠가 우리 길드에 들어오게 될 거야. 난 니가 너무 마음에 들거든.’
어떻게든 지크를 천명 길드의 길드원으로 만들겠다고.
“어쨌거나 젊은 친구도 이 던전을 깨야 하는 거지?”
“예.”
“그럼 같이 가지. 생각보다 어려운 던전이라 자네 도움이 필요할 것 같거든.”
“영광입니다.”
그렇게 지크는 용태풍과 천명 길드원들과 파티를 맺고 던전을 함께 깨나가게 되었다.
***
전투는 계속되었다.
마나가 통제된 가운데 계속해서 치러진 전투는, 파티 모두를 힘겹게 했다.
그러는 와중에 빛을 발한 건 오직 지크와 용태풍뿐이었다.
용태풍은 자신이 가진 15강 무기와 노련한 경험, 요즘 젊은 프로게이머들에게도 결코 뒤지지 않는 피지컬과 전투적 센스를 앞세워 몬스터들을 섬멸해 나갔고.
지크는 비록 강화된 무기는 없었지만, 자신이 가진 순수한 ‘실력’을 앞세워 천명 길드원들을 서포팅하며 활약했다.
덕분에 지크에 대한 천명 길드원들의 평가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했다.
‘와. 제네시스한테 시비를 걸었다기에 그냥 미친놈인 줄만 알았는데.’
‘진짜 개잘하네? 저 템으로 저 정도면 고강 무기 하나만 쥐여주면 다 부수고 다니겠는데?’
‘진짜 클래스가 뭐지? 아무리 봐도 포이즌 메이지는 아닌 것 같은데.’
처음에는 용태풍이 과대평가를 한다고 생각했던 천명 길드원들은 전투가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지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왜?
지크는 그들보다 레벨도 낮고, 착용한 템도 구렸지만 활약상은 용태풍에 못지않았으니까.
그렇다는 말은, 지크가 가진 실력이 프로게이머급이란 얘기였다.
‘아무리 봐도 마음에 들어. 어떻게 하면 이 녀석을 우리 길드에 넣을 수 있을까? 뭘로 꼬시지? 영입하는 대신에 제네시스 애들이랑 같이 싸워준다고 할까?’
용태풍은 심각하게 고민했다.
제아무리 천명 길드라 할지라도 같은 10대 길드인 제네시스와 싸우는 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용태풍이 본 지크는 제네시스와의 정면충돌도 기꺼이 불사할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인 게이머였다.
‘이 녀석만 어떻게 영입하는 데 성공하면 우리 길드가 더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물론 템도 더 맞춰야 하고 레벨도 더 올려야 하겠지만, 용태풍은 오직 지크의 실력 하나만을 보고 군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지크가 어떠한 클래스를 지니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도 하지 못한 상황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러던 중.
“형님! 저 앞에 보스방인 것 같습니다!”
파티는 마침내 보스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문 앞에 도착했다.
“다들 정비! 생명력이랑 스태미나 풀로 채운 다음에 진입한다.”
용태풍이 파티원들을 향해 지시했다.
그리고는 지크를 향해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젊은 친구?”
“예?”
“어디 살지? 서울 사나?”
“강남구청 근처에 사는데요.”
“그으래? 나도 그 근처 사는데. 브라운 캐슬이라고 알지?”
브라운 캐슬이라면 강남구청 일대에 있는 고급 오피스텔, 아파트를 통틀어 가장 고가에 거래되고 있는 초고급 레지던스로서, 매매가가 최소 70억에 육박한다고 알려진 건물이었다.
인기 연예인, 프로 운동선수, 성공한 사업가 등등 대한민국 상위 1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들만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당연히 알죠. 거기 사셨구나.”
“그래서 하는 말인데….”
“……?”
“어떻게 우리 만나서 차 한잔할까? 아니면 맛있는 밥이라도? 선배가 후배가 예뻐서 맛있는 거라도 좀 사주고 싶어서 그래. 너무 부담스러우면… 응?”
지크에게 수작을 부리던 용태풍은 문득 이상한 점을 느끼고 눈을 치켜떴다.
“자자! 갑시다! 셋, 둘, 하나. 하면 여는 겁니다. 제가 열게요. 자, 그럼 준비….”
어느새 내뺀 지크가 천명 길드원들에게 보스방에 진입하기 전 간단한 브리핑을 실시하고 있었다.
‘저 능구렁이 같은 놈이 은근슬쩍 내빼?! 이런 고얀 자식 같으니!’
용태풍은 과거 베텔규스가 느꼈던 것과 똑같은 감정을 느끼며 허탈해했다.
그야말로 철벽.
지크는 절대로 자신의 몸(?)을 허락지 않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두고 보자! 언젠가 네 녀석을 꼭 가지고 말 테니까!’
용태풍은 지크를 향한 집착을 불태웠다.
***
드르륵.
보스방 문이 열리고.
“누가 이 영겁의 지옥을 일깨우는가….”
보스 몬스터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영겁의 수호자 : 테실리우스]연옥의 신전을 지키는 악마.
오래전 시공의 균열에 휘말린 고대의 악마로, 그 전투력은 가히 투신이라 불릴 만하다.
•존재 구분 : 몬스터
•등급 : 보스
•타입 : 악마
•속성 : 無
•레벨 : 300
•특이 사항 : 악마들 가운데서도 싸움을 잘하기로 소문난 타고난 격투가. 이능력 없이 오직 육체적 능력만으로 다른 악마들을 제압했던 전설적인 강자이다.
“큭큭. 약해빠진 것들만 잔뜩 모여들었구나.”
그렇게 전투가 시작되고.
테실리우스가 지크 일행을 보며 비웃었다.
“오냐. 내 다 죽여 주마. 이 영겁의 지옥을 영원히 떠도는 신세로 만들어 주마.”
“아악!”
“이 미친 새끼! 뭔 딜이… 으아아아악!”
“커헉!”
천명 길드원들이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너, 너무 빠르잖아!’
지크가 어떻게 서포팅을 시도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테실리우스가 아군을 죽이는 속도는 빨랐다.
그 광경을 본 지크와 용태풍은 서로 비슷한 생각을 했다.
‘어중간한 실력으로 덤벼 봤자 짐만 되겠는데? 그냥 용태풍 아저씨가 일대일 하는 게 훨씬 낫겠어.’
‘내가 나서야겠군.’
지크가 용태풍을 돌아보았다.
“선배님 혼자서 처리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용태풍은 지크가 자신의 마음을 읽었단 생각에 기특해하며, 테실리우스를 가로막았다.
“네놈은 좀 싸워볼 만하겠군. 조금 늙었지만.”
“어디 몬스터 주제에 나이 가지고? 늙은 생강이 맵단 얘기는 들어 봤나?”
그렇게 시작된 용태풍과 보스 몬스터인 테실리우스의 싸움은 그야말로 막상막하라서, 우열을 가리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역시 전설은 전설이네.”
지크는 테실리우스와 싸우는 용태풍을 바라보며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어떻게 저런 움직임이 가능할까?
그것도 50이 훌쩍 넘은 나이에?
‘나도 저 나이가 되면 저 정도 피지컬이… 역시 불가능하겠지? 저 아저씨는 전설 중의 전설이잖아.’
용태풍은 전 세계적으로도 무척 드문, 사실상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왜냐하면, 용태풍을 빼면 그 누구도 50이 넘은 나이에 저러한 기량을 선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용태풍은 몸소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빠악!
테실리우스의 주먹이 용태풍의 명치를 강타하고, 용태풍이 거의 20미터 정도를 나가떨어졌다.
“커헉!”
“역시 늙었다는 건가? 집중력이 형편없군.”
테실리우스가 어느새 쓰러진 용태풍의 멱살을 움켜쥐고는 이죽거렸다.
“감히…!!!”
용태풍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흘러간 세월을 붙잡을 순 없지. 어리석군.”
테실리우스가 아쉬워하는 용태풍을 비웃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버르장머리 없는 악마 자식아.”
“개소리로군. 네놈은 곧 죽을 테고, 이곳에 날 상대할 만한 강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
다음 순간.
휘리릭!
용태풍이 자신이 들고 있던 15강 전설급 무기를 내던졌다.
터엉!
15강 전설급 무기, 정확히는 가 지크의 발치에 묵직한 쇳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거기! 후배!”
“예…?”
“미안한데, 이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 좀 처리해 주겠나?”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제가 어떻게요?”
“무기 줬잖아! 무기! 얼른 그거 들고 이 자식 아주 토막을 내버려!”
무려 15강 무기를 빌려주겠단 이야기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