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203
202
‘나한테 진짜로 15강 무기를 빌려준다는 건가?’
지크는 용태풍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무려 15강 무기를 빌려준다?
그건 게이머로서 목숨을 맡긴다는 의미와 같았다.
아이템의 가치에 따라서 수억 원에서 심하면 수백억 원의 가치가 있는 15강 아이템을 빌려준다니?
만약 지크가 그 아이템을 먹고 나르기라도 한다면 어쩔 셈이란 말인가?
“뭐 해! 빨리 잡아!”
용태풍이 지크를 향해 소리쳤다.
“그 무기 렙제 없는 거니까 걱정 말고!”
“하지만 선배님….”
“믿고 빌려주는 거니까 빨리! 커헉!”
그때, 테실리우스의 주먹이 용태풍의 안면을 갈겼다.
“입 다물어라, 늙은 인간.”
“이 새끼가….”
“그런다고 저 애송이가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나?”
“커헉!”
테실리우스가 작정하고 용태풍을 패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용태풍의 생명력이 급속도로 깎이기 시작했다.
“커헉… 빠, 빨리! 죽어서 패널티 먹으면 렙 업하는 데 한세월이니까… 걱정 말고 그 무기 들어! 크악!”
“아, 알겠습니다!”
지크는 하는 수 없이 용태풍이 던져준 무기, 무려 15번이나 강화된 를 움켜쥐었다.
[알림 :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용태풍이 귀속을 해제, 그러니까 소유권을 포기한 것인지 +15 화룡도는 그렇게 지크의 소유가 되었다.
‘이게 15강 무기… 과연 위력이 어떨까?’
지크는 15강 무기의 위력이 정말로 궁금했다.
꽈악!
그래서 +15 화룡도를 움켜쥐고 테실리우스를 향해 다가섰다.
“야.”
“……?”
“나랑 한판 뜨자.”
“뭣이?”
“나도 템빨이라는 게 뭔지 좀 느껴보게.”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지크가 테실리우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
“흐음. 으으음. 음음.”
프로아 왕국의 수석 마법사인 데시마토는 최근 들어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내 나이 벌써 70이 넘었는데. 더 이상 마법의 진전이 보이지를 않는구나. 한평생 마법에만 정진했건만 고작 6써클이 한계라니. 후우.’
데시마토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최근 프로아 왕국의 국책 사업을 진행하던 도중 능력에 심각한 한계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최근 프로아 왕국에서는 외세의 침입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국경 지대에 환영, 공간 왜곡, 시공간 왜곡 등 다양한 형태의 방어 마법들을 설치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작업을 수행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
보유한 마법사들 대부분이 3써클과 5써클 사이에 머물러 있는, 중급 마법사들이 대부분이기에 그런 작업이 쉬울 리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국무대신 미켈레가 마탑에 의뢰를 넣어 돈을 주고 외주로 작업을 맡겼을까.
‘내 조국을 지키는 마법진을 설치하는데 외주를 줘야만 한다니. 후우. 나도 정말이지 무능한 마법사로구나.’
사실 데시마토는 그렇게까지 무능한 마법사는 아니었다.
6써클이면 마법사들의 평균을 훨씬 웃도는 경지로,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한평생 5써클을 벗어나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하곤 했다.
물론 6써클, 7써클을 넘어 8써클에 도달해 그레이트 위저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이들도 없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조국의 마법진을 설치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건, 국가의 수석 마법사로서는 대단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레이트 위저드가 되기엔 이미 그른 것 같고… 제발 7써클에만 도달했으면 소원이 없으련만….’
그때였다.
“허허! 거기 자네! 뭘 그리 고민하는가!”
누군가 고민에 빠진 채 길을 걷던 데시마토를 불러 세웠다.
“음?”
데시마토가 고개를 돌려보니 웬 노마법사가 그를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를 불렀소?”
“그렇다네.”
“어찌하여 나를 부른 것이오?”
“내 가만 보아하니 고민이 깊다 못해 속이 썩어들어갈 것 같은 표정이라 그랬지.”
“허. 그렇게 티가 났나 보구려. 미안하오.”
데시마토가 노마법사를 향해 양해를 구했다.
‘내 고민이 깊다 보니 오만상을 다 쓰고 다닌 모양이로구나. 허허.’
그렇게 생각한 데시마토가 노마법사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그대는 누구시오? 이 근처에서는 못 보던 분 같소만.”
“나? 별 사람 아닐세. 그저 이곳에 마법 아카데미를 세울 예정인 사람이지.”
“아? 혹시 퍼시발이란 분이시오?”
데시마토는 미켈레로부터 퍼시발이라는 노마법사가 마법 아카데미를 세울 예정이라는 정보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렇네. 내가 그 퍼시발이지.”
“반갑소. 본인은 이 왕국에서 수석 마법사를 맡고 있는 데시마토라고 하오.”
“수석 마법사라. 그쯤 되는 분께서 어찌 그리 고민이 깊으신 겐가? 자식 농사가 잘 안 돼? 아니면 몰래 숨겨준 애인이 말썽을 피워?”
“허허. 농담도 잘하시는구려. 내 나이가 몇인데 그러한 걸로 고민을 하겠소. 그저 마법의 경지가 벌써 15년째 멈춰 있어 고민하던 참이었소. 그대도 마법사이니 잘 알고 있을 거라고 믿소. 마법이라는 것이 한번 벽에 가로막히면 좀처럼 경지가 오르지 않는 것 아니겠소?”
“그렇긴 하지.”
“실례지만 노인장께서는 현재 몇 써클이시오?”
데시마토가 물었다.
“나는 1써클이라네.”
“1써클 말이오?!”
“그렇네. 뭐 문제 있는가?”
“아, 아니오….”
순간 데시마토는 퍼시발이란 노마법사가 고작 1써클이란 말에 어이가 없었다.
‘1써클 주제에 마법 아카데미를 여는 게 가능한 건가? 학생들이 도대체 뭘 보고 배울 수 있단 말인가?’
데시마토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퍼시발이 말한 1써클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왜?
마법사로서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를 뜻하는 아크 메이지의 경지, 그러니까 10써클에 도달하게 되면 모든 써클이 하나로 합쳐져 1써클이 되니까.
아크 메이지는커녕 그레이트 위저드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데시마토가 그 비밀을 알 리가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마법책에도 10써클의 경지에 오르면 써클이 하나로 합쳐진단 내용이 없기도 했고.
“허허. 1써클이라. 노인장께서는 본인보다 더 고민이 많으셨겠소이다.”
데시마토가 안타깝다는 듯 퍼시발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몇 년 동안이나 1써클에 머무르신 게요?”
“한 25년쯤 된 것 같네.”
“허. 노인장께선 무려 25년이나 1써클에 머물러 계셨는데, 고작 15년을 6써클에 머물러 있었다고 한탄한 본인이 부끄럽구려.”
“뭘 그런 걸 가지고. 세상 다 그렇게 살다 가는 게지.”
“노인장의 가르침, 깊이 새기고 욕심을 좀 덜어내도록 하겠소. 사람마다 한계가 있는 것을 인정하고 순응하는 것도 삶의 지혜일 테니….”
“허허.”
“그럼, 이만 가보도록 하겠소. 나중에 또 만나오.”
퍼시발에게 인사를 한 데시마토가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래. 고민하고 한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맡은 바 소임이 있지를 않은가? 지금은 국가적 사업을 진행하는 데 부족한 능력이나마 힘을 쏟을 때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치천존이 쓴 마법학총론에 이런 글귀가 있지.”
퍼시발의 목소리가 데시마토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마법의 벽은 주문의 난이도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마법사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으음?”
“써클과 수학에만 집착하다 보면 어느 순간 마법사는 사라지고 기계적으로 주문을 구현해내는 마법지팡이만 남을 뿐이라고도 했지. 1써클이면 어떻고 6써클이면 어떻단 말인가. 써클이란 것도 마나를 효율적으로 다루기 위한 일종의 편법에 불과한 것을….”
그 순간.
‘자, 잠깐!’
데시마토는 불현듯 자신의 뇌리를 스치는 깨달음에 가던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물론 데시마토가 이른바 ‘써클 무용론’이란 까마득히 높은 경지의 이론을 이 순간 완벽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써클과 수학에만 집착하다 보면 어느새 마법사는 사라지고, 오직 기계적으로 마법을 구현해내는 존재만이 남을 뿐이라는 말에는 깊이 공감했다.
‘그렇다! 나는 그간 마법을 구현해내는 지팡이에 불과했다! 도대체 무엇이 마법인가? 무엇이 마법사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깊어지는 고민….
그리고 찾아오는 깨달음….
우웅!
이윽고 데시마토의 심장에 맺힌 여섯 개의 고리가 ‘분열’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아! 이것이로구나!’
데시마토는 세상만사 모든 걸 잊고 오직 마법의 진리만을 생각하는, 동양식 표현으로 ‘무아지경’의 상태에 이르렀다.
‘옳거니!’
그 광경을 본 퍼시발, 정확히는 마법의 지존인 치천존은 데시마토의 변화에 쾌재를 불렀다.
‘심심풀이로 한번 던져봤더니 덥석 무는구나! 허허!’
사실 치천존은 딱히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줄 생각이 없었다.
그저 한번 곱씹어 보라고 슬쩍 한마디를 던졌을 뿐….
그런데 데시마토는 그 심심풀이로 던진 말을 다큐멘터리로 덥석 받고는, 깨달음을 얻어 가고 있었다.
평소 데시마토가 마법에 대해, 마법사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해왔는지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여기서 저러고 있으면 곤란하니, 기특한 후배를 위해 서비스를 좀 해주어야겠군.’
치천존은 무아지경에 빠진 데시마토가 안전하게 깨달음을 정리할 수 있도록, 그를 자신의 집으로 워프시켜 주었다.
데시마토가 절대로 눈치채지 못하도록.
***
비슷한 시각.
15강 화룡도를 든 지크.
그리고 타고난 싸움꾼인 악마 테실리우스.
이 둘의 대결은 앞서 벌어졌던 용태풍과 테실리우스의 싸움을 애들 장난으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격렬했고 다이내믹했으며, 또 빨랐다.
‘저게 갓 200레벨에 진입한 인간이라고?’
‘미친. 재능충이 여기 있었네.’
‘아. 갑자기 게임하기 싫어진다.’
지크의 모습을 본 천명 길드원들은 불현듯 엄습하는 열등감에 몸서리쳤다.
어떻게 저런 움직임이 가능할까?
레벨도 낮고, 템도 별 볼 일 없고, 무기도 없어서 용태풍의 무기를 빌려 쓰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크는 용태풍을 박살냈던 테실리우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압도’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레벨만 조금 더 올리고, 템만 좀만 더 맞추면 니들 따윈 내가 다 X바른다!’라는 말을 몸소 증명하기라도 하듯….
만약 다른 게이머가 그런 말을 했으면 개소리 취급을 했겠지만, 지크는 아니었다.
지크는 정말로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자칫 망가질지도 모르는 불안정한 잠재력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100퍼센트 확률의 성장 포텐셜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 망할!! 스펙이 좀만 더 좋았어도 압살하는 건데. 후달리는 스펙 때문에… 움직임 미리 예측해야 하는 게 너무 힘들어.’
사실 스펙상 절대적으로 열세인 지크는 테실리우스의 공격 패턴을 한발 앞서 예측하고 움직여야만 했기에, 엄청난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한 번에 끝내자.’
그래서 지크는 일격에 이 싸움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빌어먹을 애송이가!”
테실리우스가 버럭 소리치던 때.
푸욱!
지크가 순간적으로 를 뽑아들어 테실리우스의 복부를 찔렀다.
그리고 테실리우스의 목을 향해 15강 화룡도를 휘둘렀다.
서걱-
뭔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투욱!
데구르르….
테실리우스의 목이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과연 15강 무기다운 가히 엄청난 데미지….
단순한 ‘평타’였음에도 보스 몬스터의 목을 뎅겅 잘라버린 걸 보면, 만약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상태였다면 그 위력이 어떨지는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문득 지크의 뇌리에 지극히 위험한 생각이 깃들기 시작했다.
‘나도 15강 한번 도전해 볼까?’
패가망신으로 가는 지름길이….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