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205
204
웅성웅성-
공방을 나선 지크는, 문득 들려오는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원래 강화기 앞에 사람이 저렇게 많았었나?’
지크의 시선이 공방 앞에 설치된 거대한 증기 기관 장치에 머물렀다.
강화기.
그야말로 애증의 대상.
지크와 같이 100퍼센트 확률의 강화권이 없는 이상, 모든 이들은 저 거대한 장치에 강화를 원하는 아이템을 집어넣고 자신의 ‘운’을 시험해야만 했다.
그 이유는 강화가 100퍼센트 확률을 보장하기 매우 힘든, 숙련된 대장장이들마저도 운에 의지해야만 하는 고난이도 작업이기 때문이었다.
그 고난이도 작업을 100퍼센트 보장하려거든, 최소한 3대 공방의 에이스들이 총동원되어 최고의 기술력과 천문학적인 재료비를 쏟아부어야 했다.
그러한 이유로 각 공방들은 원가 절감(인건비와 재료비 등) 차원에서 각 지점 앞에 강화기를 설치해 강화 업무를 아예 무인화시켜 버렸다.
대장장이의 신변 보호적인 측면-강화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대장장이에게 화풀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에서도 그쪽이 훨씬 효율적이기도 했고.
“뀨? 주인 놈아? 뭘 그렇게 보냐?”
“저거.”
지크가 강화기를 가리켰다.
본사 앞에 설치된 것이니만큼 란 이름을 가진 그 강화기 앞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타인의 강화를 구경하거나, 혹은 자신이 가진 아이템을 강화기 안에 밀어 넣고 있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3대 공방의 제1호 강화기가 가장 성공률이 높다는 미신이 퍼져 있었으므로, 본사 앞은 언제나 인산인해를 이루기 마련이었던 것이다.
“이거 터지면 겜 접는다.”
그때, 어느 게이머가 자신이 가진 11강 무기를 재료비(골드+초월석)와 함께 강화기 안으로 집어넣었다.
고(高) 강화 무기의 분기점이라 불리는 12강에 도전하는 것이다.
우웅!
강화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칙칙! 폭폭! 칙칙! 폭폭!
그리고 이내 곧 증기를 뿜어대기 시작했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강화기의 피스톤질이 빨라짐에 따라 뿜어지는 증기 또한 점점 증가하더니, 어느새 강화기 주변은 뿌연 증기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로부터 약 30초쯤 지났을까?
뿌우!
강화기가 마지막 증기를 길게 뿜어내고.
번쩍!
다음 순간 섬광이 번뜩이더니, 강화 결과가 나왔다.
[알림 : 님께서 의뢰하신 강화가 실패하였습니다!] [알림 : 아이템이 파괴되었습니다!]0강에서 10강까지는 강화 횟수가 초기화되지만, 10강에서 11강으로 가는 과정부터는 실패 시 장비가 파괴되게 되어 있었다.
“…아.”
강화를 시도했던 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반대로 지켜보던 게이머들은 환호했다.
“예에!!!”
“꺄~ 터졌다~”
“아아아악!!!”
“터져쓰요! 터져쓰!”
남의 강화 실패는 곧 나의 행복!
값비싼 무기가 펑! 하고 터져 나가는 장면이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끔 해줄 테니까.
“X발! 이 X같은 겜! 접는다! 접어! 접는다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강화에 실패한 가 포효했지만, 그는 더 이상 이 자리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꺼져!”
“내 차례야!”
“노노! 내가 먼저 감!”
11강 무기를 들고 있던 후발 주자들이 앞다투어 강화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 게이머들의 반응은 역시나 미신에 근거한 행동이었다.
제물.
앞사람의 강화가 실패하면, 파괴된 무기가 일종의 제물(?)이 되어 뒷사람의 강화 확률이 올라간다는 믿음이었다.
강화 콘텐츠가 이렇듯 오픈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게임들에서 발생하는 광경이랄까?
[알림 : 님께서 의뢰하신 강화가 실패하였습니다!] [알림 : 아이템이 파괴되었습니다!]물론 앞사람의 강화가 실패했다고 해서 뒷사람의 강화가 성공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휴.”
그 광경을 지켜보던 지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뭔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저러고들 있는 거지. 그냥저냥 적당히 살지. 강화로 패가망신한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실제로, 원하는 강화 수치를 얻기 위해 집이며 차며 현실의 재산을 처분해 가며 현질을 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오죽하면 몇 개월에 한 번꼴로 강화로 인해 패가망신한 게이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 뉴스가 심심찮게 들려올까.
“어휴.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가자, 햄찌야.”
“뀨!”
지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욕망의 도가니탕인 강화기 앞을 떠났다.
“저, 전하? 저도 좀 같이 가고 싶습니다만?”
존재감 0을 자랑하는, 어느새 지크의 그림자가 된 그랭구아르가 그 뒤를 미끄러지듯 쫓았다.
***
가장 가까운 차원의 균열에 도착한 지크 일행은 곧바로 사냥에 나섰다.
그 사냥에서 지크는 비로소 ‘한계’라는 것을 경험했다.
[알림 :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 다음 레벨까지 남은 경험치는 56.6%입니다!] [알림 :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 다음 레벨까지 남은 경험치는 56.6%입니다!]현재 지크의 레벨이 203.
고레벨의 분기점이 되는 200레벨을 넘겼기에, 고레벨 던전에서 고레벨 몬스터를 잡아도 경험치가 오르지 않는 레벨 업의 정체기가 찾아와버린 것이다.
그나마 중간 보스 격에 해당하는 챔피언 몬스터, 혹은 네임드 몬스터를 한 마리 잡아야 1퍼센트 정도가 오를까 말까 할 지경이었다.
고레벨 게이머들이 사망 패널티에 경기를 일으키는 이유였다.
“아. 진짜 안 오르네.”
지크는 과거에 엘리멘탈 메이지로 201레벨을 찍어 본 경험이 있었지만, 이다음부터는 가보지 못한 세계였다.
201레벨과 203레벨의 간격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컸던 것이다.
“어디 경험치 많이 주는 던전이라도 찾아가든지 해야지.”
지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햄찌, 그리고 그랭구아르와 함께 다시금 던전의 중심부를 향해 나아갔다.
***
그로부터 3일 후.
[알림 :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지크는 메르세데스 공방의 수석 대장장이인 빌헬름으로부터 12번 강화된 가이아의 주먹 아이템을 받았다.
[공격력 : 4,500(+1,105)]12번 강화된 가이아의 주먹은 무려 1,105이란 어마어마한 공격력이 추가로 붙어 있었다.
‘개쩐다. 내 생에 12강 무기를 다 가져보네. 와.’
지크는 5,605라는 어마어마한 공격력의 을 보며 환희에 젖었다.
‘디버프 걸린 적을 이걸로 때리면…?’
어쩌면 사부님이 말한 ‘한 방에 때려 죽여라’가 가능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들다마다요.”
빌헬름의 물음에 지크가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대답했다.
“정말 최고입니다.”
“장담컨대, 사용해 보시면 더욱 만족하실 겁니다.”
“예, 만족하겠죠. 아주요.”
지크는 빌헬름의 말에 적극 동의할 수 있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저희 메르세데스 공방은 지크프리트 전하를 언제나 VVIP 고객님으로 대우해드릴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살펴 가시지요.”
그렇게 지크는 12강 신화급 무기를 들고 메르세데스 공방을 나서게 되었다.
‘그냥 무조건 12번 강화해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가이아의 주먹은 지금쯤 22강(자체 10강+강화권 12강)이라는 행성파괴급 무기가 되어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강화가 가능할 리 없었으므로, 강화권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두 개 들어가 있었다.
1. 한 번이라도 강화된 아티팩트에는 본 쿠폰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2. 이 쿠폰은 그 어떤 무기라도 +12강을 보장할 뿐, 그 이상의 강화에 대해서는 어떠한 책임지지 않습니다.
…라고.
강화권 자체가 파워 밸런스를 위협할 수 있는 아이템이니만큼, 이 정도 제한은 당연할 일일 터였다.
‘렙 업만이 살길이다! 렙 업! 7레벨만 더 올리면 돼!’
공방을 나선 지크의 머릿속에는 오직 210레벨, 즉 의 레벨 제한을 충족시킬 생각뿐이었다.
안 그래도 레벨이 더럽게 안 올라 답답하던 참에 까지 얻고 나니 레벨 업에 대한 갈망이 더욱 커지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런 지크를 시험에 들게 하는 마귀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13강에 도전하는 게이머들이었다.
메르세데스 공방의 제1호 강화기 앞.
[알림 : 님께서 의뢰하신 강화가 실패하였습니다!] [알림 : 아이템이 파괴되었습니다!] [알림 : 님께서 의뢰하신 강화가 실패하였습니다!] [알림 : 아이템이 파괴되었습니다!] [알림 : 님께서 의뢰하신 강화가 실패하였습니다!] [알림 : 아이템이 파괴되었습니다!]도대체 누가 신호탄을 쏘아 올려 첫 제물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십 개에 달하는 12강 무기들이 마치 싸구려 폭죽처럼 펑펑 터져 나가고 있었다.
가끔 그럴 때가 있었다.
특정 강화 횟수를 가진 아이템의 소유자들-대체로 11강과 12강이 제일 많기 마련이다-이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단체로 강화에 도전할 때가.
앞서 실패한 사람들의 아이템은 모두 제물이었고, 자신이 가진 아이템은 강화에 성공할 거라는 믿음이 만들어낸 단체 최면이었다.
그러던 중.
[알림 : 님께서 의뢰하신 강화가 실패하였습니다!] [알림 : 아이템이 파괴되었습니다!]지크가 지켜보기 시작한 순간부터 무려 23번째 12강 무기가 터져버렸을 때.
“저거 주작 아냐?”
“저 강화기는 해로운 강화기다!”
“메르세데스 이 새끼들아! X발 장난치냐! 12강이 몇 개가 들어갔는데 다 터지는 게 말이 돼?”
“작정하고 강화기 확률 조작한 거 아냐?”
“주작이다! 주작!”
강화에 실패한 게이머들뿐 아니라 지켜보던 이들 모두가 메르세데스 공방과 강화기를 성토하기 시작했다.
“암 픽킹 유우~ 유 왓 아 워언~ 아원츄 주작작 주주작 주작작 주주작~!”
심지어 그 유명한 ‘주작송’을 부르며 강화기의 트롤(?)을 비꼬는 사람마저 있었다.
물론 모두가 진심은 아니었고, 그저 너무나도 많은 12강 무기들이 터져 나가 어이가 없었던 것뿐….
“12강 더 없어? 제물을 이렇게 바쳤는데도?”
“12강 없으면 13강이나 14강은? 제물을 이 정도 바쳤으면 20강도 성공하겠는데!”
“이 강화 대란이 이렇게 끝나나? 제물만 거의 50개가 들어간 것 같은데?”
구경꾼들이 방금 전 벌어진 강화 대란의 승자가 될, 혹은 또 하나의 제물이 될 후보를 찾았지만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왜?
이미 강화에 도전해볼 만한 고강 무기를 든 사람들은 모조리 패가망신해 버린 뒤였으니까.
“누구 없어? 인생 한 방이지! 아무나 한번 지릅시다! 들어간 제물이 몇 개인데! 이번엔 됩니다!”
누군가 소리쳤다.
‘으으. 안 돼.’
지크는 참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얻은 12강 무기다. 이렇게… 이렇게 터뜨릴 순 없어… 이게 얼마짜린데… 저기에 집어넣고 터뜨릴 바에야 아파트나 몇 채….’
지크는 정말이지 초인적인 인내력을 발휘해서 지름신의 강림을 떨어내려 애썼지만….
‘뭐, 뭐야? 내가 왜 강화기 앞에 와 있어?’
이미 발걸음은 메르세데스 공방의 제1호 강화기 앞에 멈춰선 상태였다.
수없이 많은 12강 무기들을 집어삼킨 탐욕스러운 괴물 앞에….
‘참자, 참아. 참아야 한… 어어? 어어어? 내 손이 왜?’
짧은 순간 지크의 뇌리에 108번뇌가 스치고.
‘그래. 벌써 처먹은 제물이 몇 개인데. 남자는 이럴 때 지를 줄 알아야지. 그리고 난 트리플 크라운 칭호도 있잖아. 3퍼센트 확률이 어디야. 남들이 100번 도전해서 100번 실패한다고 가정하면 나는 세 번은 성공한단 소린데. 자, 가즈아!’
도대체 남자와 무모한 지름이 무슨 관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느새 지크의 손은 과 재료를 제1호 강화기 안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우웅!
그리고 강화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칙칙! 폭폭! 칙칙! 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미친 듯 증기를 내뿜던 강화기가 최후의 포효를 내지르고.
번쩍!
강화 작업의 종료를 알리는 섬광이 번뜩이고, 에 대한 강화 결과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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