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206
205
고강 무기의 분기점이 되는 12강.
그 12강을 넘어선 강화가 이루어지면, 무기의 성능은 가히 폭발적으로 향상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무기의 성능이 폭발적으로 향상되는 만큼, 그에 따라 강화 확률 역시 수직 하락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수직 하락이라는 표현조차 부족했다.
과거 모 게이머가 진행했던 실험 결과, 12강 무기가 13강이 될 확률은 약 3.5퍼센트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시골의 허름한 촌구석에서 산 허접한 장비들로 한 실험인지라 정확한 데이터 값은 아니었다.
왜?
강화 확률이 아이템의 레벨 제한과 등급에 따라 다른지, 혹은 같은지 공식적인 답변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12강 장비가 13강에 갈 확률은, 앞서 터져 나간 제물들이 증명했다시피 극악에 가까웠다.
13강에서 14강, 14강에서 15강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었고.
즉, 고강 무기를 든 사람들은 그런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을 딛고 행운을 거머쥔 사람들인 것이다.
혹은 그 행운을 살 만큼 돈이 많거나.
‘될 거다. 될 거야.’
지크는 그런 행운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었고, 그래서 을 1호 강화기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번쩍!
섬광이 번뜩임과 동시에.
[우우 우우우~ 우우 우우우~ 아아아악!!!]지크의 귓가에 절규에 가득 찬 BGM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
BGM을 들은 지크의 얼굴이 그 짧은 순간 시퍼렇게 질렸다.
‘X…됐다.’
지금 귓가를 파고드는 이 BGM은 주변 게이머들에게는 안 들리는, 오직 강화를 시도한 장본인에게만 들리는 것으로 결과에 따라 두 가지 버전이 있었다.
첫째, 성공 시 들려오는 웃음소리.
그 웃음소리는 다음과 같았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그 어려운 마의 확률을 뚫고 강화에 성공한 것이니만큼, 꽤 적절한 BGM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지크의 귓가를 파고드는 BGM이 강화 실패를 알리는 것이란 점이었다.
[우우 우우우~ 우우 우우우~ 아아아악!!!]13강, 실패.
앞서 수없이 깨져 나간 제물들처럼, 지크의 역시 한낱 제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알림 : 님께서 의뢰하신 강화가….]닉네임이 인 이유는 현재 지크가 정체를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패닉 상태에 빠진 지크, 그리고 게이머들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떠오르는가 싶더니 사라졌다.
왜?
취이이이이이익…!!!
안 그래도 앞서 수없이 많은 부나방들의 강화로 인해 한껏 달아올라 있던 강화기가 아예 시뻘건 색으로 물드는가 싶더니.
펑, 퍼엉!
별안간 폭발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 후 지크와 게이머들의 눈앞에 새로운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 메르세데스 공방 제1호 강화기가 고장 났습니다!] [알림 : 님께서 의뢰하신 강화가 중단되었습니다!]뜻밖의 사태.
“뭐야? 강화기가 고장 나?”
“강화 중단? 13강 간 거야? 아니면 터진 거야?”
“강화기가 고장 나는 날이 있긴 있나 보네?”
게이머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이.
“으… 으으으…!!!”
지크는 괴로워했다.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어… 어쩌자고 눈이 돌아가서 패가망신을… 으으으!’
문제는 게이머들이 그런 지크를 보고 오해를 했다는 것.
“괴로워하는데?”
“강화가 중단됐는데 괴로워해? 타이밍상 BGM은 들었을 거 아냐? 본인은 알 텐데? 성공인지 실패인지?”
“설마 성공했는데 강화가 멈춰버린 건가?”
“와. 빡치겠다. 13강을 띄웠는데 강화가 멈춰? 저럼 초기화되는 거 아냐?”
제물이 워낙에 많이 바쳐진 강화였기에, 지크만큼은 성공할 거라 생각했던 탓이었다.
“비켜 주십시오!”
“잠시 길을 비켜 주십시오!”
그때, 메르세데스 공방 소속의 NPC들이 달려와 강화기를 둘러싸고 조사를 벌이기 시작했다.
강화기의 고장 소식을 듣고 출동한 5분 대기조였다.
웅성웅성-
그러는 사이 강화기 근처에 모인 게이머들은 이번 지크의 강화에 대해 저마다 한마디씩을 떠들어대며 도떼기시장을 연출했다.
‘망했어… 망했다고.’
지크는 절망했고.
“방금 강화를 의뢰해주신 분이십니까?”
빌헬름이 지크에게 다가와 물었다.
“예, 접니다.”
“잠시 따라오시지요. 설명을 드릴 게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빌헬름이 슬쩍 지크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전하.”
지크가 정체를 숨기고 있긴 했지만, 아직은 강화기 안에서 파괴되지 않은 을 보고 정체를 알아맞힐 수 있었던 것이다.
***
다시 메르세데스 공방.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전하. 언제나 최고를 지향하고, 또 유지해온 저희 메르세데스로는 이번 사태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사죄할 뿐입니다.”
빌헬름이 지크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많이 당황하셨겠습니다. 본 공방의 제1호 강화기가 고장이 날 줄은 저희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항입니다. 강화에 대한 모험가들의 열망이 오늘따라 유독 컸던 모양입니다. 어쨌거나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아, 예.”
지크가 영혼 없이 빌헬름의 사과를 받았다.
‘한강 가즈아….’
그런 지크의 머릿속에서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다리인 반포대교에서 뛰어내리는 자신의 모습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풍더엉!
…하는 소리와 함께.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
“강화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대로 진행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새로 하시겠습니까?”
그 말에 지크의 눈이 번쩍 뜨였다.
“예? 새로 해요?”
“전하께서 원하신다면 강화를 새로 하실 수도 있으십니다. 강화기가 고장 난 것은 오롯이 저희 메르세데스 공방의 과실이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수리가 끝나는 대로 진행하고 계시던 강화를 마저 하셔도….”
“아뇨. 아니요.”
지크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진행하던 강화는 없던 거로 하죠.”
“으음?”
“아예 강화 자체를 취소하고 무기를 회수하는 것도….”
“그건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해요?”
“정말 죄송하게도, 현재 강화기 속 압축된 에너지들이 불안정하게 들끓는 상태라 무기를 뺐다간 도시 전체가 날아가 버릴지도 모릅니다.”
“아….”
지크는 순간 아쉬웠다.
‘뺄 수 있으면 깔끔하게 손절하는 건데….’
남자를 외치며 패기 있게 강화에 도전할 때는 언제고, 사실상 패가망신하기 직전에 몰리자 은근슬쩍 발을 빼고 싶은 지크였다.
낙장불입도 낙장불입이지만, 무릇 게이머라면 강화에 실패하는 순간 간덩이가 작아지기 마련이었다.
그게 강화의 본질이었다.
강화는 인간이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패가망신하게 만들고, 심지어 정신마저 피폐하게 만드는 악마의 콘텐츠인 것이다.
“그럼 진행하던 강화는 취소하고 새로 하죠.”
비록 손절에는 실패했지만, 지크는 또 한 번의 기회에 자신의 운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나마 천만다행이네. 후우.’
무기가 터지기 직전에 강화기가 고장 나버렸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지금쯤 지크는 반포대교 위에서 소주 팩을 빨고 있었을 게 뻔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진행하시던 강화가 성공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빌헬름이 물었다.
‘강화가 실패인 걸 모르는구나. 입 다물고 있자.’
눈치 빠른 지크는 빌헬름이 강화의 결과는 모른다는 걸 알아채고는, 시치미를 뚝 떼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원래 강화라는 게 짜릿한 맛이 있는데, 이렇게 김이 빠져버리면 재미없죠. 그냥 새로 하겠습니다.”
“으음. 전하께서는 스릴을 즐기시는 분이시로군요. 예, 알겠습니다. 전하께서 강화를 새로 진행하실 수 있도록 강화기를 수리해 놓겠습니다.”
그 순간.
‘됐어! 됐다고! 아직 안 망했어! 안 망했다고!!!’
한 번의 기회를 더 얻게 된 지크는 내심 쾌재를 부르며 기뻐했다.
그렇다고 새로 진행할 강화의 성공률이 올라간다거나, 성공이 보장되어 있는 건 결코 아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새로 강화를 진행하시려면 재료가 필요합니다. 저희 공방에 해당 재료의 재고가 없기에… 정말 죄송합니다.”
“그 재료가 뭡니까?”
퀘스트를 직감한 지크가 빌헬름에게 물었다.
그러자 빌헬름이 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지크에게 해주었고, 퀘스트가 발생했다.
[구사일생]티에리 상단으로 가 신비한 물질인 을 구해올 것.
•진행률 : 0%(0/1)
•보상 : 을 새로 강화할 수 있음.
•주의 사항 : 이 퀘스트는 강화의 성공률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티에리 상단이라… 그럼 구찌오 님을 뵈면 되겠네요.”
“구찌오 님과 안면이 있으십니까?”
“전에 뵌 적이 있어서요.”
지크가 그렇게 말하며 슬쩍 변신을 풀고, 슬쩍 망토를 펄럭여 보았다.
“이걸 살 때 뵈었거든요.”
“천잠사…!”
과연 빌헬름은 의 재질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게다가 죽음의 고향과 진보의 대장간에서 커스터마이징한 아티팩트들까지… 전하께서는 역시 평범한 분이 아니셨군요….”
“평범한 사람이 아니긴요.”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저도 강화에 울고 웃는 아주 평범한 인간일 뿐입니다.”
“하하! 강화에 울고 웃는 것이야 이 세상에 다시없을 영웅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맞는 말이었다.
영웅이고 나발이고 무기가 터지게 생겼는데 손을 안 떨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세상만사 모든 욕망을 내려놓은 인간이라면 몰라도.
“구매 대금은 저희가 지불하겠습니다. 전하께서는 강화기가 수리되는 동안 천천히 다녀오시면 됩니다.”
빌헬름이 즉석에서 재료인 을 구매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수표로 써 지크에게 넘겨주었다.
‘이건 뭐 이리 비싸?’
수표에 적힌 금액을 본 지크는 화들짝 놀랐지만, 딱히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왜?
내 주머니에서 돈 나가는 거 아니었으니까.
***
강화기의 고장이라는, 인생에 다시없을 구사일생을 한 지크는 곧장 티에리 상단이 있는 화이트 타운으로 가 구찌오를 만났다.
“전하! 어쩐 일이십니까?”
구찌오는 지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런데.
“죄송한 말씀이지만, 리제늄은 현재 구매가 불가능하십니다.”
“또 왜요.”
지크가 뱀눈을 뜨고 구찌오에게 물었다.
“설마 요즘은 귀족 자제들 사이에서 리제늄으로 만든 액세서리가 유행하는 건 아니겠죠?”
지크가 천잠사 구매 당시의 해프닝을 떠올리며 물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서, 설마 진짜입니까? 이런 개 같은… 그래서 이번에는 누굴 이겨야 하는데요?”
“농담입니다.”
“예?”
“전하께서 넘겨짚으시기에 농을 한번 던져 보았습니다.”
“…….”
“사실 리제늄의 구매가 불가능하신 이유는, 리제늄을 가득 실은 상단의 수레가 얼마 전에 도난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도난이요?”
“최근 산적계의 신흥 세력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패왕산적단에서 리제늄이 실린 수레를 강탈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재고는 없나요?”
“없습니다. 사실 리제늄을 보관해두는 창고를 헐고 새로 지은 창고에 옮기는 과정에서 강탈당한 것인지라….”
“새로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요?”
“리제늄은 채굴은 쉽지만 정제가 무척 까다롭고 오래 걸리는 물질입니다. 그래서 약 6개월 정도 소요될 것 같습니다.”
그때, 지크의 눈앞에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알림 : 퀘스트가 발동했습니다!]이번 퀘스트는 주관식이 아닌 객관식으로, 평소 지크의 말투를 분석한 시스템이 NPC에게 어떻게 말할지에 대한 선택지로 부여하는 것이었다.
[1. 흠. 그럼 6개월 기다리죠, 뭐.] [2. 패왕산적단의 소굴이 어딥니까? 제가 패왕산적단의 소굴을 토벌하고 강탈당한 물건들을 모두 되찾아 드리겠습니다.]지크의 선택지는 당연히 두 번째였다.
“패왕산적단의 소굴이 어딥니까? 제가 패왕산적단의 소굴을 토벌하고 강탈당한 물건들을 모두 되찾아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퀘스트가 지크의 눈앞에 떠올랐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