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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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크는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의뢰를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우선은 태양신 헬리오스 교단에 찾아가 엑소시즘을 부탁했다.
“엑소시즘은 교단 수뇌부의 승인 없이는 절대로 허락할 수 없는 의식이오. 미안하지만….”
“이건 치천존 어르신께서 써주신 추천서입니다.”
지크가 헬리오스 교단의 사제를 향해 추천서를 내밀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 녀석은 본 치천존이 인정한 녀석이니, 안심하고 협조를 해줄 것을 부탁드리오.
뱀파이어 로드를 사냥하는 일이니, 교단 차원에서 엑소시즘을 지원해도 괜찮을 것이라오.
– 치천존 (인)
물론 그 추천서가 가짜라고 여길 수도 있었겠지만, 사제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추천서에 걸린 홀로그램 마법이 너무나도 정교하고, 또 황홀할 만큼 훌륭해서 마치 진짜 치천존이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귀하가 누구이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위대한 치천존 어르신의 추천서를 가지고 오셨으니 상부에 보고 후 곧바로 엑소시즘을 거행할 사제단을 꾸리도록 하겠소이다.”
“감사합니다.”
“헌데, 귀하의 신분을 알려주실 수 있겠소?”
“프로아 왕국의 왕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라고 합니다.”
지크가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아! 프로아 왕국의 국왕 전하셨구려!”
“프로아 왕국을 아십니까?!”
지크의 얼굴이 밝아졌다.
언제나 듣보잡 취급을 받다가 프로아 왕국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아십니까? 다들 모르던….”
“모르오.”
“예에…?”
“그냥 프로아 왕국의 국왕 전하라 하시기에 아! 프로아 왕국! 한 것이지, 아는 것은 아니었소이다.”
의도치 않은 훼이크였다.
주르륵….
지크는 또 한 번 속으로 울었다.
***
치천존의 추천서로 태양신 헬리오스를 모시는 교단으로부터 도움을 받게 된 지크는 한 가지 준비와 한 가지 준비물만 남겨놓게 되었다.
뱀파이어 로드를 가둬 놓고 팰 를 구성하는 것과, 죽음의 신 타나토스 교단의 성수를 구해오는 게 그것이었다.
문제는 그 두 가지 준비와 준비물이 구하기 그리 쉽지 않은, 정말이지 어려운 것들이었다는 데 있었다.
는 360도 전방을 거울로 감싸는 것을 의미했지만, 일반적인 거울 따위로는 뱀파이어 로드의 강력한 물리력을 견딜 수가 없었다.
[미러링 필드를 구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매우 강력한 수속성 능력자가 얼음벽을 세우고, 그 뒤에 은을 뿌리는 것일게다.]그래서 지크는 강력한 수속성 능력자를 찾아 나섰다.
– 최근 체크인 기록 없음 (49일)
그런데 인터벤션 호텔에 문의를 해본 결과, 지크가 아는 유일한 수속성 능력자인 고스란은 최근 49일 동안 체크인 기록이 없었다.
그렇다고 현실의 전화번호를 아는 것도 아니었고, BNW에 귓속말 시스템이 구현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고스란을 찾는 건 불가능했다.
‘그때 왜 말도 없이 떠나가지고.’
지크는 쿤룬산에서 사부의 눈빛에 죽은 후 떠나버린 고스란을 아쉬워했지만, 당장 그녀와 접촉할 방법이 없었기에 다른 능력자를 찾기로 했다.
용병 길드에 구인 공고를 넣고, BNW 커뮤니티인 에 파티원을 모집한다는 글을 올리고, 심지어 천우진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야. 너 주변에 아는 수속성 능력자 있냐?”
– 있긴 한데, 그 사람 요즘 엄청 바쁜데? 왜?
“뱀파이어 로드 사냥하려고.”
– 400레벨짜리 네임드 몬스터를 사냥하겠다고?
“그럼 멀쩡한 NPC들을 바치냐?”
– 그건 아니지. 내가 한번 물어봐줄게. 잠깐만.
그로부터 약 5분 후.
– 바쁘대.
“돈 많이 준다고 그냥 오라고 하면 안 되냐?”
– 얘도 돈 많아.
“…….”
– 한 번 더 물어봐주긴 할 텐데, 기대는 하지 마라.
“부탁 좀 하자.”
하지만 지크의 간곡한 요청에도, 천우진이 아는 수속성 능력자의 답변은 NO였다.
‘이건 마법사들한테 부탁해야겠다.’
결국, 지크는 프로아 왕국 소속 마법사들-데시마토는 고위급 마법사의 주문을 위해 다른 액션을 취할 수 없었다-에게 마법을 전개하게끔 함으로써 미러링 필드를 구현하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재료인 죽음의 신 타나토스 교단의 성수를 찾아 나섰다.
물론 그게 다가 아니었다.
‘바쁘다 바빠. 빨리 움직여야 해.’
지크는 나름의 생각이 있었으므로, 단순히 타나토스 교단의 성수를 찾는 것 이상으로 많은 일들을 해야만 했다.
***
그로부터 3일 후.
지크가 뱀파이어 로드에게 약속한 공물을 바치기로 한 시각.
“미친 새끼.”
“이 새끼 이거 아주 겁대가리를 상실했다니까?”
“조져 놓자.”
프로아 왕국의 국경으로부터 약 5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어느 평원에서는 제네시스 길드원 약 1,000여 명이 저마다 한마디씩을 떠들어대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네시스 길드원들이 기다리는 사람은 다름 아닌 지크였다.
사건의 발단은 어젯밤 제네시스 길드의 부길마인 민우의 개인 방송에 란 닉네임을 가진 시청자가 들어와 시비를 건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 지크TV : 채형석 입 돌아간 거 ㄹㅇ임?
– 지크TV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지크TV : X밥들 ㅎ
– 지크TV : 채형석 없으니까 길드 꼬라지 잘 돌아가더라 ㅎㅎㅎ
처음 민우는 일개 어그로꾼이 시비를 건다고 생각하고, 그 시청자를 강퇴하고 블랙리스트에 등재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 시청자의 정보를 타고 들어가니 지튜브 계정이 나왔는데, 제네시스 길드원들을 암살하는 영상이 무려 8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는 걸 확인하고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어그로 끌 거면 그냥 꺼지시지? 덤비지도 못하고 쥐새끼처럼 숨어다니는 주제에.”
그러자 가 대꾸했다.
– 지크TV : 누가 쥐새끼처럼 숨어다님? 아닌데 ㅎㅎㅎ
그 말에 민우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아니면 당당하게 우리 앞에서도 깝쳐 보시든가. 그러지도 못하는 주제에.”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 들어왔다.
– 지크TV : 니네 앞이라고 달라지냐? 꼬우면 내일 단체로 함 떠? 왕국 군대 끌고 가서 니들 다 도륙 내줄까? 쫄리면 뒈지시든가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민우는 그 제안을 수락하고 싶었지만, 길드 마스터인 채형석이 병원에 입원해 있던 관계로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민우는 채형석에게 전화를 걸어 그 제안에 응할지 말지를 물어보았다.
“형. 한태성 그 새끼가 내일 한판 뜨자는데? 단체로? 어떻게 할까?”
– 주, 죽여… 버려… 돌았네 그 X발… 새, 색기….
아직 회복이 채 되지 않아 채형석의 말투는 어눌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만은 분명했다.
찌를 듯한 적개심.
타오르는 분노.
그리고 명확한 살의.
지크의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 비열한 플레이로 인해 멘탈이 무너져 버리고 심지어 뇌경색까지 일으키고만 채형석으로서는 당연한 감정이었다.
“알겠어. 형 푹 쉬고 있어. 내가 그 새끼 조져 놓을 테니까.”
– 방ㅅ… 소, 송 켜줘라… 나도… 보, 보게.
“응.”
채형석의 허락이 떨어지자, 민우는 지크의 제안을 수락했다.
– 지크TV : 내일 낮에 여기서 붙기 가능?
지크TV가 월드맵의 특정 지역을 가리켰다.
그곳은 프로아 왕국의 국경으로부터 약 4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긴 했지만, 드넓은 평원인지라 딱히 함정이 있다거나 조심할 건 없어 보였다.
하지만 혹시 몰랐으므로, 민우는 그 지역으로부터 조금 더 떨어진 다른 평원을 골랐다.
“니를 어떻게 믿냐? 여기서 붙기로 하면 콜.”
그러자 지크TV는 민우가 찍은 지역에서 싸우는 것을 수락했다.
– 지크TV : 각오하셈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렇게 프로아 왕국 vs 제네시스 길드 간의 한판 승부가 결정되었고, 그 결과 민우는 제네시스 길드원 1,000명을 이끌고 이곳 평원까지 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약속된 시간이 무려 10분이나 지나도록, 지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또 10분이 흘렀을 때.
지크는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약속된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 새끼 쫄았네.”
누군가 말했다.
“뷰웅신. 붙지도 못할 거면서 부르고 지랄이야.”
“쯧쯧.”
“아. 괜히 나왔네.”
수없이 많은 제네시스 길드원들은 지크가 쫄아서 약속된 장소에 나오지 않은 걸로 판단하고, 발걸음을 돌리려 했다.
민우 역시 마찬가지.
“시답잖은 새끼. 패기 쩔길래 진짜인 줄 알았는데 구라였네. 하긴. 지가 아무리 왕이라도 코딱지만 한 X밥들 데리고 뭘 할 수 있겠어. 그놈의 황제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쳐들어가서 밀어버렸….”
바로 그때, 저 멀리 약 10킬로미터 정도 되는 지점에서 무언가 공기를 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민우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
그리고 놀랐다.
먼 하늘.
슈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무언가가 혜성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저건 뭐야?”
“유성인가?”
“마법은 아닌 것 같고… 사선으로 떨어지는 게… 운석 같은 건가?”
제네시스 길드원들 역시 저 멀리서 지면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길쭉한 물체를 바라보며 저마다 한마디씩을 떠들어댔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초 후.
퍼엉!
운석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먼 곳에 추락했다.
그러자 마치 핵폭탄이 터진 것처럼 버섯 모양의 구름이 피어오르며 대지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뭐, 뭔가 오는데…? 어? 어어어?”
무시무시한 후폭풍이 밀려와 제네시스 길드원들을 덮쳤다.
***
후폭풍이 가라앉은 직후.
“와. 뭐 거의 구덩이네. 구덩이야.”
제네시스 길드원들이 있던 자리에 나타난 지크가 주변을 둘러보며 혀를 내둘렀다.
“어, 엄청나다! 주인 놈아! 그거 도대체 뭐였냐?! 메테오 마법이냐?”
“아니.”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이거.”
그때, 저 멀리서 길쭉한 막대기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와 지크의 손아귀를 향해 빨려 들어갔다.
신의 지팡이.
전설의 대장장이 헤르베르트가 만들어낸 무시무시한 전략 병기였다.
그런 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 의 쿨타임이 365일 남았습니다!]무려 1년의 쿨타임… 지크는 아껴두고 아껴두었던 신의 지팡이를 사용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걸로 블러디 캐슬은 완파. 평지에서 싸울 수 있다.’
뱀파이어 로드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블러디 캐슬로 들어가야 했는데, 문제는 레이드에 참여하기로 한 이들이 한꺼번에 진입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블러디 캐슬의 내부 구조를 전혀 모르는 지크로서는 성 자체를 완파시키지 않으면 승산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신의 지팡이를 사용했던 것이다.
그러는 김에 겸사겸사 제네시스 길드를 낚아 유인한 후, 그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기로 한 것이고.
반짝반짝!
그리고 죽은 제네시스 길드원들이 떨군 랜덤 드랍 아이템들은….
“얼른 줍고 가자.”
“알겠다! 뀨!”
프로 대머리 독수리인 지크의 몫이 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