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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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전.
싱싱여고생을 이용해 거짓 정보를 흘리는 데 성공한 지크는 약 500여 명의 길드원들과 함께 포도밭 서쪽 게이트로 향했다.
서쪽 게이트 앞에는 고레벨 게이머 열 명을 포함한 각종 몬스터들, 용병들, 그리고 각양각색의 트랩들이 존재했다.
‘경비 삼엄한 거 보소.’
게이트 앞 방어 병력을 본 지크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최소 250레벨 수준의 게이머들이 열 명.
그것도 12강 이상의 고강 무기와 10강 이상의 방어구를 찬 게이머들이라면, 그 전투력이야 두말할 것도 없었다.
반대로 지크가 이끄는 뚝배기단의 게이머들은 나름 고레벨도 있었지만, 딱히 강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강한 게이머였다면 제네시스 길드에게 당하지 않았을 테니까.
제네시스는 철저히 약육강식의 논리를 앞세워 약자들을 짓밟고, 그들을 잡아먹으면서 커온 길드였다.
‘강하긴 한데.’
풀숲에 숨은 지크의 눈이 빛났다.
‘그렇게 멍 때리고 있을 때 폭격당해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게이머는 강하다.
NPC 역시 마찬가지이겠지만, 게이머가 마나를 끌어올리고 스킬을 사용하면 그 방어력과 회피 기동성은 가히 초인이라 할 만했다.
하지만 무방비 상태에서 매우 강력한 데미지를 입는다면?
그냥 강력한 데미지 수준이 아니라, 포격을 당한다면?
‘보면 알겠지.’
그렇게 생각한 지크가 곁에 있던 승구를 향해 눈빛을 보냈다.
끄덕끄덕!
그러자 승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미 소환되어 있는 아이언 골렘 25기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위잉… 철컥!
아주 약간의 소음과 함께 아이언 골렘 25기의 양어깨에 장착된 대포들이 포도밭 입구를 겨누었다.
그 대포들은 얼마 전 프로아 왕국의 국방 연구소에서 개발한 신형 무기로써, 그 위력이 이미 검증된 것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 내 손 진짜 똥손인가.”
“패 돌려 빨리.”
“나 이 판 그냥 죽어야겠다.”
입구를 지키는 제네시스 길드의 고레벨 게이머들은 마법의 덱(Deck)을 이용한 미니 게임인 을 즐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은 게임 BNW를 즐기는 게이머들이 정 할 짓이 없어 노가리를 깔 때 주로 즐기는 콘텐츠였다.
셋.
지크가 손가락을 펴 승구에게 보여주었다.
둘, 그리고 하나!
뒤이어 25기의 아이언 골렘에 장착된 대포 50문이 불을 뿜었다.
펑, 펑, 펑, 펑 펑, 펑… 퍼엉!!!
포격이 멈추고.
“위, 위력 보소?!”
지크는 신형 대포의 위력에 깜짝 놀랐다.
살아남은 게이머는 없었다.
가디언인 몬스터들 역시 마찬가지.
설치되어 있던 트랩들도 포탄 세례의 엄청난 위력 앞에 모두 작동되어 버려서, 오히려 게이트 앞을 지키던 병력들을 덮치는 데 크게 일조하고 말았다.
그러나 놀라고 있을 시간 따위, 없었다.
“갑시다.”
지크가 재빨리 풀숲에서 뛰쳐나갔다.
***
“빨리! 빨리!”
지크가 길드원들을 독려했다.
포도밭을 파괴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불을 지르거나, 나무를 뽑아서 망가뜨리거나, 열매를 모조리 뭉개는 등 어떤 방식이든 포도를 망가뜨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일개 포도밭 따위가 제네시스 길드의 전체 수입 중 제일 큰 부분을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뚝배기단이 포도밭을 망가뜨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었다.
코딱지만 한 텃밭이 아닌, 수십만 평이나 되는 초거대 포도밭을 단시간에 망가뜨리기란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지크는 오래간만에 스킬을 사용하기로 했다.
스으으으…!!!
그러자 지크로부터 초록색 안개, 즉 방사능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 전개한 이레디에이트 스킬은 과거와는 차원이 달랐다.
범위면 범위.
농도면 농도.
스킬의 위력은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져 있었다.
물론 스킬 자체가 일정 수준 이상의 독 저항력이나 아이템을 맞춘 게이머들에게는 그리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전까지와는 180도 달라졌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푸석, 푸서석!
방사능 에너지에 노출된 포도나무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뿌리까지 썩어 들어가 버렸다.
‘드래곤 하트를 섭취한 보람이 있네.’
지크는 며칠 전 크로매틱 드래곤의 하트 조각 몇 개를 섭취했단 걸 떠올리고 미소를 지었다.
불행하게도 라곤다라프의 드래곤 하트는 사부에게 명치를 세게 얻어맞은 덕분에 산산조각 나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 조각 하나를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마나를 엄청나게 올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마나 소모가 심한 스킬을 이전보다 더 강하게 더 오래 전개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고작 포도나무 망치는 데 지금 농도는 너무 과해. 농도를 낮추고 범위만 넓혀 보자.’
지크가 마나를 세밀하게 컨트롤해 보았다.
그러자 뿜어지는 방사능 에너지의 농도가 현저히 줄어들면서, 그 범위가 엄청나게 넓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농도가 낮은 만큼 데미지는 작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포도나무를 파괴하기에는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애초에 포도나무 한 그루를 못 쓰게 만드는 데 필요한 방사능 에너지의 양은 그리 많지 않을 터,
를 있는 힘껏 제 위력대로 전개하는 건 분명한 에너지 낭비였다.
‘그럼 이제….’
지크가 씩 웃으며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뛰어다니면 그만이겠네?’
그렇게 생각한 지크가 포도밭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
뚝배기단이 제네시스 길드 소유의 포도밭을 망치는 속도는 가히 무시무시할 지경이었다.
물리 타입?
혹은 마법 타입?
그 어떤 형식의 데미지라도 상관없었다.
뚝배기단원들은 광역 스킬이란 스킬은 모조리 퍼부어대고, 포도나무에 기름을 끼얹었다.
그리고 화염계 마법을 이용해 불을 붙였다.
화륵, 화르륵!
그러자 시뻘건 불길이 치솟아 오르며 포도나무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펑펑, 펑펑펑, 펑펑!
게다가 승구가 이끄는 아이언 골렘들이 대포를 발사하면, 그 일대는 순식간에 초토화되어 버리고 말았다.
단순히 포도만 상하는 게 아니라, 땅거죽이 뒤집히며 포도나무가 뿌리째 뽑혀나갔던 것이다.
그러기를 약 20여 분….
화륵, 화르륵!
수십만 평의 포도밭은 어느새 불바다가 되어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끌 수가 없는 지경까지 가고야 말았다.
파괴.
제네시스 길드의 가장 큰 자금줄을 끊어버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만하면 됐어!’
그렇게 생각한 지크는 곧바로 길드의 상징물이 새겨진 반지를 쓰다듬었다.
우웅!
그러자 반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퇴각! 퇴각하라!”
“튑시다!”
“튀어요! 튀어!”
길드 상징물이 진동하자 뚝배기단 소속 게이머들이 일제히 남쪽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들어왔던 서쪽 게이트로 튄다?
바보짓이었다.
그쪽은 제네시스 길드의 본대가 자리한 약초밭 방향이었다.
이 작전은 서쪽으로 출입해서 남쪽으로 퇴각하게끔 수립되어 있었기에, 뚝배기단은 일제히 남쪽으로 탈출을 감행했다.
지금쯤이면 뚝배기단 소속 게이머 500여 명이 남쪽 게이트를 습격, 퇴로를 확보해 놓았을 테니까.
“가자! 햄찌야!”
“뀨우!”
지크와 햄찌 역시 탈출로인 남쪽을 향해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
화륵, 화르륵!
포도밭이 불타고 있다는 걸 깨달은 민우는 순간 심장이 멎을 뻔했다.
저 포도밭이야말로 길드의 핵심 자금줄이었는데, 그게 불타고 있단 말은 길드의 힘이 크게 약해진다는 걸 의미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채형석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아, 안 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깨달은 민우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기, 길드원 전원!!! 포도밭으로!!! 포도밭으로!!!”
민우가 절규가 가까운 고함을 내질렀다.
***
“푸하하하하하하!!!”
“캬! 사이다!”
“이 XX새끼들! 엿 좀 처먹어 봐라!”
“캬캬캬캬캬!!!”
퇴각하는 뚝배기단의 입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 얼마나 통쾌한가!
그간 제네시스 길드의 무시무시한 힘 앞에 찍소리도 못한 채 당하고만 살았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오늘.
언제나 약자의 입장에서 철저히 짓밟히기만 하던 이들이 제네시스 길드의 주요 자금줄을 끊는 데 성공했으니, 사이다도 이런 사이다가 없을 지경이었다.
10년.
아니, 100년 묵은 체증이 시원하게 날아가 버린 기분이었다.
“자자! 그만 웃으시고! 빨리 튑시다! 잡히면 답 없어요!”
지크가 소리쳤다.
그렇게 소리친 이유는, 뚝배기단의 전력으로는 제네시스 길드의 본대를 절대로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네시스는 버퍼들을 중심으로 집단의 힘을 앞세우는, 말하자면 군대와 같은 집단이었다.
개개인은 그리 강하지 않지만 뭉치면 무시무시해진다는 특성이 있었기에, 뒤를 잡혔다간 뚝배기단이 몰살당하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일 터였다.
‘빨리 튀어야 해. 포도밭 파괴에 시간을 너무 오래 끌었어.’
그러던 중 어느덧 남쪽 게이트 앞에 도착한 지크는, 예상치 못한 광경을 목격하고는 달리기를 멈추었다.
‘이게… 아닌데…?’
뭔가 이상했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뚝배기단 게이머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게이트는 열려 있었지만, 지크와 뚝배기단을 기다리고 있는 건 같은 뚝배기단 게이머들이 아니었다.
널브러진 시체들.
흩뿌려진 피.
떨어져 나간 팔과 다리–그래 봐야 게이머들의 것이라 곧 스르륵 하고 사라질 테지만-들.
그리고 땅에 떨어진 채 반짝이고 있는 랜덤 드랍 아이템들까지.
지크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 건 대학살이 벌어졌었다는 증거들뿐이었다.
문제는 학살을 당한 게이머들의 시체가 누가 봐도 뚝배기단 소속이었다는 것.
‘뭔가 잘못됐어.’
지크가 그런 생각을 할 무렵이었다.
“니가 그 새끼냐?”
뚝배기단 게이머들의 시체를 등지고, 누군가가 슥- 하고 걸어 나와 지크를 향해 말을 걸었다.
그런 그의 가슴팍에는 날개 모양이 뱃지, 그러니까 제네시스 길드의 상징물이 매달려 있었다.
제네시스 길드원.
상대는 뚝배기단 게이머들을 학살한 범인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리고….
‘학살갓…!!!’
지크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상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ID 학살갓.
그는 네임드 게이머로서 제네시스 길드의 을 담당하고 있는 하나의 큰 축이었다.
***
버프는 만능이 아니다.
물론 고레벨 버퍼가 걸어주는 버프는 마치 전지전능한 신의 은총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왜?
버프는 게이머로 하여금 본래 스펙으로는 절대로 버티지 못할 공격을 버티게 해주고, 데미지가 안 박히는 몬스터의 방어력을 뚫어버릴 공격력을 선사하니까.
어느 게임이든지 간에, 괜히 버퍼가 ‘신’ 혹은 ‘귀족’으로서 대우받는 게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런 버프에도 한계란 명백히 존재했다.
버프는 약자를 강하게 만들어줄 순 있지만, 초강자를 만들어줄 수는 없었다.
제네시스의 길드원들은 머릿수에 비해 질적 수준이 그리 높지 못했기에, 버프를 아무리 받아도 랭커급 게이머들을 상대할 수가 없었다.
버프를 100퍼센트 활용하려거든 일정 수준 이상의 강자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학살갓이 바로 그런 존재였다.
길드 마스터인 채형석부터가 버퍼의 상위 클래스인 홀리 세인트인지라, 제네시스는 언제나 공격력이 부족하단 약점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학살갓은 길드의 그런 단점을 보완해주는 매우 훌륭한 보완재 중 하나였다.
즉, 학살갓이야말로 고레벨 버퍼의 버프를 십분 활용하여 길드의 메인 화력을 책임지는 고레벨 딜러였던 것이다.
게다가 학살갓은 두 자루의 리볼버를 사용하는 라는 클래스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 클래스의 공격력은 다른 10대 길드에서조차 경계할 정도로 강력했다.
‘학살갓 저 인간을 여기서 만나다니….’
지크는 이를 악물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더니, 적은 학살갓 한 명이 아니었다.
열 명의 버퍼.
그리고 학살갓보다는 못하지만, 최소한 그 아래 등급 정도는 되는 제네시스 길드의 딜러들까지.
탈출로를 담당했던 뚝배기단 게이머들이 몰살을 당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포도밭은 포도밭이고.”
학살갓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니 실력 좀 보자.”
그와 동시에.
타앙!
이미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던 학살갓의 두 자루 리볼버 중 하나가 불을 뿜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