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262
261
“마우레키온 제국이요?”
…라고 지크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순간.
“망할!!!”
미켈레가 버럭 소리쳤다.
“하필 이럴 때 기어오다니. 이런 빌어먹을 새끼들.”
“저, 저기 미켈레야?”
지크는 그런 미켈레의 변화에 깜짝 놀랐다.
“너 갑자기 왜 그래…? 요즘 뭐 안 좋은 일….”
“별거 아닙니다. 휴우.”
미켈레가 애써 분노를 억누르더니 대답했다.
“그냥 요즘 업무가 너무 많습니다. 예산도 빠듯하고요.”
“아하? 하하. 하하하… 그, 그랬구나….”
업무로 인해 미켈레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는 걸 깨달은 지크는 멋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미켈레가 이토록 사납고 까칠하게 변한 건 모두 지크 본인 때문이라는 걸 알아서였다.
‘내가 업무를 좀 게을리하긴 했지. 하하하….’
지크가 왕으로서 해야 할 일의 99.9퍼센트 정도를 떠넘긴 탓에, 미켈레의 업무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던 것이다.
좀 까칠해지긴 했어도 그 많은 업무를 모조리 해치워내고 있다는 건, 미켈레가 천재적인 관료라는 증거였다.
“어쨌든….”
미켈레가 짜증이 섞인 말투로 말했다.
“이런 어수선한 시기에 마우레키온 제국에서 사신이 왔다는 건 그리 달갑지 않군요.”
“왜?”
“일단 피곤하잖습니까.”
미켈레가 툴툴거렸다.
“세계 최강대국인 마우레키온 제국의 사신이라면… 본국의 입장에서는 일개 평민 출신 공무원이라도 왕족 그 이상의 대우를 해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것도 그러네?”
지크 역시 인상을 찌푸렸다.
“일단 접대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한데, 사신이 무슨 말을 할지도 모른단 게 문제입니다.”
“딱히 뭐 있겠어? 그냥 잘 지내냐고 묻지 않을까?”
“글쎄요.”
미켈레가 다소 찜찜하다는 듯 대답했다.
“일단 만나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어쨌거나 실수가 없도록 주의하셔야 할 겁니다.”
“그래야겠네.”
지크는 미켈레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마우레키온 제국의 사신은 곧 황제의 대리인이었으므로, 극진하게 대접하는 것이 상책일 테니까.
세계 최고의 약소국-사실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인 주제에 감히 제국에게 개겼다간….
나라 전체가 박살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채 반나절도 걸리지 않을 게 분명했다.
“잠깐. 근데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야? 우리 지금 유토피아 프로젝트 가동 중이잖아?”
유토피아 프로젝트는 외부로부터 프로아의 힘을 숨기는 것.
현재 그 프로젝트의 90퍼센트 이상이 진행된 상황이었기에, 외국인은 죽었다 깨어나도 진정한 프로아 왕국의 국토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었다.
“마우레키온 제국은 예외입니다.”
“그으래?”
“세계 최강대국의 정보력이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기 마련이지요. 그들은 이미 모조리 알고 있을 겁니다.”
“것도 그렇겠네.”
“어차피 본국에는 별반 관심도 없을 테니, 숨겨 봐야 의미가 없기도 하지요. 게다가 제국과 본국은 워프 게이트가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어 굳이 공간 왜곡 지대를 통과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쉽게 찾아올 수 있었던 거구나?”
“예, 전하.”
“알겠어.”
지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제국의 사신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
그로부터 약 다섯 시간 후.
지크는 마우레키온 제국의 사신을 접견했다.
“어서 오십시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라고 합니다.”
평범한 옥좌에 앉은 지크가 공손한 말투로 마우레키온 제국의 사신을 맞이했다.
크로매틱 드래곤의 두개골 옥좌를 황급히 치운 이유는, 고작 약소국의 왕 따위가 황제조차 앉지 못하는 초호화 옥좌를 쓰기 좀 그랬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프로아 왕국은 마우레키온 제국의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다섯 시간 동안이나 이런저런 청소를 포함한 ‘없는 척’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
마우레키온 제국의 사신이 지크에게 살짝, 아주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며 자신을 소개했다.
“오래간만이옵니다, 전하.”
“아? 나이델베르크 남작님?”
지크가 사신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기억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알고 보니 마우레키온 제국의 사신은, 지크가 천하제일생존대회에 우승했을 당시에도 황제의 대리인 역할을 했던 나이델베르크였다.
“하하. 당연히 기억합니다. 어떻게 잊을까요.”
“그러셨습니까? 하하하.”
“어떻게… 오시는 길은 편안하셨습니까? 꽤 오래 기다리신 것 같은데 혹시 지루하시거나 불쾌하시지는 않으셨는지….”
“저는 괜찮습니다, 전하.”
나이델베르크가 수더분한 미소를 지었다. 황제를 대신해 지크에게 왕위를 하사할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때와 지금은 분위기가 다를 수밖에 없기도 한 상황이기도 했고.
“본국의 사신은 다른 건 몰라도 기다리는 것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습니다. 이렇듯 예고 없이 찾아온 경우에는 최소한의 시간 정도는 드리는 것이 관례 아니겠습니까?”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뉘르부르크 대륙에는 강대국이 약소국에 갑자기 사신을 보낼 때 최소 반나절에서 길게는 하루 정도 시간을 주는 관례가 있었다.
약소국이 강대국에게 무언가 트집 잡힐 만한 걸 치울 시간을 주는, 일종의 배려인 것이다.
“헌데 어쩐 일로 찾아오셨는지….”
“존엄하신 황제 폐하의 친서를 전달하기 위해 왔습니다.”
“황제 폐하의 친서!”
지크는 짐짓 놀라는 척 연기하며 속으로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왜 친서 같은 걸 보내고 난리야. 아오! 할 일이 그렇게 없냐!’
지크는 내심 황제를 욕했지만, 힘없는 약소국의 왕인지라 닥치고 친서에 적힌 내용을 전해 듣기로 했다.
“그럼, 여기 앉으시지요.”
지크가 나이델베르크에게 옥좌를 권했다.
“예, 그럼….”
권유에 따라 나이델베르크가 옥좌에 앉고, 지크는 그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빌어먹을 예법 같으니. 황제가 직접 온 것도 아닌데 내가 왜 무릎을 꿇고 내 자릴 양보해야 되는 거야? 아오!’
지크는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뉘르부르크 대륙의 예법상 어쩔 수가 없었다.
말하자면, 지크는 황제가 임명한 제후 혹은 영주였다.
프로아틴 지방 자체가 본래부터 제국령이었고, 지금의 프로아 왕국 역시 마찬가지.
황제가 약속한 보호 기간 동안은 제국령에 속해 있을 수밖에 없었기도 했고.
그래서 뉘르부르크 대륙의 예법에 따라, 지크는 신하로서 군주인 황제의 친서에 예를 취해야 했다.
마치 황제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잘 지냈는가?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대공이여.”
나이델베르크가 황제의 친서를 읽기 시작했다.
“이것이 짐이 그대를 왕위에 봉한 후 보내는 첫 번째 친서인 듯한데, 그간 별일은 없었는지 궁금하도다. 혹시 오래도록 안부 한 번을 묻지 않아 서운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되는 바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제 폐하.”
“그렇다고 제후인 그대가 감히 짐에게 먼저 친서를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는 다 짐의 불찰이도다. 부디 너그러이 이해하여 주었으면….”
황제의 친서에는 별 내용이랄 게 없었다.
그저 지크의 안부를 물으며 국가 운영에 어려운 점은 없는지, 혹은 제국의 원조가 필요하지는 않은지, 아직 미혼인 것으로 아는지 결혼 계획은 있느냐 따위의 시시껄렁한 안부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친서의 내용에 황제의 진짜 의도가 깃들어 있었다.
“최근 제네시스 길드의 길드 마스터가 짐에게 찾아와 억울함을 호소한 바가 있으니, 그의 말만을 들어보면 명백히 그대의 과실인 것 같도다.”
“…채형석 이 새끼가.”
“예?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설마….”
친서를 읽던 나이델베르크가 지크의 아주 작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혼잣말을 듣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아닙니다.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황제 폐하의 친서를 읽고 계신데 제가 감히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하하하.”
“흐음. 그렇습니까? 그러시다니 마저 읽겠습니다.”
“그러시죠. 하하하….”
“흠흠. 그럼… 그러나 짐이 생각하기에, 어떠한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질 때 어느 한쪽의 말만 듣고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하여, 짐은 그대와 모험가 길드인 제네시스의 길드 마스터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보고자 한다. 이에 짐이 명하노니, 프로아의 왕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대공은….”
그와 동시에.
띠링!
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삼자대면]마우레키온 제국의 수도에 자리한 황성으로 가 황제를 만나고, 제네시스 길드의 마스터인 디자이어와 대면하라.
•타입 : 스페셜 퀘스트
•진행률 : 0%
•보상 : –
•주의 사항 : 이 퀘스트에 불응할 시 무시무시한 보복을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퀘스트창을 확인한 지크는 그제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쪼르르 가서 일러바쳤다 이거냐? 꼬추 떼라, 이 자식아.’
정작 그곳을 떼야 할 사람은 본인인 주제에, 지크는 내심 채형석을 남자답지 못하다고 욕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었다.
물론 지크가 그곳을 떼야 하는 이유는 채형석과는 달리 순전히 여자 문제였지만 말이다.
[알림 :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알림 : Yes / No]눈앞에 떠오른 선택지.
[입력: Yes!] [알림 :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감히 황제의 부름을 거절할 수 없었으므로, 지크는 퀘스트를 수락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존엄하신 황제 폐하시여. 신(臣)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는 폐하께서 정해주신 날짜와 시간에 폐하를 알현할 것이옵니다.”
지크가 친서를 향해 넙죽 엎드려 절했다.
***
나이델베르크가 돌아간 직후.
“보호 기간이면 보호 기간인 줄 알고 닥치고 있을 것이지, 쪼르르 황제한테 달려가서 고자질을 해? 에라이, 이 치사한 새끼.”
다시금 크로매틱 드래곤의 두개골 옥좌에 앉은 지크는 채형석을 욕하며 투덜거렸다.
프로아 왕국이 황제의 칙명과 제국령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황제에게 징징거린 걸 보면, 채형석도 어지간히 속이 탔던 모양이다.
하기야, 지크로부터 입은 재산 피해의 규모가 현금 100억 원을 훌쩍 넘어가기 시작했으니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단지 지크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빠서 문제였을 뿐….
그로부터 3일 후.
“제발. 부디. 어떻게든.”
미켈레가 워프 게이트 위에 올라선 지크에게 신신당부에 당부를 거듭했다.
“잘 마무리하셔야 합니다. 혹시나 보호 기간이 철회되었다간… 그때는….”
“아, 알겠다니까.”
지크가 아주 약간 짜증난 표정으로 미켈레를 안심시켰다.
“걱정 마. 그런 실수 안 할 테니까.”
“당연히 그러셔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미켈레의 표정은 절박했다.
“보호 기간이 철회되었다간 그 길로 본국은 멸망할 테니 말입니다.”
“설마 철회하겠어. 지도 뱉은 말이 있는데.”
“그렇다고 마냥 안심할 순 없습니다. 제네시스 길드와의 싸움은 명백히 본국의 선제공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걸 빌미로 보호를 철회할 수도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나도 알아. 근데, 나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니까 걱정 붙들어 매.”
과거의 앙금이라는 명분이 있었으므로, 지크는 미켈레를 안심시킬 수 있었다.
“아무튼, 다녀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예, 전하. 믿겠습니다.”
지크는 걱정이 태산인 미켈레를 뒤로하고 워프 게이트 위에 올랐다.
번쩍!
다음 순간.
[마우레키온 제국의 수도 : 피의 궁전] [11,271번 워프 룸]지크의 눈앞에 현재 위치를 알리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워프 룸이 만 개가 넘어? 미쳤네.’
지크는 워프 룸 넘버를 보고 경악했다.
프로아 왕국은 겨우 30개 남짓한 워프 채널밖에 없는데, 무려 만 개라니?
과연 세계 최강대국의 인프라는 코딱지만 한 약소국과는 차원이 다른 것 같았다.
‘이제 여기서 나가면 되는 건가? 나 길 모르는데….’
지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일단 워프 룸을 열어보았다.
끼익.
문이 열리고.
“어서 오시지요,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
제국의 시종이 지크를 맞이하던 순간.
‘어?’
지크는 맞은편 워프 룸을 열고 나온 사람과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채형석?’
지크가 채형석을 알아보기가 무섭게.
‘한태성!’
채형석 역시 지크를 알아보았고, 두 사람의 눈이 서로를 향해 살벌하게 번뜩였다.
다음 순간.
‘이 개 같은 새끼!’
지크를 발견한 채형석은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휘둘렀다.
후욱!
채형석의 주먹이 지크의 안면을 향해 날아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