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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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아아악!!!”
햄찌가 털을 곤두세웠다.
“아, 이건 좀….”
승구는 혀를 내둘렀으며.
스윽, 슥!
그랭구아르는 사관답게 역사서에 자신이 본 광경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그리고 지크는….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거리들인데?”
교황청 소속 장병들과 기사들의 행동에 분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일까?
왜?
아무런 저항 없이 교황청의 군대를 맞아준 시민들을 학살하는 이유가 뭘까?
알 수는 없었지만, 지크는 일단 이 피비린내 나는 참혹한 광경부터 막고 보기로 했다.
“뒈져라!”
“잠깐!”
“……?”
“저기요.”
지크가 웬 사내의 목을 치려던 기사를 가로막았다.
“잠시 멈춰주시죠.”
“네놈은 누구냐! 보아하니 성전사로 지원한 용병인 것 같은데! 비켜라! 본인은 지금 정화 작업 중이니!”
“정화 작업?”
“이런 젠장! 이단자인 가짜 황제에게 협력한 이 사악한 것들을 그냥 내버려두란 말이냐? 이것들은 이단이다! 이단! 쳐 죽여야 할 마귀들이란 말이다!”
그때였다.
“야압!”
기사의 옆에 있던 장교가 재빨리 검을 뽑아 사내의 목을 쳤다.
푸화악!
피가 튀고.
털썩!
데구르르….
사내의 몸뚱이가 쓰러지고, 잘린 머리가 돌바닥을 나뒹굴었다.
“…….”
지크는 말없이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전하.”
그랭구아르가 지크의 팔을 움켜잡았다.
“가시죠.”
“가자고요?”
“이건 내전입니다. 또한, 저들은 저들의 신앙과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있습니다.”
“신앙과 신념이라….”
“게다가 전하께선 프로아 왕국의 국왕이십니다. 용병의 신분으로 전투에 참가하시는 것까지는 상관없겠지만, 만약 여기서 저들을 제지하시거나 문제를 일으키신다면 자칫 외교적 문제로 불거질 가능성이 큽니다.”
“…….”
“가시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현명한 그랭구아르는 비록 사관의 신분임에도 왕인 지크에게 적절한 조언을 해주는 한편, 그를 사건 현장에서 벗어나도록 유도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랭구아르가 이기적인 냉혈한인 것은 아니었다.
‘종교가 만들어내는 광기란 정말이지 무시무시하구나. 이런 끔찍한 일을 벌일 필요가 있는 것인가?’
그랭구아르 역시 지금 이 광경이 무척 싫었지만, 왕인 지크가 사고를 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냉정해질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전하께서는 때때로 감당 못 할 사고를 칠 가능성이 높으신 분입니다. 그러니 전하를 잘 감시… 아니, 주시하셨다가 잘 보필해 주시지요.] [예, 미켈레 공.]또한, 미켈레의 신신당부가 있었기에 그랭구아르는 더더욱 냉철하게 행동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지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개 같은 새끼들. 갈수록 비호감이네. 난 절대로 이 학살에 동의할 수 없어. 죽어도.’
지크는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해 참았다.
‘이건 내전이다. 황당파와 교황청 사이의 문제지, 내 문제가 아냐. 나는 용병일 뿐. 내가 함부로 행동했다간 프로아가 위험해진다. 참아야 한다.’
안 그래도 딱히 하는 일도 없는 주제에,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치기는 싫은 지크였다.
왕으로서 최소한의 책임 의식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것이다.
“조용한 곳으로… 가자.”
지크가 털을 곤두세운 채 당장에라도 사고를 칠 것만 같은 햄찌를 억지로 끌고 발걸음을 옮겼다.
***
“꺄아아악!!!”
“으악!”
“커헉!”
“사, 살려… 으악!!!”
그 후로도 에서는 비명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를 않았다.
학살의 향연.
거리 곳곳에 시체가 쌓였고, 흐르는 피가 바닥을 온통 적셨으며, 죽어가는 이들의 마지막 외침에 끊임없이 메아리쳤다.
의 모 술집 안.
“…그냥 로그아웃할까.”
지크는 텅 빈 술집에 걸터앉은 채 로그아웃을 고민했다.
참고 있자니 속이 터지고, 그러자고 나서자니 외교적 문제가 걸렸기에 도무지 로그인한 상태에서는 버티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아무리 NPC들이라지만, 비명과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도시 한복판에 있자니 멀쩡하던 정신마저 피폐해지는 기분이었다.
“형님. 그냥 저랑 같이 로그아웃하다 오시죠. 저도 못 참겠습니다.”
“그럴까?”
승구 역시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캬아아악!! 인간은 너무 사악하다!!”
“치가 떨리는 광기입니다. 저러다 말겠지, 했는데 이건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햄찌와 그랭구아르는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었다.
‘진짜 이 게임은 가끔 쓸데없이 너무 디테일하고 현실성….’
지크가 그런 생각을 하던 때였다.
콰앙!
낡은 문이 와장창 부서지더니, 웬 아낙이 술집 안으로 처박혔다.
“아. 진짜 X나게 버티네.”
“내놓으라니까?”
“말로 해서는 안 되겠네?”
한 무리의 게이머들이 그런 아낙을 향해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이, 이것은… 제 남편의 유일한 유품입니다…! 모, 모험가 여러분들! 제발 이것만은….”
아낙은 목에 건 목걸이를 자신의 생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움켜쥔 채 울고불고 빌었다.
그러나 게이머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아. 그냥 죽이고 뺏자니까.”
기어코 한 게이머가 강화가 꽤 되었는지 반짝이는 검을 들고 아낙을 향해 다가섰다.
그런 게이머의 가슴팍에는 날개를 형상화한 V자 모양의 뱃지가 매달려 있었다.
‘제네시스.’
지크가 게이머들의 소속을 한눈에 알아보고는 앞으로 슥 나섰다.
“어이.”
지크가 아낙을 죽이고 목걸이를 뺏으려던 게이머의 앞을 가로막았다.
“내가 지금 기분이 더러우니까, 곱게 꺼져라.”
“곱게 꺼져? 너 뭔데?”
제네시스 길드원이 지크를 향해 을 비추어 보았다.
“지크…프리트? 니가 그 새끼였냐?”
“그래. 내가 그 새끼다.”
지크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그러니까 꺼져. 뒈지기 싫으면.”
“뒈지기 싫으며언? 이 새끼가 진짜 미쳤나.”
“강도짓을 하려는 거 같은데, 이거 전쟁 범죄인 거 모르나? 용병이면 용병답게 조용히 있지. 교황청 NPC들한테 니들이 강도짓을 벌이고 있다는 걸….”
그 순간이었다.
타앙!
지크와 대립하고 있던 제네시스 길드원이 아닌, 뒤편에 서 있던 다른 제네시스 길드원이 재빨리 권총을 뽑아들고 방아쇠를 당겼다.
털썩.
아낙이 쓰러지고.
주르륵….
술집 바닥이 피로 흥건히 젖어들기 시작했다.
지크가 미처 반응할 사이도 없이 이루어진, 정말이지 빠른 사격이었다.
“이 미친 새끼들이…!”
그 광경을 본 지크가 입에서 쌍욕을 내뱉을 때.
“후우.”
총을 쏜 제네시스 길드원이 화약이 뿜어져 나오는 총구를 입으로 훅! 하고 불더니 앞으로 스윽 하고 나섰다.
“오래간만이다?”
아낙을 총으로 쏴 죽인 제네시스 길드원은 다름 아닌 이었다.
지난번 포도밭 방화 사건 당시 지크와 대립했다가 패배했던 바로 그 게이머 말이다.
“잘 지냈냐?”
“이게… 뭔 짓거리냐.”
지크가 씹어내듯 으르렁거렸다.
“이따위 짓을 저지르고도….”
“이게 있어서 말이지.”
학살갓이 웬 종이쪼가리 같은 걸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살랑살랑 흔들어 보였다.
“짜잔!”
“…….”
“이게 있는데 뭔 걱정이야? 이건 자유 이용권 같은 거야. 모든 범죄를 모조리 용서해 준다고.”
학살갓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는 종이 쪼가리는 지크 역시도 가지고 있는 거였다.
만능 면죄부.
출동 전 교황청의 사제가 지크에게 나누어 주었던 쿠폰이었다.
‘설마.’
순간 지크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교황청은 어째서 만능 면죄부를 게이머들에게 나누어 준 걸까?
게이머들이 괜히 전쟁 범죄를 일으키면 자신들만 골치 아파질 텐데.
마치 게이머들이 전쟁 범죄라도 일으켜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이러라고….”
“딩, 동, 댕!”
학살갓이 지크의 혼잣말을 받았다.
“설마 이제 안 거야? 아, X밥이라 정보에 어둡겠구나. 우린 이미 다 들었거든.”
“뭘 들었는데?”
“교황청은 황당파에 조금이라도 협력했던 도시들 몇 개를 가만 안 둘 생각이거든. 본보기로 쓸어버릴 예정이지.”
“그래서?”
“그래서는 뭘 그래서냐? 지들이 일일이 조지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귀찮잖아? 그래서 우리한테 면죄부를 나눠준 거라고. 깽판 한번 맘껏 쳐보라고.”
그게 이유였다.
본보기.
황당파에 조금이라도 협력하는 도시는 도시 전체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무시무시한 징벌을 내리겠단 의미인 것이다.
교황청은 처음 점령지 몇 개를 이런 식으로 쳐부수면서, 황당파가 다스리는 지역의 도시들이 두려움에 떨기를 원했다.
이단자로 낙인찍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자극해 황당파에 협력하지 못하도록.
힘-사실은 돈-의 우위를 바탕으로 의 이름을 앞세워 학살극을 벌이는 이유였다.
“우리 입장에선 땡큐지. 평소엔 패널티가 무서워서라도 NPC들 함부로 못 건드리는데, 지금은 자유 이용권이 있잖아?”
“…….”
“뺏고 싶으면 뺏고, 죽이고 싶으면 죽이고, 때려 부수고 싶으면 때려 부수는 거야. 스트레스 해소엔 이만한 게 없지. 그리고….”
학살갓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씨익 웃었다.
“이게 약탈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해요. NPC들 죽이고 털다 보면 은근히 템 파밍도 쏠쏠하거든. 난 이 면죄부 다 쓰면 따로 몇 개 구입할 생각….”
학살갓이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붕, 부웅!
지크가 무지갯빛 원반 두 개를 내던졌다.
“뭐야? 이 병신 같은 기습은?”
학살갓이 피식 웃으며 날아드는 원반을 손에 쥔 권총을 들어 막았다.
터엉!
원반이 학살갓의 권총을 맞고 튕겨나가는가 싶더니 촤라락! 하는 소리와 함께 500개의 얇디얇은 비수가 되어 흩어졌다.
애초에 학살갓을 노리지 않았던 원반 역시 500개의 비수가 되어 흩어졌다.
“어?”
학살갓이 말 그대로 ‘어?’ 하던 순간.
촤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
좁은 술집 내부로 총 1,000개의 무지갯빛 비수들이 마치 폭풍처럼 회전하며 제네시스 길드원들을 ‘갈아버리기’ 시작했다.
마치 믹서기처럼 말이다!
***
만천화우.
그 죽음의 비가 그친 후.
“…….”
“…….”
“…….”
햄찌와 승구와 그랭구아르는 지크가 시전한 만천화우의 위력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지크가 오래간만에 시전한 스킬의 위력은… 그야말로 ‘죽음’ 그 자체였다.
시체?
없었다.
나선을 그리며 휘몰아친 1,000개의 표창들은 학살갓을 포함한 제네시스 길드원들의 육체를 베다 못해 갈아버렸고, 그 결과 시체조차 남기지 않았던 것이다.
반짝반짝!
걸쭉한 핏물이 흥건한 술집 바닥에는 죽은 제네시스 길드원들이 떨군 랜덤 드랍 아이템들만이 나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이거 왜 이렇게 세?’
지크는 스킬의 위력에 스스로도 놀랐다.
디버프 없이 이 정도라니….
하지만 가 이만한 데미지를 뿜어낼 수 있는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일단 무기부터가 크로매틱 드래곤의 비늘로 만든 새로운 표창 세트라서 기존의 것보다 데미지가 40퍼센트는 셌다.
레벨이 오름에 따라 만천화우의 스킬 레벨 역시 올랐다는 것도 이 엄청난 데미지의 원인 중 하나였다.
또한, 만천화우는 무기나 스킬 레벨뿐 아니라 지크가 가진 마나의 총량이 높을수록 데미지가 더 세지는 스킬이었다.
시전 시 마나의 100퍼센트를 소모해 버리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에, 마나의 양에 비례해 데미지 역시 증가하는 것이다.
최근 크로매틱 드래곤의 심장 조각과 테라모그의 핵을 섭취해 마나가 비약적으로 상승한 지크였기에, 만천화우의 데미지가 더욱 세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혀, 형님?”
승구가 지크에게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방금… 사고 치신 것 같은데요?”
“쳤지.”
지크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내 일도 아니니까. 내가 무슨 정의의 사도도 아니고. 그래서 그냥 참으려고 했는데, 이건 도저히 못 참겠다.”
“그, 그럼 이제 어쩌실 겁니까?”
“어쩌긴 뭘 어째?”
지크가 퉁명스레 대답했다.
“교황청 이 구역질 나는 자식들 통수 거하게 치고 적진으로 넘어가야지.”
공교롭게도, 그렇게 말하는 지크의 머리 위 칭호가 때마침 에서 으로 뒤바뀌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