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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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아!!!
쏟아지는 화살 비.
뛰어오른 지크는 그런 화살 비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다음 순간.
지크가 몸을 잠깐 웅크렸다가, 순간적으로 활짝 피면서 두 개의 원반을 내던졌다.
붕, 부웅!
원반들이 떨어지는 화살 비를 향해 날아가는가 싶더니.
촤락, 촤라락!!!
각각 500개씩 1,000개의 표창으로 분리되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만천, 화우!
그것이 쏟아지는 화살 비로부터 모두를 지키기 위한 지크의 선택이었고, 옳았다.
휘이이이이이이이!!!
지크의 스킬에 의해 움직이는 1,000개의 표창들은, 마치 유도탄이라도 되는 것처럼 스스로 날아다니며 떨어져 내리는 화살들을 공격했다.
그 광경은 가히 장관이었다.
크로매틱 드래곤의 비늘로 만든 표창들이 무지갯빛 섬광을 내뿜으며 온 하늘을 메운 모습이란, 꽃이 만개해 흩날리는 봄날과도 같았다.
하늘을 가득 채운 꽃의 비.
라는 스킬 이름 그대로였다.
“아아!”
“아, 아름…답다.”
“정말이지, 황홀할 정도야….”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은 넋을 잃었고, 모든 걸 잊었다.
교황청의 대학살극.
가족, 친구, 애인 등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
추격해오는 적들.
그리고 일분일초가 긴박한 처절한 탈주까지.
지크가 연출해낸 이 아름다운 광경은, 그 모든 것들을 아주 잠깐이나마 잊게 만들어줄 만큼 황홀했다.
게다가 피로 물든 붉은 강 위에 펼쳐진 꽃의 비는, 정말이지 그로테스크하고 또 비현실적이었다.
비극이 만들어낸 한 폭의 그림.
그리고 그 그림을 만들어낸 사람은 지크였다.
다음 순간.
후득, 후드득!
토막 난 화살 수천 개가 힘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지크의 표창들에 의해 최소 두 동강 이상이 나면서, 운동 에너지를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만천화우로부터 살아남은 화살은 딱 한 발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화살에 맞은 사람은.
“악! 내 엉덩이!”
불행히도 승구였다.
“하, 하필 여기에… 끄으으응!!!”
승구는 오른쪽 엉덩이에 화살이 꽂힌 채 신음했다.
“어? 미안.”
지크가 돌아온 원반들을 낚아채며 승구를 향해 사과했다.
“그게 또 한 발이 세네. 컨트롤 미스 났다. 연습 좀 더 해야지.”
“노리신 거 아닙니까? 왜 저만….”
“그거 니가 운이 더럽게 없으니까 그렇지.”
“예? 제가요?”
“너 죽을 때마다 주무기 떨구는 거 알기는 하냐?”
“어?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승구는 그제야 지크로부터 아이템을 여러 번 받았던 걸 기억해냈다.
“죽을 때마다 이걸 떨궜던 것 같은….”
승구가 손에 쥔 아이템을 꼭 쥐면서 중얼거렸다.
“이제 알겠냐? 너는 운이 더럽게 없어.”
“너, 너무하십니다!”
“너무하긴 사실인데.”
“흑….”
“하긴 진실은 언제나 뼈아픈 법이지.”
지크와 승구가 그렇게 만담을 나누는 동안.
“뀨우! 가자아아!!!”
햄찌가 운전하는 아쿠아 러너는 물살을 빠르게 가르며 허드슨 강의 하류, 즉 동부 콘스탄틴 진영으로 향했다.
덕분에 교황청의 군대는.
“…….”
“…….”
“…….”
그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저 멀리 사라지는 지크 일행을 바라만 보아야만 했다.
닭 쫓던 개가 된 것이다.
“허허….”
지크를 뒤쫓던 군대의 지휘관은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래… 저 정도면 그냥 보내줄 만하지. 좋은 구경 했구먼. 허허허….”
어차피 쫓아갈 방법도 없었지만, 이만 하면 쫓는 입장에서도 두 손 두 발을 다 들게 만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시말서나 쓰러 가야겠군. 전 병력! 돌아간다!”
교황청의 지휘관은 빽빽한 깜지 열 장을 쓸 것을 생각하며 철수를 명령했다.
그랭구아르는 지크가 아리아 시에 입성하던 순간부터 탈출하기까지의 과정을 사서에 적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콘스탄틴 제국의 내전에 참전하신 대왕께서는, 아리아 시에서 벌어진 피의 학살극에 분노하셨다.
대왕께서는 고뇌하셨다.
죄 없는 아리아 시의 시민들이 죽어가는 걸 용납할 수가 없으셨으나, 나설 수 없는 현실에 괴로워하시었다.
(중략)
그러나 대왕께서는 외교적 마찰을 감수하시더라도 무고한 아리아 시의 시민들을 구출해 내기로 결의하시었고, 성공하셨다.
(중략)
나,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1세의 종신사관 그랭구아르는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핏빛 강.
쏟아지던 화살 비.
그리고 세상천지에 흩날리던 무지갯빛 꽃잎들을.
대왕께서는 손수 기적을 일으키시었고, 무고한 아리아 시의 시민들을 무사히 탈출시키는 데 성공하시었다.
대왕께서는 신조차 외면한 이들을 몸소 구원하시었으니, 그 의로우신 마음과 위대함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더라.
– 프로아왕조실록 제1부 5장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1세
편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기록이었다.
***
교황청은 발칵 뒤집어졌다.
“뭣이? 정화 작업에 실패를 해?”
보고를 받은 교황 테오필리우스 5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보급 창고까지 불타올랐다?”
“그, 그러하옵니다. 교, 교황 성하!”
“허허! 이런 허접쓰레기 같은 놈들을 보았나? 지금 이것을 보고라고 올려?”
교황의 오른쪽 눈이 전령을 쏘아보았다.
오싹!
교황의 눈빛을 받은 전령은 너무나도 무서워서, 선 자리에서 오줌을 찔끔 지릴 뻔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교황은 한쪽 눈이 없었다.
을 모시는 교단의 하급 성직자에서부터 종교에 귀의한 교황은, 이단심문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이단자들과의 싸움에서 한쪽 눈을 잃었던 것이다.
“가짜 황제를 타도하고 제국을 주님께 봉헌하기 위한 이 성스러운 성전에 이런 불상사가 생기다니? 이 무슨 변괴인가?”
“토,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교황 성하아!”
전령은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교황의 분노가 자신에게 닿지 않기만을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정신과 육체는 언제나 그렇듯 따로 노는 법.
주르륵.
전령은 너무나도 겁에 질려 진짜로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이게 무슨 냄새인가?”
그러자 안 그래도 험악하게 구겨져 있던 교황의 얼굴이 더더욱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지금 이게 무슨 냄새냐고 묻지 않았는가?”
“예, 교황 성하. 그, 그것이… 성하의 앞에 엎드린 전령이 오줌을 지린 듯하옵니다.”
“뭐라? 오줌을 지려? 허허! 이런 괘씸한 일이 있나?”
교황이 경멸 어린 눈초리로 전령을 바라보았다.
“이 어리석은 것아.”
“교, 교황 성하!”
“신성한 성전을 논하는 자리에서 오줌을 지려?”
“한 번만 용서를 해주시옵소서! 소인이 잘못했사옵니다! 너무 두려워서….”
“닥치지 못할까!”
교황이 버럭 소리쳤다.
“여봐라!”
그리고는 자신의 양옆에 대기하고 있는 기사들, 성기사들의 상위 클래스인 팔라딘들에게 명령했다.
“예, 교황 성하.”
팔라딘 중 하나가 스윽 나서 교황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무래도 저자에게는 마귀가 단단히 들린 듯하니, 당장 마귀를 때려죽이도록 하여라.”
“예! 교황 성하!”
교황의 명령에 팔라딘이 커다란 쇠몽둥이를 스윽 하고 꺼냈다.
“교황 성하!!! 한 번만 용서해 주시옵소서!!! 이 미천한 놈이 실수를 한 것이옵니다!!! 교, 교황 성하!!!”
“무얼 하는가? 당장 저 마귀를 때려죽이도록 하라!”
전령이 애걸복걸했지만,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던 교황에게 자비를 기대할 순 없었다.
“아얍!”
팔라딘이 마나가 실린 쇠몽둥이를 휘두르고.
퍼엉!
전령의 머리통이 수박처럼 깨졌다.
전령의 으깨진 머리 파편과 피, 뇌수가 교황의 어전 앞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호다닥!
시종들이 재빨리 교황의 앞에서 죽은 전령의 시체를 치웠다.
“모두들 들어라.”
“예, 교황 성하!”
“이번 일로 짐은 매우 통탄스러운 바이다. 이 성스러운 전쟁에서 정화 작업에 실패했다는 것은 웬 말이요, 또 보급 창고를 잃었다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발생할 시, 관련자들은 모두 마귀가 들린 것으로 간주할 터이니 그리들 알라.”
“예, 교황 성하!!!”
“또한, 그 프로아라는 곳에 공식적으로 외교 문서를 보내 선전 포고하도록 하라.”
“교황 성하의 신앙이 주님께 닿을 것이옵니다!!!”
그렇게 교황의 어전 회의는 마무리되었고, 프로아 왕국은 교황청으로부터 선전 포고를 당하게 되었다.
***
그로부터 한 시간 후.
“국무대신 각하! 교황청으로부터 공식 외교 문서가 도착하였사옵니다!”
“이리 가지고 오세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미켈레는 비서가 가지고 온 문서를 별생각 없이 읽어보았다.
교황청의 공식 외교 문서의 내용이야 뻔했다.
온갖 미사여구와 궤변, 그리고 신의 이름을 판 헛소리로 범벅되어 있는 그 문서의 내용은 결국 였다.
“후.”
미켈레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럴 줄 알았지만, 신성 콘스탄틴 제국의 절반인 교황청을 적으로 돌리고 나니 정신이 혼미해지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하지만 미켈레는 지크를 욕하지 않았다.
‘전하. 저는 전하를 믿고 따를 것입니다.’
지금의 교황청을 쓰레기 집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미켈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저, 가슴으로는 지크를 이해해도 이성적으로는 이해하기가 힘들었을 뿐이다.
“일단은 달래보는 수밖에….”
미켈레 자신 역시도 지크처럼 막 나가고 싶었다.
솔직한 심정 같아선, 답장에 온갖 욕을 다 써놓고만 싶었다.
그러나 미켈레는 일국의 국무대신으로서 최대한 정중하고, 또 이성적인 논조로 답장을 써내려 갔다.
프로아 왕국은 본 사건과 무관하며, 이 사건의 주범은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1세가 아닌 모험가 지크프리트로서 저지른 일이라는 답장을….
***
허드슨 강을 탄 지크 일행은 무사히 황당파가 이끄는 동부 콘스탄틴 제국의 영토인 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무사히 탈출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은 저희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언젠가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지크 덕분에 목숨을 건진 여성 NPC들은 글썽글썽 눈물을 지으며 고마워했다.
지크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비록 목숨은 건졌지만, 여성 NPC들은 너무나도 많은 걸 잃은 상태였다.
집, 가족, 애인, 친구 등등….
그런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꾸벅.
지크는 단지 인사를 한 번 해보인 후 프레드릭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 군영으로 향했다.
프레드릭 황제가 이곳 에 있는 이유는, 이곳이 바로 최전방이었기 때문이었다.
황당파의 군대가 를 포함한 도시 몇 개를 버리고 후퇴한 지점이 이곳 인 것이다.
황당파의 군영.
“프레드릭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라고 합니다.”
“그대가 프로아 왕국의 왕 지크프리트 대공이로군. 반갑네. 나는 프레드릭 폰 콜론나라고 하네.”
프레드릭 황제가 지크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오느라 고생했네. 놈들의 추격이 만만찮았을 텐데 말일세.”
“본국의 쾌속정이 매우 빨라서 손쉽게 따돌릴 수 있었습니다.”
“노르드족의 것이라고 했던가? 과연 대단하군.”
“과찬이십니다.”
“정말로 고맙네. 그대가 교황청 놈들의 보급 창고를 불태워준 덕분에 시간을 더 벌게 되었어.”
프레드릭 황제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전향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이렇듯 큰 공까지 세우면서 넘어오다니. 내 그대를 모험가들로 이루어진 부대의 연대장으로 임명하겠네.”
“감사합니다.”
“또한, 교황청에서 약속했던 보상의 1.5배를 주지. 사실 더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자금 사정이 어려워서 그런 것이니 그대가 이해를 좀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충분합니다.”
지크는 무려 황제씩이나 되는 사람이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는 말을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었기에, 그쯤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그대와 같은 훌륭한 전향자들이 많이 나와 주어야 할 텐데. 교황청의 돈줄을 끊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하….”
“어쨌거나 고생이 많았네. 이 내전이 끝나고, 내가 제국을 온전히 거머쥐거든 그대가 다스리는 그 프로아 왕국이란 곳에 최대한의 후원과 지원을….”
그런데.
‘뭔가 마음에 안 드는데.’
지크는 프레드릭 황제와의 대화가 불쾌했다.
프레드릭 황제는 지크가 교황청에 큰 피해를 입힌 것만 언급하고, 학살극이 벌어지고 있는 아리아 시와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여성 NPC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물었다.
“저어, 황제 폐하?”
“말하게.”
“아리아 시에서 탈출한 시민들은….”
“아, 그녀들?”
프레드릭 황제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급한 대로 교육을 시켜 의무병이나 취사병으로 배치할 생각일세. 맘 같아서는 전투병으로 투입하고 싶지만, 마나 운용법도 모르는 데다가 군사 훈련도 받지 않은 여자들을 쓰기는 좀 곤란하겠지.”
“예?”
“쓰레기들을 활용할 방법이 있어 참으로 다행일세. 이런 걸 두고 자네 모험가들 표현으로는 재활용이라고 하던가?”
그 순간.
‘이 새끼도 쓰레기잖아?!’
지크는 이 순전히 쓰레기 두 놈이 벌이는 권력 다툼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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