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283
282
그로부터 30분 후.
내부 분위기는 침통하기 짝이 없었다.
다 이긴 전투였다.
압도적으로 불리했던 병력 차이를 극복하고 오히려 성 밖으로 나가 적들을 휩쓸었다.
거의 기적이 일어날 뻔했던 전투였다.
그런데 막판에 프레드릭 황제가 교황청의 본대를 달고 도망쳐 오면서, 은 망해버렸다.
막판에 똥이 뿌려진 것이다.
부들부들…!!!
덕분에 지크는 혈압이 올라 쓰러질 뻔했다.
의 군영 안.
‘으으! 고구마 100개는 먹은 기분이야! 사이다가 필요해… 사이다가 필요하다고!!!’
지크는 프레드릭 황제를 바라보며 깊은 빡침을 느꼈다.
쓰레기 주제에 나름 도박수를 잘 던졌다고 생각했고, 거기에 맞춰주기 위해 개처럼 굴렀건만 이렇듯 혹을 주렁주렁 달고 도망쳐 올 줄이야.
‘참자. 참아. 쟤가 무능해서 저런 것도 아니니까.’
지크는 솟구쳐 오르는 분노를 꽉 눌렀다.
엄밀히 따지자면, 프레드릭 황제의 잘못은 아니었다.
프레드릭 황제는 나름 회심의 한 수를 던졌고, 거의 성공할 뻔했다.
문제는 교황이 한 수 위였다는 점이었다.
프레드릭 황제만큼이나 교활한 교황은, 막판에 게이머들을 더 영입하고 강제적 징병을 실시해 병력을 추가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와 전투에 합류했다.
프레드릭 황제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교황은 그 속내를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 가짜 황제여. 성문을 열고 나오라. 와서, 신께 회개하라.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주도록 하겠다.
프레드릭 황제와 지크는 교황청의 군대에 포위당한 채 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 이단자여! 가짜 황제여! 지금이라도 회개하라! 본 교황이 평생을 쌓아온 법력과 신앙으로 너의 죄를 사하고, 네 머릿속에 든 마귀를 쫓아내 주도록 하겠다!
교황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안에 쩌렁쩌렁 울렸다.
“…….”
“…….”
“…….”
프레드릭 황제를 포함한 동부 콘스탄틴 제국 수뇌부들의 분위기는 침통하기 짝이 없었다.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이가 없었으며, 모두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거 초상집이 따로 없네.’
지크는 벽에 삐딱하게 기대선 채 동부 콘스탄틴 제국의 수뇌부들을 바라보았다.
‘아니지. 내가 지금 쟤들 걱정할 때가 아니잖아. 크흑. 역시 사람은 줄을 잘 서야 돼. 하필 통수를 쳐도 교황청을 쳤네. 아오.’
사실 지크의 입장 역시 프레드릭 황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황당파는 사실상 끝장났다고 봐도 좋았다.
이제 신성 콘스탄틴 제국은 사이비 교주이자 희대의 학살자인 교황의 손아귀에 들어갈 게 뻔했다.
신성 콘스탄틴 제국을 장악한 교황이 무슨 짓을 벌일지는 뻔했다.
교황의 다음 표적은 누가 뭐래도 프로아 왕국이 될 게 뻔했다.
그것도 제네시스 길드를 동반한 침공 말이다.
‘으으. 나도 뭐 된 거잖아. 어떻게 하지? 결국 내가 군대를 동원해야 하는 건가? 수련하러 간 데시마토까지 불러서?’
현재 프로아 왕국의 최강 화력인 그레이드 위저드 데시마토는 치천존에게 마법을 배우기 위해 수련을 떠난 상황이었다.
하지만 교황청, 아니 신성 콘스탄틴 제국이 침공해 온다면 지크는 데시마토를 무조건 불러들여야 할 터였다.
‘진짜 최악의 상황이 맞긴 맞는데. 어떻게든 이 포위만 뚫어내고 한 번만 이길 수 있다면….’
지크의 머리가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지크는 아직 포기하지 않은 상태였다.
사실상 망해버린 동부 콘스탄틴 제국을 어떻게든 다시 되살려 보려고 머리를 이리저리 굴렸다.
‘돈을 좀 쓸까? 게이머들 대량으로 고용해서 교황청의 후방을 치면서 내 군대로 여길 지원하면….’
그때였다.
“아무래도 안 되겠소.”
프레드릭 황제가 침통하면서도 비장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제는 아말론 왕국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는 없겠소.”
“폐하! 그건 아니 되옵니다! 만약 아말론 왕국이 이 내전에 참전한다면, 폐하께서 승전하신다고 하여도 제국의 주권이….”
신하의 지적은 옳았다.
외세의 힘을 빌려 내전에서 승리한다면, 이후 극심한 내정 간섭에 휘둘릴 게 뻔했다.
어쩌면 식민지가 될지도 몰랐고, 그렇게 되면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리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그러나 프레드릭 황제의 생각은 달랐다.
“주권이고 나발이고 지금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이오!!! 짐이 뒈지게 생겼는데! 그대는 짐이 저 사이비 교주 놈에게 목이라도 잘리길 바라는 게요?”
“아, 아니옵니다! 폐하! 오해이시옵니다! 소신은 그저 본국의 주권을….”
“닥쳐라!!!”
“……!”
“본 황가의 혈통이라도 계승되어야 훗날을 도모할 것이 아니더냐! 짐이 살아야 한다! 짐이!!!”
프레드릭 황제는 생존을 위해서라면 국가의 주권과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는 건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내 지금 당장 아말론 왕국에 지원군을 요청하도록 할 터이니, 그대들은 토 달지 마시오!!!”
그렇게 말한 프레드릭 황제가 무척 빠른 걸음으로 통신실로 향했다.
‘와. 저거 진짜 쓰레기네. 얘가 이겨도 문제고, 저 사이비 교주가 이겨도 문제네. 나라 꼴이 아주 개판이구만?’
지크는 프레드릭 황제의 쓰레기 같음에 감탄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프레드릭 황제가 아말론 왕국에 지원군을 요청했기에 굳이 프로아 왕국까지는 참전할 필요가 없단 점이었다.
‘관건은… 여길 어떻게든 지키는 건가? 아말론 왕국의 지원군이 올 때까지?’
지크는 이 내전의 핵심 키워드를 정확하게 짚어냈다.
‘일단 버티자. 아말론 왕국이 올 때까지만 버티면 반격할 기회가 오겠지. 휴. 다행이야. 저 자식이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쓰레기라서.’
제 코가 석 자인 지크의 입장에서는 신성 콘스탄틴 제국 백성들의 미래야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은 왕으로서 오직 프로아 왕국의 안위만을 생각해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본인이 사고를 친 덕분에 일이 이 지경까지 왔으니, 지크로서는 그저 닥치고 황당파를 도울 수밖에.
‘사이다… 사이다가 필요해….’
지크는 타는 듯한 갈증을 느꼈다.
***
같은 시각.
를 포위한 교황청 진영에서는….
“허허.”
교황 테오필리우스 5세가 저 멀리 의 성문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런 의 성벽 위 높은 곳에는 죽은 콰지모도의 머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지만, 교황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흠. 아까운 종놈이 죽었군. 꽤나 쓸 만한 놈이었는데.’
콰지모도의 죽음에 대한 교황의 감상은 그게 전부였다.
“교황 성하.”
그때, 추기경 중 하나가 교황에게 물었다.
“항복 권유 방송을 한 번 더 하시겠사옵니까? 벌써 세 시간이나 흘렀사옵니다.”
“더 이상의 항복 권유는 없다.”
교황이 딱 잘라 말했다.
“어째서 없는 것이옵니까? 교황 성하. 이 아둔한 자에게 가르침을 내려 주시옵소서.”
추기경이 그렇게 물은 이유는, 제아무리 프레드릭 황제가 쓰레기라 하더라도 제국의 황제인 이상 포획보다는 항복을 받는 편이 민심을 다스리는 데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내전이라 할지라도 황제가 있는 성을 함락시키고 그 목을 자른다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항복을 받는다고 해도 저 멀리 외딴 섬에 유배시켜 놓았다가 독살을 시킨다거나 의문사로 처리해서 제거할 테지만.
그러나 교황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저 아둔한 것은 항복할 생각이 없노라.”
“예?”
“가짜 황제는 아말론 왕국과 손잡으려 할 것이 분명하다.”
“아, 아말론 왕국!”
“허허. 주님을 배신하고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나라를 통째로 팔아먹으려고 하는군. 이단자에 매국노라니. 참으로 어리석은 자로다.”
정치 9단인 노련한 교황은 프레드릭 황제의 속내를 꿰뚫고 있었다.
“교황 성하. 그렇다면 어서 공성전을 통해 가짜 황제를 사로잡으시는 것이….”
“아직이니라.”
교황이 고개를 저었다.
“아말론 왕국의 군대가 본국의 국경을 넘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공성전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그렇게 되면….”
“오오!”
교황의 말에 추기경의 이마를 탁! 치며 감탄했다.
아말론의 군대가 국경을 넘어 에 도착하려거든 적어도 3일은 필요했다.
교황은 아말론의 군대가 국경을 넘는 순간 프레드릭 황제에게 의 프레임을 씌운 뒤 를 함락시킬 생각이었다.
그렇게 되면 프레드릭 황제를 포획해 교수형에 처한다고 해도 민심을 다스릴 수가 있게 될 터였다.
프레드릭 황제가 승부사적 기질을 가진 구렁이라면, 교황은 999년 묵은 이무기쯤 되는 것이다.
“아말론 왕국의 군대가 국경을 넘는 즉시 총공격을 개시할 터이니, 주님의 군대는 대기할 수 있도록 하라.”
“예! 교황 성하!”
권모술수에서는 교황이 프레드릭 황제보다 최소한 두세 수쯤은 앞서 있었다.
***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지크는 프레드릭 황제가 아말론 왕국에 지원을 요청한 후에야 미켈레와 통신할 수 있었다.
– 그러니까… 지금 프레드릭 황제가 패가망신하기 직전이란 말씀이십니까?
“응.”
– 그래서 아말론 왕국에 지원군을 요청한 상황이고요?
“그렇다던데? 금방 올 거래. 황제 말로는 아말론 쪽에서 이미 군대를 국경에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고 하더라고.”
– 아, 안 돼!!!
미켈레가 비명을 질렀다.
“아, 안 된다고?”
– 함정입니다! 아말론 왕국의 군대가 국경을 넘는 순간 교황은 공격을 개시할 겁니다! 지금까지는 차마 황제를 포획할 수가 없어 참았지만, 아말론을 끌어들인 이상 매국노의 프레임을 씌우기가 쉽단 말입니다!
영리한 미켈레는 저 멀리 프로아 왕국에서도 의 상황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헉?”
– 전하! 어떻게든 버텨내셔야 합니다! 어떻게든 프레드릭 황제를 지켜내셔야 합니다!!!
미켈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띠링!
지크의 눈앞에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쓰레기를 지켜라!]교황청으로부터 프레드릭 황제를 지켜라!
•보상 : 없음
•참고 : 이 퀘스트에 실패하면 당신은 X이 될 것입니다
퀘스트의 내용은 정말이지 살벌했다.
– 전하. 동맹국들을 집결시키겠습니다.
“뭐? 동맹국들을 집결시켜?”
미켈레의 말에 지크가 화들짝 놀랐다.
“설마… 군대를 파견하려고?”
– 예. 동맹군을 결성해 지금 즉시 급파하겠습니다. 본국의 힘만으로는 이 내전에 개입해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이건 내 개인적인 일인데….”
– 본국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것보다 만 배쯤은 낫겠지요.
“……!”
– 전하. 전하께서 곧 국가요, 국가가 곧 전하입니다.
“미켈레….”
– 만약 이번 일로 뭔가 느끼신 게 있으시다면, 부디 깊이 반성하시고 다음부터는 절대 경솔하게 사고를 치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미켈레의 지적에 지크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친 사고 때문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전쟁터로 내몰리게 생겼구나.’
지크는 뼈저리게 반성했다.
‘더 강해져야 해. 더, 더, 더. 그래야 사고를 쳐도 나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어. 그래야 프로아를 지켜낼 수가 있어.’
지크는 미켈레의 일침에 깊이 뉘우치는 한편, 앞으로 더 강해지는 데 집중하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다.
정작 곧 죽어도 사고 안 치겠다는 다짐은 안 했다는 게 문제였지만….
– 전하께서는 프레드릭 황제를 지키십시오. 저는 지금 즉시 군대를 급파하겠습니다. 하루면 도착할 겁니다.
“하루?”
– 사실 이미 군대를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아하!”
– 그리고 혹시나 프레드릭 황제가 탈출하려고 하거든 어떻게든 말리셔야 합니다. 교황은 프레드릭 황제의 머리 꼭대기 위에 있습니다. 프레드릭 황제가 탈출하려 할 것에도 대비하고 있을 겁니다.
“고마워. 미켈레. 너밖에 없어.”
– 알면 잘하십시오, 좀! 잘 좀 하시란 말입니다!
“미, 미안….”
– 끊습니다.
그렇게 통신이 끊긴 뒤.
“후후후.”
미켈레는 웃었다.
“전하. 사고를 치셨으면 책임을 지셔야지요. 후후후. 이번만큼은 전하께서도 별말씀 못 하실 겁니다. 큭, 큭큭큭….”
미켈레는 한없이 사악하고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깃펜을 들어 어떤 서류에 자신의 사인을 아로새기고, 프로아 왕국의 옥쇄까지 쾅! 하고 찍었다.
그 문서의 이름은 다음과 같았다.
엘론델-프로아 정략결혼 협정서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