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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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사라졌어?!”
지크는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을 느꼈다.
멀쩡히 달려가던 기사들이 눈앞에서 자취를 감출 줄이야.
“아무래도 이상해.”
지크는 이 라는 섬이 결코 평범하지 않은 곳이라는 걸 뼈저리게 실감했다.
“지금이 오후 다섯 시니까… 내일 세 시쯤 다시 가보자.”
지크는 란 섬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또 하루를 기다려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어차피 경험치는 많이 주니까. 당분간 여기서 렙 업 한다고 생각하면 되겠네.”
섬을 탈출할 방법을 찾지 못한 건 답답했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마족들이 주는 경험치가 엄청나게 많다는 거였다.
실제로, 지크는 227레벨을 앞두고 있었다.
1레벨 올리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는 걸 생각해 보면, 영겁도는 확실히 꿀 같은 던전이라고 해도 좋은 곳이었다.
“오늘은 여기서 스탑.”
지크는 내일을 기약하며 로그아웃 버튼을 눌렀다.
***
위잉!
로그아웃하고 현실로 돌아온 태성은 승구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 형님….
“어?”
– 형님 진짜 X되셨습니다.
“내가? 왜?”
– 그게 말입니다….
승구가 사부에게 들은 의 비밀을 태성에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5분이 지났을 때.
“으아아아아아아악!!!”
태성이 분노에 찬 고함을 토해내었다.
– 혀, 형님… 진정하십쇼.
“진정? 너 같음 진정하게 생겼냐!!!”
– 이미 많이 버셔서 지금 겜 접으셔도….
“그걸 말이라고 해?! 으으으!!!”
– 저도 희망을 가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만… 어르신께서 절대 못 나올 거라고 말씀하셔서… 하하하. 하하.
“아. 내가 진짜.”
태성이 으르렁거렸다.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냐. 그 영감탱이가 운전하는 비행선에 탔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해. 잉그리드는 하필 선장을 고용해도 그딴 쓰레기 같은 영감탱이를… 으으으!!!”
– 미켈레가 그 비행선의 항로를 추적하면서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희망을 가지시죠.
“언제는 희망을 가지라고 말도 못 하겠다며?”
– 그, 그건….
“됐고. 최선을 다하라고 해.”
– 안 그래도 항로 추적이 끝나는 대로 모두가 수색 작전에 나설 계획입니다.
“아이고. 내 팔자야.”
태성이 안면을 움켜쥐었다.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서 그만 돌아버릴 것 같았다.
‘난 왜 맨날 구르기만 하는 거지? 인생 좀 편하게 살아보자! 편하게!’
그러나 운이 없는 걸 한탄해 봤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
“일단 알겠어. 또 연락할게.”
– 예, 형님.
“휴우.”
태성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토해졌다.
“어떻게든 여기서 나가고 만다. 어떻게든.”
태성은 에서 반드시 탈출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대로 BNW가 서비스를 종료할 때까지 에 갇혀 있을 순 없었으니까.
***
다음 날.
느지막이 오후 2시 30분쯤 접속한 지크는 기사들과 만났던 전투 현장으로 향했다.
‘없네.’
전투 현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전투가 벌어졌던 흔적조차 없었다.
‘마족들이 이쪽에서 싸웠고. 기사들은 이쪽에서 싸웠으니까.’
지크는 기억을 더듬어 마족들이 많이 밀집되어 있던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로부터 정확히 30분 후.
스륵, 스르륵!
오후 세 시가 되자마자 아무도 없던 전투 현장에 기사들과 마족들이 나타났다.
“전투, 준비!”
지크와 대화를 나누었던 기사단장이 검을 뽑아들고는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콰아아앙!!!
지크가 마족들이 나타나자마자 스킬을 퍼부어 그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렸기 때문이다.
[알림 :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 경험치가 올랐습니다!]덕분에 지크는 또다시 막대한 양의 경험치를 챙길 수가 있었다.
레벨 업은 덤이었다.
그런데.
“가자!”
지크가 마족들을 처치하기가 무섭게 기사단장과 기사들이 또다시 어디론가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그냥 안 보내주지.”
그렇게 말한 지크가 스킬을 전개했다.
스륵, 스륵!
슬로우 필드와 함께 나타난 그림자들이 내달리던 기사들을 붙잡았다.
“으윽!”
“가, 가야 돼!”
“이거… 놔! 놓아라!”
기사들이 미친 듯 몸부림쳤지만, 을 벗어난다는 건 불가능했다.
“이보시오! 지금 뭐 하는 거요! 당장 놓지 못하겠소!”
기사단장이 지크를 향해 호통을 쳤다.
“에이. 못 놓죠. 놓으면 또 뛸 거면서.”
지크가 어깨를 으쓱했다.
“일단 저랑 대화 좀 나누시죠.”
“그럴 수 없소! 우린 지금 가야만 하오!”
“지난 600년 동안 그래 왔던 것처럼?”
“600년? 그게 무슨 소리요? 설마 우리가 여기서 벌을 받은 지 600년이나 되었단 말이오?”
지크의 말에 기사단장이 화들짝 놀랐다.
“600년?”
“600년이나 흘렀다고?”
“맙소사! 600년이라니!”
기사들 역시 소스라치게 놀랐다.
“60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똥개 훈련하셨으면, 하루쯤은 쉬시죠. 어차피 답이 없을 텐데.”
“으음!”
“그러게 왜들 그러셨어요.”
지크가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인간을 배신하고 마족한테 빌붙으니까 이런 벌을 받으시는 거 아닙니까.”
지크의 입에서 에 대한 비밀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지금으로부터 650년 전.
대마왕 바알이 강림하면서, 뉘르부르크 대륙의 지성체들은 연합군을 결성해 대응에 나섰다.
그 전쟁의 이름은 .
뉘르부르크 대륙을 침공한 대마왕 바알과 마족들에 대항하는 은 무려 50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뉘르부르크 대륙의 지성체들은 마족의 침공을 저지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려 50년 동안이나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대륙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대륙의 지성체들은 전쟁 이후의 복구 사업에 힘쓰는 한편 배신자들을 처단하는 데 주력했다.
당시 연합군을 배신하고 마족들에게 붙은 배신자들에 대한 보복이 가해진 것이다.
당시 드래곤들의 로드였던 는 배신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더러운 배신자들이여. 너희는 영겁의 시간 속에서 영원히 마족들과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우게 될 것이다.]그렇게 말한 는 배신자들을 대륙 각지의 섬에 가두고는 을 걸어버렸다.
죽지도 못한 채 매일 매일 마족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또 벌이는 저주를 내린 것이다.
가 바로 그런 곳이었다.
당시 연합군을 배신하고 마족들의 편에 서 호의호식하던 이들에게 영겁의 고통을 주는, 말하자면 일종의 지옥인 것이다.
“벌써 600년이나 지났단 말인가….”
기사단장이 탄식했다.
“매일 매일 싸우고 죽고 되살아나기를 반복했더니 시간의 흐름마저 잊고 있었던 모양이로군.”
“그러게 왜 배신을 하셔 가지고는. 쯧쯧.”
“그러게 말이오. 크흑!”
기사단장의 두 눈에서 통한의 눈물이 쏟아졌다.
다른 기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통곡.
배신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만 우시고. 제가 왔으니 어떻게 수를 좀 내보죠.”
“방법이 있겠소? 그대에게 우리를 여기서 구원해줄 방법이?”
“글쎄요. 노력은 해봐야겠죠? 저도 여기서 썩을 생각은 없거든요.”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그대가 우릴 이 영겁의 고통에서 구원해 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소. 그 무엇이든.”
그때였다.
띠링!
지크의 눈앞에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영겁도 탈출 작전]저주 받은 기사들과 함께 영겁도를 탈출하라.
•보상 : ?
•주의 사항 : 이 퀘스트는 오후 3시부터 5시까지만 수행할 수 있는 타임어택 퀘스트입니다!
‘타임어택이라고?’
지크는 퀘스트창을 살펴보고는 기사단장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여길 나갈 수 있습니까?”
“마족들의 근거지에 비행선이 한 척 있다네. 시간 안에 모든 마족들을 처치하고 비행선에 타기만 하면 이 섬을 빠져나갈 수가 있소.”
“간단하네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오.”
기사단장이 고개를 저었다.
“이 섬에는 우리와 같은 무리가 총 열세 개가 존재하오. 열세 개의 부대가 각자 맡은 바 지역에서 승리를….”
기사단장이 섬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지크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1. 에는 총 열세 개의 저주 받은 기사단이 존재한다.
2. 열세 개의 저주 받은 기사단은 각자 맡은 바 지역에서 마족들과 싸운다.
3. 승리한 기사단은 곧장 집결 지점으로 합류, 마족들의 근거지로 쳐들어간다.
퀘스트 자체는 참 쉬웠다.
문제는 밸런스.
“이 형벌은 지독히도 잔인하오. 우리와 마족들 간의 힘의 균형이 너무나도 팽팽하지. 어떤 날은 이길 때도, 어떤 날은 질 때도 있지만 언제나 한 끗 차이요.”
악랄하게도, 600년 전 드래곤 로드 는 저주 받은 기사들과 마족들 간의 힘의 균형을 50:50으로 맞추어 놓았다.
즉, 저주 받은 기사들로서는 600년이 아니라 1,000년을 싸운다고 해도 마족들의 근거지까지 도달할 수 없게끔 안배해놓은 것이다.
“와. 밸런스 보소. 미쳤네.”
지크가 의 악랄함에 혀를 내둘렀다.
“깨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그냥 가둬놓기는 뭐하니까 영원히 똥개 훈련이나 하라는 거잖아?”
물론 연합군을 배신하고 마족들에게 빌붙은 이들에 대한 형벌로는 딱 정당하다 싶었지만, 문제는 지크 본인이었다.
과거 저주 받은 기사들이 저지른 죄와는 별개로, 지크가 를 탈출하려면 이 극악의 타임어택 퀘스트를 반드시 클리어해야만 했다.
“어떻게 가능하겠소? 두 시간 안에 모든 지역에서 승리를 거두고 마족들의 본거지를 함락시키는 게?”
“으음.”
지크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마족과 기사들의 밸런스는 50 대 50이야. 하지만 내가 합류하면 밸런스는 기사들 쪽으로 기울었다고 봐야 해. 문제는 역시나 시간인가.’
게다가 지크의 몸이 두 개가 아니었기에 열세 개의 그룹을 모두 도와준다는 건 불가능했다.
이 퀘스트의 핵심은 저주 받은 기사들의 숫자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마족의 근거지를 점령하는 것이었으므로, 지크 혼자서는 클리어가 결코 쉽지 않았다.
“표정이 어둡구려. 역시 방법이 없….”
“아뇨.”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머리만 잘 굴리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그, 그게 정말이오?!”
“시행착오를 좀 거칠 것 같긴 한데, 저한테 꽤 괜찮은 생각이 있으니까 일단 해봅시다.”
“오오!”
“그 전에 열세 개 그룹들이 맡은 지역이 어디인지 좀 알려주시죠. 그래야 작전을 짜든지 말든지 할 테니까요.”
“아, 알겠소.”
지크의 말에 기사단장이 각 그룹들의 위치를 설명해 주었다.
‘ㅅ’자 형태. 좌우로 각각 여섯 개의 그룹이 있고. 가운데 한 개의 그룹. 총 열세 개 그룹 맞네. 그리고 지금 내가 있는 그룹은 왼쪽 끄트머리고.’
지크의 머리가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어? 어쩌면 방법이 있을 것도 같은데?’
그런 지크의 뇌리에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저기요.”
“말하시오.”
“혹시 내일이 되면 저에 대한 기억이 사라집니까?”
“그건 아니오.”
“그럼 딱 일주일만 시간을 주시죠. 그럼 방법이 나올 것도 같으니까.”
“그 방법이라는 게 뭐요?”
“그게 말이죠….”
지크가 기사단장에게 자신의 계획을 속삭였다.
“오오!”
그러자 기사단장의 얼굴이 모처럼 만에, 아니 600년 만에 환히 빛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