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306
305
띠링!
지크의 눈앞에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사부의 한]•분류 : 퀘스트
500년 전 대륙 최강자라 불렸던 8인의 강자들 중 스승 데우스를 제외한 나머지 강자들의 후예들을 격파하라.
•진행 상황 : 14.28% (1/7)
– UP! 뇌신 바즈라의 후예
– 검성 무르시엘라고의 후예
– 대현자 지그하르트의 후예
– 혈마 베르세르크의 후예 (만남)
– 법왕 마우그리스의 후예
– 신궁 윈드포스의 후예 (만남)
– 패왕 브라움의 후예 (제압)
을 쓸어버린 청년은 사부가 이기지 못했던 그랜드 마스터 중 하나인 의 후예였다.
‘뭐 하는 놈이지?’
지크는 청년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본능적으로 을 비추어 보았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파직!
을 비추어보던 지크의 손등에서 시퍼런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악!”
지크는 손등에서 느껴지는 전류에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타이칸 반 스터너]키예프 왕국 왕가의 방계 혈족으로 스터너 공작가의 막내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천재 무투가라 불렸지만, 20년 전 실종되었던 인물이다.
•존재 구분 : 네임드 NPC
•레벨 : 확인 불가
•클래스 : 인드라
•소속 : 키예프 왕국
•직위 : 없음
•칭호 : 확인 불가
“아! 미안!”
타이칸이 지크를 향해 사과했다.
“라이트닝 쉴드라는 건데, 이게 자동으로 발동되는 거라.”
“라이트닝… 쉴드?”
“아팠지? 진짜 미안.”
그렇게 말하는 타이칸의 표정에는 정말로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얘 뭐지?’
지크는 왠지 모르게 천진난만해 보이는 타이칸을 보고 이질감을 느꼈다.
‘왜 이렇게 여유로워 보이는 거야?’
뭐랄까.
타이칸에게서는 천우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이 났다.
천우진이 뭔가 큰 그림을 품고 있는 전략가의 느낌이라면, 타이칸의 경우 세상만사 아무런 걱정이 없는 한량의 분위기가 났다.
둘의 공통점이라면 한없이 늘어질 것만 같은 여유로움이 풍긴다고나 할까?
‘킁킁. 이건 금수저의 냄새다.’
지크는 그 여유로움의 정체를 물질적, 정신적 풍요로움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만사 아무런 걱정 없이, 그저 좋아하는 것에만 몰두하고 산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여유였다.
흙수저로 태어나 여태껏 발버둥을 치며 살아온 지크에게는 없는 분위기였다.
‘그건 그렇고….’
지크는 타이칸을 노려보았다.
‘상대는 뇌신 바즈라의 후예… 내 적이야.’
지크는 사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본좌가 이길 수 없던 그랜드 마스터들 중 가장 무적에 근접했던 건 뇌신 바즈라였느니라.] [바즈라가 그렇게 셌었습니까?] [극강. 그 빌어먹을 놈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수식어였지. 무식하게 강하고, 무식하게 빨랐다. 거기다 전기 에너지를 다루는 놈의 기상천외함이란… 정말이지 이가 갈릴 정도였지.] [그, 그랬군요.] [너는 상성상 신궁의 후예에게 불리하다. 하지만 제일 조심해야 할 건 누가 뭐래도 바즈라 그놈의 후예일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뇌신 바즈라는 무적의 힘을 손에 넣은 사부조차 극찬할 만큼의 강자였다.
타이칸은 그런 바즈라의 후예.
지크로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레벨이 안 보여서 승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어쨌든 싸우긴 해야겠지?’
지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을 거세게 움켜쥐었다.
지크는 퀘스트를 위해선 타이칸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싸워서, 제압하든 죽이든 해야 했다.
이건 선택이 아닌 999레벨의 히든 NPC 데우스의 제자로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의무였으니까.
‘일단 붙어보… 으응?’
전의를 가다듬던 지크는 문득 타이칸의 행동에 당황해서 잡았던 자세를 풀어야만 했다.
주섬주섬-
타이칸은 땅바닥에 쪼그려 앉은 채 무언가를 열심히 줍고 있었다.
반짝반짝!
그런 타이칸의 주위에는 투명하게 반짝이는 돌멩이들이 잔뜩 널려 있었다.
[D등급 차원 에너지 조각]차원 에너지가 스며든 파편 조각.
매우 불안정한 물질이므로, 취급하는 데 주의가 필요하다.(교환 불가)
타이칸은 자신이 처치한 식물형 몬스터들이 떨군 들을 줍고 있었다.
***
“야. 너 뭐 하냐.”
지크가 황당해 물었다.
“잠깐만.”
타이칸이 열심히 들을 주우며 말했다.
“이것들 모아야 해서. 거의 다 모았거든.”
“…….”
“997개… 998개… 999개….”
“야. 나랑 얘기 좀 하자고.”
“잠깐만! 1,000개! 오오! 다 모았다!”
“이 새뀌가 진짜….”
“너 가질래?”
“으응?”
순간 지크는 타이칸의 물음에 말문이 막혔다.
“나, 나도 주우라고?”
“응. 나는 다 모아서. 더 주워봤자 어디다 내다 팔 수도 없고. 어차피 버려질 거잖아. 딱 보니까 너도 이거 모으러 온 것 같은데, 나는 다 모았으니까 너 가져.”
지크는 뜻밖의 호의에 당황했다.
‘…지금 한판 붙어야 할 타이밍인데?’
지크는 이게 아니다 싶어 다시 전의를 가다듬었다.
그러나….
반짝반짝!
땅에 떨어져 있는 들이 눈에 밟혀서, 지크는 도저히 타이칸에게 싸움을 걸 수가 없었다.
“주인 놈아아.”
그때, 햄찌가 지크의 귓가에 속삭였다.
“쟤 착한 놈인 것 같다. 뀨우. 괜히 다짜고짜 싸움 걸지 말고 일단 주는 거 받아라.”
“그, 그럴까?”
상황이 싸움을 걸기가 애매했기에, 지크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타이칸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그, 그럼… 흠흠. 고맙게 받을게.”
“같이 주워 줄까?”
“어? 같이 주워 준다고?”
“자.”
타이칸이 자신이 주운 을 지크의 손바닥 위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이거 되게 불안정한 물질이니까 조심해서 받아.”
“으, 으응.”
“나도 처음에 막 줍다가 몇 개 터지고 깨지고 그래서.”
“고맙다.”
“넌 이름이 뭐야? 난 타이칸 반 스터너라고 해.”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반? 너 왕족이야? 나도 왕족인데!”
“어?”
“미들네임이 ‘반’이면 왕족이란 소리잖아?”
“아. 그게.”
지크가 머뭇거렸다.
“프로아 왕국이라고. 저어기 서북쪽에….”
“아! 알아!”
“알아?!”
지크가 화들짝 놀랐다.
“어. 들었어. 한 1년 전쯤에 슈트카르트 황제가 웬 모험가한테 프로아틴 지방을 하사했다며? 그게 너였구나?”
“어? 아네?”
“그럼. 알지. 프로아틴 지방이 지금은 좀 그래도. 과거에는 대륙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고. 북방 야만 부족들이 워낙 강성했거든. 지금이야 대륙의 힘이 북부를 압도하지만.”
“오오!”
지크는 처음으로 프로아 왕국을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 매우 기뻤다.
‘크흑! 이렇게 알아봐주는 사람이 나오는구나!’
물론 알아봐준 상대가 결국엔 적인 타이칸이라는 게 흠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기쁜 건 사실이었다.
“너 몇 살이야?”
“나? 27살.”
“어? 나도 27살인데!”
타이칸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우린 친구네? 너는 왕이고 나는 왕족인데다가 나이도 동갑이잖아.”
“치, 친구우?!”
“이야. 만나서 반가워.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타이칸이 쪼그려 앉은 채 지크에게 악수를 청했다.
‘뭐야. 이 자식. 뭔데 이렇게 붙임성이 좋아.’
지크는 타이칸의 순수하기 짝이 없는 호의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기만술인가? 이러다가 기습하려고?’
지크의 마음속에 의심이 싹텄다.
지크는 게이머.
게이머들의 세계는 온갖 권모술수와 더러운 배신이 난무하기 마련이었으므로, 아무래도 의심이 많고 경계심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크 역시 보통 멘탈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아니지. 기습해오면 나야 땡큐지. 싸울 명분이 생기는 거잖아.’
순수한 호의든.
혹은 웃는 얼굴에 감춘 악의든.
지크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반갑다.”
지크가 타이칸의 손을 맞잡았다.
***
타이칸의 호의 덕분에 지크는 무려 477개의 을 모을 수가 있었다.
“너 이제 뭐 할 거야?”
“마저 모아야지.”
“도와줄까?”
“아니.”
지크는 타이칸의 제안을 거절했다.
을 공짜로 얻은 건 좋았지만, 바즈라의 후예인 타이칸에게 그 이상의 도움을 받기는 싫었다.
그럴 이유도 없었고.
“나 혼자 힘으로도 충분해.”
“그건 나도 알지.”
“어떻게 아는데?”
“느껴지는 게 있는데. 너, 강하잖아.”
“내가?”
“엄청 강한 거 같은데. 느낌이 찌릿찌릿해. 까불면 한 대 맞을 것 같은?”
“으음.”
“근데 그 한 방을 맞으면 골로 갈 것 같이 느껴지거든. 내 본능이 경고하고 있어. 넌 위험한 남자라고. 그런 니가 약할 리가 없지.”
타이칸이 어깨를 으쓱이며 지크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걸 알면서 날 도와주겠다고?”
“어차피 너도 대균열에 갈 거 아냐? 기왕 갈 거, 시간이나 아끼자는 거지. 도와줄게. 그러고 나서 나랑 같이 대균열 돌자.”
“됐어.”
지크는 타이칸의 제안을 딱 잘라 거절했다.
타이칸이 도와준다면 지크는 한 시간 정도면 1,000개를 모을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적은 적이야. 선은 그어야지.’
하지만 결국에는 싸워야 할 상대에게 도움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고작 서너 시간 아끼자고 바즈라의 후예의 도움을 받을 순 없지 않겠는가?
물론 타이칸에게 도움을 받고, 함께 대균열을 돌며 그의 전력을 파악하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았다.
‘그건 너무 졸렬하잖아. 다른 상대면 몰라도 바즈라의 후예를 상대로 졸렬하게 이길 순 없다.’
지크는 퀘스트만큼은 그 어떤 꼼수 없이, 정정당당한 일대일 대결을 통해 클리어하고 싶었다.
왜?
그게 사부의 한을 속 시원히 풀어줄 유일한 길이었으니까!
“거절이야?”
“응.”
“아쉽네. 그럼, 먼저 가 있을게.”
타이칸이 지크를 등졌다.
“대균열에서 보자.”
“그래.”
지크는 멀어져 가는 타이칸에게 잘 가라고 인사를 해주었다.
“뀨! 주인 놈아아! 쟤 진짜 착한 거 같다!”
“착한가 보지.”
“뀨우?”
“얼른 가자.”
지크는 을 모으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
을 떠나 대균열로 향하는 길.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라. 마음에 들어.”
타이칸은 조금 전 만났던 약소국의 왕을 떠올렸다.
“처음으로 만든 친구라 싸우기 싫은데. 만약 싸우게 되면 어떡하지. 휴우.”
타이칸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토해졌다.
***
그로부터 세 시간 뒤.
“여기요!”
지크는 퀘스트를 주었던 NPC에게 1,000개가 든 자루를 들이밀었다.
“으악! 저, 전하! 조심해 주십시오! 그거 터지면 여기 다 날아갑니다!”
“아하?”
“제발 차원 에너지 조각을 취급하실 때는 주의에 주의를 기울여 주시길 바랍니다. 괜히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아공간 인벤토리로 옮기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게 아닙니다.”
“죄, 죄송….”
“그나저나 매우 빨리 모으셨군요. 이 정도 속도라면 가히 역대급입니다.”
“그래요?”
“세 시간 전 다녀가신 타이칸 도련님이 정확히 2시간 30분 정도 걸리신 것 같은데, 세 시간이라니. 역대 두 번째로 빠르십니다.”
“이런 빌어먹을!”
지크가 분통을 터뜨렸다.
‘딴에는 발바닥에 불나도록 뛰었는데! 아오!’
타이칸의 강함과 엄청난 사냥 속도를 떠올리며 평소보다 오버 페이스로 몬스터들을 때려잡았건만, 더 느렸다니.
타이칸이 을 공짜로 줬던 걸 떠올려 보면, 이건 그냥 느린 게 아니라 압도적으로 밀린단 말밖엔 되지 않았다.
“그 자식 지금 어디 있습니까?”
“타이칸 도련님 말씀입니까?”
“예.”
“아까 C등급 대균열에 들어가셨다 나오셨는데, 또 들어가신 모양입니다.”
“뭐요? 벌써 한 바퀴를 돌고 두 바퀴째 돌고 있다고요?”
“아닙니다. 세 바퀴째일 겁니다.”
“내놔요.”
“예? 뭐, 뭘 내놓으라고 하시는 건지….”
NPC는 지크가 손바닥을 내밀자 당황했다.
“그 C등급 차원 에너지 결정인가 뭔가 내놓으라고요. 빨리요.”
“아,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지크의 닦달에 NPC가 퀘스트 보상을 챙기기 위해 헐레벌떡 발걸음을 옮겼다.
“곧 따라잡는다.”
지크가 타이칸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대균열을 무대로 하는 지크와 타이칸의 레이스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