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31
030
이틀 전.
“블리히 경, 여쭤볼 것이 있는데요.”
“뭔가? 말해보게.”
“혹시 영지에 은둔자를 위한 엘릭서가 있습니까?”
“은둔자를 위한 엘릭서? 글쎄. 잘 모르겠군. 그런데 그건 왜 묻는가?”
“알비노 고블린이 무서운 이유는 벼락을 떨궈서니까요.”
“……!”
“만약 은둔자를 위한 엘릭서 몇 병만 구할 수만 있다면, 알비노 고블린들을 처치하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그, 그렇지! 그게 있었지! 허허! 어째서 내가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은둔자를 위한 엘릭서만 있으면 알비노 고블린쯤이야!”
“구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확실치는 않지만, 내 구해봄세. 내성 창고에 몇 병쯤 있을지도 모르니.”
“부탁드립니다.”
“알겠네. 없으면 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은둔자를 위한 엘릭서를 만들어 내도록 하지.”
다행스럽게도, 비어만 영지의 내성 창고에는 은둔자를 위한 엘릭서 몇 병이 케케묵은 먼지를 덮어쓴 채 잠들어 있었다.
블리히와 근위대원들이 고르고와 알비노 고블린들을 상대로 5분 이상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도 은둔자를 위한 엘릭서를 복용했기 때문이었다.
단, 워낙에 레벨이 낮은 블리히와 근위대원들은 알비노 고블린들의 벼락 데미지를 완벽하게 상쇄시킬 순 없었지만.
하지만 30레벨의 지크는 달랐다.
기본 스펙 자체가 출중한 디버프 마스터의 특성상 지크의 항마력과 명속성 저항력은 은둔자를 위한 엘릭서 한 병을 마시는 것만으로 알비노 고블린들의 벼락을 상쇄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알비노 고블린들은 내게 위협이 되지 못해. 고르고만 조심하면서 하나씩 처치하자.’
지크는 보스인 고르고와의 싸움을 최대한 피하며 알비노 고블린들부터 처치하리라고 마음먹었다.
***
전투는 지크의 의도대로 흘러갔다.
번쩍!
알비노 고블린의 벼락이 다시금 지크를 강타했다.
[지크프리트]•생명력 ■■■■■■■■■□
하지만 지크의 생명력은 90퍼센트대에서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기절이나 감전과 같은 상태 이상에도 걸리지 않았다.
도핑을 통해 명속성 저항력을 올린 지크에게 알비노 고블린들은 아무런 위협도 될 수 없는 존재들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지크는 자신이 가진 뛰어난 피지컬을 십분 발휘해 알비노 고블린들을 차근차근 정리해 나갔다.
빡, 빠악!
지크의 쇠몽둥이가 연신 알비노 고블린들의 머리통을 강타했다.
알비노 고블린들이 드러눕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알비노 고블린을 처치해 경험치가 1,200 올랐습니다!]한 마리.
[알비노 고블린을 처치해 경험치가 1,200 올랐습니다!]두 마리.
그리고 세 마리.
“캬아아악!! 이 쥐새끼 같은 인간 노오오오옴!!”
고르고가 괴성을 내지르며 지크를 저지하려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알비노 고블린들의 움직임 자체가 지크를 상대하기엔 너무나도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알비노 고블린을 처치해 경험치가 1,200 올랐습니다!]마지막 남은 알비노 고블린의 머리통이 부서지던 순간에도 고르고는 지크를 미처 막아낼 수가 없었다.
“과, 과인의 소중한 심복들이… 캬아아악!!”
고르고가 분노했다.
눈 뜨고 코 베인 것이 벌써 두 번째였다.
눈앞의 인간 애송이 하나에게 눈을 잃고, 이제는 부하들마저 잃을 줄이야….
화륵, 화르르르르르르르르륵!!
고르고의 피부 표면에서 불길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직!!
시퍼런 스파크 역시 튀어 올랐다.
고르고는 단일 속성이 아닌 화속성과 명속성 두 가지 속성 모두를 구사하는 복합 속성의 몬스터였다.
“죽일 것이다, 죽일 것이야! 키익! 네놈을 과인의 손으로 반드시 죽일….”
그 순간.
타핫!
지크가 기습적으로 고르고를 향해 쇄도했다.
문답, 무용!
고르고의 지껄임에 일일이 대꾸하느니 속전속결을 선택한 것이다.
***
지크와 고르고의 대결은 비어만 영지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메인 이벤트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대결의 승패에 비어만 영지의 운명이 걸려 있었다.
현재 비어만 영지군 전원은 고블린 군대와의 싸움에 지치다 못해 탈진한 상태였다.
만약 지크가 패배하기라도 한다면 비어만 영지는 고르고 하나의 손에 일방적인 학살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비어만 영지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멀찍이 떨어져 지크와 고르고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이겨! 지크!”
“자네에게 우리 영지의 운명이 달렸네! 힘을 내게! 힘을!”
“지크 오빠 힘내세요!”
“저 사악한 고블린을 물리쳐 주소서!”
비어만 영지민들이 자신들의 염원을 한껏 담아 지크를 응원했다.
그러나 지크가 고르고를 압도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캬아악!!”
고르고가 괴성을 지르며 낫을 휘두를 때마다 지크의 몸에는 자잘한 상처가 늘어가고 있었다.
그만큼 고르고는 강했다.
고르고를 피해 알비노 고블린을 죽이는 것과 직접적으로 대결하는 것에는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었다.
화륵, 화르륵!
게다가 고르고가 일으키는 불기둥이 지크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또 체력을 야금야금 깎아 먹었다.
은둔자를 위한 엘릭서로 명속성 공격에 대한 저항력은 갖추었지만, 화속성 저항용 도핑 약이 없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푸욱!
고르고의 낫이 지크의 어깨를 찍었다.
“아, 안 돼!”
“지크!!”
“위험해요!!”
비어만 영지민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커헉!”
당사자인 지크의 입에서도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프지? 어? 아프다고 말해, 아프다고! 키힛힛힛힛힛!”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으득, 으드득!
고르고는 지크의 어깨에 박힌 낫을 인정사정없이 비틀어 고통과 데미지를 증가시키기까지 했다.
“크으으윽…!”
“아프지? 응? 키힛힛! 더 고통스럽게 해줄 것이야, 더!!”
그렇게 고르고가 지크의 어깨에 박힌 낫을 빼내고, 추가적인 공격을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지크는 고르고의 연이은 공격을 허락하지 않았다.
퍼억!
지크의 무릎이 고르고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빠악!
뒤이어 강타 스킬을 머금은 지크의 쇠몽둥이가 고르고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캬악!”
고르고가 나가떨어졌다.
[Lv.50 고르고]•생명력 ■■■■■■■■■■
그러나 그런 지크의 반격에도 불구하고, 고르고의 체력은 5퍼센트도 채 달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레벨의 격차였다.
과 스킬에 의해 디버프 효과를 받았음에도, 지크보다 20레벨이나 높은 고르고는 큰 타격을 입지 않은 것이다.
“캬악?”
고르고가 벌떡 일어서 지크를 노려보았다.
“크큭! 네놈의 움직임이 날랜 것은 인정하마. 키힛! 하지만 네놈의 공격은 과인에게 먹히지 않는다!! 캬하하하하하핫!!”
고르고가 두 팔을 활짝 벌려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아.”
지크가 혼잣말했다.
“비벼지지도 않네. 역시 렙차는 렙차라는 건가…?”
“키힛?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럼 켜야지.”
“캬악? 도대체 무슨 소릴 지껄이는 것이냐!! 네놈이 감히 날 무시하는….”
바로 그 순간.
스으으…!
은은한 빛깔의 푸른 기류와 붉은 기류가 서로 절묘하게 뒤섞이며 지크의 몸을 감싸고 흐르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웅!
지크를 중심으로 푸른색 디버프 필드가 새로이 전개되었다.
스킬.
그리고 스킬.
디버프 마스터의 30레벨 스킬 두 가지가 한꺼번에 전개된 것이다.
***
[강자 멸시 버프가 활성화되었습니다! 효과가 끝나기까지 59초 남았습니다! (쿨타임: 300초)]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속전속결이야.’
지크는 버프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를 알았다.
버프는 순간적으로 엄청난 화력을 높여주는 대신에 쿨타임이 너무 길었다.
일단 한 번 사용하고 나면 5분 동안 화력의 공백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게이머들이 흔히들 말하는 ‘현자 타임’이었다.
‘가자.’
지크가 땅을 박차고 고르고를 향해 빠르게 질주했다.
‘시간이 없어. 1분 안에 처치해야 해.’
1분.
이 대결의 승패를 가르는 시간이었다.
***
빠악!
지크의 강타 스킬이 고르고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이번엔 달랐다.
[Lv.50 고르고]•생명력 ■■■■■■■■■□
강타 스킬 한 방에 고르고의 체력 10퍼센트가 날아간 것이다.
“크아아악!!”
고르고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몸부림쳤다.
그런데 고르고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키, 키힛?!”
고르고는 당황했다.
“왜 몸이 무겁…!”
움직임이 아까와 같지 않았다.
두 다리가 마치 족쇄라도 찬 것처럼 굼떴다.
낫을 든 팔마저 천근만근이었다.
심지어, 지크의 움직임을 제한하던 불기둥마저 뜻대로 전개할 수가 없었다.
디버프 마스터의 30레벨 스킬인 디버프에 제대로 걸린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혹독했다.
빠악!
지크의 쇠몽둥이가 또다시 고르고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한 번이 아니었다.
빠악, 빡, 빡, 빠아악, 빡, 빡!!
지크의 쇠몽둥이는 자비심이란 게 없었다.
“크악, 크아아아아아아아악!!”
덕분에 고르고는 연신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러야만 했다.
‘이, 인간! 갑자기 강해졌다?!’
달랐다.
인간의 쇠몽둥이에서 느껴지는 파워가 조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강했다.
‘이게 가능한가? 캬악!’
고르고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퍽, 퍽, 퍽!
지크는 근면 성실하게 고르고를 팰 뿐이었다.
[Lv.50 고르고]•생명력 ■■■□□□□□□□
덕분에 고르고의 생명력은 순식간에 30퍼센트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고르고 역시 당하고만 있지만은 않았다.
“키이… 키이이이이이이이-!!”
포효하는 고르고.
금칠을 한 놈의 황금색 몸뚱이가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캬악!”
고르고가 낫을 휘둘렀다.
푸화아악!
지크의 가슴팍이 길게 갈라지며 피가 튀어 올랐다.
폭주.
고르고는 생명력이 30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졌을 때 이성을 잃음과 동시에 전체적인 능력치가 큰 폭으로 상승하는 패턴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지크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폭주라니.’
폭주는 매우 짜증나는 패턴이었다.
다 잡았다 싶은 순간, 눈이 뒤집혀 날뛰는 몬스터를 상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푹, 푹, 푸욱!
고르고의 낫이 연신 지크의 몸 이곳저곳을 내리찍었다.
폭주 상태에 돌입한 고르고는 디버프마저도 씹으며 지크를 향해 맹공을 펼치고 있었다.
[지크프리트]•생명력 ■■□□□□□□□□
지크의 생명력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어? 위험한데?’
지크의 얼굴이 더 굳어졌다.
[강자 멸시 버프가 활성화되었습니다! 효과가 끝나기까지 10초 남았습니다! (쿨타임: 300초)] [9, 8, 7, 6….] [5, 4, 3….]게다가 지크가 내는 화력의 원천인 의 지속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이 대결의 승자는 고블린 로드 고르고가 될 것이었다.
바로 그때.
쒜에에엑!
고르고의 낫이 매우 위협적인 각도에서 피하기 힘든 궤적을 그리며 지크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아, 안 돼에에에에에!!”
“아악!!”
“꺄아아악!!”
그 장면은 너무나도 위험해 보여서, 지크를 응원하던 모든 이들이 경악에 가까운 비명을 내지를 정도였다.
하지만 고르고의 낫은 멈추지 않았다.
푸우우욱!
고르고의 낫이 지크의 옆구리 깊숙이 파고들었다.
“지, 지크으으으으으!!”
블리히가 절규하던 바로 그 순간.
콰앙!!
지크의 쇠몽둥이 역시도 고르고의 머리통을 내리찍었다.
크로스 카운터 어택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