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333
332
‘뭐지?’
지크는 손에서 전해져 오는 뭔가 부드럽고, 따뜻하고, 또 물컹물컹한 것의 느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는 사이 시력이 어둠에 적응했는지, 지크의 눈에 어렴풋한 실루엣이 들어왔다.
굴곡이 큰 곡선을 그리는 그 실루엣은 살짝 구릿빛을 띠고 있는….
‘설마?!’
지크의 얼굴이 시퍼렇게 물들던 순간.
덥석!
누군가의 손길이 지크의 손등을 움켜쥐었다.
“갑자기 훅 들어오기에요?”
“네, 네에?!”
“응큼하기도 하셔라.”
안티오페가 암고양이 같은 표정을 짓고는 지크에게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관심 없는 척하시더니 잠든 사이에 은근슬쩍 만지….”
“만지긴 누가 만져요!”
지크가 벌떡 일어났다.
‘응?’
그런데 뭔가 허전했다.
“왜, 왜 알몸이야!”
지크는 자신이 벌거벗은 상태라는 걸 깨닫고 또 한 번 경악했다.
왜일까?
단지 로그아웃하고 잠깐 눈을 붙였다 왔을 뿐인데, 안티오페와 알몸으로 한 이불을 덮고 있었던 건….
“쓰러지셨기에 제 처소로 모셨어요. 편하게 주무시라고 옷을 벗겨드렸죠. 그랬더니 스르륵 하고 사라지시더군요. 이계에서 강림한 존재시여.”
“아하?”
지크는 그제야 자초지종을 이해했다.
아무래도 강제로 로그아웃이 되기 전에 옮겨지고 벗겨졌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왜 제가 여기 있는 거죠?”
“당신은 강하니까요.”
“그게 이유라고요?”
“우리 아마조네스는 강한 남자를 원해요. 당신은 저뿐만 아니라 타 부족의 족장들까지 모두 꺾은 강자입니다. 그런 강자인 당신을 제 처소로 모시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뭐… 그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당신은 언제 어디서든 원할 때 저를 안으실 수 있어요. 저도 그걸 바라고요. 시도 때도 없이….”
“시, 시도 때도 없이?!”
“물론이죠. 후훗!”
안티오페가 고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일단 불씨를 댕겼으니 시작을 해볼까요?”
“뭐, 뭘요….”
“다 아시면서!”
“알긴 뭘 알아!”
살짝 언성을 높인 지크가 호다닥! 몸을 날려 구석에 가지런히 개어져 있던 옷을 주워 입었다.
“뭐, 뭐에요? 지금 그 행동은?”
“보면 모릅니까? 옷 입는 겁니다.”
“옷을 왜 입죠?”
“왜 입긴요. 당신이랑 홀딱 벗고 한 이불 안에 들어갈 사이가 아니니까 입지.”
“먼저 건드려 놓고?”
“실수입니다, 실수.”
지크는 실수였다는 걸 거듭 강조하며 재빨리 옷을 다 입었다.
“왜죠.”
안티오페는 정말로 지크를 이해하지 못해 물었다.
“저와의 관계가 싫으신 건가요?”
“예.”
“제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세요? 안 예뻐서?”
“예쁘기야 하시죠? 몸매도 좋으시고? 말 나와서 드리는 말씀인데 좀 가려주세요. 민망하거든요.”
“설마… 고자는….”
“아니거든요.”
“역시.”
“뭐가 역시인 겁니까?”
“옷을 벗겨 드린 후에 젖은 수건으로 몸을 닦아 드리면서 봤어요. 결코 고자이실 수 없는 훌륭한….”
“그, 그만!”
지크가 빽 소리쳤다.
“제발 그러지 마요. 이런 대화 나누는 것 자체가 불편하니까.”
“그러니까 왜냐고요.”
“아내가 있습니다. 아내 배 속에 아기도 자라고 있고요.”
“그게 어때서요? 대륙에서 일부다처제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닐 텐데요?”
“대륙인이 아니라서? 제가 자라온 문화권에서는 일부일처제가 당연시되거든요.”
“아하?”
“그리고 제가 여기 온 이유는 아내를 치료할 치료제를 구하기 위해서 온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외간 여자랑 놀아나는 게 정상일까요?”
“그, 그렇군요….”
안티오페는 그제야 지크의 말에 수긍하고는, 슬며시 이불로 제 몸을 가렸다.
“많이 사랑하시나 보군요.”
“아주 많이 사랑하죠.”
“그녀는 분명 아름다우신 분이시겠죠? 저보다 더? 그러니까 이렇게 한 치의 흔들림도 없으신 거겠죠?”
“예.”
지크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엄청 예뻐요. 상냥하고. 마음씨도 곱고.”
“그, 그렇군요.”
“그럼, 좋은 밤 되시기를.”
지크가 한 번 웃어 보이고는 안티오페의 처소를 빠져나갔다.
미련?
혹은 욕정?
지크의 발걸음에는 아쉬움이라고는 티끌 한 점만큼도 없었다.
“휴우.”
홀로 남겨진 안티오페의 입에서 땅을 꺼뜨릴 것 같은 한숨이 뿜어져 나왔다.
“정말로 나한테 관심이 없었던 거였어! 쳇!”
안티오페는 자존심이 상했다.
“도대체 얼마나 매력적인 여자인 거야?”
안티오페는 자신과 같은 미녀에게 눈길 한 번을 안 주는 남자-비록 가슴은 만졌지만-의 아내가 궁금해졌다.
***
다음 날 오전.
다시 현실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고 뉘르부르크 대륙에 강림한 지크는 곧장 에슈카 유적지로 향했다.
둥! 두웅!
그런 지크의 뒤에는 대정글 5대 부족민들이 따라붙어 춤을 추고, 북을 치고, 각자 고유의 언어로 승리를 기원하는 등 행진을 이어나갔다.
‘으악! 창피해!’
지크는 뭔가 동네방네 유난을 떠는 것 같아 부끄러웠지만, 굳이 야만 부족들을 막지는 않았다.
은 이곳 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던 전통이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도 있듯, 지크는 이 정도 풍습은 따라줄 의향이 있었다.
단, 안티오페와 잠자리를 하는 것 빼고.
“오오! 내가 진정 대정글의 도전을 두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덕분에 탐험가 아문센은 마치 계라도 탄 아낙네처럼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애초에 탐험가이자 고고학자인 아문센이 이곳 에 온 목적은 에슈카 유적지를 조사하기 위한 것.
아문센으로서는 지크가 을 치르는 동안 헌터리안들로부터 그 어떤 위협도 받지 않고 마음껏 조사 활동을 펼칠 수가 있었다.
물론 지크가 패배하기라도 하면 당장 도망쳐야겠지만 말이다.
“전하! 소인의 목숨을 구해주신 것으로도 모자라 에슈카 유적지를 탐방하게 해주시다니! 꼭 이기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전하의 승리가 곧 저의 승리입니다!”
아문센이 지크의 승리를 기원해 주었다.
그가 지크를 ‘전하’라고 호칭하는 이유는, 그랭구아르로부터 살짝 귀띔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프로아 왕국에 대해서는 몰랐지만 말이다.
“그래야죠.”
지크가 웃었다.
“혹시….”
“말씀하시죠.”
“후원을… 요청해도 되겠습니까?”
“후원이요?”
“흠흠. 제 입으로 말씀드리긴 좀 그렇지만. 흠흠흠.”
아문센이 민망하다는 듯 살짝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사실 저는 꽤 권위 있는 탐험가이자 고고학자입니다. 이 분야에서는 장담컨대 대륙 최고라고 자부하지요.”
“그런데요?”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오지와 유적을 탐험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예산 부족으로 인해 애로 사항이 많습니다. 워낙에 위험천만한 일이기에 용병을 써도 인건비가 만만치 않고… 장비값도 비싸서….”
“돈을 대달라?”
“예, 전하.”
“와. 목숨을 구해줬더니 이제 돈까지 달라네.”
“저, 절대 아닙니다! 오해이십니다! 오해!”
지크가 장난스레 던진 말에 아문센이 크게 소리치며 두 팔을 휘저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전하께서는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생명의 은인께 돈을 내놓으라는 건 당치도 않습니다! 그건 인간이 아니라 짐승입니다!”
“아~ 짐승이셨구나~.”
“절대, 절대 아닙니다! 저는 단지 전하께 매우 좋은 제안을 하려 할 뿐입니다!”
“좋은 제안이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분야 최고의 권위자입니다! 남들은 인정하지 않을지 몰라도 저를 최고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자타 공인이 아니라, 자칭 최고란 얘기였다.
“그래서요?”
“전하께서 후원해주신다면, 탐사 활동에서 획득하는 각종 유물과 아티펙트와 금은보화의 80퍼센트를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그 순간.
벌름벌름!
지크의 코가 팽창과 수축을 반복했다.
‘냄새가 난다. 냄새가 나. 킁킁. 이건 돈 냄새다. 돈 냄새.’
지크는 아문센의 말로부터 본능적으로 돈 냄새를 맡았다.
오지, 던전, 고대 유적지가 매우 훌륭한 골드 공급원(?)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문제는 정보.
이미 공개된 필드들은 필연적으로 타 게이머들과의 경쟁을 부르기 마련.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꿀 같은 필드를 나 홀로 독식할 수 있다면?
띠링!
지크의 두 눈에 달러 마크($)가 떠올랐다.
“전하! 이것은 투자입니다! 아시다시피 고대 유적지들에서는 수없이 많은 아티펙트와 유물과 금은보화가 쏟아지질 않습니까?”
“물론 투자할 수도 있겠죠. 흐음.”
지크가 턱수염도 없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런데 아문센 씨가 가지고 계신 정보들이 희소성이 좀 있습니까? 남들 다 아는 정보는 사절인데.”
“물론입니다! 제 평생 연구한 결과물들을 모조리 보여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요?”
“물론입니다! 제게는 수없이 많은 미지의 영역에 대한 정보들이 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은 지역들이!”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죠.”
“그, 그게 정말입니까?”
“물론 지금 확답은 못 드려요. 예산 집행은 제가 하는 게 아니라서….”
“감사합니다! 검토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준비를 잘하셔야 할 겁니다. 예산 집행하는 사람이 여간 깐깐한 게 아니거든요.”
지크가 미켈레를 떠올리며 말했다.
[전하… 또 어디서 돈 새어 나갈 건수를 물어 오신 겁니까….]왠지 미켈레의 짜증 어린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지만, 지크는 아문센을 믿어보기로 했다.
‘거, 대충 아몰랑 하면 예산 집행해 주겠지, 뭐.’
때때로 지크는 굉장히 무책임하게 일을 벌이기도 했는데, 지금이 딱 그런 경우였다.
‘기왕 하는 투자니까 꿀 정보나 물어 와라. 후후후.’
지크가 아문센이 굉장히 좋은 정보를 물어다 주기를 기대하던 때였다.
스륵, 스르륵!
수백 마리의 헌터리안들이 은신을 풀고 나타나 지크 일행을 가로막았다.
“대정글의 도전이다! 헌터리안들은 물러서 길을 뚫어라! 그리고 헌터리안 킹에게 도전자를 안내하라!”
아마조네스 부족 최고의 전사 산드라가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
“…….”
“…….”
그러자 헌터리안들이 군말 없이 길을 비켜주었다.
“가시죠!”
호구와 부족의 뚜와잇카가 지크를 인도했다.
“예, 갑시다.”
그렇게 지크는 좌우로 길을 튼 헌터리안들을 스쳐지나가 에슈카 유적지에 입성할 수 있었다.
***
둥, 두웅!
야만 부족들의 힘찬 북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지크는 에슈카 유적지의 중심부에서 현재 의 실질적 지배자인 헌터리안 킹과 마주했다.
[헌터리안 킹]헌터리안들의 왕으로서, 가장 강한 개체이다.
현재 에슈카 유적지를 본거지로 점령한 채 의 실질적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다.
•존재 구분 : 몬스터
•종족 : 헌터리안
•등급 : 보스(Boss)
•레벨 : 300
•클래스 : 엘리트 비스트
•칭호 : 남부 대정글의 지배자 / 킹 오브 헌터리안 / 잔인한 사냥꾼 / 정글의 마수
비로소 마주한 헌터리안 킹은 그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영장류가 진화한 몬스터답게, 기본적으로 인간의 형상을 한 헌터리안 킹은 키가 3.5미터는 족히 돼 보였다.
또한, 굵은 허벅지와 팔뚝만 봐도 근육량이 인간의 열 배쯤은 넘을 게 분명했다.
게다가 입고 있는 검은 갑옷과 투구 역시도 매우 위협적이어서, 단순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이 엄청났다.
그리고… 무기.
절그럭!
헌터리안 킹의 무기는 매우 거대한 추가 쇠사슬에 덜렁덜렁 매달린, 그러니까 모닝스타 형태였다.
‘저거 한 방 맞았다간 그대로 골로 가겠는데?’
지크는 농구공보다 족히 다섯 배는 더 커 보이는 모닝스타의 추를 바라보며 살짝 떨었다.
“외지인 도전자여.”
헌터리안 킹이 지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놀랍게도, 헌터리안 킹은 보통 헌터리안과는 다르게 인간의 언어를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덤벼라. 빠르게 끝내주마.”
“사양하지 않지.”
지크가 을 움켜쥐었다.
우웅!
그와 동시에 상서로운 기운이 지크를 감쌌다.
[알림 : 버프가 발동되었습니다!] [알림 : 현 시각부로 모든 능력치가 +50레벨이 적용됩니다!]버프, 발동!
타핫!
버프를 두른 지크가 번개처럼 튀어나가 헌터리안 킹을 향해 쇄도했다.
화르르르르르르!
그와 동시에 가 깔리고.
쒜에엑!
지크가 을 휘둘렀다.
부웅!
그러자 헌터리안 킹 역시도 자신의 거대한 모닝스타를 휘둘렀다.
‘정면으로 받으면 안 돼. 흘리고, 반격한다.’
지크는 날아드는 모닝스타의 추를 바라보며 정면으로 부딪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생각에 따라 을 살짝 비틀어 공격을 흘리려고 했다.
그런데.
터엉!
과 헌터리안 킹의 모닝스타가 살짝, 아주 살짝 스치던 순간.
“아악!”
지크가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크윽!”
힘겹게 몸을 일으킨 지크.
[알림 : 경고, 경고!]그런 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 의 내구도가 10퍼센트 하락했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