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34
033
“너무 많은 것 아닙니까?”
“그게 말이지….”
베그만 남작이 난감하다는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죽은 고블린 로드가 모아놓은 재화가 상당하더구먼.”
“아…!”
“게다가 망해버린 슈라이어 영지에서 물자를 긁어모았더니 그게 또 꽤나 많았다네.”
어쩐지 너무 많다 싶더라니, 고르고가 살아생전 축적해놓은 재화 덕분이었던 것이다.
“물론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네만… 아무래도 전사한 병사들의 유족들에 대한 보상금이나 영지 복구 비용 때문에….”
“전 만족합니다.”
지크가 미안해하는 베그만 남작에게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5,000골드도 많았다.
BNW가 제아무리 현금 거래가 활성화된 게임이라고 해도 고작 30레벨에 한화 2억 5천만 원 어치의 수익을 올리는 건 극히 드문 케이스였다.
게다가 베그만 남작으로부터 받은 강화권과 고르고의 혈액, 그밖에 자잘한 부가적 수익까지 따지면 지크가 비어만 영지에서 얻은 이득은 거의 수백억 원에 달했다.
비록 강화권은 당분간 묵혀둬야 할 테지만 말이다.
“이만큼 챙겨주신 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자네가 그리 생각해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네.”
“감사합니다, 베그만 남작님.”
지크가 베그만 남작을 향해 살짝 목례를 해 보였다.
“그럼… 이제 가는 건가?”
“예, 떠나야지요.”
당연히 떠나야 했다.
더 이상 비어만 영지에서 변이 생명체들이나 때려잡고 있을 순 없다.
이제는 이 작은 영지를 떠나 조금 더 큰 지역으로 나아갈 때였다.
“그렇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자네 같은 큰 인물은 큰물에서 놀아야 맞는 것이겠지. 며칠 더 머무르다 갔으면 좋으련만.”
“저도 그러고 싶지만 갈 길이 너무나도 멉니다. 영주님께서 이해해 주시기를….”
“물론일세. 내 이해해야지 어쩌겠는가.”
베그만 남작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그 표정에서만큼은 못내 아쉬운 듯한 여운이 가득하긴 했지만.
“이보게, 지크.”
그때, 블리히가 다가와 지크를 향해 말을 걸었다.
“블리히 경.”
“다시 한번 고맙단 말을 하고 싶네. 정말 고맙네.”
“블리히 경께서 믿어주셔서 가능했던 일인데요, 뭘.”
“겸손하고는. 하하.”
“당분간은 몸조리 잘하시길 빌겠습니다.”
“걱정 말게. 얼른 회복하고 검술을 다시 연마할 생각이야. 두 팔이었을 때도 별 볼 일 없는 실력이긴 했지만, 명색이 기사 된 자가 팔 하나쯤 잃었다고 해서 검을 놓을 순 없지.”
“멋지십니다.”
지크는 블리히에게 진심으로 감탄했다.
블리히는 실력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근무지에 상관없이 기사로서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지크가 한 말 그대로, 블리히는 멋진 남자임에 틀림이 없었다.
“지크.”
블리히와의 인사가 끝나자 이번에는 용병 길드의 직원인 제리코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정말 수고했네.”
“제리코 씨도 수고하셨습니다.”
“자, 받게나.”
제리코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용병 길드 라이센스]•이름 : 지크프리트
•출신 : 이세계 (모험가)
•등급 : 실버Ⅲ
•클래스 : 노 클래스 (No class)
위 모험가는 뉘르부르크 대륙 용병 길드로부터 엄격한 심사와 검증을 받은 모험가임을 증명함.
– 뉘르부르크 대륙 용병 길드 비어만 영지 지부장 (인)
새 라이센스였다.
“실버Ⅲ 등급이네요? 승급 심사를 받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자네에게 굳이 승급 심사가 필요하겠나. 이번 전투의 활약이면 충분한데. 맘 같아선 실버Ⅰ을 주고 싶었네만, 우리 지부의 권한으로는 실버Ⅲ 티어까지가 한계더군. 아쉬운 대로 그거라도 가지고 가게나. 알지는 모르겠지만 그 라이센스는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용병 길드에 통용되는 거니까 쓸모가 있을 걸세.”
“감사합니다, 제리코 씨.”
지크가 제리코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고마웠네.”
“자네 덕분에 근위대에 취업할 수 있게 되었네.”
“잊지 못할 거야.”
톰슨과 용병들 역시 지크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그를 배웅해 주었다.
“나중에 고레벨 던전에서 보자고.”
“그때도 캐리 부탁해.”
“흠흠, 덕분에 렙업이 쉬웠어.”
한국인 모험가 장만복 씨와 모험가들도 지크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럼.”
지크가 자신을 배웅해주는 모든 이들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무탈하시기를 빕니다.”
그렇게 말한 지크가 비어만 영지의 입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비어만 영지에 있는 모든 이들이 그런 지크의 등 뒤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잘 가게!”
“자넨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거야!”
“누가 뭐래도 자네는 우리의 영웅이야!”
“고마웠네!”
“잊지 못할 걸세!”
호감도 등급이 단계이니만큼, 비어만 영지민들의 배웅은 열렬하기 짝이 없었다.
“영지민, 전원!”
베그만 남작이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우리 영지를 구원한 영웅, 지크프리트에게 경례!”
그러자 모든 영지민들이 지크의 등 뒤를 향해 거수경례를 올려붙였다.
처억!
경쾌한 소리가 지크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씨익-
지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접속, 종료.”
비어만 영지를 나선 지크는 가장 가까운 게이트웨이-여행자들을 위해 설치해 놓은 마법진-에 도착한 뒤 로그아웃을 했다.
현실에서 몇 가지 처리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돈 생겼으니까….”
오우거의 캡슐을 연 태성이 혼잣말했다.
“집부터 옮기자. 빚도 좀 갚고.”
태성에게 있어 돈이란 그저 통장을 잠깐 스쳐 지나가는 나그네에 불과했다.
집을 나선 지크는 곧바로 집 근처에 있는 부동산으로 향했다.
“아이고~ 총각~ 어서 와요오~”
후덕하게 생긴 중년 여성 공인중개사가 태성을 반겼다.
“어떻게 오셨을까아? 집 보러 오셨어용?”
“예.”
“뭐로 알아보시게? 원룸? 투룸?”
“투룸요.”
오우거가 있는 이상 더는 원룸에 살 수 없었다.
“얼마까지 알아보셨어?”
“어….”
태성이 잠시 고민하고는 대답했다.
“2,000에 70 정도….”
“으응?”
공인중개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2,000에 얼마?”
“70 정도요.”
“투룸을?”
“그런데요?”
“총각.”
“네?”
“장난하는 거… 아니지? 그렇지?”
“제가 왜 장난을 합니까?”
“아니, 총각.”
공인중개사가 태성을 한심하다는 듯 흘겨보았다.
“요즘 세상에 2,000에 70짜리 투룸이 어디 있어? 응?”
“그, 그래요?”
“여기가 시골 깡촌이야? 젊은 총각이 무슨 10년 전 가격을 이야기하고 있담?”
“…….”
“10년 전에도 2,000에 70은 경기도에서나 가능한 가격이었어, 이 답답한 총각아.”
가상 현실 게임이 보편화된 시대라 그런지 집값 역시도 살인적이었다.
“요새는 괜찮은 투룸 구하려면 최소한 3,000에 120은 줘야 돼.”
“3,000에 120이요??”
“여기나 되니까 그 가격이지 강남 가봐. 5,000에 200은 줘야 돼.”
“…미친.”
“총각, 방금 나한테 욕한 거야?”
“아뇨.”
태성이 손사래를 쳤다.
“그냥 집값이 생각보다 비싸서요.”
“쯧쯧. 세상 물정 모르기는.”
“그럼….”
태성은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가까스로 떼놓아야만 했다.
‘3,000에 120이라니. 요즘 집값 진짜 살인적이네. 하아.’
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리면서….
“3,000에 120짜리로… 보여주세요.”
“캡슐방으로?”
공인중개사가 말하는 캡슐방이란, VR 캡슐을 설치할 수 있도록 인테리어가 꾸며진 집을 뜻했다.
“그럼 더 좋고요.”
“30만 원 추가인데 괜찮겠어?”
순간 태성은 자신의 혀를 깨물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아내야만 했다.
‘그냥 강화권 팔아버릴까?’
강화권을 묵혀 두는 게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는 태성이었다.
***
한 시간 뒤.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네.”
때마침 빈방이 있어 계약서를 작성하고 부동산을 나선 태성이 허탈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무슨 월세가 150이나 해….”
하지만 투덜거린다고 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버린 대한민국의 집값이 떨어질 리는 없었다.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70만 원으로 투룸을 구할 수 있었던 건 PC로 게임을 하던 시대의 이야기였다.
“돈 벌자, 돈.”
운이 좋아 불과 일주일 사이에 엄청나게 큰돈을 벌었지만 갈 길은 멀고도 멀었다.
산더미 같이 쌓인 빚도 해결해야 했고,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생활비도 보내야 했으며, 태성 본인도 의식주를 해결해야 했다.
‘빚부터 청산하는 게 먼저다. 집은 일단 옮기기로 했으니까, 당분간은 빚 갚는 데 집중하자.’
태성은 그렇게 다짐하며 가까운 은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채업자에 돈을 이체하기 위해서였다.
***
구로구의 어느 허름한 빌딩에 자리한 사무실.
“행님.”
사무실의 막내 넙치가 책상에 앉은 자신의 큰형님, 마동포를 향해 보고했다.
“한태성이가 돈을 입금했는뎁쇼?”
“뭐? 누가 돈을 입금해?”
한창 현찰을 세는 데 열중하던 마동포가 눈살을 찌푸렸다.
“한… 뭐시기?”
“한태성이 말입니다.”
“한태성이 누군데?”
“그 왜 있잖습니까. 작년에 그….”
넙치가 마동포의 귀에다 대고 무어라 속삭였다.
“엥?”
마동포는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그 자식이 돈을 입금했다고?”
“예, 행님.”
“얼씨구?”
마동포가 이상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그 자식 그거 아직 자살 안 했냐? 난 진즉에 자살한 줄 알았는데?”
“행님.”
넙치가 난처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한태성이도 엄연한 채무자인데 뒈져버리면 어떡합니까? 뒈질 거면 행님 돈은 다 갚고 뒈져야지요.”
“올~”
그런 넙치의 말에 마동포가 제법이라는 듯 히죽 웃었다.
“넙치 너 제법이다? 이제 좀 사채업자 티 난다?”
“헤헤~ 감사합니다, 행님.”
“그건 그렇고. 한태성이가 얼마를 입금했는데?”
“2억 했습니다, 행님.”
“엥?”
“한 4개월 전에도 1억 입금했었는데, 모르셨습니까? 행님?”
“내가 한태성이 같은 잔챙이까지 신경 쓸 겨를이 있겠냐? 안 그래도 요즘 바빠 죽겠는데.”
그 말은 사실이었다.
게이머들을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불법 사채업자인 마동포는 최근 사채업자 인생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중이었다.
가상 현실 게임이 워낙에 현금성이 좋다 보니 돈을 빌리러 오는 어리숙한 게이머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이다.
“이자만 안 밀린다면야 딱히 신경이 안 쓰인다고.”
“그건 그렇습니다, 행님.”
“흐음. 한태성이 나한테 얼마 빌렸냐?”
“그게….”
넙치가 장부를 들여다보곤 대답했다.
“총 8억이었는데 한태성이 가지고 있던 5억짜리 아파트랑 차량이랑 소장품들 이것저것 다 해서 4억에 퉁치고 4억 남았었습니다.”
“그럼 남은 4억에서 4개월 전에 1억 갚고 방금 2억 갚았다고?”
“예, 행님. 이제 1억밖에 안 남았습니다.”
“어쭈, 이 자식 봐라?”
마동포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쫄딱 망한 놈이 뭔 수로 원금을 갚는 거지? 이자만 해도 살인적이었을 텐데?”
불법 사채업자인 마동포의 이자율은 현재 기준으로 법정 최고 이자율인 20퍼센트를 훌쩍 뛰어넘는 30퍼센트를 받고 있었다.
3억의 30퍼센트는 9,000만 원,
이를 열두 달로 나눠 계산하면 한 달 이자만 해도 무려 750만 원인 것이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행님.”
“흠.”
마동포가 자신의 거대한 하관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로또라도 터졌나? 아님 사업이라도 해서 대박이라도 터진 건가? 아닌데. 이 자식이 돈 나올 구석이 없을 텐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행님.”
“그 살인적인 이자를 감당하는 거로도 모자라서 원금까지 갚았다? 흠. 수상하군. 킁킁~”
마동포가 콧구멍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그가 돈 냄새를 맡았을 때 습관적으로 보이는 행동이었다.
“넙치야.”
“예, 행님.”
“애들 풀어서 한태성이 요즘 뭐 하고 사는지 좀 알아보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행님.”
“난 아무래도 쩐주한테 전화 좀 넣어봐야 쓰것다.”
마동포가 자신의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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