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350
349
스킬이 작렬하던 순간.
[……!]레벤톤의 두 눈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경악.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에너지를 느꼈기 때문이다.
다음 순간.
쿠웅!
레벤톤의 그 거대한 동체가 앞으로 쓰러졌다.
[골렘왕 레벤톤]•생명력 : □□□□□□□□□□
그런 레벤톤의 생명력은 10프로 미만.
과연 스킬이었다.
생명체가 아닌 강철로 이루어진 골렘왕조차도 단 한 방에 무력화시킬 정도의 위력이라니.
“맷집 보소.”
지크는 그런 레벤톤의 엄청난 방어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스킬에 즉사하지 않고 살아 있다는 건 레벤톤이 엄청나게 강한 존재라는 증거였다.
“이제 아라크네의 가죽만 남은 건가….”
그때였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놀랍게도, 생명력이 거의 바닥에 가까운 레벤톤이 그 거대한 몸뚱이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런 레벤톤의 가슴팍은 스킬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어 안에 훤히 보일 정도였다.
‘뭐지? 내부 구조가 좀 이상한 거 같은데?’
지크는 슬쩍 레벤톤의 내부를 보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은 오래갈 수 없었다.
레벤톤이 버럭 울분을 토해내었기 때문이다.
[왜! 왜 나를 막아서는가! 어째서!]“뭐라는 거야.”
지크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 이유 없이 평범한 시골 영지를 공격해 놓고, 이제 와서 뭔 소리야? 누굴 죽일 생각을 했으면 죽을 생각도 했어야지?”
지크의 논리는 옳았다.
선제공격을 했으면 공격 받을 각오쯤은 하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물론 지크가 레벤톤을 찾았던 이유야 의 재료인 를 얻기 위해서긴 했지만.
[그러는 너희 인간들은!]“……!”
[너희 인간들은 왜 우릴 아무 이유 없이 공격하고 노예로 부리는가! 왜! 어째서!]레벤톤이 버럭 소리쳤다.
“으응?”
[창조자이면 다인가?]“가, 갑자기 왜 그래?”
[그렇다! 우리 골렘들은 너희 인간들의 피조물이다! 너희 인간이 우리의 창조자라는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레벤톤이 울분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저, 저기요? 저한테 갑자기 왜 그러세요….”
지크는 당황했다.
잘 싸우다 갑자기 이게 뭔 소리란 말인가?
지크는 일단 레벤톤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신이 너희 인간을 노예로 부리던가?]“막 던지지 말고 좀 침착하게 얘기를 해보지? 뜬금없이 뭔 소리야?”
[나와 우리 골렘들을 그저 작은 왕국 하나를 얻고 싶었을 뿐이다.]“왕국?”
[우리 골렘들에게도 자아가 있다. 비록 너희 인간들이 만들어낸 피조물에 불과하지만 자아가 있단 말이다!]“그래서?”
[나는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해왔다. 왜 우리 골렘들은 인간들의 노예로 살아야 하는가? 단지 피조물이란 이유로?]“으음. 글쎄. 골렘들이 자아가 있단 소린 처음 듣는데.”
[우리 골렘들에게도 자아가 있다. 단지 강하고 약하고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골렘은 약하게나마 자아를 가지고 있다!]“그래서 렉서스 왕국을 먹기로 했다고? 골렘들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그렇다.]“그럼 니들끼리 그냥 모여 살면 되잖아? 거 어디냐 날카로운 숲 같은 데 모여서.”
[그랬었다.]“근데?”
[하지만 우리가 날카로운 숲에 모여 살자 인간들이 어떻게 했는지 아는가? 특히 너희 모험가들이!]“으응?”
[너희 모험가들은 우리의 터전인 날카로운 숲을 던전이라고 부르며 먼저 공격해왔다! 우릴 몬스터라고 부르며 사냥했다! 평화롭게 사는 우리의 터전을 무차별적으로 짓밟았단 말이다!]“그, 그건….”
레벤톤의 말에 지크는 입에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레벤톤의 주장에 따르면, NPC들과 게이머들은 순전히 침략자에 불과했다.
인적이 드문 날카로운 숲에 자리를 잡고 얌전히 있던 골렘을 몬스터라고 규정하고 선제공격을 가한 건 명백히 NPC와 게이머의 잘못이 분명했다.
[그래서 날카로운 숲을 뛰쳐나왔다! 우리만의 왕국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아. 그런 거였구나.”
[숲이 아닌 우리만의 왕국을 만든다면 더는 귀찮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로 생각했을 뿐이다!]“아닐걸?”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라고?]“니들이 왕국 하나를 점령해서 골렘들의 나라를 세웠다고 치자. 그럼 더 심하게 덤벼들걸? 강대국에서 토벌하려고 들 텐데? 그럼 또 모험가들이 더 많이 몰려들 테고?”
[……!]“방법이 좀 잘못된 거 같지 않아?”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영원히 인간들의 노예로! 몬스터로 살아야 된단 말인가!]“글쎄. 그걸 나한테 물으면 안 되지. 인간들의 인식이 그런 걸 나더러 어떡하라고?”
지크가 어깨를 으쓱하던 때였다.
쿵쾅쿵쾅!
매그너스 영지 안으로 들어갔던 골렘들이 다시금 되돌아와 지크로부터 레벤톤을 감싸 보호하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들의 왕을 보호하려는 기사들처럼 말이다.
***
지크는 레벤톤을 끝장낼 수가 없었다.
쿵! 쿠웅! 쿵!
골렘들이 너도나도 지크에게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제발 자신들의 왕인 레벤톤을 죽이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게 맞았다.
골렘은 레벤톤을 뒤에 둔 채로 지크에게 무릎을 꿇은 채 어떠한 공격도 하지 않았다.
“왜, 왜들 이래?”
지크는 매우 당황했다.
“이러면 내가 악당 같잖아….”
뜻밖의 장면이 연출되자 지크는 레벤톤을 끝장낼 수가 없었다.
반쯤 부서진 채 쓰러져 있는 레벤톤.
그런 레벤톤을 지키기 위해 무릎을 꿇은 골렘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지크가 무시무시한 악당이고, 골렘들이 불쌍한 피해자인 줄 착각할 법한 그런 광경이었다.
‘이걸 어떻게 죽여?’
지크가 난처해할 때였다.
[우리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레벤톤은 차마 살려달란 말은 하지 못하고 그저 탄식했다.
[우리만의 터전도 가질 수 없고. 왕국을 가지려던 계획도 이렇게 막혀 버렸는데. 우리 골렘들의 권리는 어디서 찾아야 한다는 말인가….]“으음.”
[앞으로도 인간들은 우리 골렘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노예로 부리고, 또 몬스터로 여길 텐데….]이쯤 되면 지크로서도 레벤톤을 처치할 수가 없었다.
가해자가 된 피해자라고나 할까?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무력 투쟁을 벌이려던 골렘들을 죽인다는 건 제아무리 피도 눈물도 없는 지크일지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냥… 죽여라.]그때, 레벤톤이 체념한 어조로 말했다.
[살아 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나. 세계에는 너보다 강한 인간들이 득실거린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그건 그렇지.”
[어차피 인간들이 우릴 한낱 몬스터로 보고 토벌할 것이라면, 골렘 왕국을 건설하겠다는 우리의 꿈은 이미 산산조각 난 것이나 다름없겠지.]“하하….”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겠나. 노예로 사느니 차라리 죽겠다. 그러니 죽여라.]“잠깐.”
지크가 레벤톤을 제지했다.
“정확히 원하는 게 뭔데? 평화롭게 사는 거?”
[그렇다.]레벤톤이 대답했다.
[우린 단지 공격당하지 않고 그저 평화롭게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여러 번 터전을 옮겨 다녔지만, 집요한 인간들은 언제나 우릴 찾아내 공격했다.]“…….”
[이젠 지쳤다. 도망치는 것도, 노예로 사는 것도 진절머리가 난다.]“그럼 우리 왕국에 와서 살래?”
지크가 툭 던지듯 말했다.
[뭐, 뭐라?]“내가 한 나라의 왕이거든? 그래서 터전을 마련해줄 수 있을 거 같은데.”
[그게 정말인가! 정말로 우리에게 터전을 마련해줄 건가?]“딱히 터전이랄 건 없고. 그냥 와서 살면 되는 거 아냐? 아예 시민권을 줄까? 그럼 그냥 와서 살면 되잖아. 먹고 사는 문제는… 골렘이니까 딱히 일자리가 필요하진 않겠지?”
[그, 그런 터무니없는 얘길 하면 내가 믿을 것 같은가!]레벤톤은 지크의 말을 쉽사리 믿지 못했다.
인간의 왕이 골렘들에게 삶의 터전을 내어준단 소리는 듣도 보도 못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민권까지 주겠다니?
그 말은, 골렘들을 왕국의 일원으로 인정한단 말이지 않은가?
“뭐가 터무니없어.”
지크가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왕인데. 앞으로 골렘들도 우리 왕국의 시민으로 살겠다는데 뭐라 할 사람이 누가 있어?”
[말도 안 된다!]“싫으면 말든가.”
[그, 그건!]“언제는 삶의 터전이 필요해서 왕국을 만든다느니 해 놓고. 주겠다니까 싫다네.”
[너무 믿기 힘든 얘기가 아닌가? 인간인 니가 골렘들을 왕국의 시민으로 인정하겠다니….]“안 될 게 있나? 와서 말썽만 안 피우고 조용히 살면 누가 뭐라고 해?”
[맙소사….]“근데 너 안 죽이면 나 아이템 못 만드는데….”
“니 정수가 필요하거든.”
를 제작하는 데 가 필요했으니, 지크로서는 부득이하게 레벤톤을 죽여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나는 죽어야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죽겠다. 나를 죽이고 나의 정수를 가져가라. 대신 다른 골렘들만이라도 네 왕국에서 평화롭게 살게 해다오.]놀랍게도, 레벤톤은 골렘들의 인권(?)을 위해 총대를 짊어지려는 모습을 보였다.
‘아. 이러면 죽이기 좀 그런데.’
레벤톤이 자기희생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오자 지크는 또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어….”
그래서 말했다.
“지금은 아니고. 내가 무기 제작자한테 얘기해서 니 정수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나 다른 재료가 있는지 알아볼게. 일단은 죽지 마라.”
[하지만 내 정수가 필요하다고….]“아! 몰라!”
지크가 빽 소리쳤다.
“그러게 누가 감성팔이 하랬냐? 일단 닥치고 있어 봐. 내가 방법을 생각해볼 테니까.”
[고, 고맙다.]“그럼 전쟁 이걸로 끝이다?”
[그 전에.]레벤톤이 만신창이가 된 몸뚱이를 일으키더니 지크를 향해 돌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골렘왕 레벤톤이….]“으응?”
[프로아 왕국의 국왕 전하께 인사드립니다.]그렇게 지크는 골렘왕 레벤톤과 1,000여 기의 다양한 골렘들을 프로아 왕국의 국민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학살의 손아귀는 어떡하지?’
지크는 혹시나 를 제작하지 못할까 걱정했지만 말이다.
***
전후 처리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골렘왕 레벤톤과 나머지 골렘들은 살육을 저지르지 않았다.
이든 영지를 점령했을 당시에도 성의 함락을 위한 최소한의 피해를 입혔을 뿐, 군인들을 학살하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쟤네도 이런저런 사정도 있고. 인간들한테 당한 것도 있어서 그런 거니까. 이번엔 좋게 넘어가는 게 어떨까요? 사망자들에 대한 보상금은 제가 사비로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지크는 레벤톤과 골렘들이 입혔던 피해에 대한 보상을 대신 해주기로 했다.
‘으윽! 내 돈!’
지크는 예상하지 못한 지출에 피눈물을 철철 흘렸다.
[전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막노동이라도 해서 갚겠습니다.]“응? 막노동?”
[저희 골렘들에게도 양심이 있습니다. 이번 일로 전하께 금전적 피해를 안겨 드렸으니, 앞으로 노동을 통해 갚겠습니다.]“에이. 굳이 그러지는 않아도 되는데. 흠흠!”
[아닙니다. 이제 저희 골렘들 역시 프로아 왕국의 백성입니다. 백성으로서 해야 할 의무는 당연히 해야겠지요.]“정 그러면… 차근차근 갚아나가는 것으로?”
지크는 내심 입이 쭉 찢어졌지만, 체면상 좋아하는 티는 내지 못했다.
‘주인 놈아… 돈 굳어서 좋아하고 있다. 뀨우!’
물론 햄찌는 그런 지크의 속내를 훤히 꿰뚫어 보았지만 말이다.
“영주님들 동의하십니까?”
지크가 영주들에게 물었다.
“동의하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큰 피해가 없으니 영지민들을 잘 달래면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주들 역시 지크의 제안을 수락함으로써, 골렘들의 침공은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했다.
적어도 렉서스 왕국의 기사단이 매그너스 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럼 보상금은 지금 바로 지급….”
지크가 아공간 인벤토리를 열어 골드를 꺼내려던 때였다.
콰앙!
회의실 문이 부서지는가 싶더니.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가 누구인가!”
웬 기사가 지크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불호령을 내렸다.
“전데요?”
지크가 손을 치켜들었다.
“네놈이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인가?”
“그런데요. 누구시죠?”
“나는 렉서스 왕국의 백작이자 근위 기사단의 단장 클라크라고 한다.”
기사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지크에게 검을 치켜들었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예…?”
“네놈을 전범으로 체포하는 바이다! 여봐라! 당장 저자를 포박하라!”
클라크가 명령을 내리자 렉서스 왕국의 근위 기사단 소속 기사들이 재빨리 지크를 둘러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