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352
351
‘그래! 어서 사인해라! 크흐흐!’
알토 공작은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문서에 서명하려는 지크를 바라보았다.
저 문서에 라는 서명이 새겨지는 순간 게임은 끝난 셈이었다.
렉서스 왕국은 저 문서를 황제에게 제출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되면?
황제로서도 렉서스 왕국의 프로아 침공을 허락할 수밖에 없을 터.
‘그 사인이 네 목줄을 움켜쥘 것이다.’
그런 알토 공작의 속을 읽기라도 했기 때문일까?
지크는 깃펜을 들어 아무런 망설임 없이 문서에 자신의 서명을 새기려 하고 있었다.
“잠깐!”
지크가 사인하려다 말고 알토 공작에게 물었다.
“저기요. 제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무,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어서 서명부터 하시지요.”
“서명은 이따가 할게요. 궁금한 것부터 해결해야 서명을 하든 말든 하죠.”
“크흠!”
“이거 서명하면 저 풀어주는 건가요?”
“그건….”
알토 공작이 잠시 머뭇거리고는 대답했다.
“당장은 불가능합니다. 아무래도 행정적인 부분이 처리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힘들겠지요. 그러나 서명만 하신다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전하를 석방시켜 드리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아하!”
“그럼 어서 서명을….”
“해야죠.”
지크가 다시금 깃펜을 들어 문서에 자신의 서명을 새기려 했다.
하지만 지크는 이번에도 서명을 하지 않았다.
“잠깐만요.”
“왜 또 그러십니까.”
알토 공작이 짜증 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이런 빌어먹을 새끼! 서명이나 할 것이지 자꾸 늦장을 피우다니!’
알토 공작은 지크에게 욕설을 퍼붓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아야만 했다.
“전하께서 이러실수록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는 걸 왜 모르십니까? 전쟁을 원하십니까?”
“그건 아니고요!”
“그럼 뭐가 문제인 겁니까?”
“차가 떨어져서요.”
“차… 말씀입니까?”
“이 차가 향기 참 좋더라고요. 한 잔 더 마시고 서명하고 싶은데.”
“여봐라!”
알토 공작이 간수를 불렀다.
“예! 알토 공작님!”
“시녀에게 말해 이 차를 당장 준비해라!”
“예!”
알토 공작이 지크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고는 고개를 돌렸다.
“보셨습니까? 서명하십시오.”
“마시고 하면 안 될까요?”
“간단한 서명 아닙니까. 차가 곧 올 테니 서명부터 하십시오.”
“그럴까요?”
그렇게 지크가 다시금 깃펜을 들었다.
지크는 이번에도 서명을 하려다 말고 알토 공작에게 물었다.
“저기요.”
“서명 안 하십니까?”
“아니. 할 건데요.”
“또 뭐가 문제인 겁니까. 도대체 또 무엇이 걸리십니까?”
급기야 알토 공작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설마 지금 날 놀리는 건가?’
알토 공작은 어쩌면 지크가 자신을 놀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옳았다.
‘열 받지? 큭큭큭!’
머리 좋기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지크는 알토 공작의 속내를 뻔히 꿰뚫고 있었다.
지크는 범죄를 자백하는 문서에 서명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알토 공작을 일부러 열 받게 만들고 있는 게 사실이었다.
“전하. 설마 지금 저와 장난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설마요.”
지크가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지금 사인하려던 참이었는데요?”
“근데 왜 멈추십니까?”
“조건이 있어서요.”
“그 조건이라는 게 뭡니까?”
“서명하는 대신 거처를 옮겨주시죠.”
“거처요?”
“제가 명색이 일국의 왕인데 이런 지하 감옥에 갇혀 있을 순 없잖아요? 거처라도 좀 좋은 데로 마련해 주시죠.”
“바로 옮겨드릴 테니 서명하십시오.”
“여기 밑에 특약 사항으로 넣어주세요. 거짓말은 사절입니다.”
“이런 젠장!”
그렇게 소리친 알토 공작이 지크에게 문서를 확 빼앗더니 추가 특약 사항을 적어 넣었다.
“됐습니까? 이제 서명하시겠습니까? 예?”
“좋네요.”
지크가 새로 추가된 특약 사항을 확인하고는 마침내 미루고 미루었던 서명을 문서에 새겨 넣었다.
“자. 사인했어요. 됐죠?”
그토록 원하던 지크의 사인을 받아냈음에도, 알토 공작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새끼! 두고 보자!’
아무리 생각해도 지크에게 놀아난 것 같단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토 공작은 정말로 지크에게 놀아났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왜?
프로아 왕국은 국가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작은 시골 영지에 불과했으니까.
반대로 렉서스 왕국은 나름 국가의 구색을 갖춘 곳.
황제의 보호가 없다면 프로아 왕국이 렉서스 왕국의 침공을 막아낼 방법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적어도 알토 공작이 생각하는 한….
***
지크의 서명을 받아내는 데 성공한 렉서스 왕국은 곧바로 슈트카르트 황제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한편, 프로아 왕국에 사신을 보냈다.
“귀국이 본국의 국왕 전하를 체포해 구금하고 있단 말씀입니까?”
국무대신으로서 렉서스 왕국의 사신을 맞이한 미켈레가 미소를 지었다.
물론 미켈레가 렉서스 왕국의 사신을 맞이한 장소는 진짜 프로아 왕국이 아니었다.
가짜 도시.
미켈레는 데시마토와 마법사들이 아공간 속에 만들어놓은 허접하기 짝이 없는 장소에서 렉서스 왕국의 사신을 맞이했다.
프로아 왕국의 진면목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렇습니다. 국무대신 각하.”
“잘됐군요.”
“예?”
“아, 아닙니다.”
순간 미켈레는 자기도 모르게 속마음을 내뱉고 말았다.
평소 지크가 워낙에 무책임하고 사고만 치고 다니는 통에 스트레스가 쌓일 대로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흠흠.”
“…….”
“귀국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일단 프로아 전하의 신병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걸 먼저 알려 드리겠습니다. 비록 범죄를 저지르시긴 하셨지만, 프로아 전하께서는 엄연히 일국의 왕이시니 그에 마땅한 대우를 해 드려야겠지요.”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미켈레가 고개 숙여 렉서스 왕국의 사신에게 예의를 표시했다.
“헌데 이 문제는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신지….”
“일단 저희 국왕 전하께서는 일을 원만하게 처리하기를 원하십니다.”
“다행이로군요.”
“귀국에서 본국을 자극할 만한 그 어떤 행위도 하지 않으신다면, 프로아 전하께서는 무사히 송환되실 것입니다.”
“페르난데스 전하의 배려에 정말이지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럼, 저는 이만 본국으로 돌아가 볼 테니 연락을 기다리시지요.”
“살펴 가십시오.”
렉서스 왕국의 사신은 가짜 프로아 왕국을 나서며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후후! 이렇게 허접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라니! 완전히 빈 땅이 아닌가? 본국의 영토 확장은 이미 한 것이나 다름없구나!’
렉서스 왕국의 사신의 눈에 비친 가짜 프로아 왕국은 정말이지 허접하기 짝이 없어서, 하루면 점령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어서 이 사실을 본국에 알리고 전쟁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겠군.’
그게 렉서스 왕국의 사신이 프로아 왕국을 방문한 진짜 목적이었다.
전쟁을 일으키기 전 적의 전력을 대략이나마 파악하는 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렉서스 왕국의 사신이 돌아간 직후.
진짜 프로아 왕국으로 귀환한 미켈레는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전군에 전파한다. 현재 렉서스 왕국이 국왕 전하를 체포 후 감금 중이라고 한다. 이에 본 국무대신 미켈레는 국왕 전하의 대리인으로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바이다. 전군 전투준비태세를 갖추고 국경 근처에서 대기하라. 총사령관은 오스칼 경이 맡고, 부사령관은 카렐 경이 맡는다.”
미켈레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프로아 왕국군은 전쟁 준비에 돌입했다.
***
그로부터 3일 후.
지크가 습하고 어두컴컴한 지하 감옥에서 호화로운 별궁으로 옮겨진(?) 후 허송세월을 보내는 동안 황제는 렉서스 왕국의 서신에 답변했다.
슈트카르트 황제의 서신은 다음과 같았다.
프로아 왕국의 국왕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가 자백을 했다는 증거가 있으므로, 이 전쟁에 짐은 관여하지 않겠다.
렉서스 왕국의 프로아 왕국 침공을 허가하는 바이다.
황제의 서신이 도착한 직후.
“전하! 군대를 일으키소서!”
“알겠소이다! 알토 공작!”
렉서스 왕국의 국왕 페르난데스 3세는 지체하지 않고 군대를 소집했다.
속전, 속결!
일단 황제의 명령이 떨어진 이상 전쟁을 최대한 빠르게 끝내서 영토 확장을 한다는 게 렉서스 왕국의 계획이었다.
“후후후. 이 천둥벌거숭이 모험가 놈을 만나러 가볼까?”
알토 공작은 군대의 소집 명령이 떨어진 직후 지크에게 찾아갔다.
“곧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의 네놈 표정이 궁금하군. 정말로 궁금해.”
알토 공작은 자백을 증명하는 문서에 서명하기까지 뺀질거리던 지크의 모습을 기억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 알토 공작님 오셨네요.”
지크는 호화로운 처소에서 혼자 카드 게임 놀이를 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어쩐 일이시죠? 저 석방되는 겁니까?”
“석방? 큭큭큭!”
알토 공작이 냉소를 지었다.
“곧 석방이야 되겠지.”
“예?”
“네놈의 왕국이 본국의 군대에게 짓밟혀 멸망한 후에.”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군.”
“무슨 말씀이신지….”
“곧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저, 전쟁이요?”
지크가 깜짝 놀란 척 연기를 했다.
“하지만 그 문서에 서명하면 전쟁은 없을 거라고….”
“푸하하하하!”
“……?”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는가? 이런 멍청한 놈 같으니! 그 문서는 네놈의 범죄 행위를 자백하는 진술서이다!”
“그래서요?”
“우린 그 진술서를 마우레키온 제국의 황제 폐하께 보내드렸다.”
“헉! 그래서요?”
“아직도 모르겠는가? 네놈이 저지른 짓거리는 명백한 도발 행위. 황제 폐하께서는 이 사건에 대해서만큼은 본국으로부터 네놈의 왕국을 보호하시지 않겠다고 하셨지.”
“헉!”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네놈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전쟁이 벌어진단 말이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야호!”
지크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진짜죠? 전쟁 벌어지는 거 맞죠?”
“……?”
“예쓰!”
순간 알토 공작은 지크가 미쳤거나, 혹은 본래부터 미친놈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전쟁이 난다는데 저렇게 좋아하다니?
“미쳐버린 모양이군. 아니면 제정신이 아니었거나.”
알토 공작이 측은하다는 듯 지크를 바라보았다.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다. 본국의 오랜 숙원인 영토 확장을 위해선….”
그때였다.
콰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왕궁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펑! 퍼엉! 펑펑! 펑!
밖에서 마치 포탄을 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왕궁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포, 포격이다!”
“으아아아악!”
“꺄아악!”
더불어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대피하는 소리 역시도 들렸다.
“이, 이 무슨!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이야!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
놀란 알토 공작이 다급히 소리치던 때.
짜악!
지크의 손바닥이 알토 공작의 뺨을 후려쳤다.
“커헉!”
알토 공작이 피를 뿜으며 쓰러진 직후.
“이게 뭐하는….”
“지금부터 전쟁 시작이다, 이 새끼야.”
“뭐, 뭣이?!”
“전쟁 시작이라고.”
그렇게 말한 지크가 을 슥 빼들고 알토 공작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프로아 왕국 대 렉서스 왕국.
그 전쟁의 시작은 프로아 왕국군이 기습적으로 렉서스 왕국의 수도를 침공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