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353
352
렉서스 왕실은 프로아 왕국군이 국경을 넘어 침공해 들어오는 걸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프로아 왕국군은 기습적으로 렉서스 왕국의 국경 지대에 자리한 영지 하나를 박살낸 후 곧바로 해병대를 투입시켰다.
아쿠아 러너에 탑승한 500명의 프로아 해병대원들은 빠르게 이동하며 대공포가 설치된 요새들을 차례차례 점령했다.
프로아 왕국의 해병대원들은 훈련이 매우 잘되어 있고, 하나같이 값비싼 아이템으로 무장하고 있어 그 전투력이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프로아 왕국의 해병대 앞에서 렉서스 왕국군은 한 끼 식사거리도 되지 못했고, 덕분에 침공 속도가 더욱 빨라진 건 물론이었다.
해병대원들이 대공포를 점령하고 나면?
공중 병력, 투입!
프로아 왕국의 비행 함대는 대공포가 제거된 지역을 빠르게 비행하며 안전하게 제공권을 장악했다.
그렇게 프로아 왕국군은 해병대와 비행 함대를 투입해 렉서스 왕국의 수도 코앞까지 희생 하나 없이 진격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프로아 왕국의 고위급 기사인 오스칼과 카렐.
웨펀 마에스트로들.
심지어 이번 사건으로 인해 화가 잔뜩 난 골렘왕 레벤톤과 그를 따르는 골렘들까지 가세했다.
덕분에 렉서스 왕국의 수도는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 이 무슨!”
알토 공작은 도무지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아 왕국의 전력을 전혀 모르는 알토 공작으로서는 정신을 못 차리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그때였다.
우르릉, 콰앙!
지크가 갇혀 있던 별궁의 천장이 통째로 내려앉는가 싶더니 거대한 강철 거인이 뚝! 떨어져 내렸다.
[전하.]골렘왕 레벤톤이 지크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신 레벤톤이 주군을 모시러 왔습니다.]그런 레벤톤의 양어깨와 가슴팍에는 어느새 프로아 왕국의 육군 병과 마크와 왕실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비단 레벤톤뿐만이 아니었다.
위잉!
레벤톤의 가슴팍이 위에서 아래로 벌어지고.
“형님!”
그 안에서 승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 승구야? 니가 왜 그 안에 있냐?”
“저 전직했습니다!”
지크의 물음에 승구가 답했다.
“전직?”
“예!”
지크는 승구의 말에 을 비추어 보았다.
그런 승구의 클래스는 어느새 으로 바뀌어 있었다.
“설마? 그 전직이라는 게 레벤톤을 타는 거였냐?”
“그런 것 같습니다!”
“어쩐지. 가슴 안쪽이 구조가 이상하더라니.”
지크는 레벤톤과 싸울 당시 그의 가슴 안쪽의 구조가 뭔가 이상했었다는 걸 떠올렸다.
승구가 말했던 전직 퀘스트라는 게 사실은 레벤톤의 주인이 되어 이 되는 거였던 모양이었다.
[비록 덜떨어진 파일럿이지만. 전하를 모신단 생각에 탑승시켰습니다.]“뭐? 내가 덜떨어졌다고?!”
[닥쳐라! 덜떨어진 놈!]“이 쇳덩이가!”
[자격도 없는 놈을 태워줬더니! 넌 닥치고 있어라! 네놈의 조종 따위 필요 없다!]티격태격.
아무래도 승구의 레벨이 낮아서인지 레벤톤은 통제에 잘 따르지 않는 것 같았다.
“사이좋네. 하하하….”
지크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전하. 이 자식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다.]“으악! 으아악!”
[밟아 버릴까요?]레벤톤이 그 거대한 손으로 알토 공작의 뒷덜미를 잡아 올리며 물었다.
“아직.”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지가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두 눈으로 똑똑히 봐야겠지.”
[그럼 일단은 살려 놓겠습니다.]중요한 건 ‘일단은’ 살려 놓는다는 거였다.
“일단 가자. 그나저나 왕이 어디 있을까?”
[제가 모시겠습니다.]그렇게 말한 레벤톤이 왼손을 들었다.
그런 레벤톤의 왼손에는 아주 거대한, 평범한 대포보다 족히 다섯 배는 되어 보이는 핸드캐넌이 장착되어 있었다.
프로아 왕국의 신형 대포를 레벤톤에게 맞게 대구경으로 제작한 핸드캐넌이었다.
펑!
레벤톤의 핸드캐넌이 불을 뿜었다.
와르르르르!
그러자 별궁의 한쪽 벽면이 완전히 박살났다.
엄청난 화력.
모르긴 몰라도 저 핸드캐넌의 화력 앞에 버틸 성벽은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
“형님! 가시죠!”
“그래.”
지크는 레벤톤에 탑승한 승구를 앞세워 자신이 갇혀 있던 별궁을 나섰다.
“으악! 으아아악!”
알토 공작을 포획한 채로 말이다.
***
지크는 별궁을 나선 후 이렇다 할 전투 한 번을 치르지 못했다.
렉서스 왕국의 왕성은 이미 프로아 왕국군에게 완전히 장악당한 뒤였다.
페르난데스 3세를 찾아가는 길.
“국왕 전하께 경례!”
“충! 성!”
지크가 왕성 안을 걸을 때마다 곳곳에서 프로아 왕국군이 우렁찬 목소리로 경례를 올려붙였다.
“수고들 많으십니다. 무능한 국왕 때문에 다들 고생이 많죠? 복귀하면 대대적으로 포상할 테니 조금만 수고들 해주세요.”
“충성!”
지크는 렉서스 왕국의 왕성 안을 마치 자신의 안방이라도 되는 것처럼 거닐었다.
위협은 없었다.
프로아 왕국군이 장악한 렉서스 왕국의 왕성 안은 이미 지크의 안방이마 마찬가지였으니까.
“전하!”
“아! 카렐!”
“이쪽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카렐이 렉서스 왕국의 어전 앞에 도착한 지크를 맞이했다.
“요즘 어때? 바빠서 통 얼굴 보기가 힘드네.”
“저야 언제나 전하의 군대를 강군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마워.”
“별말씀을요! 전하께서는 저를 두 번이나 살리셨습니다. 저 카렐, 평생 전하께 충성을 바치고 봉사하면서 살아가는 게 꿈입니다.”
“그런 꿈만 꾸지 말고 너도 네 행복을 찾아야지.”
“이게 제 행복입니다.”
지크의 말에 카렐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못 말리겠네, 정말.”
지크는 피식 웃으며 발걸음을 계속했다.
“안에는 누가 있어?”
“오스칼 경이 전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크는 카렐의 안내에 따라 오스칼이 기다리고 있다는 렉서스 왕국의 어전으로 들어섰다.
“국왕 전하 납시오!”
한 장교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국왕 전하를 뵙습니다!”
“국왕 전하를 뵙습니다!”
“국왕 전하를 뵙습니다!”
어전을 중심으로 좌우로 길게 늘어선 프로아 왕국의 정예 해병대원들이 절도 있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신 오스칼, 전하를 뵙습니다.”
오스칼이 지크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취했다.
‘오?’
오래간만에 본 오스칼의 모습은 정말이지 환상적이었다.
찬란한 금발.
다소 차가워 보이지만 아름다운 이목구비.
새하얀 갑옷.
서슬이 시퍼렇게 선 검까지.
지금 오스칼의 모습은 마치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여기사와도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도대체 얼마나 수련을 한 건지, 오스칼의 레벨은 어느새 230까지 올라 있었다.
지크가 프로아 왕국 밖으로 도는 사이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수련에 매달렸다는 증거였다.
“수고가 많아요, 오스칼 경.”
“아닙니다. 전하.”
지크의 말에 오스칼이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전하. 옥좌에 앉으시지요.”
“그럴까요?”
지크는 오스칼의 권유에 옥좌에 앉았다.
‘거 되게 불편하네.’
지크는 페르난데스 3세의 옥좌가 무척이나 불만족스러웠다.
페르난데스 3세의 옥좌는 크로매틱 드래곤의 두개골로 만든 지크의 것에 비하면 승차감(?)이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이런 걸 옥좌라고. 좀 좋은 것 좀 만들어다 앉지.’
지크가 뉘르부르크 대륙의 모든 군주들이 뒷목을 잡고 쓰러지고도 남을 망상(?)을 하던 중.
“죄인들을 데려와라!”
오스칼의 외침에 프로아 왕국의 해병대원들이 죄인들을 압송해 지크의 앞에 꿇어앉혔다.
“고개 숙여!”
“어딜 감히 국왕 전하 앞에서 고개를 드는가!”
“빨리 걸어!”
그렇게 렉서스 왕국의 수뇌부들은 쇠사슬에 줄줄이 비엔나소시지처럼 묶인 채 지크의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전하. 죄인들을 대령했습니다.”
“그렇군요.”
“저들을 심문하시겠습니까?”
“왕이 누구죠?”
“저자입니다.”
지크의 물음에 오스칼이 딱 봐도 왕처럼 보이는 의상을 입은 중년 남성을 가리켰다.
왕관은 없었다.
프로아 왕국군은 이미 멸망한 나라의 왕 따위에게 왕관을 쓰게 내버려둘 정도로 자비롭지 않았으니까.
“페르난데스라고 했습니까?”
지크가 페르난데스 3세에게 말했다.
“고개 좀 드시죠. 우리 얼굴 좀 봅시다.”
“…….”
“고개 들라고 말씀드린 거 같은데.”
지크의 말에 페르난데스 3세는 귀머거리라도 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불경한 놈 같으니! 전하께서 고개를 들라고 하셨다!”
프로아 왕국의 장교가 페르난데스 3세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쳤다.
“커헉!”
“당장 고개를 들지 않으면 네놈의 눈깔을 뽑아줄 것이다!”
“아, 알겠소….”
장교의 협박에 페르난데스 3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반갑습니다. 저는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라고 합니다.”
“아, 알고 있소.”
“어떻게… 이제 좀 만족하십니까?”
지크의 물음에 페르난데스 3세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런 빌어먹을! 알토 공작! 이 개 같은 새끼! 네놈이 쓸데없이 헛바람만 불어넣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터인데!’
페르난데스 3세는 알토 공작의 꼬임에 넘어간 걸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처음 생각했던 대로 지크를 크게 치하하고 좋은 외교적 관계를 이어 나갔더라면 오늘의 이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영토 확장의 기회가 왔단 사실에 눈이 멀어 비열한 짓거리를 했던 게 이런 대참사가 되어 돌아올 줄이야.
“거 대답이 없으시네.”
지크가 냉랭한 미소를 지으며 페르난데스 3세에게 말했다.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대화가 오가야 정상 아닙니까?”
“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소이다.”
페르난데스 3세가 고개를 숙였다.
“본래 과인은 그대의 공로를 치하하고 좋은 관계를 이어가려고 했소. 하지만 알토 공작이 바람을 넣는 바람에….”
그때였다.
“전하! 이제 와서 제게 책임을 떠넘기시려는 겁니까?”
알토 공작이 페르난데스 3세를 향해 소리쳤다.
“아니! 모든 것은 전하의 결정이었습니다! 왕은 제가 아닙니다!”
“닥쳐라! 네놈이 그 간사한 혓바닥으로 나를 꼬이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전하나 닥치십시오! 책임은 왕이 지는 겁니다!”
“이런 개새끼가!”
“야 이 X발놈아! 니가 왕이야? 이제 X도 아닌 주제에!”
욕설이 오가기 시작했다.
페르난데스 3세와 알토 공작은 한때의 군신 관계는 까맣게 잊은 채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쌍욕을 주고받기 바빴다.
“얼씨구?”
지크는 그런 페르난데스 3세와 알토 공작을 보며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저 쓰레기 새끼들 보소?’
지크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렉서스 왕국이 이렇게 개박살이 난 이유는 수뇌부 중의 수뇌부인 페르난데스 3세와 알토 공작의 배은망덕한 행위 때문이었다.
하지만 피는 누가 흘렸는가?
애꿎은 렉서스 왕국의 기사들과 병사들, 그리고 몇몇 백성들의 피만 흘렀을 뿐이었다.
정작 똥을 싸지른 두 놈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쌍욕을 주고받는 모습이란 정말이지….
‘이 새끼들이 그 사이비 교주랑 프레드릭 황제 놈이랑 뭐가 달라?’
지크가 페르난데스 3세와 알토 공작을 바라보는 시선은 한때 콘스탄틴 제국을 양분하던 두 권력자를 보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에라이 이 역겨운 새끼들.’
지크는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느끼며, 페르난데스 3세와 알토 공작의 목을 치려는 명령을 내리려 했다.
그런데.
“이보시오! 지크 국왕! 저 간악한 놈부터 벌하시오! 그러면 나의 비밀 창고를 그대에게 넘기겠소!”
페르난데스 3세가 지크에게 흥미로운 거래를 제안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