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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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윽!”
칼라일은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사상 최강·최악의 목각인형 부르스의 주먹에 담긴 파괴력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해서, 칼라일이 견뎌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부르스가 힘을 조절해서 때린 거였지만.
“저, 전하! 저한테 왜 이러시는….”
“카일 시종님.”
지크가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걸요.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뼈를 깎는 고통으로 담금질 돼야만 하죠.”
“하지만 저는 기사가 될 생각이….”
“안 돼서 포기하신 거잖아요? 그래서 되게 만들어 드리려고요.”
“아닙니다! 저는….”
“그냥 두기엔 카일 시종님의 강인한 육체가 너무 아깝거든요.”
“…….”
“국익을 위해서라도 카일 시종님은 기사가 되셔야 합니다. 알겠죠? 그러니까 힘내세요! 파이팅!”
지크가 힘내라는 듯 주먹을 불끈 들어 보였다.
‘이런 씨발! 이놈의 주둥이!’
칼라일은 어렸을 적 기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둘러댔던 걸 뼈저리게 후회했다.
만약 다른 핑계를 댔더라면 이런 험한 꼴은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지만 그 당시엔 마땅히 떠오르는 변명이 없어서, 불가피한 상황이기도 했다.
“부르스랑 최선을 다해서 대련하시다 보면 분명히 발전이 있으실 겁니다. 그건 제가 장담할게요. 부르스는 없는 재능도 만들어주는 녀석이거든요. 그렇지?”
[My name is Bruce! Bruce wood!]지크의 물음에 부르스가 자기만 믿으라는 듯 가슴팍을 탕탕!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부르스는 프로아 왕국의 기사들 사이에서 최고로 인기 높은 대련 상대였다.
부르스는 대련 상대를 한계까지 몰아붙임으로써, 가진 잠재력을 극도로 끌어내는 데 도가 튼 인형이었다.
부르스는 말로 설명해줄 수 없는 드높은 경지의 움직임을 대련 상대가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도록 유도할 줄 알았다.
어떻게?
죽도록 두들겨 패면서!
부르스와 대련하는 이들은 쳐 맞지 않기 위해, 혹은 살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의 한계를 돌파해 더욱 고차원의 경지에 이르고는 했다.
때때로 자신의 내면에 자리한 잠재 능력을 더욱 만개하기도 했고.
당연한 말이겠지만, 지크가 칼라일에게 부르스를 붙여준 이유는 진짜로 강해지란 의미는 아니었다.
‘지옥을 맛보게 될 거다. 후후후.’
지크가 칼라일에게 부르스를 붙여준 이유는 속된 말로 ‘X나게 처맞아봐라’였다.
“하, 하지만 전하! 저는 진짜로….”
“야! 부르스! 뭐 해! 카일 시종님이 꿈을 이루실 수 있게 도와드려야지!”
지크는 칼라일의 말을 의도적으로 자르고는, 부르스를 향해 소리쳤다.
[My name is Bruce! Bruce wood!]그러자 부르스가 걱정 말라는 듯 허리에 손을 올려놓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카일 시종님?”
“예에?”
“파이팅!”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호다닥! 하고 자신의 개인 훈련장을 떠나버렸다.
그리고 남겨진 칼라일은….
“으악! 악! 아악! 야! 거, 거긴! 끄악!”
인간 샌드백 신세가 되어 브루스에게 죽도록 얻어맞아야만 했다.
***
다음 날.
“끄응… 끄으응!”
칼라일은 출근 시각이 한참 지났음에도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욱신욱신!
팔, 다리, 어깨, 허리 등등등.
어제 부르스에게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두들겨 맞은 덕분에, 칼라일은 움직이는 게 불가능한 신세였다.
그래서 칼라일은 동료 시종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말하고, 시종장에게 병가를 내달라는 말을 전했다.
[음! 국왕 전하의 뜻이니, 카일은 당분간 출근하지 말고 훈련에 매진하는 게 좋겠지. 무기한 유급 휴가를 줄 테니, 전하의 뜻에 따르는 데 집중하도록.]빌어먹게도, 시종장은 칼라일의 훈련을 적극 권장하며 무려 유급 휴가까지 지급하는 등 배려를 해주었다.
‘지크프리트… 이 개새끼!’
칼라일은 침대에 누워 지크를 향해 이를 갈았다.
‘시키지도 않은 짓거리를… 이 씨발놈!’
그때였다.
똑똑!
누군가 칼라일의 숙소 문을 두드렸다.
“누구… 크윽! 누구십니까? 들어오십시오.”
칼라일의 말에 문이 덜컥! 하고 나타난 건 다름 아닌….
[My name is Bruce! Bruce wood!]사상 최강·최악의 목각인형 부르스였다.
“히, 히익?!”
칼라일은 숙소로 찾아온 부르스를 보고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랐다.
“너, 너는… 왜 여기!”
[My name is Bruce! Bruce wood!]그러자 부르스가 따라 나오라는 듯이 엄지손가락으로 어깨 너머를 가리켰다.
[My name is Bruce! Bruce wood!]“설마?”
[My name is Bruce! Bruce wood!]“아니 그게… 지금은 내가 몸이 좀….”
바로 그 순간.
[쳐 뒤지기 싫으면 따라 나와라.]놀랍게도, 부르스의 입에서 인간의 언어가 흘러나왔다.
모두가 알던 그 귀엽고 순진한 모습이 아닌, 무척이나 냉혹하고 싸가지 없는 말투였다.
“헉?”
[아. 이런 X발. 진짜. 나도 아침부터 피곤해 뒤지겠는데. 내가 너 하나 때문에 새벽같이 여기 와야겠냐?]“너, 너 말을 할 줄 알아?”
칼라일은 부르스가 인간의 언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에 놀랐다.
왜?
프로아 왕국의 모든 사람들은 부르스가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고 오직 라고만 말한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면 어쩔 건데?]“…….”
[뒤지기 싫으면 따라 나오라고 말했다.]“이따 오후에 가면….”
[아나, 이 시발.]“아, 아니!”
칼라일은 부르스가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는 듯 주먹을 치켜들고 다가오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알았어! 갈게! 갈 테니까 제발!”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그리고….]부르스가 살벌하기 짝이 없는 음성으로 칼라일에게 경고했다.
[내가 말할 줄 안다고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면… 알지?]“그, 그건!”
[그땐 힘 조절에 실패할지도 모른다. 어이쿠! 모르고 손이 빗나갔네? 하면서 말야.]“명심…할게.”
[먼저 가 있을 테니까 5분 안에 튀어 와라.]“으응….”
결국, 칼라일은 부르스의 협박을 이기지 못한 채 다시 지크의 개인 훈련장으로 끌려 나가고 말았다.
그리고 또 복날 개 두들겨 맞듯 처맞아야만 했다.
문제는 쳐 맞으면서도 제대로 된 반항이 불가능했다는 것.
‘그때 했던 변명이 이렇게 되돌아올 줄이야! 이런 씨발!’
칼라일은 죽을 맛이었다.
운동 신경이 없어 기사의 꿈을 접었다고 거짓말을 해놓은 이상 전력을 다해 부르스와 맞설 수 없었다.
만약 전력을 다해 부르스와 대련한다면?
그걸 혹시 누가 보기라도 한다면?
거짓말을 했던 게 들통 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기 마련.
그래서 칼라일은 운동 신경이 없는 척 엉거주춤한 자세를 연기해야만 했기에, 한 대를 맞을 걸 열 대를 더 맞아야 했다.
물론 칼라일 따위가 전력을 다해보았자 부르스에게 뒈지게 처맞는단 사실은 변함이 없을 테지만 말이다.
퍼억!
부르스의 주먹이 칼라일의 명치를 뚫어버릴 듯 강타하고.
“우웨에에에에에엑!”
칼라일은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어제 저녁에 먹었던 메뉴를 모조리 토해내고 말았다.
‘이런 씨발! 씨발! 씨발!’
칼라일이 토하는 와중에도 지금 상황이 너무나도 X같아서 속으로 오만 쌍욕을 내뱉고 있을 때.
“흐흐흐!”
지크는 기둥 뒤에 숨어 그런 칼라일을 지켜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아주 죽겠지? X같지? 큭큭! 너도 애쓴다, 애써. 어차피 없는 실력인데, 그마저도 없는 척 연기를 하려니 죽을 맛이겠지. 큭큭큭!”
“뀨! 주인 놈아아! 왜 그렇게 악랄하냐! 그럴 거면 죽여라!”
“싫은데?”
지크가 입을 삐죽였다.
“저런 애들은 곱게 죽여주면 안 돼. 실례라고.”
“실례라니! 뀨우!”
“최대한 괴롭혀주는 게 예의야.”
“그게 무슨 똥 같은 소리냐! 뀨우!”
“시끄러, 인마.”
지크는 햄찌의 말을 무시하고는, 저 멀리에서 부르스에게 얻어터지는 칼라일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아주 골병이 들게 해줄게. 킥킥킥!”
지크의 칼라일 괴롭히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
지크는 부르스를 시켜 칼라일을 다진 북어로 만드는 한편, 뒷조사에 착수했다.
지크의 집무실 안.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미켈레는 지크의 말을 듣고 무척이나 놀랐다.
왕궁 내에 칼라일과 같은 쥐새끼가 있었을 줄이야….
“머리를 잘 썼어. 아티펙트를 썼으면 왕궁 내 마법에 걸렸을 테니까. 성형 수술을 하고 시종으로 위장할 줄은 몰랐지. 덕분에 한동안 통찰의 룬을 피할 수 있었으니까. 데시마토 경이 아니었으면 언젠가 뒤통수 거하게 맞았을걸?”
지크는 무척이나 안도했다.
칼라일의 존재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기에, 데시마토가 아니었다면 정말로 크게 뒤통수를 맞을 가능성도 아예 없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저, 전하!”
지크의 얘기를 들은 세바스찬은 아예 바짝 엎드려 죄를 빌었다.
“이 무능한 시종장을 당장에 처형해 주시옵소서!”
“예?”
“소인은 왕실의 대소사를 담당하는 시종장으로써 그 임무를 제대로 완수해내지 못한 죄인이옵니다! 또한, 왕실의 시녀들과 시종들을 채용하는 담장자로서 아랫사람의 부정부패를 몰랐던 죄도 있사옵니다! 그러니 소신의 목을 치소서!”
시종장 세바스찬은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지크에게 죄를 고하고, 죽여 달라 말했다.
그런 세바스찬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시종장으로서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했다는 자괴감.
그리고 자신의 소홀한 업무 처리로 인해 왕인 지크를 위험에 빠뜨렸단 생각에, 세바스찬 시종장은 정말로 죽고만 싶었다.
“전하! 소인은 그 간악한 놈에게 왕비마마께서 드실 다과를 담당하도록 했사옵니다! 이는 백번 죽어도 할 말이 없는 큰 대죄이오니, 소인을 처형하시어 왕실의 법도와 공무원들의 근무 기강을 바로 세우소서!”
“아뇨.”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는 법이죠.”
“하오나 전하! 소인을 처형하지 않으시면….”
“그게 왜 시종장님 책임이죠? 매관매직은 인사 담당자 책임이지.”
“어찌 되었든….”
“그만.”
지크가 세바스찬 시종장의 말을 잘랐다.
“3개월 감봉으로 끝낼 테니까 그리 아세요.”
“하오나….”
“명령입니다.”
“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세바스찬 시종장은 지크의 자비에 엎드려 절하며 다짐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분골쇄신하여 봉사하겠다!’
지크를 더더욱 잘 모시기로.
“일단은 쭉 지켜보면서 내부에 다른 쥐새끼가 있는지 봅시다.”
지크는 미켈레, 그리고 시종장 세바스찬과 함께 칼라일을 예의주시하기로 하고 회의를 끝마쳤다.
***
며칠 후 야심한 밤.
칼라일은 시녀 제시와 왕궁의 어느 으슥한 장소에서 또다시 만남을 가졌다.
“요즘 통 당신 얘기밖에 없더군요.”
“…그 얘긴 꺼내지 말지.”
칼라일은 정말이지 괴롭다는 듯 진저리쳤다.
욱신욱신!
칼라일은 거의 일주일 동안 부르스에게 얻어맞은 덕분에 이미 골병이 들 대로 들어 있어서, 이런 오밤중에 돌아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고생이군요. 국왕 전하께서는 오히려 당신을 크게 배려하시는 것 같던데요.”
“악어의 눈물이지.”
칼라일이 딱 잘라 말했다.
“그따위 배려, 사절이다.”
“그렇군요.”
“계획은 어떻게 되어 가지? 오즈릭 교단에서는 연락이 왔나?”
칼라일의 입에서 오즈릭 교단이란 단어가 흘러나올 때였다.
‘…오즈릭 교단?’
지크는 건물 지붕 위에 걸터앉은 채 칼라일을 감시하고 있다가 깜짝 놀랐다.
“있었어요. 우리의 탈출 계획을 지원하기 위해 외부에서 준비를 하고 있다더군요.”
“그렇군.”
칼라일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피워 올렸다.
“왕비의 출산일이 가까워져 가고 있다.”
“맞아요. 얼마 남지 않았죠.”
“제 딸이 오즈릭 교단의 사도가 된다면 지크프리트의 얼굴이 어떨까? 정말이지 궁금하군. 후후후.”
그 순간.
‘죽일까?’
칼라일과 제시의 대화를 엿듣던 지크의 얼굴이 서릿발처럼 얼어붙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