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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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우리 귤이의 머리칼이… 흑흑!”
“머리칼?!”
“저랑 같은 빨간색이에요. 흑흑!”
“……!”
“어떡해요. 어떡해요오… 흑흑흑!”
브륜힐트가 어찌나 서럽게 울었던지, 프로아 왕국 전체가 마치 떠나가 버릴 기세였다.
하지만 지크는 브륜힐트의 서러운 울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머리칼이 좀 빨간색이면 어때서?’
지크는 인간이었기에, 딸의 머리카락 색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빨간색이면 어떻고 파란색이면 어떤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인데!
‘하긴. 가슴 아플 수밖에 없었네.’
한편으로는 브륜힐트가 대성통곡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해서, 지크는 웃을 수도 없었다.
브륜힐트가 붉은 머리칼 때문에 얼마나 큰 상처를 지니고 살아야 했는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엘프들에게 있어 미적 기준은 얼굴이나 몸매가 아닌 이었다.
그리고 그런 미적 기준에서 가장 최악의 평가를 받는 게 브륜힐트와 같은 붉은색 머리칼이었다.
개나 소나 미남미녀인 엘프들의 세계에서 붉은색 머리칼은 추함의 상징.
그 때문에 붉은색 머리칼을 가진 브륜힐트는 엘프 왕국 최악의 추녀로 낙인 찍혀 평생을 손가락질 받고, 또 배척을 당하며 살아야만 했다.
그런데 지크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기의 머리칼 역시 똑같이 붉은색 머리칼을 고스란히 물려받았으니, 브륜힐트의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게 당연했다.
‘휴.’
지크는 브륜힐트의 아픈 과거를 떠올리며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는 첫 출산의 고통을 겪은 자신의 아내에게 다가가 손을 따스하게 꼭 잡아주었다.
“여보.”
“미, 미안해요. 미안해요, 여보.”
“여보.”
“흑흑흑….”
“왜 미안해요?”
“저 때문에, 우리 아기가 저 때문에….”
“그런 말 하지 마요.”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왜 그런 말을 해요? 우리 아기가 어때서요? 머리칼이 빨갛든 파랗든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저는 우리 아기가 평생 대머리로 살아야 한다고 해도 신경 쓰지 않아요. 누가 뭐래도 우리 아이인걸요.”
“하지만.”
“우리 아기는 프로아 왕국에서 클 거예요. 그러니 엘프들에게 놀림 받거나 천대 받고 무시 받을 일도 없죠.”
“그런 건가요?”
“울지 마요.”
지크가 브륜힐트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었다.
“고생했어요. 머리칼 따위는 잊어버리고, 우리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 함께 잘 키워 봐요. 네? 괜찮아요. 여보 탓이 아니에요.”
지크는 매우 따뜻한 말과 행동으로 브륜힐트를 다독여 주었다.
“아, 알겠어요! 흑흑….”
“울지 말고요. 좋은 날 괜히 울 필요는 없잖아요.”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말고. 괜찮아요. 괜찮아.”
“알겠어요. 저 최선을 다해서 우리 아기 키울게요.”
“그럼요.”
“참! 여보 아직 귤이 못 보셨죠? 어서 봐요. 정말 예쁜 아기예요.”
“그럴까요?”
지크는 그제야 몸을 돌려 시녀에게 안겨 있는 자신의 딸을 볼 수가 있었다.
“전하. 공주마마를 만나보소서.”
“아, 안아 봐도… 될까요?”
“물론이옵니다.”
지크가 조심스러운 몸가짐으로 시녀에게 귤이를 넘겨받은 직후.
‘헉!’
지크는 순간 심장이 멎을 것 같은 느낌에 얼어붙고 말았다.
‘너, 너무… 귀엽고 예쁘잖아!!!’
지크는 갓 태어난 귤이가 너무나도 예쁘고 사랑스럽고, 또 앙증맞아서 심장마비로 그만 사망할 뻔했다.
그런 지크의 마음을 알았을까?
아니면 아빠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본 것일까?
“꺄르륵!”
귤이는 태어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아빠인 지크를 보며 꺄르륵 웃어댔다.
“우리 아기, 예쁘죠?”
“예쁘다마다요!”
지크는 귤이가 너무 예뻐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흔히 부모들이 자식을 낳으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단 표현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기는커녕 웃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꺄륵! 꺄르륵!”
“귤아? 내가 니… 아빠야.”
“꺄르륵!”
“알아보겠니?”
“꺄륵! 꺄르륵!”
설마 진짜로 알아들었을까?
귤이가 두 눈을 깜빡이며 웃어댔다.
쿵쾅쿵쾅!
그럴 때마다 지크의 심장은 더욱 거세게 뛰었다.
‘한번 알아볼까?’
지크는 자신의 딸인 귤에게 을 비추어 보기로 했다.
통찰의 룬을 비추어 본 직후.
“헉?”
지크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왜냐하면….
“사, 사기 캐릭터잖아?!”
갓 태어난 귤이의 스펙이 사기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
을 통해 본 귤이에 대한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귤이 반 프로아]다른 세계에서 강림한 존재이자 프로아 왕국의 국왕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와 엘프 왕국 엘론델의 공주 브륜힐트 사이에서 태어난 하이엘프.
1,0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재능을 타고난 존재이다.
아직 정식으로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다.
•존재 구분 : 네임드 NPC
•종족 : 하이엘프
•성별 : ♀
•레벨 : 250
•소속 : 프로아 왕국 / 엘론델
•직위 : 공주 / 공주
•클래스 : 어메이징 베이비(에픽)
•칭호 : 사상 최강의 베이비★ / 만인의 아기씨♥ / 베이비 더 지니어스 / 하트 브레이커 / 심쿵살인마 / 더 로드 오브 더 베이비 / 잠재적 천하제일美 / 만능 아기
•특이 사항 :
– 성장 속도가 엄청나게 빠릅니다!
– 이름을 지어 주세요!(이름은 오직 당신만이 지어줄 수 있습니다!)
갓 태어난 귤이의 레벨은 무려 250이었다.
게다가 갓 태어난 주제에 라는 에픽 등급의 클래스까지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
[능력치 등급]•근력 : SSS / 지능 : SSS
•민첩성 : SSS / •생명력 : SSS
•스태미나 : SSS / 마나 : SSS
•행운 : SSS / 외모 : SSS
•귀여움 : SSS / 매력 : SSS
(중략)
•모든 잠재 능력 : 무한(∞)
귤이는 모든 능력치 등급이 트리플 S등급에다 잠재력은 떡하니 무한(∞)이라고 쓰여 있었다.
말 그대로 사기 캐릭터.
[엘프는 완벽에 가까운 유전 인자를 지닌 존재이지만, 하이 엘프는 완벽 그 자체니라. 역사상 태어났던 모든 하이 엘프들은… 20살이 되면 마스터를 찍고 100살이 되면 그랜드 마스터를 찍곤 했다.]귤이는 999레벨의 히든 NPC인 사부가 장담했던 것만큼의 능력치를 고스란히 지닌 채 태어난 모양이었다.
“…엄청나네.”
지크는 귤이의 완벽 그 자체인 스펙을 보고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런 NPC가 또 있을까?
단언컨대, 그 어떤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NPC라 하더라도 귤이만큼의 스펙을 가진 채 태어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게 분명했다.
‘이거 어설프게 아빠 노릇 했다가는 큰일 나겠는데?’
지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띠링!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 새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순간 지크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빌어먹을 운영진 놈들이 또 무슨 거지같은 타이틀을 붙였을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크의 예상과는 달리 이번에는 지극히 정상적인 칭호였다.
[알림 :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칭호뿐만이 아니었다.
[알림 : 새 클래스를 획득하셨습니다!]지크는 에 이어 두 번째 클래스를 획득하게 되었다.
[알림 : 당신은 이제 입니다!(이 클래스는 출산을 경험해 부모가 된 게이머들만이 지닐 수 있는 보조 클래스입니다)] [알림 : 육아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클래스의 명칭이 진화합니다!] [알림 : 클래스의 명칭이 진화하면 칭호 역시 함께 진화합니다!]물론 정식 클래스가 아닌 보조 클래스를 획득한 것이라 진짜로 듀얼 클래스를 구성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알림 : 새 스킬을 습득하셨습니다!]그에 따라 지크는 로서 새로운 스킬들 역시 획득하게 되었다.
[스킬 : 개초보 아빠]Lv1 분유 제조
Lv1 기저귀 교체
Lv1 자장가 불러주기
Lv1 어부~ 바!
Lv1 이유식 먹이기
•설명 : 육아는 사랑입니다! 당신의 돈과 권력에 아기를 맡기지 마세요! 당신이 육아에 힘쓸수록 올바른 인성을 가진 사랑스러운 아기로 자라나게 됩니다!
라니!
‘직무 유기하지 말라는 건가?!’
지크는 내심 뜨끔했지만, 앞으로 귤이를 잘 돌보기로 다짐했다.
그럴 가능성이야 적겠지만, 귤이가 자칫 오만하고 싸가지 없는 금수저로 자라날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정말 예쁜 아기예요.”
지크가 브륜힐트를 돌아보았다.
“고마워요. 이런 축복을 제게 선물해줘서.”
“아니에요! 당신이 준 선물인걸요!”
브륜힐트는 그제야 환히 웃었다.
“꺄륵! 꺄르륵!”
귤이는 그런 브륜힐트 역시 알아보았는지, 해맑게 꺄르륵거리며 웃어댔다.
그렇게 지크는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
그날 밤.
덥석!
누군가 어둠 속에서 왕궁을 거닐던 제시를 확! 끌어당겼다.
“꺅!”
“쉿.”
칼라일이 놀란 제시의 입을 틀어막았다.
“놀라지 마라. 나다.”
“당신이었군요.”
제시가 칼라일을 돌아보았다.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마라? 지금 그게 할 소리인가? 며칠째 내게 아무런 말도 걸지 않아 놓고.”
“그게 뭐가 문제죠?”
“잊었나? 우리의 거래를?”
“그럴 리가요.”
“그런데 왜 아직까지 아무런 말이 없는 거지? 오늘 공주가 태어났다더군. 그 연놈들의 딸년이 말야.”
“왕궁 내에 그걸 모르는 사람도 있나요? 프로아의 만백성이 공주의 탄생을 알아요.”
제시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왕실에서 귤이의 탄생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곧 축제를 열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연놈들의 딸년이 태어났는데! 왜 아직 아무런 말이 없는 거지? 이제 슬슬….”
“성급하시군요.”
제시가 딱 잘라 말했다.
“공주가 태어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벌써 거사를 진행하시겠다고요? 혹시 죽고 싶은 건가요? 지금 급하게 거사를 진행하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요? 성공할까요? 아직 공주의 출생 소식을 교단에 알리지도 못했는데?”
“그, 그건….”
“정 그렇게 급하면 혼자 하세요. 저는 빠질 테니까요. 전 제 목숨을 의미 없이 버리고 싶지 않거든요.”
“미, 미안하다.”
칼라일이 제시를 향해 사과했다.
“내가 성급했군. 정말로 미안하다.”
“공주는 예정보다 무려 3주나 빨리 태어났어요. 일정에 차질이 생긴 만큼 교단에서도 발 빠른 대응을 하기가 쉽지 않겠죠.”
“그렇겠지.”
“그런데 왜 그리 성급하신 거죠?”
“나, 나는 단지… 복수를 하루라도 더 빨리….”
“고통에 약하시군요.”
제시가 칼라일의 정곡을 찔렀다.
“고통 앞에 당신의 판단력이 무뎌진 게 보입니다.”
“…….”
“길어야 한 달이에요. 어쩌면 일주일이 될 수도 있겠죠. 여태껏 잘해 왔는데 고작 며칠을 못 참고 일을 그르치실 건가요?”
“사과한다.”
칼라일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조금만 참아요. 머지않았으니까.”
“알겠다.”
칼라일이 제시를 놓아주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너무 늦지는 않았으면 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시가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머지않았으니까요.”
“그러지.”
칼라일은 그 말을 믿고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같은 시각.
“빌어먹을 새끼. 이렇게까지 하게 만들다니.”
채형석은 어느 외딴 숲 토굴 안에서 열심히 땅을 파고 있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착용하고 있는 값비싼 아이템들과 가진 모든 것들을 땅속에 파묻었다.
몇 시간 전.
채형석은 게임 속에서 자신이 직접 아이템을 처분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여동생을 만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촤표 부러출 테니카 커키숴 아히템 해수훼.] [알겠어, 오빠.]어찌 된 영문일까?
황제는 다시 현상금을 올렸고, 뚝배기단 소속 게이머들은 눈에 불을 켜고 그를 쫓아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채형석은 마음 편히 아이템 거래를 할 수도 없었다.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 아이템 판매 글을 올려 봤자 구매자가 현상금 사냥꾼으로 돌변하거나, 재수가 없으면 지크에게 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지크에게 또 죽어 랜덤 드랍 아이템 세 개를 떨구기라도 한다면, 그땐 정말 끝이었다.
그래서 채형석이 택한 방법은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 아이템을 숨겨 놓은 뒤 일부러 추적자들을 유인하기로 했다.
그다음엔?
여동생이 땅에 숨겨 놓은 아이템을 찾아 되팔고 채형석에게 현금으로 돌려준다.
그럼 채형석은 더 이상의 손해를 보지 않고 이쯤에서 게임을 깔끔하게 접을 수 있을 터였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다니.”
채형석은 탄식에 탄식을 거듭하며 땅에 묻어놓은 아이템을 잘 숨긴 후 토굴을 나섰다.
그리고는 숲 밖으로 나가 마을로 향했다.
이제부터는 추적자들을 유인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여동생 아르카디아가 무사히 숨겨 놓은 아이템들을 찾아갈 수 있도록….
“개 같은 게임. 더러운 게임. 두 번 다시 쳐다도 안 본다.”
채형석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옮기던 때.
“아하! 거기 숨겼구나!”
수풀 속에서 채형석을 훔쳐보는 사람이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