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39
038
고스란이 지크를 데려간 곳은 소호카 유적지 외곽에 자리한 어느 한적한 숲이었다.
“그러니까….”
지크가 기가 막힌다는 듯 되물었다.
“제가 소문이 났다고요?”
“네.”
“제 영상이 뉴 월드에도 올라가고?”
“보세요.”
고스란이 지크를 향해 링크 하나를 넘겨주었다.
그녀가 지크에게 넘겨준 링크는 세계 최대의 BNW 커뮤니티인 의 게시판 중 에 올라온 어느 영상을 담고 있었다.
[BEST] [소호카 유적지 외곽] 개사기 클래스 등판 (추천: 12311) (댓글: 1191) Hit!– 님들 디버프 마스터 영상 보고 가시져 ㅇㅇ
– 버퍼들 밥숟가락 다 놓게 생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딜 들어가는 거 보이심?
– 저 디버퍼가 장판 함 깔면 몹 녹아내림 ㅡㅡ;;
– 버퍼 두 명 데려가는 거보다 저 디버퍼님 한 분 모시고 가는 게 사냥 속도 두 배는 빠른 듯?
– 파플 아니라 쩔이라고 봐도 될 정도임;;;
– 이분 덕분에 4일 연속 버스 타서 폭렙함 ㅎㅎㅎ
– 혹시 이분 히든 클래스인 부분?
무려 12,311개의 추천과 1,191개의 댓글이 달린 그 영상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지크였다.
“…뭐야.”
영상을 본 지크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 허락도 없이 누가 찍….”
지크가 영상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잇츠 씨가 찍은 거네.”
영상을 찍은 장본인은 영상 속 등장인물들의 시점이나 각도로 보아 고스란의 파티에서 물딜을 담당하던 ‘잇츠 씨’가 분명했다.
“왜 멋대로 남의 영상을 찍고 난리야. 기분 나쁘게.”
“그러게요. 너무 매너 없죠?”
고스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잇츠 씨 지금 어디 있어요?”
“저도 모르죠. 그분 어제부로 다른 지역으로 가신다고 하더라고요.”
“먹튀네요. 아니, 찍튀라고 해야 맞나?”
“별꼴을 다 보죠? 하하.”
“그래서.”
지크가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인상을 찡그린 채 물었다.
“그 영상 하나 때문에 다들 저러는 거라고요? 저랑 사냥하고 싶어서?”
“지크 님 디버프가 얼마나 사기인데요. 깔아만 놓으면 몹들이 녹잖아요. 사냥 속도 차이가 두 배 이상인데 다들 지크 님이랑 사냥하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거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들 너무 오버하는 것 같은데….”
“버퍼들 갑질에 지친 것도 있죠.”
“저라고 갑질 안 한단 보장도 없잖아요.”
“호기심도 있겠죠. 디버프 마스터, 희귀 클래스 아니에요? 검색해 봤더니 그런 클래스는 없더라고요. 어쩌면 히든 클래스일 수도 있단 생각도 들고요.”
“그럴 리가요.”
지크가 시치미를 뚝 뗐다.
히든 클래스라는 게 알려지면 그때부터 인생이 피곤해질 게 뻔했다.
왜?
10대 길드와 같은 세력에서 끊임없이 오퍼가 올 테니까.
‘길드에 들어가면 편하겠지. 공쩔도 받고, 레이드 버스도 타고. 템도 맞춰줄 거고.’
어마어마한 인적 자원과 자금력을 보유한 거대 길드에 들어가면, 그만큼 많은 혜택과 배려가 주어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받아먹은 것만큼 굴려질 테지.’
세상에 공짜란 없다.
거대 길드에 들어가면 200레벨까지는 순식간에 도달할 수 있을 테지만, 그 이후에는 철저히 길드의 톱니바퀴로서 게임을 해야만 한다.
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을 해줘야 하는 것이다.
‘1차 전직하기 전까진 숨기자.’
지크는 당분간 디버프 마스터가 히든 클래스라는 걸 숨기기로 했다.
1차 각성 이후엔 노멀은 보라색, 유니크는 핑크, 레전더리는 에메랄드, 히든은 황금색으로 클래스의 명칭이 표기되기에 확 티가 난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그 클래스가 노멀인지, 유니크인지, 레전더리인지, 아니면 히든 클래스인지 알 길이 없었다.
본인 입으로 떠들어대지 않는 이상 보안이 유지되는 것이다.
“유니크 클래스인데 디버프만 센 거예요. 디버프 거는 거 빼면 아무것도 못 하는걸요.”
지크가 그럴싸한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제가 히든 클래스였으면 직접 나서서 싸웠죠. 뭐 하러 뒤에서 장판만 깔겠어요.”
“아….”
“아무튼.”
지크가 화제를 돌렸다.
“사냥하러 가려고 했는데 골치 아프게 됐네요. 어떻게 저 많은 사람들을 피해서 던전에….”
“아니죠.”
고스란이 고개를 저었다.
“선택권이 생기셨는걸요.”
“선택권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스펙 좋은 사람들하고만 파티하시면 되는 거 아니에요? 지크 님은 귀족이잖아요. 파티원을 가려 받을 권리 정도는 가지고 계신 거죠. 갑질만 안 하시면 이미지 추락하시는 일도 없을 거고요.”
“귀찮은데….”
파티원들의 스펙을 일일이 체크하고, 또 비교하는 과정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자잘하게 신경 쓸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제가 할게요.”
“고스란 님이요?”
“네.”
고스란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맡겨만 주시면, 최고의 파티를 구성해 볼게요. 지크 님께서 만족하실만한 그런 파티요. 대신 저 끼워주셔야 해요.”
솔깃한 제안이었다.
지크는 사냥하러 가고는 싶었지만 파티를 짜는 게 귀찮았고, 고스란은 지크와 파티를 하고 싶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것과 해줄 수 있는 일이 절묘하게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맡겨도 될까요?”
“만족하실 거예요. 30분만 주세요.”
고스란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
30분 후.
“지크 님! 저 왔어요!”
고스란은 모험가 셋을 데리고 지크가 기다리고 있던 숲으로 돌아왔다.
“이분이 그 디버퍼?”
“잘 부탁드립니다.”
“디버프 쩌시던데요? 기대되네요. 하하.”
모험가들이 지크를 향해 인사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지크 역시 자신의 파티원이 된 모험가들을 향해 인사했다.
그런데.
‘다 스펙이 왜 이래?’
고스란이 데려온 모험가들은 그 스펙부터가 남달랐다.
그들이 착용한 무기와 방어구들이 딱 봐도 평범해 보이진 않았다.
“지금부터 수금 들어갈게요.”
그때, 고스란이 모험가들을 향해 말했다.
그러자 모험가들이 1인당 1실버(현금 5,000원)를 꺼내 지크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뭐죠?”
“쩔비요.”
고스란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쩔비요?!”
지크는 제 귀를 의심했다.
쩔비는 저레벨 유저가 자신을 대신해서 던전을 돌아주는 고레벨 유저에게나 주는 것이었지, 엇비슷한 레벨의 유저에게 주는 게 아니었다.
“네, 쩔비예요.”
“제가 왜 쩔비를 받아요?”
“쩔러만큼 빠르니까요.”
“……!”
“대신 사냥은 이분들이 직접 하셔야 하니까 시세 대비 싼 금액에 모셔왔어요.”
“맙소사.”
“부담 가지실 필요 없어요. 보세요. 이분들 다 경제력 좀 있으신 분들이거든요.”
고스란이 지크의 귓가에 속삭였다.
‘다들 템귀인 이유가 있었구나.’
듣고 보니 그랬다.
그녀가 데려온 모험가들은 저레벨치고 하나같이 값비싼 장비들로 무장하고 있었다.
“1인당 1실버씩. 세 명이면 3실버죠? 3실버면 현금 15,000원이니까 시간당 최저 시급은 버시는 거네요. 빛의 결정도 지크 님께 몰아주신다고 약속하셨으니까 수입은 그 이상이겠죠.”
“허….”
이쯤 되면 고스란은 지크의 매니저라고 봐도 좋을 지경이었다.
“자, 그럼 가볼까요? 10분만 기다려 주세요.”
고스란이 지팡이를 쥐고는 땅에 열심히 텔레포트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제 스크롤이 없었으므로, 저레벨 마법사인 고스란으로서는 그저 열심히 마법진을 그리고 그 안에 마나를 주입시킨 후 주문을 외우는 수밖에 없었다.
10분 후.
“자, 그럼 갈까요?”
텔레포트 마법진을 완성한 고스란이 지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
뜬금없이 팔자에도 없는 쩔러가 된 지크는 파티원들과 함께 로 가 사냥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냥은 빨랐다.
“오오! 녹는다, 녹아!”
“미친. 한 웨이브 정리하는 데 10분밖에 안 걸려?”
“와 이거 완전 신세계인데?”
고스란이 데려온 모험가들은 하나같이 사냥 속도에 경악했다.
지크의 디버프에 그들이 가진 고급 아이템이 더해지니 사냥 속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빨랐던 것이다.
좋은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41레벨 달성!] [42레벨 달성!]사냥 속도가 빠른 만큼, 지크의 레벨도 쭉쭉 올랐다.
‘이거 꿀이네.’
지크는 고스란의 아이디어를 인정해야만 했다.
렙업에 골드에 빛의 결정들까지.
이런 걸 보고 일타쌍피, 아니 일타삼피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사냥이 끝난 후.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지크와 고스란은 파티원들을 뒤로하고 인터벤션 호텔로 향했다.
“저어… 지크 님.”
“네?”
“내일도 사냥하실 건가요?”
“해야죠.”
“그럼….”
“내일도 부탁드릴게요.”
“저, 정말요?!”
“오전 열 시에 뵙죠. 그럼, 전 이만.”
그렇게 말한 지크가 인터벤션 호텔 로비로 향했다.
“아, 참. 저어…!”
고스란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지크를 불러 세우려 했지만, 지크는 이미 로비로 들어간 뒤 로그아웃을 해버린 뒤였다.
“전화번호… 물어보려고 했는데….”
고스란이 혼잣말했다.
***
어쩌다 시작하게 된 지크의 쩔장사는 순식간에 입소문을 타고 퍼져나갔다.
그 결과.
“따블!”
“따따블!”
“따따브을? 난 따따따블이다!”
웃돈을 주고 지크와 파티를 하려는 모험가들마저 나타나고 말았다.
‘아, 왜들 이래.’
지크는 도무지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당연한 현상이었다.
소호카 유적지에서 활동하는 대다수의 저레벨 버퍼들이 심한 갑질과 횡포를 일삼거나, 혹은 저레벨 주제에 쩔장사를 해대는 통에 일반 유저들의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인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나타난 대체재가 바로 지크였다.
동레벨 버퍼들과 비슷한 금액을 받으면서도 사냥 속도는 고레벨 쩔러와 비슷하니 모험가들로서는 서로 앞다퉈 지크와 사냥하고 싶을 수밖에.
“지크 님.”
“네?”
고스란이 지크에게 말했다.
“제가 번호표 나눠줄게요. 지크 님은 가만히 계세요.”
고스란이 매니저 역할을 자청해준 덕분에, 지크는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었다.
‘언제쯤 명속성 에너지가 다 모이는 걸까.’
고스란이 모험가들에게 번호표를 나눠주는 동안 지크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벌써 40이 넘게 모였는데.’
빛의 결정을 모이는 족족 흡수해 봤지만, 어떤 스킬을 어떻게 강화할 수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늘 이런 식이었다.
디버프 마스터의 스킬트리들은 철저히 베일이 싸여 있어서, 지크가 스킬트리를 구상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명속성 에너지를 모으는 과정도 어지간한 반복 퀘스트 뺨을 두 번 후려칠 만큼 노가다였다.
최하급, 하급, 중급, 상급, 그리고 최상급 빛의 결정들은 명속성 에너지를 그리 많이 담고 있지 않았다.
최선의 방법은 최상급 빛의 결정들만을 모으는 것이었지만, 결정의 등급이 올라갈수록 드랍율이 현저히 낮아지기에 그마저도 여의치가 않았다.
‘얼마나 더 퍼부어야 하는 거지.’
지크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가요, 지크 님.”
그 짧은 시간에 번호표 나눠주기를 마친 고스란이 지크를 잡아끌었다.
‘모르겠다. 모으고 모으다 보면 언젠간 되겠지.’
지크는 조급해하지 않고, 당분간은 입 다물고 사냥만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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