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393
392
“이게 뭔데?”
지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켈레가 넘겨준 양피지 두루마리를 받아들었다.
[알림 :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지크가 미켈레에게 물었다.
“기밀문서?”
“엠포리오 왕국 서부의 최신형 지도입니다.”
“엠포리오 왕국의 최신형 지도라고?”
“예.”
미켈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주 자세합니다. 지형지물은 물론 군사 시설, 큰 건물 작은 건물 할 것 없이 매우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특정 노점상의 위치까지 기록되어 있는 걸 보면… 사실상 맵핵이나 다름없는 그런 지도입니다.”
“사실상의 맵핵… 잠깐.”
지크는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고 미켈레에게 물었다.
“맵핵은 또 어디서 들었어?”
“한국인 모험가들한테서 들었습니다.”
“…….”
“직접 가서 보지 않아도 주변의 지형지물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고위급 마법이라고 하던데… 아닙니까?”
“고, 고위급 마법이 맞긴 하지.”
지크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하다하다 게임 속 NPC의 입에서 이란 단어를 듣게 될 줄이야….
“그건 그렇고. 이걸 니가 어떻게 가지고 있어? 군사 시설까지 기록된 지도는 국가 기밀 아니야?”
지도라는 게 현실인 지구에서나 어느 정도 오픈되어 있는 것이지, 뉘르부르크 대륙에서는 국가 기밀에 해당하는 매우 중요한 자료였다.
의 국가 기밀인 지도를 왜 미켈레가 가지고 있단 말인가?
“엠포리오 왕국 서부에는 도둑 길드의 영향력이 매우 큽니다.”
“아하?”
“혹시 몰라서 수집해둔 자료인데, 이게 이렇게 쓰이는군요. 유비무환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유비무환은 또 어디서… 아니 잠깐. 지도를 수집해둔 건 그렇다 쳐. 근데 왜 이게 거기서 바로 나와? 기다렸다는 것처럼?”
“전하께서 어떻게 행동하실지 알고 있었으니까요.”
“아하?”
“그리고….”
미켈레가 덧붙였다.
“만약 오스칼 경이 그만두면 제 업무량이 최소 1.5배는 늘어날 겁니다. 그건 정말… 지옥이겠지요.”
미켈레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오스칼은 프로아 왕국의 총사령관으로서 평소 맡은 바 임무가 미켈레만큼이나 많았다.
게다가 오스칼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로서 매우 유능한 인물이었다.
그런 오스칼이 자리를 비우게 된다면, 프로아 왕국에 큰 공백이 생기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지크가 프로아 왕국을 비워두고 마음껏 나돌아 다닐 수 있는 것도 미켈레와 오스칼이 행정과 국방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주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오스칼 경이 없다면 전하께선 절대로 밖으로 발걸음하실 수 없을 겁니다.”
“히, 히익?!”
지크는 미켈레의 말에 소름이 끼쳐 몸을 떨었다.
오스칼이 없는 세상이라니!
업무 지옥이라니!
일 떠넘기기를 그 무엇보다 좋아하는 지크로서는 오스칼과 같은 유능한 신하를 절대로 잃을 수 없었다.
“빨리 구하러 가야겠다.”
지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건 현재 오스칼 경이 처한 상황을 간략하게나마 기록해 놓은 문서입니다. 가는 길에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미켈레는 사전에 수집해둔 정보까지 꺼내 지크에게 넘겨주었다.
“땡큐.”
“얼른 오스칼 경을 데려오시죠. 벌써부터 업무가 마비되기 시작했습니다.”
“금방 다녀올게.”
지크는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
슈퍼 비행선 의 선실 내부.
“음.”
지크는 오스칼을 구하러 가는 도중 미켈레가 넘겨준 문서를 읽으며 무슨 사태가 벌어진 건지를 알아보았다.
사건은 간단했다.
에 속한 영지 중 영지와 영지가 상권의 이권을 다투다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오스칼의 첫사랑이라던 쓰레기는 그중 영지의 영주였다.
살바토르 푸르트.
어느 시골 영지의 평민 출신 기사인 그는, 오스칼과 마찬가지로 맥캘란 왕국의 기사 아카데미에서 유학하고 교관 자리까지 꿰찼던 사람이었다.
그런 뒤 엠포리오 왕국 발렌시아가(家)의 영애와 결혼, 데릴사위가 되었다.
왕족의 미들네임과 발렌시아 가문의 성씨를 이어받은 그는, 결혼 후 몇 년이 지나 후작의 작위를 계승하고 영주가 되었다.
그리고….
“영주에 등극하자마자 세율을 40퍼센트에서 70퍼센트로 개정… 공포 통치 실시… 영지민들 상대로 고리대금업… 어우야.”
지크는 이제 살바토르 반 발렌시아가 된 오스칼의 첫사랑에 대한 문서를 읽어보다 혀를 내둘렀다.
살바토르는 영주에 등극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폭정을 일삼았다.
마치 악덕 영주의 전형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인물이 평민 출신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었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였다.
심지어, 미켈레가 준 문서에는 살바토르가 여성 엘프들을 사냥해 영지민들을 상대로 성매매 사업을 벌이기까지 했다고 쓰여 있었다.
“이거 쓰레기 중의 쓰레기인데….”
지크는 문서를 읽다 아예 질려버리고 말았다.
“오스칼 경이 이런 자식을 구하자고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개연성 너무 없는 거 아니냐?”
“뀨! 주인 놈아아! 사랑이라는 게 그런 거다! 사랑 앞에 개연성 찾지 마라!”
햄찌가 지크의 옆자리에 앉아 기내식(?)을 먹으며 아는 체를 했다.
“사랑이라는 게 그런 거라고?”
“어차피 그 자식 망했다! 이제 목 잘릴 일만 남지 않았냐! 뀨우!”
“그건 그렇지?”
“그래서 그런 거다! 망해버린 놈 어떻게든 구해다가 개과천선 시키려고 애쓰는 거 아니겠냐!”
“으음.”
“아직 못 잊었다! 뀨우! 오스칼 경 순정파다!”
“에라이! 모르겠다!”
지크는 에 대한 문서를 집어던지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어차피 내 일도 아닌데. 난 오스칼 경만 무사히 구출해내면 되니까.”
“그렇다! 주인 놈아아! 신경 쓰지 마라!”
“그러려고.”
지크는 오스칼을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어차피 지크의 목적은 오스칼을 구해 다시 프로아 왕국에 무사히 앉혀놓는 것.
솔직히 가 어떻게 되든 말든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으니까.
– 곧 하강 비행을 시작합니다!
– 안전띠를 착용해 주십시오!
안내 방송이 나오고.
이윽고 슈퍼 비행선 은 영지의 어느 작은 야산에 착륙했다.
은 수직 이륙과 수직 착륙이 가능했으므로, 활주로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스텔스 모드를 켠 상태로 조용히 내려앉으면 될 뿐….
“공개 처형이 딱 이틀 남았다고 하니까… 빨리 움직이면 오스칼을 막고 설득할 수 있겠지?”
“그럴 거다! 뀨우!”
“얼른 가자.”
지크는 야산을 벗어나 영지의 중심부로 향했다.
그로부터 세 시간 후.
“얼른 움직여라! 어서!”
“샅샅이 뒤져라! 샅샅이! 수상쩍은 놈들은 모조리 수색하라!”
지크는 영지의 중심부로 들어가자마자 한 무리의 기사들이 분주하게 달려 나가는 걸 보게 되었다.
말인즉슨….
“벌써?!”
오스칼이 이미 를 구출하고 도망쳤다는 얘기였다.
***
같은 시각.
오스칼은 와 숲속 깊은 곳 어느 토굴에 숨어 있었다.
“…….”
“…….”
그런 오스칼과 사이에는 숨 막힐 것 같은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다시 한 만남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한 명은 패망한 영지의 폭군으로.
다른 한 명은 군주가 없는 자유 기사 신분으로.
두 사람 다 가진 모든 걸 잃은 뒤였다.
“이제 속이… 시원하신가요.”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오스칼이었다.
오스칼은 그 푸른 눈으로 자신의 옛사랑을 바라보았다.
과거 마땅히 존경할 만했던 교관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수려하게 잘생긴 외모는 이미 추악한 욕망에 의해 일그러진 뒤였고, 맑은 눈동자는 탁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백옥 같던 피부는 이미 칙칙해진 지 오래….
“오스칼….”
살바토르가 입을 열었다.
“왜 나를 구한 거지? 설마 날 아직도….”
“미련한 미련이겠죠.”
“미련이라….”
“이게 내가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호의입니다.”
“…….”
“여기서 탈출하고 나면… 어디 꼭꼭 숨어서 다신 세상에 나오지 마십시오. 만약 당신이 다시 세상에 나온다면, 그땐 내가 당신을 죽일 겁니다.”
오스칼의 말은 진심이었다.
한때 진심으로 사랑했던 남자가 비참하게 죽는 걸 차마 볼 수가 없어 이렇듯 발걸음 하긴 했지만, 오스칼은 살바토르를 여전히 미워했다.
아니, 증오했다.
잊은 줄 알았더니 살바토르에 대한 미련을 끊지 못한 스스로에게도 화가 났다.
“다시 경고하건대, 여기서 살아 나가면 세상에 나오지 마십시오. 저는 당신의 그 하찮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모든 걸 버렸습니다.”
“…….”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을 더는 모실 수 없게 됐죠.”
“그 정도였나?”
“그게… 무슨 말이죠?”
“프로아 왕국이… 네 모든 것이 될 수 있을 정도의 나라였던가? 고작 작은 시골 영지나 다를 바 없는 곳의 하찮은 군주가 너처럼 유능한 기사의 모든 것이 될….”
그 순간.
스릉!
오스칼의 검이 살바토르의 목 언저리에 닿았다.
“내 주군을 모욕하는 발언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
“당신 같은 인간을 구하기 위해 그분 곁을 떠나야만 했던 내 스스로가 얼마나 미운지 절대로 모를….”
“좋아하는군.”
살바토르의 한마디가 오스칼을 얼어붙게 했다.
“그 눈빛. 전에도 본 적이 있지. 옛날 네가 나를 바라볼 때면 넌 언제나 그런 눈빛을 하고 있….”
살바토르는 말을 채 끝마치지 못했다.
스윽!
오스칼의 검이 목 언저리의 피부를 갈랐기 때문이다.
주르륵!
시뻘건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당신을 살리기로 한 게 후회되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그렇군. 그 약소국의 왕을….”
“한 번만 더 입을 놀리면… 그땐 죽일 겁니다.”
오스칼의 경고에 살바토르는 입을 꽉 다물어야만 했다.
그녀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역린(逆鱗)을 건드린 느낌이랄까?
“슬슬 나갈 때가 된 것 같군요. 일어나십시오.”
“…그러지.”
오스칼과 살바토르는 조심스레 토굴을 나서 다시금 도망치기 시작했다.
***
그 후 오스칼과 살바토르는 을 이용해 탈출하는 과정에서 수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그러던 중.
“도대체 왜 진검을 쓰지 않는 거냐!”
살바토르가 오스칼을 향해 소리쳤다.
“네가 진검만 사용했으면 훨씬 빨리 도망칠 수 있었을 텐데!”
“당신을 위해 누군가를 죽일 필요가 없으니까.”
“망할!”
살바토르는 마음 같아선 자신이 검을 휘둘러 맥퀸 영지의 기사들과 병사들을 쳐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거의 10년 동안이나 검을 손에서 놓았고, 또 고문을 당하느라 부상을 입은 살바토르는 전혀 싸울 수가 없었다.
오직 오스칼에게 의지해야 할 뿐….
“살자는 건가! 죽자는 건가! 언제까지 진검이 아닌 무기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지?”
“도망치다 죽으면 그뿐.”
“빌어먹을!”
“움직이십시오.”
오스칼은 살바토르가 불평불만을 하든 말든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중.
“멈춰라!”
오스칼과 살바토르는 거의 50여 명이나 되는 적들을 만나게 되었다.
숫자는 그리 많은 게 아니었다.
여태 오스칼이 때려눕힌 적들의 숫자만 해도 거의 200명에 달했으니까.
문제는 그 질.
이번에 오스칼과 살바토르의 앞을 가로막은 이들은 하나같이 가죽으로 만든 가벼운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게다가 왼손엔 소형 크로스보우를.
오른손엔 자그마한 숏소드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갑옷 정중앙에는 하얀색 산양의 머리가 새겨져 있었다.
“맥퀸 레인저 연대…!”
살바토르가 자신의 앞길을 막은 이들을 바라보며 경악했다.
멕퀸 레인저 연대.
케스커 산맥에 주둔하는 맥퀸 영지의 정예들로서, 그 전투력이 가히 어마어마하다고 알려진 이들이었다.
“오스칼! 진검을!”
살바토르의 외침에 오스칼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스칼은 여전히 가져온 두 자루의 검 중 날이 서 있지 않은 쇠몽둥이를 움켜쥐었다.
“빌어먹을! 진짜로 뒈진단 말이다!”
“죽으면 그뿐.”
그렇게 말한 오스칼은 맥퀸 레인저 연대를 향해 묵묵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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