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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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이요?”
“예, 전하….”
오스칼이 말끝을 흐렸다.
“감히 전하께 부탁을 드릴 입장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들어드릴 수 있는 거면 얼마든지 들어드릴 테니까 말씀만 해주세요.”
지크가 미소를 지으며 오스칼에게 말했다.
오스칼은 를 일으켜 가 된 상태.
앞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룩할 신하의 부탁 하나쯤 들어주는 건 왕인 지크의 입장에서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미래를 위한 투자랄까?
훌륭한 인재의 육성(?)을 위해서라면, 작은 부탁은 얼마든지 들어줄 만했다.
“그 쓰레기 살려달란 부탁만 아니면 들어줄게요.”
딱 하나만 빼고.
“아니옵니다.”
오스칼이 고개를 저었다.
“소신이 감히 전하께 드릴 부탁은….”
“부탁은?”
“그를 소신의 손으로 죽일 수 있게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다.
이미 카렐이 의 뒤를 밟고 있었고, 지크는 곧 햄찌를 데리고 추적에 나설 예정이었다.
그 뒤엔?
당연히 죽인다.
를 구출해낸다는 건 순전히 오스칼의 생각이었기에, 지크는 딱히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가 오스칼을 칼로 찌르는 뒤통수를 치고 도망친 이상, 지크는 결코 그를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오스칼이 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기를 원한다?
어렵지 않은 부탁이었다.
그러나….
“괜찮겠어요?”
지크는 오스칼이 걱정됐다.
“쉽지 않을 텐데요?”
오스칼은 를 구해내기 위해 사직서까지 제출하고 자유 기사 신분을 선택하기까지 했다.
그런 오스칼이 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는 게 과연 쉬울까?
“괜찮습니다.”
오스칼이 딱 잘라 말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를 제 손으로 보내주는 게 마지막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으음.”
“완벽하게 끊어 냈습니다.”
“정말이죠?”
“예, 전하.”
“그래요, 그럼.”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스칼 경의 부탁, 들어드리겠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오스칼이 지크를 향해 고개를 깊이 숙였다.
“두 시간 드릴게요. 좀 쉬세요.”
“예, 전하.”
지크는 오스칼에게 짧은 휴식 시간을 주었다.
긴 회복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왜?
성녀 자네트의 치유 마법은 오스칼을 순식간에 치료해 놓았으니까.
지금의 오스칼에게는 아주 약간의 음식과 포션 한두 병만이 필요할 뿐이었다.
***
같은 시각.
카렐은 지크의 명령을 받고 를 바짝 추격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엠포리오 왕국으로 가?’
놀랍게도, 살바토르는 멀리멀리 도망가기는커녕 오히려 엠포리오 왕국 쪽으로 향했다.
심지어, 그 행선지가….
‘발렌시아 영지?’
지금은 맥퀸 영지에게 점령당한 발렌시아 영지 방향이었다.
도대체 왜일까?
어째서 살바토르는 적이 우글거리는 적진 한복판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걸까?
도대체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살바토르는 악덕 영주로 악명이 높은 인간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민심이 가히 최악이라는 말이었다.
실제로도 발렌시아 영지의 영지민들은 맥퀸 영지에게 점령당한 걸 오히려 반기고 있었다.
영지민들의 입장에서는 살바토르의 폭정에 고통을 받느니 차라리 맥퀸 영지에 흡수·합병되는 게 훨씬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즉, 살바토르에게는 자신이 다스리던 발렌시아 영지조차도 적이 득실거리는 죽음의 땅이란 소리였다.
그런데도 기어들어 간다?
지켜보는 카렐의 입장에서는 매우 이상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도대체 어딜 가는 걸까?’
카렐은 살바토르의 이상한 행동에 의아함을 느끼며 그 뒤를 계속해서 밟았다.
그러던 중.
‘음?’
카렐은 살바토르가 발렌시아 영지의 중심부로부터 멀리 떨어진 어느 마을로 향하는 걸 보고 뒤를 밟았다.
살바토르가 향한 곳은 예전에 화전민들이 살던 야산으로, 지금은 누구도 살지 않는 버려진 마을이었다.
‘뭐 하는 걸까.’
카렐은 살바토르를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살바토르는 주변에 누가 있는지 두리번거리다가 조심스레 버려진 마을의 우물로 향했다.
그 우물은 예전에 말라붙었는지, 나무로 된 뚜껑으로 입구가 막혀 있었다.
스윽.
살바토르는 뚜껑을 치우고, 반쯤 썩어 들어간 밧줄을 붙잡고 우물 밑으로 내려갔다.
스윽.
다시 뚜껑을 덮는 것도 잊지 않았다.
‘뭐가 있다.’
카렐은 살바토르의 이상한 행동에 무언가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우물에 풍덩! 하고 빠져 자살하려는 생각이 아니고서야 저렇게 행동할 그 어떤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나.’
카렐은 고민했다.
선택지는 두 가지.
1. 계속해서 살바토르의 뒤를 쫓는다.
2. 이곳에서 지크가 올 때까지 대기한다.
그중 카렐의 선택은….
‘가 보자.’
계속해서 살바토르의 뒤를 쫓는 거였다.
저 우물이 어디로 이어질지 알 수가 없었기에, 웬만해서는 쫓아가 보는 편이 나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전투가 목적도 아니고, 추적과 감시가 맡은 임무의 전부인 카렐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내릴 만한 판단이었다.
스윽.
카렐은 풀숲에서 벗어나 살바토르를 따라 우물로 향했다.
***
같은 시각.
어느 낡은 저택 안.
몇 개월 전 뉘르부르크 대륙에 강림했던 악마 케이오스와 마왕의 아들 메타트론은 수만 권의 역사서를 쌓아놓은 채 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빌어먹을!”
노마법사, 아니 메타트론이 분통을 터뜨렸다.
“도대체가 어벤져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주, 주군.”
악마 케이오스가 그런 메타트론을 달래려 애썼다.
“마왕 전하께서 검을 잃어버리신 지 벌써 몇백 년이 지났사옵니다. 그걸 추적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조금 더 자료 조사를 통해 확실한 정보를 수집하심이….”
“이런 빌어먹을!”
메타트론이 버럭 소리쳤다.
“누가 그걸 모르나? 어?”
“주군이시여….”
“봐라! 이 빌어먹을 육체를!”
메타트론이 보란 듯 양팔을 활짝 펼쳐 보이던 순간.
우득!
어깨 관절에서 우드득! 하는 소리가 났다.
“크윽!”
“주, 주군! 괜찮으신 겁니까!”
“봐라… 나의 육체를… 크윽!”
메타트론이 고통스러워했다.
“뭐만 하면 어깨가 빠지고… 목은 거북목이다. 시력은 떨어질 대로 떨어져 밤눈마저 어둡다. 무릎은 날씨만 궂으면 시큰하게 아파온다. 게다가 노안이 와서 돋보기 없인 책을 읽을 수도 없단 말이다!”
“주군이시여….”
“이런 쓰레기 같은 육체에 언제까지 갇혀 있어야 하는 건가… 도대체 언제까지….”
메타트론은 하필이면 늙을 대로 늙은 노마법사의 육체에 빙의한 탓에, 육체적으로 굉장히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마왕의 아들인 메타트론이 관절염, 동맥경화, 심근경색 등 각종 노인성 질환을 달고 살게 된 것이다.
“주군이시여. 참으셔야 합니다. 왕위 계승권에서 밀려나지 않으시려면 이 정도 고통쯤은 인내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크흠!”
“주군이시여. 존버하셔야 합니다.”
“존버? 그게 무슨 말이지?”
“그 모험가들의 말로 꿋꿋이 버티고 또 버틴다는 용어이옵니다.”
“으음! 그렇군!”
“지금은 고통스러우시지만, 만약 어벤져를 손에 넣으시면 어떻겠사옵니까? 주군께서 전하의 뒤를 이어 마계의 지배자가 되시는 것이옵니다!”
“마계의 지배자!”
메타트론은 란 말을 되새기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계의 지배자란 곧 마왕을 가리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주군. 오늘의 치욕과 고통이 미래의 영광이 될 것이옵니다. 그러니 존버하소서. 힘드시면 잠시 쉬시지요. 이 케이오스가 주군을 대신해 자료를 조사하겠사옵니다.”
“그, 그렇게 해주면 나로서는 매우 고마울 것이다. 흠흠흠.”
메타트론은 못 이기는 척 케이오스의 앞으로 책더미를 슬쩍 밀었다.
안 그래도 자료 조사만 하느라 좀이 쑤셔 미쳐 버릴 지경이던 참이라, 케이오스의 제안에 넙죽 응한 것이다.
“…….”
케이오스는 그런 메타트론의 행동에 어이가 없었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마계는 약육강식의 세계.
계급이 곧 깡패인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메타트론이 마왕이 된다면, 케이오스는 1등 공신으로서 그에 따른 후한 보상이 보장되어 있었다.
지금의 고생은 곧 케이오스에게도 미래를 향한 큰 투자인 것이다.
“주군이시여. 잠시 산책이라도 다녀오소서. 제가 대신….”
바로 그때였다.
“음?!”
케이오스는 순간 흠칫해 몸을 떨었다.
스으으으!
그런 케이오스의 왼쪽 어깨에 새겨진 문신에서 보라색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주, 주군이시여!”
케이오스가 다급히 메타트론을 향해 말했다.
“진정 죄송한 말씀이오나… 어떤 인간이 저를 소환하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소환?”
“예.”
“거절하면 될 텐데?”
“그것이….”
케이오스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말했다.
“소인이 과거에 계약을 해두었던 검을 통해 소환하는 것이라 거부할 수가 없사옵니다.”
“뭣이?!”
“주, 주군이시여! 정말 죄송하오나 소인이 금방 다녀올 터이니 잠시만….”
“이런 젠장!”
“꼬, 꼭! 금방 다녀오겠사옵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르륵!
케이오스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소환자에게로 이동되었고.
“…….”
메타트론은 나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
자신이 미뤘던 자료와 원래 케이오스가 맡았던 것들까지 통째로 떠안은 채로….
***
지크는 햄찌를 앞세워 살바토르와 카렐의 추적에 나섰다.
몇 시간 후.
“킁킁! 이쪽이다!”
햄찌는 어렵지 않게 살바토르와 카렐의 행방을 추적해냈다.
“뀨! 주인 놈아아! 여기다! 여기! 킁킁킁! 이 안으로 들어간 게 분명하다!”
“그래?”
지크는 햄찌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햄찌가 가리킨 곳은 말라 버렸는지, 나무로 된 뚜껑이 덮인 우물이었다.
“우물? 도대체 여긴 왜 들어간 거야?”
“어딘가로 이어져 있지 않겠냐! 뀨우!”
“그런가….”
지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이상하네. 다시 발렌시아 영지로 온 것도 이상하고. 우물로 들어간 것도 이상하고. 안 그래요? 오스칼 경?”
“예. 이상합니다.”
오스칼 역시도 지크의 의견에 동의했다.
“일단 가봐야겠죠?”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무로 된 뚜껑을 조심스럽게 치우고,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우물 밑을 들여다보았다.
아니, 들여다보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빠악!
뭔가가 빠른 속도로 튀어 올라 지크의 안면을 강타했기 때문이다.
“악!”
지크가 안면을 부여잡고 뒤로 쓰러졌다.
“뭐, 뭐야!”
지크가 번개처럼 몸을 일으키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주인 놈아아!”
“저, 전하!”
햄찌와 오스칼이 지크를 향해 소리쳤다.
“주인 놈아아! 코에서 피 난다! 피! 뀨우우!”
“코, 코피?! 악!”
지크가 자신의 코 밑을 슥- 만져보고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런데 방금 도대체 뭐였… 뭐야? 너 카렐이잖아!”
“크윽! 저, 전하….”
우물 안을 들여다보던 지크와 충돌한 사람은 다름 아닌 카렐이었다.
“야! 너 괜찮아?!”
“크윽! 저, 전하… 으윽!”
“야! 카렐! 너 왜 이래!”
카렐의 상태는 매우 나빴다.
얼마나 심한 부상을 입었는지, 전신이 피투성이였다.
게다가 뭐에 당하기라도 했는지 이곳저곳 상처 부위에서 시커먼 암흑의 기류가 뿜어져 나오기까지 했다.
“카렐! 정신 차려! 카렐!”
지크가 그렇게 소리치던 때.
슈우우욱!
우물 속으로부터 무언가 시커먼 형체가 솟구쳐 올랐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