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405
404
짜악!
조지 3세의 손바닥이 오스칼의 뺨을 후려치던 순간 행사장에는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또한, 지크의 이성의 끈 역시 끊어졌다.
‘저 개 같은 새끼가.’
지크는 진심으로 분노했다.
강대국의 왕이랍시고 무례한 것까지는 이해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크는 이 행사에 억지로 참석한 것이었으므로, 조지 3세 따위가 연설을 듣든 방해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서 빨리 이 행사를 마치고 프로아로 돌아가기만을 바랐을 뿐….
그런데 오스칼의 뺨을 쳤다?
딱히 무례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그저 지크가 연설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게끔 양해를 구했는데?
지크의 입장에서는 살인 충동을 느끼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건 비단 지크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스톤 아일랜드의 통령 앙겔레르.
“아주 무례하군요!”
맥캘란 왕국의 왕 아르샤.
“굉장히 불쾌한 일입니다!”
그리고 신성 콘스탄틴 제국의 섭정 자네트까지.
지크와 친분이 있는 군주들 모두가 조지 3세의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을 비난하고 나섰다.
그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보시오! 너무 심한 거 아니오?”
“아무리 약소국의 왕이라도 그렇지! 너무하시오!”
“기분이 나쁘다고 수행 기사의 뺨을 치는 건 너무하지 않소?”
몇몇 깨어 있는 군주들 역시 조지 3세의 행동을 비난했다.
하지만 조지 3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뭣이?! 하! 언제부터 당신들이 품위를 지켰다고 위선을 떠는 게요? 내가 뭐 잘못했소? 싸가지 없는 계집의 뺨을 쳤다고 지금 날 욕하는 게요?”
조지 3세는 뻔뻔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정말로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모르는 듯했다.
아니, 자신의 행동이 잘못이라고 여기지 않는 게 분명했다.
“전하.”
그 와중에 오스칼의 대응은 가히 걸작이라 할 만했다.
“소인의 뺨을 치셨으니 부디 제 주군께서 연설을 끝마치실 수 있도록 배려하여 주소서.”
오스칼은 뺨을 맞은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그저 자신의 임무를 다할 뿐이었다.
수행 기사로서 군주를 보필하는 것.
오스칼은 그 외에 다른 것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러나 조지 3세는 그런 오스칼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미친 듯 날뛰었다.
“하! 세계평화회의도 갈 데까지 갔군! 이따위 저급한 것들을 들이다니! 그리고 도대체 저 애송이가 뭐라고 두둔하는 게요?”
조지 3세가 지크와 인연이 있는 군주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저 애송이는 왕이 아니요! 그저 운 좋게 왕위에 오른 모험가일 뿐이지! 아니! 다들 생각이란 게 있소? 없소? 저자는 다른 세계에서 강림한 존재란 말이오! 결코 이 땅의 군주가 될 수 없소!”
조지 3세는 지크의 출신 성분을 물고 늘어지는 한편, 앙겔레르 통령과 아르샤 국왕과 성녀 자네트를 물고 늘어졌다.
공교롭게도, 그 세 명의 군주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을 콕 찍어서 말이다.
“그리고! 앙겔레르 통령! 아르샤 국왕! 그리고 성녀 자네트! 그대들은 저 애송이를 좋아하오? 정분이라도 난 게요? 왜들 그리 감싸고들 도시오? 저 애송이가 그대들의 기둥서방이라도 되는 게요? 하긴! 저 애송이가 모험가들 사이에서 지독한 색마이자 정력가란 소문은 내 익히 들어 알고 있지!”
조지 3세의 입에서 지크에 대한 악성 루머(?)가 튀어나오던 순간.
“그만하시지요!”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그 발언!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조지 3세의 모욕적인 발언에 앙겔레르와 아르샤와 자네트의 수행 기사들이 일제히 나섰다.
그러자 조지 3세를 포함해 지크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왕들의 수행 기사들 역시 은근슬쩍 나섰다.
지크는 잘 몰랐지만, 사실 조지 3세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NPC인 몇몇 군주들의 입장에서, 게이머인 지크는 군주로서의 정통성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존재쯤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행 기사들 간의 대치가 이루어지고 있을 때였다.
‘저 새끼 안 되겠네.’
지크는 그렇게도 사고를 치지 말아 달라던 미켈레의 부탁을 까맣게 잊은 채 발걸음을 떼어놓았다.
‘전쟁? X까! X발 한번 해보자!’
지크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전쟁?
두렵지 않았다.
사실 조지 3세의 행동은 비단 오스칼의 뺨을 친 것만이 아니었다.
오스칼의 뺨을 서슴없이 쳤다는 건 지크와 프로아 왕국을 개만도 못하게 여긴다는 것.
일국의 왕으로서 결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전쟁을 하더라도 절대 안 참는다.’
지크가 허리춤에 찬 를 움켜쥐던 순간.
“황제 폐하 납시오!”
시종의 외침과 함께 의 의장인 슈트카르트 황제가 연회장으로 들어섰다.
***
세계 최고 권력자의 등장은 그 발걸음부터가 가히 극적이었다.
슈트카르트 황제의 등장에 대치하고 있던 수행 기사들은 모두 물러서 자신의 군주 곁으로 향했고, 격해지던 언쟁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수그러들었다.
숨 막히는 정적.
그 누구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슈트카르트 황제가 연회장으로 들어서며 입을 열었다.
“오늘도 평화로워 보이는군.”
그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슈트카르트 황제의 평화롭단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예, 황제 폐하.”
지크는 슈트카르트 황제의 부름에 조지 3세의 뚝배기를 깨려던 걸 멈추고 한쪽 무릎을 꿇어 예의를 갖추었다.
그건 결코 비굴하거나 굴욕적인 게 아니었다.
지크는 황제로부터 왕위를 책봉 받은 자.
즉, 프로아 왕국은 마우레키온 제국의 제후국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엄밀히 따지면 지크는 황제의 신하쯤 되는 것이다.
실제로, 제국에서 지크에게 내린 작위도 공작의 직위에 해당하기도 했고.
“잠시 연설을 멈추고 짐에게 시간을 줄 수 있겠나?”
“물론이옵니다.”
지크는 황제의 부탁에 고개를 숙였다.
아무렴.
무려 황제의 부탁인데, 어느 안전이라고.
솔직히 말해서, 지크는 황제씩이나 되는 자가 저렇듯 예의 있게 부탁을 해온 것 자체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고맙다. 그대의 배려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황공하옵니다, 황제 폐하.”
슈트카르트 황제는 지크에게 양해를 구한 직후 발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슈트카르트 황제가 발걸음을 옮긴 곳은 다름 아닌….
“오, 오래간만이오. 슈트카르트 황제.”
조지 3세의 앞이었다.
“오래간만이군. 조지 3세. 잘 지냈나?”
“그, 그렇소. 그대는 어떻게 지냈소?”
“나야 늘 잘 지냈지.”
“다, 다행이구려.”
조지 3세는 슈트카르트 황제가 단순히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도 압박감을 느끼는 듯 땀을 삐질삐질 흘려댔다.
그게 슈트카르트 황제가 가진 힘이었다.
이 세계 최고의 권력을 가진 NPC는 단순한 말 한마디만으로 강대국의 왕에게 강한 압박을 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게임 속 미국이라고 할 수 있는 마우레키온 제국 지배자의 위엄이었다.
“좀 시끄러운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그, 그건….”
“한 가지만 묻지.”
“얼마든지….”
“저기 저 왕을 누가 임명했나.”
슈트카르트 황제가 단상 위에 자리한 지크를 가리켰다.
“누가 저 모험가에게 왕위를 하사했지?”
“그건… 바로 당신이오.”
조지 3세가 대답했다.
“당신이 저 모험가를 일국의 왕으로 책봉했소.”
“잘 아는군.”
“그걸 모를 리 있겠소.”
“그럼 저 왕에게 정통성이 있는가, 없는가.”
“그야 당연히… 크흠!”
조지 3세는 슈트카르트 황제의 질문에 감히 대답할 수가 없었다.
불과 몇 분 전.
[저 애송이는 왕이 아니요! 그저 운 좋게 왕위에 오른 모험가일 뿐이지! 아니! 다들 생각이란 게 있소? 없소? 저자는 다른 세계에서 강림한 존재란 말이오! 결코 이 땅의 군주가 될 수 없소!]조지 3세는 지크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발언은 곧 지크를 왕으로 책봉한 슈트카르트 황제의 뜻을 부정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다시 묻겠다.”
슈트카르트 황제가 조지 3세에게 물었다.
“저 왕에게 정통성이 있는가, 없는가.”
“…….”
“짐이 세 번이나 묻게 할 셈인가?”
슈트카르트 황제는 조지 3세가 말이 없자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주 차가운 미소를….
“이, 있소.”
결국, 조지 3세는 지크의 정통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불과 몇 분 전에는 오스칼의 뺨을 치고, 지크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지크와 친한 군주들을 성적으로 조롱한 주제에 말이다.
“그럼 정통성 있는 왕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대놓고 모욕하고, 그의 수행 기사의 뺨을 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아니. 그 전에.”
슈트카르트 황제가 고개를 저었다.
“누구 멋대로 소란을 피우라고 했지? 설마 짐의 권위를 무시하는 건….”
“아, 아니오! 절대 그렇지 않소! 나는 그대의 권위를 무시하지 않소! 나는 그대를 존경하오! 그대의 권위를 매우 존중하는 바요!”
그로써 힘의 차이는 여실히 드러났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여포처럼 굴던 조지 3세는 슈트카르트 황제의 말 몇 마디에 온순한 양이 되어 비굴하게 생존을 구걸했다.
왜?
재수 없으면 자신의 나라가 멸망할 테니까.
슈트카르트 황제의 심기를 거슬렀다가는 강대국이고 나발이고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될 테니까.
“조지 3세.”
“마, 말씀하시오.”
“그대가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를 업신여기든 존중하든 짐은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짐의 권위에 도전하는 건 용서치 않는다. 알아듣겠나? 부디 주제 파악을 하란 말이다.”
“알겠…소.”
“좋군.”
슈트카르트 황제는 조지 3세의 굴복에 피식 웃음을 짓고는 지크를 돌아보았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예, 황제 폐하.”
“연설을 계속해도 좋다. 그대가 짐을 위해 시간을 내어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바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제 폐하.”
그렇게 조지 3세가 지크에게 부린 깽판은 슈트카르트 황제의 등장으로 인해 완벽하게 정리되었다.
‘두고 보자.’
물론 지크는 조지 3세를 결코 용서할 생각이 없었지만.
***
5분 후.
“그럼, 감사합니다.”
지크는 무사히 연설을 마치고 단상을 내려갈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회의의 의장이신 슈트카르트 황제 폐하께서 연설하시겠습니다!”
마지막은 의장인 슈트카르트 황제의 차례였다.
지크가 단상을 내려가고, 슈트카르트 황제는 단상으로 올라가던 순간.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슈트카르트 황제가 지크를 스치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직 지크만 들을 수 있는 아주 목소리로.
“예, 황제 폐하.”
“머잖아 빚을 갚을 날이 있을 것이다.”
“예?”
지크는 황제의 말뜻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머잖아 빚을 갚을 날이 있을 거라고? 뭐지? 내가 조지 3세랑 한판 붙는단 소린가?’
그런 지크의 의문이 풀리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썩은 피의 정수는 잘 가지고 있겠지?”
그 순간.
‘그, 그걸 어떻게 알지?!’
지크는 슈트카르트 황제의 속삭임에 소스라치게 놀라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란 지크가 지난 에서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고 얻은 아이템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